근빈
박씨는
세조가
임금에
오르기전에
맞이한
부인으로
박선민의
딸이다
족보에
따르면
영락
무술년
12월1일
태어났다
양력으로
보면
1419년
태어났으며
졸년은
중종20년
1525년
2월2일이다
향수
105세가
된다
수양대군과
근빈박씨의
인연
근빈박씨가
훗날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
이유의곁에
처음발을
들인것은
1440년대
중반
왕자
대군으로서
세를키우던
수양의
저택이었다
수양대군은
권력으로
향하는
길위에서
냉철하고
잔인했으나
그의
삶에는
예술과
흥취를
아끼는
뜨거운
면모가
있었다
1440년대
중반
선산박씨
가문의딸인
근빈
박씨가
수양의
저택에
발을
들였을때
그녀는
왕자대군
곁에서
풍류를
익히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박씨는
양반집
규수로서
춤을
춰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수양
대군이
총애하여
사냥이나
유희를
즐길때마다
동행하여
악공과
무희들의
춤을보며
모든것을
눈에
새겼다
궁중
연회에서
명인들의
춤사위도
보고
홀로춤을
추어보기도
했다
수양대군은
밖에서
고된정무를
마치고
저택으로
돌아올때면
때때로
공식적인
연회보다
더사적인
유희를
즐기곤했다
어느날
집에와서도
흥이
가시지않자
근빈을
불러세워
함께춤을
추었다
의외로
상당히
맵시있는
춤을보자
수양대군은
만족
스러운듯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춤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구나
자오늘은
내가
가르쳐주마
엉
중생
할줄은아나
하하
그리고는
직접박씨를
가까이
세워두고
춤의리듬을
가르쳐
주거나
자신의
흥을
따라함께
몸을
움직이도록
했다
때로는
박씨의
손을잡고
춤의박자와
동작을
지도
하기도
했다
수양대군은
박씨의
춤에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더욱깊은
흥취를
느꼈고
박씨는
왕자
대군과의
이사적인
시간을통해
누구에게도
배울수없는
실전적인
가무의
정수를익혀
나갔다
이처럼
수양대군의
지근거리
에서
매일같이
춤을추고
배웠기
때문에
근빈
박씨의
춤솜씨는
나날이
발전
했습니다
그녀는
왕자의
기분을읽고
흥을
돋우며
함께예술을
공유하는
특별한
반려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그녀의춤은
이제
수양대군
에게
없어서는
안될
삶의활력이
된것이다
왕의흥과
함께
피어난춤
궁중연회속
근빈박씨
수양대군의
지근
거리에서
매일같이
춤을배우고
익힌
근빈박씨의
춤솜씨는
나날이
발전했다
그녀의춤은
이제단순한
기예가
아니라
왕자대군의
기분을
읽어내고
그와깊이
교감하는
예술
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궁중에서는
큰규모의
연회가
열렸다
대신들과
종친들이
모여잔치를
즐기는
자리였고
당대
최고의
무희들과
악공들이
불려와
흥을돋우고
있었다
수양대군
이유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언제나처럼
냉철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지만
술이몇순배
돌고
음악이
깊어지자
그의눈빛에
숨길수없는
흥취가
어리기
시작했다
무희들의
현란한
춤이
막을내릴
때였다
연회장은
잠시숨을
고르는듯
조용
해졌다
그때
수양대군은
곁에
앉아있던
근빈박씨의
손을잡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모두의
예상을깬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권력자의
잔인함대신
오직순수한
흥만이
가득했다
수양대군은
주저없이
박씨의
손을잡은채
연회장
중앙으로
나섰고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그녀와
함께
춤을추기
시작했다
왕자대군과
그연인이
연회장에서
함께춤을
추는것은
지극히
파격적인
일이었지만
그들의
춤사위는
격식의
파괴가아닌
예술적
교감의
절정이었다
박씨의춤은
유려
하면서도
힘이있었고
수양대군의
웅장하고
호쾌한
움직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마치
두사람이
한몸인것
처럼
리듬을타고
공간을
휘저었다
그모습에
연회장의
모두가
넋을잃었다
대신들과
종친들은
엄숙한
궁중
연회에서
터져나온
왕자대군의
격렬하고도
아름다운
흥에
압도되었다
그들의춤은
단지흥을
돋우는
것을넘어
두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웅변과
같았다
이후
근빈박씨의
춤솜씨에
대한소문은
대궐을
넘어온
나라에
파다하게
퍼졌다
사람들은
수양대군이
얼마나
그녀의
춤을아끼고
사랑했는지
알게
되었으며
그녀는
왕의마음을
사로잡은
최고의
여인으로
명성을
얻게되었다
그녀의춤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수양대군
이라는
거대한
권력자의
유일한
안식처임을
증명하며
궁중내
그녀의
입지를
더욱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냉철함
뒤의
인간적인
매력
수양대군은
밖으로는
계유
정난을
준비하는
냉철하고
잔혹한
권력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궁중
연회에서
근빈박씨의
손을잡고
춤을
춘행위는
대중과
조정
대신
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이중적으로
확장
할수있는
절묘한
계기가
되었다
대부분의
대신들과
종친들은
수양대군을
비범한
무력과
냉정한
판단력을
지닌
무서운
왕자
대군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가
정적들을
대하는
태도나
권력을
다루는
방식은
