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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 후
한현숙
훈련소에 아이를 입소시킨 후 버스를 타고 내려오다 보니 가로수 사이로 쓸쓸히 부는 찬바람이 착잡한 마음을 한층 더 시리게 한다. 플라타너스 잎은 빛바랜 가을의 기억을 가지 끝에 매단 채 찬바람에 아우성이다. 그 모습이 마치 아이와의 사이에 놓지 못한 끈과 같아 쓸쓸함이 밀려온다.
겨울을 나기 위해 플라타너스는 나무세포의 당도를 높인다고 한다. 이를 위해 세포 속에 가지고 있던 물을 1/3 상태까지 배출하기도 한다. 플라타너스는 무려 영하 70도의 혹한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다. 흰 눈이 펄펄 내리는 초겨울까지도 푸른 잎을 달고 있는 것들도 있고 초봄에도 마른 낙엽을 매달고 떨궈내지 못하고 있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플라타너스는 다른 나무보다 게을러 보이기도 한다.
생장하는 힘이 워낙 왕성한 플라타너스는 활발하게 탄소동화작용을 하며 보무도 당당하게 혹한을 맞는 대견한 나무이다. 이런 모습이 아이의 성품과 닮아 평소에 나무를 볼 때마다 때론 애처롭게 때론 대견하게 여기며 바라보았다. 그런 나무를 아이를 훈련소에 입소시키고 나오는 길에 만났다. 아직도 마음속에서 아이를 내려놓지 못한 내 마음을 반추하는 까닭이리.
오주간의 짧지만 긴 이별의 시간이 아이와 나에게는 이별을 통해 깨닫게 되는 축복의 시간이 되리라 믿어 본다. 그동안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기 바쁜 와중에도 집안일까지 도와주며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아들이었다. 고등학교 삼년 동안 야자와 주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공부했는데 원하던 대학을 들어가지 못하고 풀이 죽어 집에서 지낼 때는 많이 속상하기도 했다.
아이 친구들 중에는 적성에 맞지 않아도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들어가 잘 생활하는 것 같은데 입영신청서를 제출하고 집에만 있는 아이를 달래 재수를 권했지만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 세무사가 되겠다며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재수라도 해서 친구들처럼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며 좀 더 쉬운 길을 갔으면 하는 욕심에 다그치고 야단치느라 일 년을 허비한 것 같다. 아이가 제일 많이 속상해하고 고민하며 내린 결정일터인데 안타까운 마음에 다그치기 바빴다. 그 와중에도 동생들 챙겨서 어린이집 보내고 집안일 돕고 세무회계 공부하느라 애썼는데 그런 모습마저 왜 그렇게 속상하고 화가 나던지.
부모가 돼서 아이를 많이 뒷바라지 해 주지 못한 자책 때문이었나 보다. 그 어렵다던 수학 일등급 유지하며 성실하게 공부했는데 다른 아이들처럼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라고 학원도 과외도 시켜 시켜주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학습지라도 시켜주려 했지만 여건이 안 되다 보니 속상함과 미안한 마음이 잔소리와 다그침으로만 전해졌나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철없는 부모였다. 부모교육 받고 부모가 된 것이 아닌지라 어설프고 시행착오도 많았으리라.
가을이 되면 나무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떨켜층’를 만든다. 미생물이나 세균의 침입을 막고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가을에 과일이나 낙엽이 쉽게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눈보라 속에서도 나무에 애처롭게 매달려 있는 낙엽은 떨켜층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나무에서 떨어지지도 못한 낙엽이 더 애처로워 보이는 것은 왜 일까.
아이가 입소한지 얼마 안 돼 큰 눈이 내렷다. 훈련소는 온통 눈 천지겠지. 낙엽과 함께 떨어진 씨앗들이 차가운 땅속에 파고들면 대지가 하얀 눈 속에서 바람과 태양의 숨결을 품고 새로운 삶을 잉태하겠지. 지금 당장은 온 대지가 얼어버려 생명을 멈춘 것 같지만 눈 속에 묻혀 봄을 준비하는 씨앗처럼 아이가 새로운 세상에서 처음 경험하는 훈련을 통해 군 생활하며 몸과 마음이 성장하기를 믿는다. 훈련마치고 어느 부대로 배치될지는 모르지만 그 곳에서 아이가 꿈꾸고 소망하는 세무사의 꿈도 단단히 여물어 가길 바란다.
아들아 네 삶의 주인은 바로 너 자신이란다.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결정에 열정을 가지고 후회 없이 한번 해 보는 거야. 맘껏 해 보고 나서 실패해도 성공해도 내가 좋아해서 한결정은 후회하지 않는단다. 어떤 결정이 더 행복한 삶인지 훈련기간 동안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거라 믿는다. 부모 된 마음은 네가 좋아하고 꿈꾸는 세무사가 되길 바라고 있다. 제대하고 학원이나 대학에 가서 한 걸음씩 차근차근 밟아 나가다 보면 멋진 우리 아들로 성장해 있겠지. 꼭 세무사가 아니어도 네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으로도 엄마에겐 멋진 아들이란다. 앞으로 2년의 군복무 기간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떨켜의 시간이라 생각하고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귀한 시간이 되길 바래본다.
2017.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