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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어휘 연구] 17. '세례'와 '침례' | 남대극 교수
안녕하십니까? 에스라 성경 강단 공부를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어휘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중에 중요한 것들을 찾아서 함께 좀 깊이 연구하는 시간입니다. 성경의 어휘 연구를 하는 목적은 앞에서 누누이 설명했기 때문에 지나갑니다. 오늘은 17번째 시간으로 '세례와 침례'라는 이 단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분도 있고, 침례를 받았다고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단어가 더 성경적으로 맞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자, 여기 제가 자주 사용하는 동아 새국어사전에는 세례라는 말과 침례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례는 "기독교에서 신자가 될 때에 베푸는 의식"이라고 맞게 설명하면서, 괄호 안에 "종파에 따라 머리 위를 물로 적시기도 하고 머리에 물을 붓기도 하고 또 온몸을 물에 잠그기도 함"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아, 세례를 주는 방법은 종파에 따라서 물을 적시거나, 그 위에 붓거나, 혹은 온몸을 물속에 잠그는 세 가지 방법이 있군요. 그중에 어느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일까요?
그리고 같은 사전에 침례를 설명하기를 "개신교의 일부 교파에서 세례를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며, 괄호 안에 "침례교를 비롯한 일부 교파"라고 적었습니다. 여기에는 재림교회도 포함됩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를 '성세 성사'라고도 부르는데, 영어로는 '뱁티즘(Baptism)'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근원을 따져보면 헬라어 명사 '밥티즈마(baptisma)'에서 왔습니다. '밥티즈마'는 동사 '밥티조(baptizo)'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밥티조'는 '담그다, 물속에 잠기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 단어 '뱁타이즈(baptize)'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이 '밥티조'라는 말은 헬라어 '밥토(bapto)'에서 유래했습니다. '밥토'는 어떤 물건을 액체 속에 잠기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가령 숟가락이나 그릇을 물속에 집어넣으면 '밥토'입니다. 여기서 파생된 '밥티조'는 조금 더 예식적인 의미가 되어서, 사람을 물속에 집어넣어 예식을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침례하다' 혹은 '세례하다'라는 동사의 본래 의미는 물에 완전히 잠그는 것입니다. 물을 뿌리거나 묻히는 것이 아닙니다.
성화나 그림을 보면 요한이 요단강 물속에서 예수님에게 침례를 베풀고 물 위로 나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의 요단강에서도 목사님이 성도를 물속에 넣을 때 균형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집사님이나 장로님이 돕는 침례 예식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침례의 모습입니다. 물을 뿌리는 식의 세례라는 말은 물에 완전히 잠긴다는 본래의 의미와는 잘 조화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침례의 이야기를 근원부터 살펴보면, 요한복음 3장에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나누신 대화가 나옵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굉장히 엄격하게 지키던 종파였습니다. 그 종파에 속한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자였는데, 요한복음 후반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네드린 공의회의 회원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국회와 같은 입법기관의 의원이었던 셈입니다. 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말합니다. 낮에는 사람들의 이목이 너무 많으니까 피해서 밤에 온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아,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근본에 대하여 굉장히 높은 기독교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대뜸 매우 중요한 사실을 선언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이처럼 '진실로 진실로'라고 말씀하신 기록이 약 25번 나옵니다.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시고자 할 때 오늘날 우리 식으로 "내가 정말 단단히 말해둔다" 하시는 표현입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들은 니고데모는 '이미 어머니 몸에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난단 말인가?' 하고 의아해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물'은 침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침례를 받을 때와 그 이후의 삶 속에서 성령님이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능력을 뜻합니다.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영적 출생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으로 가보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친히 모본을 보이시며 침례를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전체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첫 마디와 마지막 마디를 '알파와 오메가'라고 친다면, 가장 먼저 기록된 말씀인 '알파의 말씀'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러 요단강으로 오셨을 때의 상황입니다. 만약 머리에 물만 뿌리는 식이었다면 굳이 멀리 요단강까지 오실 필요가 없었겠지요. 요한이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사양하며 말렸습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의 알파입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예수님은 죄가 많아서 침례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에게 모본을 보여주신 것이며, 이것이 마땅하고 합당한 일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모본을 보여주셨다면, 그 침례는 더욱 귀한 것이며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예식인 것입니다.
