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禪 ․ 敎觀(선.교관)
출가 이전부터 보통사람들과 의식이 달랐을 충지는 원오국사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승려의 길을 걸었다. 그가 걷는 승려의 길은 생각보다 어려웠던 모양이다. 게송(偈頌) 한 대목을 보자.(상략)…'세상살이 어렵고 편안함만 알았지 어찌 승려생활 배나 어려운줄 알았으리'(하략)… 그 자신도 출가하면서 그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고 예상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세속에서 예상했던 어려움보다는 훨씬 심했음 토로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고려는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조정의 숭불(崇佛)정책도 불구하고 몽고의 침략과 지배는 민생을 3중의 고통에 빠지게 했다. 사찰 또한 생계의 조달처인 토전을 징발당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그의 생애는 태어나면서 타계할 때까지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허덕이는 그런 시대를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야 했다. 모진 시대적 환경은 그의 선교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터이다.
특정인에 대해 비굴할 정도로 미화하는 것은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돈은 귀신으로 하여금 연자방아를 돌게 한다(錢讓鬼神推磨)'라고 했다. 아무리 고매한 학식을 지녔어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돈이란 지조 있는 사람을 불성실한 사람으로, 사랑을 증오로, 미덕을 악덕으로, 지성인을 백치로 만들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고 했다. 그가 원나라 황제에게 올린 청전표에 구사한 수사들은 그런 입장이리라.
그런가 하면 그는 한편으로는 처절한 민생의 참상에 울어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를 함께 사는 지식인이자 10년간 관료 생활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관대작들과 폭 넓은 교분을 두텁게 쌓아가는 승려의 삶이 여러 곳에 묻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생애는 고매한 승려의 면목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유생(儒生)의 면모도 보인다. 그의 선․교관을 보면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에서도 진리를 터득할 수 있음을 본다.
① 幽居 (유거, p.7)
棲息紛華外 번잡하고 화려한 세상을 벗어나 살면서
優游紫翠間 푸른 산속을 한가로이 노니나니
松廊春更靜 소나무 회랑 봄기운이 더욱 고요해
竹戶晝猶關 대나무 사립문 낮에도 빗장 걸렸네
檐短先邀月 처마 짧으니 달을 먼저 맞이하고
牆低不礙山 담장 낮으니 산이 가리지 않네
雨餘溪水急 비온 뒤 시냇물소리 급히 흐르고
風定嶺雲閑 바람 고요하니 고갯마루 구름 한가하네
谷密鹿攸伏 골짜기 깊으니 사슴이 엎드려 있고
林稠禽自還 수풀 우거지니 새들이 날아들지
悠然度晨暝 유연(구애받지 않음)히 아침저녁 지내면서
聊以養疎頑 애오라지 그럭저럭 살아가리
② 閑中自慶 (한중자경, p.10)
日日看山看不足 매일 산을 보아도 보는 것이 부족하고
時時聽水聽無厭 때때로 물소리 들어도 듣는 것이 싫지 않아
自然耳目皆淸快 자연이 귀와 눈은 맑고 상쾌하게 하네
聲色中間好養恬 일체만경(萬境) 가운데 편안함을 기르네
③ 入定慧作偈示同梵 (입정혜작게시동범, p.10)
