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어른이 되기 싫어
20대 중반부터 인간의 뇌세포는 죽어간다고 했던가, 나이를 먹는 인간은 머리가 쇠퇴하고 온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끼며 죽어갈 수 있다... 늙어서 죽는다는 것은 퍽이나 재밌는 경험일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기 싫은 이유는 이런 눈에 보이는 문제들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미 자유로부터 죽어 있었다. 자유와 가장 동떨어진 존재, 그리고 가장 모순적인 존재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그랬다.
그들은 스무살이 되면 법적으로 어른이라고 불리게 된다. 그리고 학생 때는 하지 못할 일탈과도 같은 자유들을 경험하게 된다. 술집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담배를 피워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다. 그들은 법적으로 어른이니까. 하다 못해 유흥거리에선 짝짓기 할 상대 찾는 벌레새끼들마냥 노래부르는 놈들도 간혹 나타난다. 아니 상당히 많다. 그들이 천박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유흥 자체를 나쁘게 보진 않는다. 그럴 나이니까. 그런데 이것은 표면적으로만 보여지는 자유로움에 불과하다.
내가 어른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것에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행동한 모든 자유에 대하여 직접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떠한 권리를 누릴 때 뒤에 따라올 대가를 함께 생각해야한다. 예를 들어 오늘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가 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하루종일 놀기만 해버리면 다음날에 따라올 대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이 일으킬 문제들을 감당애야만 하는 것, 그것이 책임이다. 그리고 이런 책임이 어른들의 자유를 제한한다.
삶은 법적인 책임보다 눈으론 볼 수 없는 책임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면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책임들을 전부 감당해야만 한다. 모든 선택들이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테니까 말이다. 서른 살에 취업이나 결혼과 같은 삶과 직결되는 문제라던가, 어른이라면 아이들 앞에서 올곧은 행동만을 보여야 한다는 사회가 꾸며낸 규범 같은 것들이 어른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억압하는 것이다. 어리다면 책임지지 않고 회피해도 될 문제들을 어른이 된다면 본인이 전부 떠받들어야 하는 거다.
그래서 난 어른이 되기 싫었다. 내가 감당하기엔 난 아직 너무나도 나약하고 미성숙한 존재다.
항상 힘든 일들은 전부 회피해 왔다. 어렀던 나에게 당장에 피해는 오지 않았다. 어른들이 받쳐주기 까지 난 언제나 지붕 아래 안전한 존재였으니까. 한심한 내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런 어른이란 존재는 1년도 안되는 거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이 오지 않았다. 우린 몇 개월 뒤면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스무살인 것이다.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런 책임들을 버티며 살아가는 어른들은 정신적으로 우리보다 몇 차원 위에 존재들이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런게 아니었다. 예전에 학교로 오신 강사 선생님이 계셨다. 고작 20대의 나이였는데 그 선생님은 본인도 어른인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정신은 그대로인데 나이만 늘어가는 것 같다고 말이다. 난 그 말에 조금은 안심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았구나하고.. 그들은 어른이라는 명목이 있기에 나름 잘 숨기려고 하지만, 그들도 사실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어른들은 나이를 먹으며 많은 경험들을 쌓아왔어도
본질적으로 우리와 똑같이 방황하는 인간들이다.
그들도 책임을 짊어지기 싫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겠지만 그러면 안되는 걸 알기에 요령껏 버텨나가는 것이다. 어른이란 결국 젊음이 숙성되어 알콜이 가미된 존재들일 뿐이었다.
자유로운 어른이 될순 없을까?
어리디어렸던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곤 했다. 그리고 하나 생각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치곤 꽤나 단순한, 그래, 난 나이를 먹게 된다면 보다 현명한 사람이 되고싶었다. 나이만 먹는 머저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말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어른이 되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회를 알게되고 난 후 난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런 사람이 되려 한다면 이 사회가 날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편으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난 이것이 맞는 방법이라고 믿고 일을 해왔는데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일을 시작한 녀석이 나보다 더 뛰어난 능력이나 지위를 얻게 된다면 자신이 해왔던 일들이 모조리 부정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아, 그 누가 쉽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이라면 그런 현실에 대해 열등한 감정이 들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라도 어느정돈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애초에 난 그런 사람들의 압박을 이겨낼 수 없다. 난 여느 위인들과 달리 뜻을 관철할 수 있을 정신력 따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사회에서 도태된다면..화장실에 숨어서 혼자 밥먹고 있을 내 자신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 사회라는 늪은 자신과 다른 이들을 조용히 끌어내릴 것이다.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줄 알았던 우리들도 군중의 편안함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간판따위를 목적으로 가는 대학교도, 잘 보이기 위해 윗 사람에게 아부를 떠는 것도, 그것이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때쯤 우리는 군중속에 서서히 잠식된다. 숨이 막히는지도 알 수 없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이 사회에 적응해나가면 무엇이 변했냐는듯 그들과 똑같이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리곤 사회는 내게 말한다. 너도 그들과 똑같은 어른이 될 거라고, 결국 영원한 자유란 있을 수 없는 법이라고. 마치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듯이 우릴 속이려고 말이다. 조언을 가장한 그들의 자기위로란 걸 알지 못한 채.
하지만 모든 문제가 온전히 사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명한 사람이 되지 못한 우리들도 결국 그 사회의 일부와 같다. 우린 자신들 또한 어리석다는 걸 눈치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읽고 눈치챘다면,
나를 제외한 모두가 현명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난 여기에 남아있고 싶다.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내 생각과 태도가 제일 문제였을지도 모른다고. 허황된 꿈속에 파묻혀 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내겐 꿈이 있으니까 학교 공부따위 필요없어."라던가, "어른들이 나를 몰라서 그래"라던가.. 이딴 글쓰기 따위도 결국 어른이 되기 싫다는 변명거리만 장황하게 늘어 놓으며 내 삶에서 조차 도망치려 애쓰고 있었을 뿐이다. 당장의 평안을 찾으려 스무살의 나를 외면한 채.
내 내면은 그 형태가 끊임없이 변하더라도 결국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성장 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평생. 마치 하늘을 날기 위해 무릎을 자른 어리석은 피터팬처럼
근데 그게 뭐 어떤가, 어리석든 현명하든 그것은 인간의 삶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척도따위 인생에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굳이 이 인생에서 나를 발전시켜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우리가 고통을 감수할 만큼 성장은 가치가 있는 것인가? 난 좀 다르게 생각하고 싶었다. 누구의 희생도 없이 모두가 행복해질 이기적인 방법 따위를.
어떠한 일이 나를 너무 고통스럽게 한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 아픈 건 싫어하잖아. 설령 그게 우리를 성장하지 못하게 만들더라도 괜찮다. 그냥 그 자체로 인간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거면 된다.
피터팬은 잘린 무릎은 보지도 않은채 하늘을 향해 계속해서 날아갔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사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