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 정언유착, 정학유착, 정종유착
‘정경유착’은 정치와 경제가 자기 또한 자기 집단의 특수한 이익을 위해서 불법적인 특혜를 서로 주고받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권을 잡은 자와 특정 기업인들이 불법거래를 통하여 서로를 보완 지지해주는 것이다. 정경유착이 언제나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지탄과 비난, 심판과 척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것이 불법 거래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절제하고 악랄한 권력욕, 무한 탐욕과 불평등한 경쟁으로 자신들의 사익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나머지 나라와 국민의 경제와 삶을 파탄과 파국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이요,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며 거대한 생명체계를 이루는 자연의 법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속담대로 인간의 탐욕에서 기인되는 정경유착은 조금 시간이 걸릴 지라도 역사의 심판을 받거나 스스로 자멸의 길을 가도록 되어 있다. 조선 말기 안동 김씨, 풍양 조씨, 여흥 민씨가 나라의 세도를 잡고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나라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이끌어 결국은 나라가 패망의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정치가와 사업자들은 정경유착을 대수롭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일반 국민들조차 세계 유수의 기업과 대결하여 살아남으려면, 마이너스 성장에 진입한 한국 경제를 살리려면 그런 재벌기업에 특혜를 주어서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 경제를 위해 세계 마당에서 활동해야 하는 기업에 특혜를 언론과 종교, 학계가 지지하며 서로 필요를 위해서 상부상조하고 안정된 정치를 위해, 정권 유지를 위해서 또한 글로벌 경영을 위해서 혜택을 주는 것이 마치 애국인양 호도하는 것이다.
기업도 정권도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 동등한 권리로 정치를 하고 경영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들은 불법을 일상적으로 범하고 초법적인 존재로 군림하며 힘없는 국민과 작은 기업에게 법을 준수하라고 하는 것은 깡패가 어린이에게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훈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권이 국민들의 고통과 문제를 바르게 인식하고 나라 살림의 규모와 문제를 바르게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른 법을 제정하고 법을 그대로 실행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파고를 헤치며 이웃 나라들과 유연한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기 위한 수고와 고난은 감당하며 국민과 동고동락하고 싶지는 않고 기득권과 권력은 놓고 싶지 않을 때, 그 병든 탐욕에서 정경유착이 시작된다.
기업이 건강한 운영, 정직한 인건비, 정직한 세금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부를 쉽고 편하게 축적하며 확장하며 영원히 망하지 않는 재벌체제를 구축하고 싶을 때 정경유착은 시작된다.
우리는 정경유착으로 지지되는 독재 정치가 누구를 위하는 정치인가를 물어야 한다. 독재정치는 위기를 조장하며 비상을 선포하며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우리는 세계 역사에서 결국 독재정치는 특정인과 특정집단을 위한 정치라는 것을 무수히 보아왔다. 국민의 권리를 짓밟고 자유를 억압하며 평화를 위협하는 정치는 슈퍼 바이러스처럼 치명적이며 민주주의의 적이다. 국가의 기초가 되는 법을 유보하고 범하며 자신들과 특정 집단을 위하는 독재정치는 암이다.
또한 우리는 정경유착으로 지지되는 기업이 누구를 위한 기업인가를 살펴야 한다. 기업이 불법으로 탈세하며 비자금을 마련하며 불법으로 기업합병을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주주들을 위한 것이며 그들의 기득권을 위한 것이다. 그들이 정경유착으로 얻은 이익을 세금으로 국가에 돌려주는가? 회사 직원들에게 지분을 나누어 주는가? 국민들에게 돌려주는가?
‘대기업이 망하면 나라가 망 한다’ 는 말은 정경유착을 옹호하는 주장으로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국가 성립의 3대 요소인 주권, 영토, 국민이 그대로 있는데 어찌 나라가 망한다는 말인가! 노키아가 망해서 핀란드가 망했는가? 코닥이 망해서 미국이 망했는가? 리먼부라더스가 망해서 미국이 망했는가? 대우가 망해서 한국이 망했는가?
물론 혼란과 휘청거림, 불편과 고통은 분명히 있지만 그것으로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정리와 해고, 실직 과정에서의 고통도 있지만 새로운 재편과 새 기업의 출발의 기회가 되어 창조적인 변화와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불법과 초법으로 기업을 확장, 발전시키려는 것은 탐욕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기업을 망하게 만들며 결국에는 권력의 비호아래 국가와 국민의 것을 빼앗아 가는 것이 정치와 유착하는 기업의 생리다.
정치의 힘도, 경제의 힘도 국민에게서 나와서 국민에게 돌아가게 되면 망하게 하려 해도 망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정경유착의 정치, 경제는 조금 빠르고 늦는 시차의 문제일 뿐 망하게 되어 있다.
정치와 경제가 유착하여 국가를 위기로 몰아가듯이 언론, 학문, 종교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위하여 특정 정치와 합세하여 절대 다수의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고 억압한다. 소위 말하는 정언유착, 정학유착, 정종유착이다. 이들 관계 또한 병든 세상의 일면으로 지탄,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된다.
유착은 무조건 나쁜 것인가? 아니다. 좋은 유착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유착이라고 부르지 않고 ‘협력’이라고 부른다.
협력은 동기도 목적도 결과도 공익을 지향한다.
협력은 나라와 민족을 살리며 좋은 국가 공동체를 지향한다.
혹자들은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기업인데 어떻게 공익을 추구할 수 있냐고 반문한다. 기업이 자선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은 분명 사적 이윤 추구를 위한 집단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생산에 참여하는 국민, 소비에 참여하는 국민, 기업이 어려울 때 구제 금융과 세금 감면의 혜택을 주는 국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결코 사적 이익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채무가 있다. 사회적 채무를 잘 이행하는 기업으로서 국가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행위는 정경유착이 아닌 정경협력의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정경유착의 크고 작은 폭력이 사라지는 세상을 꿈꾼다.
정경협력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세상을 기대하며 기도한다.
정언협력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세상을 기대하며 기도한다.
정종협력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세상을 기대하며 기도한다.
정학협력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세상을 기대하며 기도한다.
자연의 모든 것, 식물, 동물의 세계에 생로병사가 있듯이 인간이 만든 모든 것에 생로병사가 있다. 그 어떤 조직, 기관, 단체, 기업, 정당, 학교, 병원, 종교, 예술, 문화, 문명도 영원하지 않다. 심지어는 나라와 민족에도 생로병사가 있어 전도서의 말씀대로 흥할 때가 있고 망할 때가 있음을 본다.
왜 정경유착이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 되는가?
권력과 부귀영화의 단맛이 너무 강하고 깊어서 한 번 빠지면 빠져 나올 길이 없기에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가장 치열하게 ‘로병사’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득권을 지키며 그 자리와 위치를 영원히 독차지하려하기에 정경유착으로 불법과 초법을 자행하며 자연법을 거스르는 폭력을 자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 아래에 영원한 것은 없다. 생명과 평화, 정의와 사랑을 거스르는 것들은 한 순간 흥한다 할지라도 반드시 망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진리와 유착된 삶으로 모든 악과 폭력의 동기가 되고 결과가 되는 정경유착, 정종유착, 정언유착, 정학유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사람과 사회의 출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