이에 요한이 허락하여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습니다. 물에서 올라오셨다는 표현 자체가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셨음을 증명합니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셨습니다. 인성으로 서 계신 성자 예수님이 물 위로 나오실 때 성령님이 비둘기 모양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의 목소리입니다. 이 장면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께서 동시에 한 공간에 출현하여 나타나신 성경의 아주 희귀하고 장엄한 장면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신 예수님의 침례 장면입니다.
오늘날의 요단강 모습을 보면 강폭이 아주 넓지는 않지만 깨끗한 물이 흘러갑니다. 옛 성화들을 보면 요한이 예수님에게 침례를 베풀고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 형태로 임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알파의 말씀으로 "나에게 침례를 베풀라" 하셨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을 마치는 맨 마지막 장인 28장 18절로 20절에서 제자들에게 최종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주십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로 마태복음의 마침표가 찍힙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침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신 이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 속 예수님 말씀의 '오메가'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태복음은 "나에게 침례를 베풀라" 하시는 알파의 말씀으로 열리고, "가서 침례를 주라" 하시는 오메가의 말씀으로 맺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귀합니다. 이를 우리는 최고의 명령인 '지상 명령(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부릅니다. 제자들에게 침례를 베풀라고 명하실 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주라고 하셨는데, 이는 예수님 당신이 친히 침례를 받으실 때 삼위 하나님이 함께 공존하셨던 사건을 상기시키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 위대한 사명과 명령을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후대의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주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하루에 3천 명씩 침례를 받던 장엄한 역사를 연상케 하는 대문입니다. 물이 많은 수영장이나 야외에서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침례를 받거나, 전 세계 다양한 민족들이 진리를 깨닫고 침례 구덩이에서 예식에 참여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침례를 주고받는 것에는 어떤 영적 의미가 들어있을까요?
첫째, 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 지냄을 내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3절과 4절 상반절은 침례의 의미가 얼마나 깊은지 잘 보여줍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물속에 들어가면서 숨을 잠시 멈추는 것은 과거의 죄된 내가 순간적으로 죽었음을 표현하는 것이며, 물속에 잠시 뒤로 누워 있는 모습은 무덤에 장사 지낸 바 되었음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것입니다.
둘째, 침례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함을 뜻합니다. 로마서 6장 4절 하반절과 5절입니다.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물속에서 다시 올라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장사 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영광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주님의 죽으심과 장사 지냄, 그리고 부활이라는 세 가지 복음의 핵심 사건을 나의 온몸으로 재현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침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목사님이 성제를 물속에 눕혔다 일으키는 한 장면 속에 이 놀라운 상징들이 다 녹아 있습니다.
셋째, 침례는 중생의 씻음을 보여줍니다. 디도서 3장 5절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침례를 받음으로 이 씻음의 은혜를 내가 받아들이고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5장 26절에도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하였으며, 히브리서 10장 22절에도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하였습니다. 침례를 통해 정결함을 입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음을 명백히 말씀해 줍니다.
넷째, 침례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공식적인 표(Sign)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6절에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침례는 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수용하겠다는 확실한 외적 고백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도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사도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외쳤을 때, 그 간수와 온 가족이 진리를 전해 듣고 그 밤에 즉시 침례를 받은 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이처럼 믿음과 구원과 침례는 단단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섯째, 침례는 삶의 방향이 온전히 전환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골로새서 3장 1절로 3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물속에서 새 생명으로 부활하여 나왔으니, 이제는 삶의 시선을 땅이 아닌 하늘로 바꾸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여섯째, 침례는 교회의 몸과 연합함을 뜻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몸'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침례를 통해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5절에도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라고 하였습니다. 침례의 형태가 오직 물에 잠기는 한 가지 방법뿐임을 뜻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교회와 하나가 됩니다.
