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대표 관광지는 누가 뭐라 해도 전주한옥마을이다. 주말이면 많은 인파들이 한옥마을 은행로를 거닐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나지막한 돌담길과 단층의 기와집, 예전 마당이 주는 포근함과 전통 문화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골목길은 전주한옥마을이 가지고 있는 색다른 가치이다. 더욱이 이런 한옥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전주한옥마을은 이제 전주를 넘어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으며, 계절이나 날씨와는 상관없이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전주를 널리 알리고 전국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전주한옥마을이지만, 아쉬운 부분은 없는 것일까?
몇 해 전 전라북도의 역사와 문화를 발견해보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주한옥마을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풍남문에서 경기전 앞을 지나는 전주성곽이라는 거대한 장벽은 물론 전주천의 잦은 범람으로 인해 지금의 한옥마을 일대는 주거의 공간으로 그리 선호되는 지역은 아니었다. 실제 100여 년 전 사진에서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더 가까이는 칼국수집과 자장면집만 생각나던 10여 년 전 모습과는 달리 너무도 많은 식당과 커피전문점이 점령한 한옥마을에서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경우일까. 더욱이 경기전과 전동성당 등 대표적 전통 건축물 이외에는 뚜렷한 이야기나 전설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전주한옥마을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이와는 반대로 100여 년 전 원형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한옥마을이 있는데, 익산의 함라마을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익산과는 별개로 '함열현'이었던 이곳은 지대가 높아 홍수 등 자연재해를 피해 갈 수 있었으며, 농사짓기에 유리한 비옥한 토질과 조선 5대 포구 중 하나인 웅포 포구를 지척에 두고 있어 살기에 좋은 고장이었다. 이 함라마을에 3명의 부자가 살았는데, 그들은 서로 경쟁하듯 선행을 베풀며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고 한다. 1925년 3월 3일자 동아일보에는 "익산 함열면 사는 양심 있는 부자, 구차한 사람에게 삼천 원을 기부, 걸인으로 성시한 함열, 밥을 구하는 수 백 여명의 동포, 집마다 과객의 답지로 대번창" 이란 기사가 실려 있는데, 당시에도 함라마을 삼부자의 선행을 칭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함라마을 삼부자의 가옥이 지금껏 남아있는데, 조해영, 김안균, 이배원 가옥이다. 이 세 가옥에는 역사적 건축물뿐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전해오는 것이 특징이다.
국창이란 칭호를 받았던 판소리 명창 임방울은 자신의 대표곡 '호남가'에 "풍속은 화순이요, 인심은 함열인데"라는 가사로 노래를 불렀는데, 국창 임방울 또한 함라마을 삼부잣집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조해영 가옥의 사랑채는 판소리 공연을 하기에 적합한 구조로 건축되어 있으며, 임방울과 김소희를 비롯한 소리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조해영 가옥 사랑채에서 그 옛날 판소리 가락을 틀렸던 임방울의 이야기를 직접 전해주는 노인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조선의 궁중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모자이크를 사용한 김안균 가옥의 담벼락과 화려한 색유리창에서 그 시절 뛰어난 예술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유리와 함석을 사용해 전통과 서양의 장점만을 채택해 지었던 이배원 가옥의 한옥에서 우리는 100여 년 전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으니, 함라마을에는 숨겨진 지난날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찾아보는 묘미가 숨겨져 있다. 결국 역사와 문화란 그런 것이며, 살아 숨쉬는 이야기가 남아있을 때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함라마을도 옛 명성을 잃었으나, 세 명의 부자가 남겨놓은 정신과 가옥은 아직도 온전히 남아있다. 임방울과 김소희의 향기가 묻어있고 주변 사람들을 보살피던 삼부자의 온기가 남아있는 함라마을로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더욱이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이배원 가옥 앞마당에서 '함라 삼부잣집 잔치날'이라는 공연도 펼쳐진다고 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라마을 삼부잣집을 찾아보는 것을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