「至元 9年壬申三月初入定慧作偈示同梵」(지원 9년(1272) 壬申 3월초에 정혜사에 들어가 偈를 지어 동범에게 보임)
鷄足峯前古道場 계족봉 앞 도량(정혜사)
今來山翠別生光 이제와 보니 푸른 산 빛 유별나네
廣場自有淸溪舌 맑은 시냇물소리 저절로 장광설(설법)인데
何必喃喃更擧場 무엇 때문에 수다스럽게 들어내 보이리
④ 自戱 (자희, p.26)
予曾少多病 나 일찍 병이 많았네
今又到衰年 이제 벌써 노쇠하였네
佛尙慵瞻禮 부처님 예배도 게으른데
經奚要諷宣 경전을 어찌 외우리
逢餐輒飽送 음식을 만나면 배불리 먹고
値晩卽橫眠 저녁 되면 잠자나니
休間祖師意 조사(祖師)의 뜻은 묻지도 말라
從來不會禪 종래부터 선은 알지도 못했는데
⑤ 閑中偶書 (한중우서, p.28)
寺藏深谷裏 사찰은 깊은 계곡에 감추어 있고
樓壓小溪西 누각은 조그마한 시내 서쪽을 막았네
灌木和烟暗 관목은 연기에 어울려 어두침침하고
叢篁冒雨低 총황(대숲)은 비를 무릅쓰고 나직하여라
簷頭蛛作網 처마 끝에 거미가 줄을 치고
墻下燕啣泥 담 아랜 제비가 흙을 머금었네
晝睡晩初覺 낮잠을 늦게 깨고 보니
林鵶爭返棲 숲속의 까마귀가 다투어 집으로 돌아오네
平生嗜幽獨 평생에 한적하고 외로움을 즐기나니
窮谷寄衰嬴 쇠약한 몸을 궁벽한 골짜기에 붙여 산다네
地僻花開晩 땅이 궁벽하니 꽃은 늦게 피고
山高日出遲 산은 높아 해는 늦게 솟아오르네
蕉心抽不盡 파초 줄기는 끝까지 자라지도 못했는데
溪舌吼無時 시냇물소리는 언제나 조잘조잘
此樂少人會 이 즐거움 아는 사람 적나니
塔然空自怡 멍하니 부질없이 스스로 즐거워할 뿐
⑥ 惜花吟 (석화음, p.36)
臘月念六初入郭 섣달 26일 처음으로 성안에 들어와서
轉頭春己七十有三日 머리 들어보니 봄은 이미 73일째
去年今年同逝川 지난해도 금년에도 냇물은 똑 같이 흘러갔고
昨日今日甚奔馹 어제께도 오늘도 역마처럼 분주히 흘러가네
昨日看花花始開 어제 꽃구경 땐 꽃은 피려하더니만
今日看花花欲落 오늘 꽃구경 땐 꽃은 떨어지려 하네
花開花落不容惜 꽃피고 지는 것을 애석하게 여기지 말라
春至春歸誰把捉 봄이 오고가는 것을 누가 붙잡아두리
世人但見花開落 세상 사람들은 다만 꽃피고 지는 것만 보고
不知身與花相若 자신이 꽃과 같은 신세인줄은 알지 못하네
君不見朝臨明鏡誇紅顔 그대 아침에 거울에 비친 홍안을 자랑하다가
暮向北邙催紼翣 저녁 때 북망을 향해 재촉한 불삽*을 보지 않았는가
須信花開花落時 모름지기 꽃피고 지는 것을 믿어야 하나니
分明說箇無常法 분명 저 무상의 법을 말하는 것이려니
주) * 불삽 : 발인 때에 상여의 앞뒤에 세우고 가는 제사 도구(게재자)
(144-016일차 연재에서 계속)
첫댓글 (144-015일차 연재)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圓山 위정철 저)
15일차에서는 원감국사님의 '선·교관' 을 엿볼수 있는 한시 "유거, 석화음" 등 17편 중에서 6편이 밴드에 게재됩니다.
이제 2일차 뒤인 '17일차(1292년)에서 원감국사님께서 이생을 마감하고 입적'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으로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 주) 읽는이의 편의를 위하여 게재자가 시의 단락을 구분하였고 일부 제목에 음을 달았습니다.
(본문내용- 원감국사 관련 계속)/ 무곡
원감국사님 문학작품 밴드 게재 종반을 향하여 가다보니 그런지,
지는 꽃을 아쉬워하며 지은
'惜花吟(석화음)'이라는 시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것 같습니다./ 무곡
돈의 힘은 귀신으로 하여금 연자방아를 돌리게 할 정도로 무섭군요./ 소석
어쩌면 지금의 돈이 영혼을 팔아서
젊음을 산 파우스트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니런지요?
그러나 돈 자체는
죄가 없답니다.
원감국사님이 살았던 13세기도 그렇고,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도
민생고 문제가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모두가 행븍한 사회를 오늘 귀가길에
꿈꿔봅니다./ 무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