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학계몽易學啓蒙 전의傳疑의 의심스러운 부분도 첨부하였다.
“소자가 말하기를, ‘둥근 것은 별이다.……’ 하였다.〔邵子曰 圓者星也 云云〕”의 아래 분주(分註)에 나오는 채원정(蔡元定)의 설 가운데 “역의 음양 책수는 많고 적음이 저절로 서로 배합되어 모두 육십이 된다.〔易之陰陽策數 多少自相配合 皆爲六十〕”
○ 살펴보건대, 여기에 나오는 ‘다소(多少)’는 반드시 ‘노소(老少)’의 잘못인데도 제본(諸本)에는 모두 똑같이 되어 있다. 이 책 안에서 잘못된 부분은 《전의》에서 모두 바로잡았는데, 이 글자는 고치지 않았는바, 의심스럽다. -《역도설(易圖說)》에는 노소(老少)로 되어 있다. -
서산 채씨가 말하기를, “천하의 모든 이치는 일동일정에서 나온다.” 하였다.〔西山蔡氏曰 天下之萬理出於一動一靜〕
○ 살펴보건대, 천하에는 이(理)가 없는 기(氣)가 없으며 기가 없는 이도 없는바, 참으로 선후(先後)에 대해서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만약 반드시 근본을 따져서 논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먼저 이가 있다고 해야 할 것으로, 《대전(大全)》에서 이른 바 “태극(太極)이 양의(兩儀)를 낳는다. 한 번 음(陰)하고 한 번 양(陽)함을 도(道)라 이른다.” 한 것과, 주자(周子)가 이른 바 “태극이 동(動)하여서 양을 낳고, 정(靜)하여서 음을 낳는다.” 한 것과, 주자(朱子)가 이른 바 “만약 태극이 없었다면 문득 천지(天地)가 뒤집혀지지 않을 것이다.” 한 것은 모두가 이로써 기가 나오는 바라고 한 것이다. 지금 채씨가 만약 이가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는 가운데에 있다고 말한다면 괜찮지만, 이가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는 데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크게 의심스러운 것이 될 만하다. 채씨가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말한 설은 문세(文勢)와 어맥(語脈)을 보면 ‘이(理)’ 자는 ‘화(化)’ 자의 오자(誤字)인 듯하다. 그런데 《전의》에서도 의심을 두지 않았으므로 지금 감히 확실한 말이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그냥 둘 경우 장차 형이상자(形而上者)가 형이하자(形而下者)에게서 나오게 되는 데야 어쩌겠는가. 아마도 이런 이치는 없을 듯하다. 나의 이 설이 어떠한가?
“하도는 생수를 위주로 한다.……〔河圖以生數爲主 云云〕”의 아래 분주에 나오는 옥재 호씨(玉齋胡氏)의 설 가운데 “어찌 오직 5라는 숫자에만 구애되어서야 되겠는가.〔豈可惟以五數拘之哉〕”
○ 살펴보건대, 주자(朱子)가 말한 이 조항은 본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중오(中五)에는 각각 다섯 생수와 다섯 기수(奇數)가 구비되어 있는 상(象)을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옥재 호씨는 그 뜻을 끝까지 미루어 나아가 부연 설명하여, 비단 다섯 생수와 다섯 기수가 구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도의 성수(成數)와 전수(全數) 및 낙서의 우수(偶數)와 전수가 모두 중앙의 5에 구비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중오(中五)가 하도와 낙서의 주(主)가 되어서 포함하지 않는 바가 없다는 것을 극도로 말한 것이다. ‘어찌 오직 5라는 숫자에만 구애되어서야 되겠는가.’라고 한 것은, 단지 다섯 생수와 다섯 기수로써 구애받아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전의》에서는 이 단락을 해석하여 뭐라고 운운하였는데, 옥재 호씨가 말한 설의 위아래 문세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듯하다. 나의 이 설이 어떠한가?