그렇다면 침례를 받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나 전제조건이 필요할까요?
첫째, 믿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고 하셨듯이, 믿음이 없이 단순히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한낱 수영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의 결과로서 침례가 주어져야 합니다. 사도행전 8장에도 빌립 사도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가사로 내려가는 길에 에티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관리하는 내시를 만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시는 마차 위에서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에 관한 두루마리를 읽으며 그 뜻을 깨닫지 못해 애타하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다가가 그 구절이 가리키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열심히 설명해 주자, 내시는 복음을 깨닫고 마음에 믿음이 생겨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하며 마차를 멈추고 물로 내려가 즉시 침례를 받았습니다. 믿음이 선행된 참된 침례의 모본입니다.
둘째, 회개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고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며 돌아서는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서도 침례 요한은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베풀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변화나 예수를 믿는 믿음의 결심도 없이 그저 몸만 물에 담그는 것은 아무런 영적 효력이 없습니다. 믿음과 회개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셋째, 성경적인 올바른 방법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온몸이 물속에 완전히 잠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에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예수님도 강물 속에 들어갔다 나오셨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8장에서도 빌립과 내시의 침례 장면을 묘사하기를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세"라고 하여 물속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침례의 형태를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바가지로 물을 떠다가 머리에 조금 축이는 방식이 아닙니다. 저 역시 과거에 장로교회에 다닐 때 학습을 거쳐 세례를 받았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에 물을 얹으며 세례를 받을 때 나름의 감격과 눈물이 있었던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성경을 깊이 연구해 보니, 예수님께서 받으시고 에티오피아 내시가 받았던 성경적인 올바른 예식은 머리만 씻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물속에 완전히 잠그는 침례였습니다. 전신을 물로 씻음으로써 온전한 장사와 부활을 표상하는 것이었기에, 저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재림교회에서 다시 침례를 받았습니다. 저와 같은 영적 경험을 하신 분들이 주변에 참 많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경적 진리를 깨닫고 온몸을 물속에 잠그며 침례를 받는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강이나 바다처럼 물이 많은 곳에서는 예식을 행하기 쉽지만, 만약 물이 아주 귀한 사막이나 꽁꽁 얼어붙은 북극 지방 같은 곳에서는 어떻게 침례를 줄 수 있을까요? 그런 곳에서는 커다란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놓고, 침례를 베푸는 목사님은 통 밖에 서서 통 안으로 들어간 후보자를 물속에 완전히 잠기게 하는 방식으로 예식을 행하기도 합니다. 저도 몇 년 전 몽골에 선교 전도를 하러 가서 일주일 동안 열심히 설교한 끝에,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귀한 성인 네 분의 침례 후보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마땅한 침례탕이 없어서 나무로 커다란 상자를 짜고, 물이 새지 않도록 그 위에 플라스틱 비닐을 겹겹이 씌운 뒤 물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상자 밖에 서서 후보자들을 물속에 눕혔다 일으키는 방식으로 침례를 베풀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대단히 감동적이고 귀한 기억입니다. 이처럼 어떤 용기를 사용하든 본인의 온몸이 물속에 완전히 잠기기만 하면 성경적 의미를 충족하는 훌륭한 침례가 됩니다. 반면에 머리에 물을 조금 붓는 식의 세례는 나름의 의식적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예수님이 친히 보여주신 모본이나 사도들이 행했던 성경 속 침례의 장엄한 광경과는 거리가 먼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보다는 온몸을 잠그는 침례를 행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훨씬 합당합니다.
