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하나하나가 소우주(小宇宙)라는 말이 있듯, 세상 만물은 저마다 사연이 있다. 하물며 대한민국 최고의 자연만 골라놓은 국립공원들이 사연 하나 없을까. 가을빛으로 물든 산하(山河) 그 뒤에 숨어 있는 전설을 미리 공부해가면 좋겠다. 눈은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즐겁고, 어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아이들 공부는 덤이다. 아래는 주요 5개 공원에 얽힌 전설들.
◆한라산 영실기암과 설문대할망
제주도에 살던 설문대 할망은 몸이 아주 커서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발 하나는 성산일출봉, 한발은 북쪽 관탈섬에 닿았다. 서귀포 문섬은 빨래할 때 쓰곤 했다. 할망이 흘린 흙이 떨어져 제주의 오름이 됐다. 아들이 500명이었는데, 아이들을 먹이려고 죽을 쑤다가 솥에 빠져 죽었다. 사냥에서 돌아온 아들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죽을 먹다가 솥에서 뼈를 발견했다. 막내아들은 슬픔에 잠겨 서쪽으로 달려가 무인도 차귀섬의 바위가 되었다. 나머지 형제들은 그 자리에서 통곡을 하다가 몽땅 바위로 변했다. 한라산 영실기암의 오백장군 바위가 바로 그 형제들이다. 한라산이 바로 설문대할망의 상징이니, 죽어서도 할망과 아들들은 같이 살게 되었고, 봄이면 아이들의 한 많은 눈물이 철쭉으로 피어난다.
▲ (왼쪽부터)영실기암 |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숨은 한라산 영실기암 / 대승폭포 | 어머니의 혼이 총각을 살려준 설악산 대승폭포 / 백양사 | 흰 양이 설법을 듣고 깨우친 내장산 백양사 / 구천동 | 무뢰한 천씨가 혼쭐이 난 덕유산 구천동
◆지리산 뱀사골과 이무기
조선시대 지리산 언저리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다. 칠월칠석이면 절에서 뽑은 스님 한 명이 바위 위에서 기도를 하면 신선이 된다고 했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서산대사가 절을 찾아왔다. 그리곤 선택된 스님에게 독을 묻힌 비단가사를 입히고서 자기는 바위 뒤에 숨었다.
밤이 되자 바위 아래 연못에서 이무기가 튀어나와 스님을 덮치는 게 아닌가! 스님도 죽었지만 이무기 또한 독을 먹고 죽었다. 인신공양의 비밀도 발각됐다. 신선 바위가 있었던 마을은 반쪽 신선이 됐다 하여 반선리로 변했다. 절이 있던 아름다운 계곡은 그날 이후 '뱀사골'이라고 불린다.
◆덕유산 구천동과 무뢰한 천씨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가 덕유산 자락을 가다가 한 집에 묵게 됐다. 그 집 노인이 마을에 사는 천하의 무뢰한이 자기 아내와 며느리를 빼앗으려 한다고 읍소했다. 내일이 바로 그 합동혼례식 날이라고 했다. 어사는 다음 날 새벽 무주 동헌으로 가 광대 네 명에게 황청흑백(黃靑黑白) 옷을 입혀 노인 집으로 갔다. 어사는 혼례 준비로 부산한 집에 들어가 무뢰한 부자를 끌어냈다.
사방에서 동방청제대장군·서방백제대장군·남방적제대장군과 북방흑제대장군이 튀어나왔고, 어사는 옥황상제가 보낸 중앙황제대장군이라 자칭하며 초례상을 뒤집어엎고선 무뢰한들에게 치도곤을 내렸다. 어사는 이들을 귀양보내고 마을의 평화를 되찾아줬다. 노인 이름은 구재서, 무뢰한 이름은 천석두라 했다. 구씨와 천씨가 몰려 살았던 이 마을이 바로 무주 구천동이다.
◆소백산과 순흥 청다리
소백산 발치에는 영주 부석사와 순흥 소수서원이 있다. 소수서원에는 학문과 덕을 갈고 닦는 학자들과 학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 혈기들이 모여 있으면 여자 문제가 생기는 법. 학생들은 덕을 닦는 짬짬이 기생들을 불러 풍류를 즐겼다. 그러다 정이 붙어 아이를 낳기도 했다. 세간의 이목이 두려웠던 이들은 밤에 몰래 서원 옆 다리 아래에 아이를 버리곤 했다. 이름은 청다리.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라고 아이들을 놀리는 바로 그 다리가 실제로 소백산 자락 소수서원 개울가에 콘크리트교로 변해 아직도 남아 있다.
◆월악산과 마의태자 남매
월악산 국립공원 내에 폐사지인 미륵리사지에는 망국의 왕자 마의태자의 전설이 전한다. 고려에 망한 신라의 마지막 왕자는 금강산으로 은거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이곳에 절을 짓고 수양을 했다. 거대한 석불인 미륵불이 남아서 절터를 바라본다.
마의태자의 누이인 덕주공주도 경주를 떠나 이곳 월악산으로 와서 절을 지었다. 절 주변에 조성된 산성에도 덕주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옛 절터에는 거대한 바위 한 면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덕주사 마애불이다.
전설에 의하면 덕주공주와 마의태자 남매가 경주를 떠나 문경에서 하늘재를 넘어올 때 꿈에서 관음보살을 만나 덕주공주는 이곳에 마애불을 새기고, 마의태자는 미륵리에 석불을 세웠다. 두 불상은 지금도 서로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서 있다. 태자 남매의 현세 인연을 내세에서도 이어주고 있는 돌부처들 앞에 서면 그 기분, 단순한 관광이나 등산과는 조금 다르다.
첫댓글 재미있는 이야기으로 잘 보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설의 고향? 재미있네요..ㅎㅎㅎ.. 단무지님!! 베트남에 관련된 자료도 부탁해요.. 꾸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