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일편단심 ― 문예바다 서정시선집 015
윤정구 | 문예바다 | 2022. 1. 31
128페이지 | 100×160㎜
값 8,000원
ISBN 979-11-6115-163-2
책 소개
도서출판 문예바다가 기획한 우리 문단 유명 시인들의 서정시선집 그 열다섯 번째로 윤정구 시인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일편단심』이 출간되었다.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윤정구 시인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가는 시인”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시인은 명랑한 어린 소년이 산골짝을 뛰어다니는 그림을 그리지만 거기엔 동심보다는 자아에 대한 사랑과 인생의 깊이가 있고, 돌멩이를 부화시키기도 하고, 지렁이가 보살이 되기도 하며, 신비한 시간의 품속에서 돌이 되고 풀이 되었다가 다시 새가 되어 망망한 바다 위를 날아가게 함으로써 천진함으로 구현되는 깨달음에 이른다.
*
한 방을 꿈꾸다가 일생을 탕진했다
본전 생각 뭉클한 석양 무렵
빚을 갚아야 하는데
어느새 반짝 떠오르는 서녘 별
뜨끔하다
― 「시인의 말」
*
너구동의 봄 햇살은
돌멩이도 움을 틔우나 보다
따끈해진 돌멩이 속에서
삐약! 삐약!
병아리 소리가 들렸다
돌멩이의 부화孵化라니!
천년을 기다린 돌 속의 병아리가
마침내 부드러운 부리로
딱딱한 돌껍질을 두드리다니!
무심無心 속에
저리 유정有情한 목숨 줄을 심는
햇살의 염력念力으로
돌멩이 하나씩 깨어난다
너구동 골짜기 가득
햇병아리 소리다
날아라 돌멩이들!
― 「너구동의 봄」
*
어디를 그렇게 서둘러 가느냐고 각다귀 한 무더기 길을 가로막는다
또 하루 저물어 꽃잎처럼 지고 있다고 나는 말없이 노을 비낀 해를 가리킨다
아직도 못 뛰어넘은 시간의 수레바퀴 억만 겁 숨은 뜻이 한순간 뜨끔했다
그렇다, 단 한 번 다녀간 다음에는 하루나 백년이나 다 똑같다 흔적 없다
― 「각다귀 고신첩告身帖」
*
다리가 없다
팔도 없다
눈도 없고
귀도 없는
캄캄한 몸뚱어리로
적멸보궁
앞마당까지 밀어 왔다
장맛비에 혼비백산
아아, 모두 떠내려갈 때
온몸으로 밀고 올라온
지렁이 보살
― 「성불成佛」
*
매일 애타는 가락으로 암매미를 부르느라
제게 주어진 두 주일의 일생을 홀딱 다 써 버린 수매미는,
제 영혼이 몇 년씩이나 땅속에서 물속에서 참고 꿈꾸며
공들여 저를 나무 위로 밀어 올렸는지 알지 못한다
― 「수매미는 알지 못한다」
*
절대 들여다보지 마라
닥나무숲 속의 우물
당나귀 가죽보다 질긴 닥나무 껍데기에 걸리면 천하의 여우 호랑이라도 그 골짜기 못 빠져나온다
제 얼굴 한번 보려다가 우물에 빠진 귀신 많다
― 「닥나무숲 속의 우물」
*
한 줌 가루가 된 그대를 봉인하고 돌아서서 절 앞뜰을 에돌아 흐르는 늙은 느티나무 아래 와서야 낮은 소리로 울음 우는 가을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름 내내, 살아가는 일이 죽어 가는 일이라 해도 사는 동안은 결코 함부로 살 수 없다던 그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다 내려놓으세요 물소리를 닮은 낮은 목소리 주지스님은 왜 절 앞 산책길에 나무아미타불을 새기는 것조차 못하게 하셨을까요?
그대 만났으므로 비로소 나 세상에 나온 일이 의미 있어졌는데 그대 봉인의 세계로 돌아간 지금 나는 눈 속에 갇힌 짐승처럼 아무것도 읽어 낼 수 없습니다
봄이 오면 봉인된 당신의 마음도 한 잎씩 파랗게 돋아날까요? 맑은 물은 처음 흘러가는 것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흔들리는 잎새들을 읽어 내려갈까요?
― 「봉인封印」
*
내 시의 궤적을 따라가노라면 어느덧 내가 태어난 고향에 이르게 된다. 나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 유년에 형성된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순박하고 곧은 성품의 아버지와 자애롭고 인정 많았던 어머니는 결국 내 시의 시작점이었다.
― 「서정抒情을 향하다」 중에서
시인 소개 | 윤정구
- 경기도 평택 출생
-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시집 『눈 속의 푸른 풀밭』 『햇빛의 길을 보았니』 『쥐똥나무가 좋아졌다』 『사과 속의 달빛 여우』
『한 뼘이라는 적멸』
- 산문집 『한국 현대 시인을 찾아서』
-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 수주문학상, 문학과창작 작품상, 공간시낭독회 문학상 등 수상
- 〈시천지〉 〈현대향가시회〉 동인.
- E-mail : jyoon2012@daum.net
차례 | 봄 여름 가을 겨울, 일편단심
시인의 말
제1부 독락당 오르는 길
너구동의 봄
너구동의 여름
너구동의 가을
너구동의 겨울
사랑한다, 인마
하늘다람쥐 눈
노올자
고흐의 별
굴뚝새
복음
참새 발자국 글씨 삼매
붉은 뜰
독락당獨樂堂 오르는 길
상강霜降
산수유 화엄
가파른 저녁
제2부 채송화 축지법
세인트 히말라야
수매미는 알지 못한다
닥나무숲 속의 우물
각다귀 고신첩告身帖
수렴동 물소리
한 뼘
성불成佛
요 요런, 사람 같으니라구
청와헌聽蛙軒
백일홍
그리운 사람은 모두 부처가 된다
채송화 축지법
귀룽나무
초저녁별
매직아이
단 한 번만이라도
제3부 다시 아산만에서
아버지의 아버지
봉인封印
단적短笛
히이힝, 권진규
나마스떼
다산초당의 노을
다시 아산만에서
첫눈 속을 혼자 걷는 사람이 있다
말복
옥잠화
남지기로회도南池耆老會圖를 엿듣다
홍도
적멸락寂滅樂
와 하 하 하…
별
신전 앞에서
제4부 소나기를 맞은 염소
꽃다지에게
사슴벌레
강아지풀을 읽다
수석水石을 바라보다
흰 옷 입은 아이
설청雪晴
사과 속의 달빛 여우
겨울 제의祭儀
아득한 별을 향하여
초대
금강초롱
경포대에서
눈 속의 푸른 풀밭
소나기를 맞은 염소
유리시경琉璃詩境
일편단심一片丹心
서정抒情을 향하다 ∙ 서녘 하늘에 뜬 별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