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면 다시 일어난다.
첫 입원 이후 꾸준한 외래진료만으로 재발 하지 않고 잘 지내는 환자들도 있다. 때로는 치료가 잘 되어 수년 후 약물복용을 끝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상당수 환자는 몇 년 간격으로 재발과 재입원을 수차례 반복한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다시 일어난다. 한 쉼터 회원의 예를 들어보자.
첫 입원 후 퇴원하고 경과가 좋았다. 국비지원 제과제빵학원도 다녔고 교회에서 전단지 배포도 했다. 초등학생 가르치는 학원 강사도 하고 방과후교실 교사도 했다. 의사의 권유로 약을 끊었다가 얼마 후 재발했다. 그래도 다시 일어섰다. 몸무게가 20킬로그램 불었지만 강도 높은 운동으로 20킬로그램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병원 보조직원으로 일하고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도 했다. 결혼하고 애를 가지려고 약을 끊었다. 다시 재발하여 재입원했다. 남편과 이혼했다. 또 다시 일어섰다. 매일처럼 산책하고 운동했다. 경과가 좋았다. 의사의 권유로 또 다시 약을 끊었다가 또 재발하여 재입원했다. 그래도 다시 일어섰다. 3개월 입원 후 퇴원하여 운전면허를 따고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을 1년 다니고 또 다시 재발하여 3개월 재입원했다.
1년 휴학하고 복학했다. 한 과목만 A학점이고 나머지 전 과목을 A플러스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계속 장학금을 탔다. 교내 글짓기에서 우수상을 타고 자신의 글이 학교 홈페이지에 한동안 게시되었다. 수업시간에 교수들이 학생들 앞에서 칭찬했다. “이 친구가 가장 모범적이야. 교수가 될 자질이 충분해. 단지 똑똑한 게 아니라 성실하고 노력하잖아. 이렇게 하면 돼.” 초등학생 때 IQ검사가 잘못되어 자신의 지능이 남보다 떨어진다는 열등감이 있었는데, 대학생활을 통해 그 열등감을 떨쳐버렸다. 대학 졸업할 때 학과장이 취업추천을 해줬지만 거절했다. 꽤 괜찮은 직장이었다. 욕심도 났지만 겁이 났기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무리하면 재발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거절했다.
하지만 몇 달 후 사소한 일로 재발했다. 다시 3개월 입원. 내 생각에는 아마도 대학생활 잘하려고 너무 무리했던 것 같다. 마치 피로가 쌓이는 것처럼 부담감과 긴장감이 쌓였던 게 아닐까? 그래서 재발한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회복되고 있는 중에 비염과 천식이 심해졌다. 항정신병 약물용량이 늘어서 몸에 전체적으로 무리가 가서 비염과 천식이 심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내 생각이다. 아무튼 몇 차례 호흡기내과 입원. 근 1년을 고생하고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하고 있다. ‘산책과 운동.’ 다시 일어날 때는 항상 산책과 운동부터 시작했다. 3개월 내지 6개월 하고나면 그때부터는 독서와 공부를 추가한다.
마르티노는 몇 번 재입원했는지 모르겠다. 대구에 있는 사회복귀시설을 5~6년 다녔다. 호덕이는 지금까지 29번 입원했다. 우리는 “한 번 더 입원해서 30번 채우지 그래.” 하고 놀리곤 한다. 호덕이는 “실제 재발해서 입원한 건 3~4번이에요. 나머지는 재발조짐 오면 제 발로 병원 가서 ‘며칠 쉬었다 갈게요.’ 하고 예방차원에서 입원한 거예요. 때로는 겨울에 집에 있으면 추워서 겨울 따뜻하게 나려고 입원하기도 했어요.” 한다. 호덕이는 대구에 있는 사회복귀시설을 10년 이상 이용했다. 사회복귀시설 터줏대감인 셈이다. 요즈음에는 파란마음쉼터만 이용한다. 마르티노도 호덕이도 이제는 사회복귀시설을 졸업한 셈이다.
호덕이와 마르티노를 보고 내 제자가 묻는다. “저 정도면 멀쩡한 것 같은데, 취업만 하면 될 것 같네요.”, “아니. 정식취업해서 하루 8~9시간 일하면 못견뎌내. 하루 2~3시간 정도 일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있으면 딱 좋지. 그렇게 시작해서 하루 4~5시간 정도 일하는 데까지 늘리면 되지. 그리고 일하다가 재발조짐 느끼면 ‘제가 몸이 안 좋아서요. 며칠만 쉴게요.’ 하면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직장이어야 해. 그런데 우리나라에 그런 직장이 없어. 그래서 일 못하는 거야.” 마르티노와 호덕이는 자기 증상이 뭔지 잘 알고 있다. 재발조짐도 안다. 그래서 재발조짐을 느끼면 하루, 이틀, 또는 사흘 푹 자고 푹 쉰다. 그러면 괜찮아진다.
첫댓글 "잡초인생" 208-210쪽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