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내려다 보자 미루나무가 검프르게 나부끼고 하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또 장마가 지고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왔다.뱃사공 일을 하는 강신웅은 빗줄기가 하얗게 쏟아지기 시작하자 상암동 산동네에서
달려 내려와 서둘러 나루로 나갔다.장마가 계속되니 난지도 주민을 대피시켜야 했다.
"비가 얼마나 오려는 것일까?"
빗줄기는 퍼붓듯이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강신웅은 비를 고스란히 맞았다.난지도 주민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나룻배를
지어야 했으므로 우산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우비를 쓰면 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강신웅이 가장 바쁠 때는 장마철과
추수철이었다.추수철에는 추수된 곡식을 배로 실어나르느라 바빴고 장마철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주민을 대피시키느라
바빴다.평일에는 아이들을 등하교시키고 주민들을 실어날았다.
"비기 오는데 뭐해?빨리 오지 않고?"
강신웅이 상암 나루에 도칙하자 난지도 나루에 사람들이 모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강물은 벌써 수위가 높아져 위압적으로
흐리고 있었다.삼동소년촌 사람들은 이미 대피한 뒤였다.
"아이고,걱정하지 마십시요.내 배 하루 이틀 탔습니까?"
강신웅은 웃으면서 나룻배를 띄워 건너편 난지도 나루로 건너갔다.주민들이 아이들과 여자들부터 먼저 태웠다.
"조심해."
주민들이 소리를 질렀다.
"걱정하지 마세요."
강신웅은 아이들과 여자들을 태우고 노를 젓기 시작했다.장마가 질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었으므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몇 년전 아이들을 등교시킬 때 한 아이가 나룻배에 오르다가 물에 빠진 일이 있었다.장마가 심했기 때문에 난지도 앞을
흐르는 강물은 급류가 되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아이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강신웅은 깜짝 놀라 강물에 뛰어들어
아이를 잡았다.그러자 이번엔 배개 급류를 타고 흘러내려 가기 시작했다.강신웅은 아이를 안고 정신없이 헤엄쳐 떠내려가는
배를 잡아 올라탔다.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오싹 끼치기도 했다.
강신웅은 나루를 몇 번이나 오가면서 주민들을 실어날랐다.주민들은 4백여 명이나 되었고 가재도구까지 옮기는 사람도 있었다.
비는 밤에도 계속 내렸다.
"비가 이렇게 오니 난지도가 물에 잠기겠구나."
강신웅은 밤에도 비가 그치지 않자 잠이 오지 않았다.강신웅은 낮이 밝자마자 나루로 달려갔다.아침에도 비가 그치지 않자
망원동과 수색 일대가 물에 잠겼다는 뉴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난지도 주민들도 강가로 몰려나와 근심스러운 눈으로
물에 잠긴 난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는 그날 오후에야 그쳤다.그러나 물은 다욱 불어나 난지도가 완전히 물에 잠기고 미루나무만 남아 있었다.난지도에 물이 빠져
주민들이 들어가게 된 것은 이틀 후의 일이었다.수마가 휩쓸고 간 난지도의 모습은 언제나 그렇듯이 참혹했다.
"물이 집을 쓸고 갔으니 어떻게 해?"
강신웅이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가자 아낙네가 방바닥에 가득찬 진흙을 퍼내다 말고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집은 안 떠내려갔네요."
강신웅은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채소도 엉망이에요."
"물에 잠겼는데 오죽하겠습니까?"
강신웅은 삼동소년촌으로 갔다.삼동소년촌은 소년들이 돌아와 청소를 하느라 어수선했다.
"이사장님,비가 다 쓸고 갔습니다."
강신웅은 삼동소년촌 이사장 이용설을 보고 인사를 했다.
"해마다 이 난리를 겪으니 큰일이야."
이용설이 강신웅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세브란스 병원 의사 출신으로 1965년부터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
"아무래도 소년촌을 옮겨야겠어."
"예?옮기면 어디로 옮깁니까?"
"건너편 산으로 옮겨야 할 것 같네.애들이 비 때문에 잠을 못 자."
소년들은 흙탕물에 잠겼던 방의 쓰레기를 치우고 방을 닦느나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소년들이 가꾼 꽃밭도 엉망이 되었다.
난지도 주민들은 땅콩이며 배추 고추 오이 호박과 같은 채소를 재배하며 살았다.그러나 대부분의 채소들이 물에 휩쓸려 갔다.
대부분의 집이 판잣집이어서 불괴되거나 떠냐려간 집이 많았다.가재도구도 쓸려 가거나 못쓰게 되어 주민들을 우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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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2014년 2월 서울시가 발간한 '한강이야기 30선 한강이 말을 걸다'에서 옮겨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