엄격함
그자체
였기에
모두가
그의앞에서
숨을
죽였다
그러나
그날
연회에서
근빈박씨와
함께
춘춤은
달랐다
그가보여준
호쾌하고
열정적인
춤사위는
그가
단순한
권력
투쟁가가
아니라
삶의
흥취를알고
예술을
사랑하는
풍류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저렇게
강하고
무서운분도
인간적인
정열과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있구나
라는
새로운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는
대중의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는
동시에
그의
카리스마에
매료되게
만드는
묘한효과를
발휘한다
수양
대군은
춤을통해
다가가기
힘든
권력자와
인간적인
매력을지닌
왕족
이라는
두가지
이미지를
동시에
획득했다
흥취를
다스리는
지도자의
모습
나아가
이사건은
수양대군이
자신의
감정과
흥취를
거침없이
표현
할줄아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강화했다
조선의
왕족은
엄격한
예법에갇혀
자신의
감정을
잘드러내지
않아야했다
하지만
수양대군은
가장
공식적인
자리에서
규율을깨고
근빈과
춤을추며
자신이
예법보다
흥을
중요시하며
대담하게
행동
할수있는
인물임을
과시했다
이는
그가사소한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큰그림을
그릴수있는
활달하고
결단력있는
지도자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심어주었다
즉.춤은
그에게단지
유희가
아니라
나는
이처럼
모든것을
통제하고
뒤흔들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며
나의
뜻대로
세상을
움직
일것이다
라는
정치적
선언이
되었다
결국
수양대군이
근빈
박씨와함께
춘춤은
단순한
연회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그것은
냉혹한
정치가의
이미지에
예술을아는
군주의
매력을
더하고
대담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영리한
이미지
메이킹의
한부분
이었다
혈통의
연속성과
변치않는정
이러한
깊은인연을
바탕으로
근빈
박씨는
훗날
세조가되는
수양대군
에게
두아들을
안겨주었다
이는
근빈박씨가
세조의
후궁중
유일하게
아들을
낳아키운
여인으로
단순한
후궁이상의
혈통의
연속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존재였음을
의미한다
그녀의
인연은
세조에게
결코
가볍지
않았다
비록
그녀의
친정은
공신록에
오르지
못하고
족보에
기록이
누락되는등
권력의
핵심과는
거리를
두었으나
세조는
귀인이었던
그녀의
송사에
직접개입해
노비를
내어주는등
세조10년
1464년
그녀를향한
변치않는
정을
보여주었다
세조가
불교에
깊이
귀의한
배경에는
왕위찬탈
과정에서
쌓은업보를
씻어낼라꼬
하는
간절함이
깔려있었다
그는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왕위에
올랐기에
평생
단종의
원혼과
희생된
이들의
넋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었다
세조는
불경을
간행하고
사찰을
중창
함으로써
자신과
희생된
이들의
영혼이함께
구원
받기를
염원했다
하지만
스스로
속세를
떠날수
없었던
왕의참회는
늘현실적인
제약에
묶여있었다
근빈박씨
영원한
참회의
동반자
근빈박씨는
세조의
가장가까운
곳에서
그의고뇌와
회한을모두
지켜보았다
그녀는
세조의
승하후
자신이대신
그참회의
길을걷기로
결단했다
화려한
궁중생활을
버리고
여승이된
근빈의
모습은
세조가
왕관을벗고
백성으로서
속죄하고
싶었던
염원의
대리적인
실현이었다
그녀가
자수궁에
머물며올린
매일의
기도는
단순한
선왕의명복
기원이아닌
세조의손에
희생된모든
영혼에대한
깊은위로와
용서를
구하는
통렬한
참회였다
근빈박씨는
세조가
염원했던
속죄와
구원을
자신의
일생을통해
완성시켜
주었다
그녀의
숭고한
침묵과
헌신은
세조와의
사랑이
육체적인
인연을넘어
영원한
속죄와
참회라는
종교적
경지에서
완성
되었음을
보여준다
숭고한
침묵속에
담긴
참회의불심
근빈박씨와
세조의사랑
세조가
평생토록
그토록
염원했던
佛心
불심은
단순한
깨달음의
추구가
아니었다
이는
계유정난을
통해
어린조카
단종을
아웃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그과정에서
수많은
충신들의
피를보아야
했던
업보에대한
깊은참회의
의미를담고
있었다
근빈박씨가
여승이되어
자수궁에
거처한
행위는
세조가
왕이라는
숙명때문에
끝내이루지
못했던
궁극적인
속죄와
참회의길을
가장
사랑했던
연인의
숭고한
헌신이었다
정1품
근빈박씨
숭고한
침묵으로
왕실의
위엄을
지키다
근빈박씨는
세조
승하후
성종14년
1483년
정1품
근빈으로
진봉되었다
이품계는
그녀가
평생
선왕을향한
변함없는
마음과
왕실의
안정을위해
헌신해온
삶에대한
공식적인
예우이자
최고의
찬사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세상의
화려한
영예는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근빈박씨의
마음은
오직
사랑하는
선왕세조를
기리는
일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평생을바친
왕실의삶을
갈무리하는
궁극적인
방식으로
머리를깎고
여승이
되는길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출가가
아니었고
조선왕실의
최고
어른으로서
그녀는
세속의
모든욕망과
인연을끊고
남은생을
선왕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기도
채우겠다는
숭고한
헌신을
표명
한것이다.