“그 수와 위가 셋은 같고 둘은 다르다.〔其數與位 皆三同而二異〕”의 주에 나오는 “옥재 호씨가 말하기를, ‘수는 하도의 1에서 10까지와 낙서의 1에서 9까지의 수이고, 위는 동ㆍ서ㆍ남ㆍ북ㆍ중앙의 다섯 위이다. 셋은 같고 둘은 다르다는 것은, 하도와 낙서의 1과 6은 모두 북쪽에 있고, 3과 8은 모두 동쪽에 있고, 5는 모두 중앙에 있는바, 이 셋의 위와 수는 모두 같다. 그러나 하도의 2와 7은 남쪽에 있는데 반해 낙서의 2와 7은 서쪽에 있고, 하도의 4와 9는 서쪽에 있는데 반해 낙서의 4와 9는 남쪽에 있는바, 둘의 위와 수는 모두 다르다. 양의 바꿀 수 없음은 전적으로 1, 3, 5를 가리켜서 한 말이요, 음의 바꿀 수 있음은 2, 7, 4, 9를 통틀어서 가리킨 것이다.……’ 하였다.〔玉齋胡氏曰 數則河圖自一至十 洛書自一至九之數 位則東西南北中央之位 三同而二異者 圖書之一六皆在北 三八皆在東 五皆在中 三者之位數皆同 圖之二七在南 而書則二七在西 圖之四九在西 而書則四九在南 二者之位數皆異也 陽不可易 專指一三五 陰可易 統指二七四九 云云〕”
○ 살펴보건대, 주자가 말한 ‘셋은 같고 둘은 다르다.’고 한 설은 하도와 낙서의 수와 위가 옥재 호씨가 말한 것과 같이 통틀어서 논한 것이 아니라, 단지 윗글에서 하도와 낙서의 중오가 각각 다섯 생수와 다섯 기수를 갖추고 있는 것을 논함을 인하여 발한 것이다. 윗글에서 하도의 중오에 대해 논하면서는 “그 아래의 한 점은 천일의 상이고, 그 위의 한 점은 지이의 상이고, 그 왼쪽의 한 점은 천삼의 상이고, 그 오른쪽의 한 점은 지사의 상이고, 그 가운데 한 점은 천오의 상이다.〔其下一點 天一之象 其上一點 地二之象 其左一點 天三之象 其右一點 地四之象 其中一點 天五之象也〕”라고 하였으며, 낙서의 중오에 대해 논하면서는 “그 아래의 한 점은 역시 천일의 상이고, 그 왼쪽의 한 점은 역시 천삼의 상이고, 그 가운데 한 점은 역시 천오의 상이고, 그 오른쪽의 한 점은 천칠의 상이고, 그 위의 한 점은 천구의 상이다.〔其下一點 亦天一之象 其左一點 亦天三之象 其中一點 亦天五之象 其右一點 則天七之象 其上一點 則天九之象也〕” 하였으며, 그 아래에서는 바로 결론을 맺어 말하기를, “그 수와 위는 모두 셋은 같고 둘은 다르다.〔其數與位 皆三同而二異〕” 하였다.
여기에서 세 개의 ‘역(亦)’ 자와 두 개의 ‘즉(則)’ 자를 상세히 살펴보면, 이른 바 ‘셋은 같고 둘은 다르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지, 다른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분명하여서 아주 명백한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이른 바 ‘양은 바꿀 수가 없고 음은 바꿀 수가 있다.’라고 한 것은, 하도의 다섯 생수를 위주로 하여 보면 1, 3, 5는 바꿀 수가 없고 2, 4는 바꿀 수가 있음을 참으로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으나, 낙서의 다섯 기수를 위주로 하여 보면 7과 9 역시 양인데도 그 자리가 바뀌는바, 후학(後學)들이 의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을 듯하다. 그러므로 이를 해석하여 말하기를, “성수는 비록 양이라도 짐짓 생수의 음이다.〔成數雖陽 固亦生之陰〕”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7과 9는 바꿀 수가 있음을 드러내어서 후학들의 의심을 깨뜨려 준 것일 뿐이지, 하도와 낙서의 성수를 아울러 가리켜서 통틀어 논한 것은 아니다.
