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용문사로 1... (음성을 지나며)
소철, 메타세쿼이아와 함께 은행(銀杏)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한다. 암수가 구분되는 은행나무는 농가에서는 은행 채집이 가능한 암나무를, 도심(都心)거리에는 악취가 풍기지 않는 수놈을 심어야 한다. 銀杏은 ‘은빛 살구’를 의미하는 한자로 잎이 오리발을 닮았다 하여 ‘압각수(鴨脚樹)’, 열매가 손자 대에 열린다 하여 ‘공손수(公孫樹)’, 열매의 껍질을 벗기면 흰색이 드러나기 때문에 백과(白果)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서원이나 향교에 가면 은행나무가 있다. 이는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서 제자를 가르쳤기 때문이란다. 이 살구나무가 은행나무로 바꾼 이유는 살구나무의 수명이 짧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에서 은행나무가 유명한 곳은 서울의 삼청동, 신사동, 덕수궁 돌담길, 아산에 있는 현충사, 홍천군 내면 광원리, 보령시 청라면, 영주시 부석사 등이 숲은 이루고 안동시 길안면 용계마을, 영동군 양산면 영국사, 금산군 추부면과 보석사, 괴산군 청안면, 영월군 영월읍, 김천시 대덕면, 담양군 무정면, 부여군 내산면, 강릉시 주문진읍, 서울 명륜당, 양평의 용문사 등의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42m, 둘레가 14m인 양평의 은행나무는 동양에서 제일 크다. 11월 1일 한화관광을 따라 용문사로 떠났다.
조계종 제25교구본사인 봉선사(奉先寺)에 속해 있는 용문사(龍門寺)... 신라 53대 신덕왕 때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 세종 비(妃)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원찰(願刹)로 삼으면서 중창하였다. 조선 말 양평일대 의병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러 사찰의 전각들이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 후 명맥만 유지하던 용문사는 6.25 때 완전히 폐허화 뒨 것을 1982년도부터 중건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전기의 정지국사(正智國師)부도 및 정지국사탑비, 금동관음 보살좌상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대전을 때난 여행길... 음성, 충주를 지나 여주로 올라간다. 이곳을 지날 때는 명성황후가 생각난다. 음성의 감곡성당... 임오군란 때 친척인 민흥식의 집으로 피신하였던 명성왕후... 그곳이 매괴성당이다. 구식군대가 별기군에 대하여 차별을 받고 있던 시절... 13개월 만에 선혜청(宣惠廳)에서 지급한 1개월치 급여로 나온 쌀이 썩고 겨와 모래가 섞여있었다. 게다가 그마저 되를 속여 정량 미달이었다. 이에 분노한 군인들은 봉미(俸米)를 거부하고 선혜청 관리를 구타한 사건이 임오군란(壬午軍亂)이다.
양평 용문사로 2... (충주를 지나며)
구식군대는 선혜청 당상(堂上)인 민겸호의 집과 경기감영을 습격하였다. 또 이최응(대원군 형), 민겸호 등 일부 관리를 처형하고 일본 공사관을 불태웠다. 또한 창덕궁에 난입, 명성황후를 위해하려 하였으나 이곳 감곡성당에 피신하였다. 이로 인하여 대원군은 다시 집정(執政)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명성황후가 청나라 군대의 힘을 빌려 임오군란을 진압하고 대원군이 청나라에 압송되는 등 청나라의 정치 개입이 심화되었다. 이로 인하여 정치적자주권 상실과 청일간 주도권 경쟁의 시작, 외세에 의한 역사의 굴절(屈折)이 시작되었다.
역사의 기로(岐路)였던 감곡성당을 생각하니 어느 날 사이비 목사, 사이비 신부, 사이비 승려 세 사람이 모여 이야기 하고 있었다. 먼저 승려가 신부에게 물었다. ‘당신은 헌금(獻金) 들어온 것을 어떻게 쓰시오?’ 신부 왈, ‘나는 땅에다 둥그런 원을 그려 놓고 돈을 하늘로 확 뿌려서 원 안에 떨어진 것만 내가 쓰고, 그 밖에 떨어진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씁니다.’ 이번엔 신부가 승려에게 물었다. ‘당신은 헌금을 어떻게 쓰시오’ 승려 왈, ‘나도 당신과 비슷합니다. 땅에다 원을 그려 놓고 돈을 하늘로 확 뿌려서 원 안에 떨어진 돈은 부처님을 위하여 쓰고, 그 밖에 떨어진 돈은 내가 다 가집니다.’
그러자 이번엔 승려와 신부가 목사에게 물었다. ‘당신은 獻金으로 들어온 돈을 어떻게 쓰시오?’ ‘나도 당신들과 비슷합니다. 나도 돈을 하늘로 확 뿌리면서 '주님! 가지고 싶으신 만큼 가지십시오.'하고 땅에 떨어진 돈은 내가 다 가집니다.’ 종교를 가지신 분들께 죄송스러운 이야기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다. 유머는 남에게 웃음을 남겨주지만 남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해서는 안 된다. 가능한 한 출처도 밝혀야 한다. 남의 말을 하는 사람은 경망스럽고 전달하면 비겁하고 찬성하면 간사한 사람이라고 한다.
서여주IC 근처에 있는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우리 역사에 가장 위대한 성군(聖君)인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능이 英陵이다. 한글 창제와 해시계, 측우기 등 과학, 농업기구를 발명하였으며 함경도와 대마도를 정벌하여 국토를 확장시켰다. 한편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과감한 북벌정책을 추진했던 효종... 인선왕후와의 쌍릉이 寧陵이다. 그 역시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41세에 요절(夭折)하였으니 그 웅대한 뜻은 이곳에 고이 잠들고 있다. 태평성대는 훌륭한 신하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 정치... 싸움만 하니 문제다.