1485년
성종은
근빈에게
별도로
창수궁
이라는
이름까지
지어
드리면서
공경을
하였다
근빈박씨가
거처를정한
창수궁은
왕실의
불당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되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화려한
비단옷대신
검소한
승복을입고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대신
고요한
침묵을
택했다
이침묵은
그녀의
깊은불심을
상징하는
동시에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서
갖는
흔들리지
않는
위엄
그자체였다
권력
다툼이
끊이지않는
궁궐에서
근빈박씨의
숭고한
침묵은
모든왕실
구성원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녀는
굳이말이나
행동으로
간섭하지
않았지만
자수궁에
머물며
기도하는
그녀의
존재자체가
왕실의
정신적인
기강과
평화를
지키는
상징이었다
그녀의맑고
고요한
모습은
후대의
왕들과
왕실
여성들에게
진정한
경건함과
어른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근빈
박씨는
나이가들어
백세를
바라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실잔치에
참여하여
화목을
과시할만큼
건강하고
강건했다
이는
그녀가
창수궁에서
수행한
절제된삶과
깊은불심이
가져다준
평화로운
결과였으며
그녀가
왕실의
역사속에서
존경받는
어른으로
기록
될수있었던
이유였다
세조에
대한존경
연산군
또한
부왕
성종의
뒤를이어
근빈
박씨를
극진
대우했다
연산군이
할아버지
세조를
향한
존경심을
조의제문
사건을통해
극단적으
표현했듯이
이존경심은
세조의
특별한
후궁인
근빈
박씨에게도
이어졌다
연산군은
근빈박씨가
단순한
후궁이
아니라
냉혹했던
세조의삶에
인간적인
흥과
예술적
풍류를
불어넣어준
특별한
인물임을
알았다
세조가
궁중
연회에서
공식적인
예법을깨고
근빈과함께
춤을추었던
일화는
궁중내에서
유명했다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또한
극진히
모셨던
근빈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근빈박씨를
극진히
모시는것은
근빈박씨가
할아버지
세조의
극락왕생을
비는
고마움은
물론
세조의
사적인
취향과
선택까지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근빈
박씨는
세조
예종
성종의
시대를거쳐
증손자
연산군의
시대까지
생존했으며
연산군
일기의
기록은
그녀의
만년을
새롭게
조명한다
연산8년
1월1일
백관의
하례를받고
양대비전에
잔치를
베풀고
회례연을
거행하였다
연산군10년
1504년
당시80세의
고령이었던
근빈박씨는
연산군의
명으로
궁궐로
들어갔다
실록은
연산군이
근빈등
일곱분은
내일
아침일찍
동궁으로
나아갔다가
29일
지나서
나가시도록
하라고
명령한
기록이있다
이는29일
왕비의
탄일잔치를
앞두고
연산군이
왕실의
어른들을
특별히모신
행사이었다
연산군은
할머니인
근빈박씨를
향한지극한
효심과
존경심을
보여주었고
가무에
능했던
근빈이
잠시라도
왕실잔치의
흥을
돋워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증손자인
임금이
이처럼
대접을
하는데
함께춤을
추는것이
어찌
좋은일이
아니겠는가
이기록은
연산군이
왕실
어른들을
위해성대한
잔치를
준비했음을
보여준다
백세를
바라보던
근빈박씨는
그야말로
왕실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정신적
지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