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고암서원 사제문 금상 을사년(1785, 정조9) 〔御製考巖書院賜祭文 今上乙巳〕
이곳에 초산(楚山)이 있어 有山曰楚
호수가 둘러 있는데 惟湖環之
문정공의 사당이 생긴 뒤로 自廟文正
남쪽 지방에 명망이 드러나게 되었네 望于南維
내가 어린 시절에 予在童丱
이 현인을 자나 깨나 잊지 못하였으니 寤寐伊賢
진정한 영웅호걸을 眞正英豪
책 속에서 얻었다오 得之遺編
명나라의 일민이요 皇朝逸民
주자 문하의 충신이었으니 朱門忠臣
통종회원의 뜻 깨달아 統宗會元
강상 인륜을 부지하였네 遂扶常倫
기상은 산악이 치솟은 듯하고 氣象嶽峙
조예는 바다와 같이 넓었는데 造詣海涵
백 년 후에야 의론이 정해지니 百年乃定
세상에서 우암을 칭송하네 世誦尤菴
모두들 이를 준거로 삼아 壹是之準
그를 배우고 스승으로 본받으니 學焉則師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성인 가르침이 龜圖馬書
아득히 멀어진 오늘날에 逖矣今時
공을 높은 산처럼 공경하여 우러름은 高山景仰
곧 성조의 마음을 체득해서라 寔體聖祖
세상에 드문 감격도 어제만 같아 隔晨曠感
마치 아침저녁 사이에 만난 듯하네 若朝暮遇
할 수 있는 전례를 모두 거행하여 靡典不擧
곧 그 보답을 성대하게 하였으니 載崇厥報
묘정에서는 태실에 배향하고 庭侑太室
사당에는 대로사란 편액 걸었네 祠揭大老
훌륭한 제자가 있었으니 曰有賢弟
형 땅에서의 채침(蔡沈)이요 광 땅에서의 안회(顔回)로다 衡蔡匡顔
광림의 가을밤에/ 桄林秋夜
북두성이 난간을 비추네 星斗闌干
손을 잡고 의발(衣鉢)을 전함에 執手傳鉢
다만 직(直) 자 하나뿐이었는데 一箇直字
이 땅에 영광이 더하고 有光玆土
사문이 실추하지 않았네 斯文不墜
사람의 마음과 신의 이치가 人情神理
서로 간에 멀지 않으니 可胥無遠
선비들이 대궐 문에 호소하였는데 衿紳叫闔
어찌 이렇게 늦게 들렸던가 何聞之晩
이에 길일을 가려서 乃選吉日
일체로 제사를 드리니 一體禋享
땅은 익히 발자취가 남은 곳이고 地慣筇屐
자리는 스승에게 여쭙던 곳이라 席疑函丈
덕은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고 德隣不孤
의식이 갖추어져 부족함 없으니 儀備罔缺
내가 이 예를 거행하면서 吁予是擧
뜻을 부침이 또한 간절하네 寄意也切
해와 별 같은 덕을 드러내어 式表日星
어두운 길을 밝게 깨우치리 以牖衢昏
근신으로 하여금 대신 잔을 올리게 하니 近臣替酹
멀리서 드리는 잔을 흠향하기 바라노라 尙歆泂樽
[주1] 고암서원(考巖書院) : 1695년(숙종21) 전북 정읍에 건립한 사액 서원이다. 우암이 정읍에서 사사되었으므로 이곳에 서원을 세워 제향하고, 1785년 우암에 대한 치제문을 내리면서 제자인 권상하(權尙夏)도 같이 배향하였다.
[주2] 통종회원(統宗會元) : 주희가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해설한 〈태극후론(太極後論)〉에 “일물 가운데에 천리가 완전히 갖추어져서 서로 빌리지도 않고 서로 빼앗지도 않으니, 이것이 바로 통(統)에 종(宗)이 있게 된 까닭이요, 회(會)에 원(元)이 있게 된 까닭이다.[一物之中, 天理完具, 不相假借, 不相陵奪, 此統之所以有宗, 會之所以有元也.]”라고 하였다. 《性理大全 卷1 太極圖說》 여기에서는 이 구절을 줄여서 썼는데, 대개 통회(統會)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현상을 가리키는 분수(分殊)에 해당하고, 종원(宗元)은 근본적인 원리라는 말로 이일(理一)에 해당한다.
[주3] 마치 …… 듯하네 : 세대를 뛰어넘어 자기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 기쁨을 비유하는 말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의 “만세의 뒤에라도 이 해답을 아는 대성인을 만나게 된다면, 이것도 아침저녁 사이에 만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라는 말에서 나왔다.
[주4] 손을 …… 하나뿐이었는데 : 우암이 정읍에서 후명(後命)을 받고 적전(嫡傳) 제자라 할 수 있는 권상하와 영결할 때 “주자가 임종할 때에 ‘직(直)’ 자 하나로써 문인들에게 말씀해 주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오직 이 한 글자뿐이다.”라고 유명을 전하였다.
《宋子大全 續拾遺 附錄 卷2 楚山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