또한 일부 교파에서는 갓난아이나 어린아이에게 '유아 세례' 혹은 '영아 세례'를 베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아직 스스로 복음을 깨닫거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고백할 수 있는 지적·영적 상태가 아닙니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침례의 필수 전제조건은 개별적인 '믿음과 회개'이므로, 본인의 고백이 없는 유아 세례는 성경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고 영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침례는 온몸이 물속에 잠기는 성경적 방법이어야 하며,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엄숙하게 거행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셨다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요단강가의 유적지인 '알 막타스(Al-Maghtas)'에 가보면 온 성도들이 계단을 타고 내려가 예수님의 모본을 명상하곤 합니다. 또한 갈릴리 호수에서 요단강 물이 흘러내려 가는 출구 쪽에는 침례를 행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많은 후보자가 예식에 참여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고 하였듯이, 물 자체가 신비한 마술을 부려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본을 따라서, 주님의 죽으심과 장사 지냄과 부활에 동참하겠다는 선한 양심의 고백을 물속에 잠김으로써 표현하는 구원의 확실한 표징입니다.
마지막으로 마가복음 16장 15절과 16절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주신 이 말씀은 마가가 소중하게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구원을 얻는 일에 있어서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며, 그 믿음의 외적 표현으로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올바른 침례를 받아 구원의 소망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혹시 이 강연을 들으시는 분들 중에 아직 올바른 침례를 받지 않으신 분이 계신다면 용기를 내십시오. 주님이 친히 보여주신 모본을 따라서, 그리고 주님이 엄숙하게 명하신 그 지상 명령을 따라서 침례를 받는 것은 성도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특권이자 행복이며,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는 거룩한 입문(入門)의 과정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참여하기로 오늘 마음의 용기를 내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세례와 침례의 차이에 관한 오늘 공부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중요한 어휘 연구를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단어의 성경적 어원과 정의:
세례(洗禮): '씻을 세' 자를 쓰며, 종파에 따라 물을 뿌리거나 붓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지지만 성경 원어의 본질을 온전히 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침례(浸禮): '잠길 침' 자를 쓰며, 헬라어 원어 '밥티조(baptizo: 담그다, 물속에 잠기게 하다)'의 뜻에 정확히 부합하는 성경적인 명칭입니다. 바가지로 물을 뿌리는 형태가 아니라 반드시 온몸을 물속에 완전히 잠그는 예식입니다.
침례의 필수 전제조건:
침례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인의 '믿음'과 '회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깨닫고 예수를 구주로 믿는 고백과 삶을 돌이키는 회개 없이 단순히 물에 들어가는 유아 세례나 의식적인 행위는 성경적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침례 속에 담긴 복음의 5가지 핵심 의미:
①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 물속에 잠기고 완전히 누움으로써 죄된 과거의 내가 죽고 무덤에 장사 지내졌음을 고백합니다(로마서 6장).
② 그리스도의 부활 연합: 물 밖으로 다시 일으킴을 받음으로써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살아갈 것을 표상합니다.
③ 중생의 씻음: 죄의 더러움을 주님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되었음을 외적으로 나타냅니다.
④ 구원의 표징: 주 예수를 믿고 구원의 은혜를 전격 수용하겠다는 선한 양심의 확실한 표(Sign)입니다.
⑤ 삶의 방향 전환 및 교회 연합: 시선을 땅에서 하늘(위의 것)로 바꾸고,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연합하는 예식입니다.
마태복음의 알파와 오메가 (지상 명령):
마태복음 속 예수님의 말씀은 "나에게 침례를 베풀라"는 알파의 명령(3장)으로 시작하여, 승천 직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는 오메가의 지상 명령(28장)으로 완성됩니다. 예수님의 침례식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한 공간에 동시에 출현하신 장엄한 구속사적 사건입니다.
결론: 성경이 지지하는 유일하고 올바른 예식은 온몸이 물에 잠기는 '침례'입니다. 복음을 믿고 회개한 성도라면 주님이 친히 모본을 보이시고 엄숙히 명하신 이 침례의 특권에 용기 있게 동참하여 영원한 생명의 백성으로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