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양의 한강은 흐르고, 제갈량의 마음은 남아
주산 김영화
상양의 한강은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다. 강물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지나왔고, 앞으로도 쉼 없이 흘러갈 것이다. 사람은 떠나도 강물은 남고, 시대가 바뀌어도 산과 물은 제자리를 지킨다. 나는 상양의 한강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곳과 가까운 융중에서 자신의 삶을 준비했던 제갈량을 생각한다.
제갈량은 삼국시대 촉한의 대표적인 정치가이자 군사전문가였다. 그는 후베이 지역에서 성장했고, 융중에서 농사를 지으며 학문을 닦았다고 한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기 전까지 오랜 시간 자신을 갈고닦으며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의 삶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가 삼고초려다.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가 마침내 자신의 책사로 맞아들였다는 이야기다. 그때 제갈량이 유비에게 천하의 형세를 설명한 것이 바로 융중대(隆中對)였다.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일이다. 세상은 제갈량을 필요로 했지만, 제갈량은 세상이 부르기 전까지 융중에 머물렀다. 농사를 지으며 학문을 닦고,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오자 세상으로 나아갔다. 나는 이 대목에서 삶의 한 가지 이치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언제 세상에 나가느냐보다, 세상에 나가기 전에 무엇을 준비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흔히 기회가 오기를 기다린다. 좋은 자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기다리고,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때를 기다린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기회가 왔을 때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제갈량에게 융중의 시간은 세상에서 벗어나 있던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겉으로는 조용한 농촌의 삶처럼 보였지만, 그 마음속에서는 천하의 흐름을 살피고 자신의 뜻을 세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점을 조금씩 생각하게 된다. 젊을 때는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은 곳에 오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려고 애썼다. 그러나 칠십을 넘기고 보니 삶은 많이 가지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나를 조금 내려놓고,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더 얻기보다 내가 가진 경험과 생각, 그리고 마음공부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또 하나의 삶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제갈량이 융중에서 보낸 시간을 본래 자리에서 자신을 살피는 시간으로 생각해 본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때로는 융중과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의 소리가 잠시 멀어지고,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 때문에 흔들리는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마음공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경계가 올 때마다 내 마음을 먼저 살피고, 욕심이 일어나면 한 생각 돌려보고, 상대를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렇게 본래 자리를 잃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결국 나를 준비하는 공부가 아닐까. 제갈량이 남긴 「출사표」에는 나라를 위한 책임감과 자신의 삶에 대한 자세가 잘 드러난다고 한다. 후대 사람들이 그를 충성, 책임, 절제와 지혜의 상징으로 기억하는 것도 그가 자신의 능력을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상양의 한강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생각한다. 강물은 흘러가면서도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다. 굽이치면 굽이치는 대로 흐르고, 넓어지면 넓어지는 대로 흐른다. 막히면 돌아가고, 낮은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스며든다. 그러면서도 결국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사람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본래 자리를 지키면서 때를 기다리고, 때가 오면 자신이 가진 것을 세상과 나누는 것. 그것이 꼭 큰일을 하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말을 따뜻하게 들어주고, 상대를 인정하고, 내가 가진 작은 경험 하나를 나누는 것도 세상에 자신을 내놓는 일이 될 수 있다. 상양의 한강은 오늘도 흐르고 있다. 제갈량이 살았던 융중의 옛 자취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가 자신을 닦았던 시간과 세상을 위해 살았던 마음은 오래 남았다. 나도 이제는 무엇을 더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싶다. 강물처럼 조용히 흐르되 본래 자리를 잃지 않고, 때가 오면 내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세상과 나누는 삶. 그렇게 살아간다면 나의 삶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물결 하나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상양의 한강은 오늘도 흐른다. 그리고 제갈량의 마음은 그 강물처럼 오래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