양평 용문사로 3... (여주를 지나며)
내가 집권했을 때 추진하였던 정책도 여야가 바뀌면 반대를 하니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가? 북여주IC를 지나니 우측으로 이포보가 있다. 푸른 강변에 백로(白鷺)의 날개 위에 알을 올려놓은 형상이란다. 白鷺는 여주의 상징 새로 백로가 강과 하늘을 이어주며 생명의 비상을 꿈꾼다는 뜻이다. 남한강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름난 여주에는 여주보, 강천보 등 3개의 보가 있다. 여주보는 세종대왕의 자격루를 형상화하였고 이 보(洑)를 걷다보면 강물 위를 나는 듯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에 매료(魅了)된다.
한편 한강의 명물이던 황포돛배의 모습을 형상화한 강천보... 황포돛배가 저어가는 희망의 물살이다. 이 세 개의 洑는 홍수와 가뭄에 시달려 온 한강 유역의 치수를 담당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전거 길과 도보 길은 물론 레저 및 생태 공간을 활용하여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레저 공간이다. 특히 자전거 길은 주변의 빼어난 강변 절경과 문화유산을 페달을 밟고 달려본다면 꿈만 같다. 강 건너 대신면 천서리에는 막국수 골목으로 연전(年前)에 갔던 봉진막국수(882-8300)... 지금도 입맛을 돋운다.
한편 금사면에는 고려 성종 때 거란이 침략하였을 때 담판으로 적을 물리친 서희(徐熙) 장군의 묘소가 있다. 고려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멀리하면서 송(宋)과 국교를 맺었다. 이에 거란(契丹)이 고려를 침범하였다. 이에 徐熙는 서경(西京) 이북을 할양하고 강화하자는 조정(朝廷)안에 극력 반대, 자진해서 국서(國書)를 가지고 적장 소손녕(蕭遜寧)과 담판을 벌여 거란 군을 철수시켰다. 그 후 여진을 몰아내고 지금의 평북 일대의 국토를 완전히 회복했다. 송과 거란의 대치상태... 요즘 미국과 중국 사이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외교가 심히 걱정된다.
여행길은 양평IC를 나와 국도 6번과 연결된다. 조선 말 양근군(楊根郡)과 지평군(砥平郡)을 합병하여 양평군(楊平郡)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태백의 대덕산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는 물의 고장 양평... 이 푸른 물줄기가 휘감고 있어 가히 하늘아래 절경이라 부를만하다. 발 닿는 곳마다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 두 물이 합쳐지는 양수리(兩水里)와 용담리는 용늪의 연꽃과 갈대 등을 사시사철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도 여주처럼 자전거 여행의 천국이라 ‘달려라 양평...’
양평 용문사로 4... (용문사에서)
국도 6번과 연결 지점에 양평곤충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을 설립한 신OO교수... 정년퇴임 후 10여 년 동안 양평에 거주하면서 채집한 곤충과 기타 소장곤충 표본 1500여 점을 양평군에 무상기증 하였다. 곤충표본을 수집, 연구 및 전시하여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곤충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곤충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공간이다. ‘꽃이 피지 않는 지구를 상상해 봤나요? 곤충이 없으면 꽃이 피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니 지구는 다시 지질시대의 석탄기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의 진리(眞理)에 공감이 간다.
국도 6번을 따라 용문면 소재지에서 상원사 방향으로... 가는 길에 야생화 허브, 연꽃 등을 강변의 정취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들꽃 수목원, 인구 비례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예술인이 살고 있는 예술의 고장 양평... 그들이 만든 양평 미술관, 중앙선 폐선을 이용한 양평 레일 바이크,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촬영지인 경기 영어마을 캠프... 폐교(閉校)된 학교를 이용한 복합 가족 문화 휴양지인 양평 오커 빌리지(Ocher Village, 황토 마을), 보릿고개 시절의 추억을 재현한 보릿고개 마을 등을 지난다.
연안 삼거리에서 상원사로 오르는 길... 반대편에서 차가 한 대라도 온다면 피할 수 없는 좁은 길이다. 상원사는 고려 때 창건하였단다.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 말년에 이곳에서 머물렀다 한다. 산행을 하는 사람은 이곳에서 용문산 정상을 거쳐 가야하고 일부는 용문사로 갔다. 입구에 돌로 된 시비(詩碑)가 곳곳에 세워졌다. 또 친환경 농업박물관도 있다. 오솔길을 따라 오르니 일주문, 사천왕문에 이어 거대한 은행나무, 대웅전, 범종루, 지장전이 있다. 부처님께 개금(改金) 공양(供養)을 직접 하는데 만원이다.
이곳에 왔다 간지가 10년은 되는 것 같다. 변함없는 은행나무... 1000년 이상이 되었으면 가지가 부러지거나 없어질 수도 있는데 아직도 왕성하다. 양평 의병의 본거지였던 용문사... 일본군이 대웅전에 불을 질렀어도 살아남았고 나무를 자르려고 하면 피가 나오고 천둥이 쳤다고 하니 신령이 보호하는 것인지... 마의태자가 이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았다고도 한다. 나무하니 오동나무는 천년을 살아도 제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는 말이 생각난다. 오늘 여행길... 대전으로 오면서 마친다. 감사합니다.







용문사 전각과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