옥재 호씨의 해석에서는 반드시 하도의 생수와 성수 및 낙서의 기수와 우수를 아울러 거론하여 통틀어서 논하고자 하였으므로 그 설이 서로 어긋나 억지로 끌어다 대어 짜맞추는 듯한 병통이 있음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셋은 같다는 곳에서 이미 6과 8을 아울러 거론해 놓고서 다시 또 양은 바꿀 수가 없다는 곳에서도 문득 “1, 3, 5만을 전적으로 가리킨다.”라고 말하여, 몇 마디밖에 안 되는 두 구절 사이에서 취하자마자 곧바로 내버리고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내보내고 말았다. 이것이 어찌 주자가 글을 써서 상(象)을 설명한 본뜻이겠는가.
이제 단지 “수(數)는 하도의 1, 2, 3, 4, 5와 낙서의 1, 3, 5, 7, 9의 수이고, 위(位)는 동, 서, 남, 북, 중앙의 위이다. 셋은 같다는 것은 하도와 낙서의 1, 3, 5가 북쪽과 동쪽과 중앙에 있는 것이 모두 같은 것이고, 둘은 다르다는 것은 하도의 2와 4 및 낙서의 7과 9의 위가 각각 다른 것이다. 양은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은 바로 1, 3, 5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고, 음은 바꿀 수가 있다는 것은 바로 2, 4, 7, 9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라고 한다면 간단하고도 명백하게 될 것 같다. 나의 이 설이 어떠한가? - 살펴보건대, 《전의》에 이르기를, “호운봉(胡雲峯)이 이르기를, ‘양은 바꿀 수가 없고 음은 바꿀 수가 있다는 것은 오로지 생수(生數)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하였는데, 그 설이 비록 심히 교묘하고 자세하기는 하나 따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취하지 않는다.” 하였다. 그런즉 운봉 호씨의 설이 바로 내가 논한 바를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천원발미(天原發微)》에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하였는데, 이곳에는 그 책이 없어서 고증할 수가 없으니, 참으로 한스럽다. -
“한원락의 〈측도분괘도〉〔韓苑洛則圖分卦圖〕” 아래에 나오는 퇴계(退溪) 선생의 설 가운데 “5와 10을 비워 두는 것이 아주 옳은데, 〈측도분괘도〉에서는 역의 오묘한 부분을 그리면서 지금 이에 5와 10의 수를 아울러 포함시켜서 양의가 나뉘어지는 것으로 삼았으니, 이는 이미 복희씨(伏羲氏)가 역을 만든 뜻을 잃어버린 것이다.……〔虛五與十最是 則圖作易之妙處 今乃幷五與十數 以爲兩儀之分 則已失羲易本意 云云〕”
○ 살펴보건대, 한원락의 〈측도분괘도〉를 보면 1, 3, 5, 7, 9를 쌓아서 양의(陽儀)로 삼고, 2, 4, 6, 8, 10을 쌓아서 음의(陰儀)로 삼았는바, 퇴계 선생께서 잘못되었다고 한 것은 마땅하다. 다만 한원락의 〈측도분괘도〉에서 말한 설을 상고해 보면, 1, 3, 7, 9를 양으로 삼고, 2, 4, 6, 8을 음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양의(兩儀)이다. 대개 여기에서는 이미 5와 10을 비워 두고서 말하였다. 그런즉 〈측도분괘도〉 안에 나오는 5와 10의 점(點)은 후세 사람들이 모사(模寫)하면서 잘못 그려 넣은 것일 뿐인 듯하다. 한원락이 제아무리 담이 크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필시 이론(異論)을 감히 주장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대개 도(圖)의 점과 획(劃)은 잘못 그려 넣기가 쉽다. 그리고 지금 《계몽전의(啓蒙傳疑)》와 같은 경우에는 간행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도 가운데에는 잘못 그려 넣어 퇴계 선생의 본뜻을 잃어버린 것이 이미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더구나 한원락의 《역학계몽의견(易學啓蒙意見)》은 간행된 지가 자못 오래되었으며, 유포된 것도 널리 퍼졌다. 그러니 돌고 돌면서 모사하는 즈음에 어찌 잘못 그려진 것이 없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측도분괘도〉 안에 나오는 중오의 상하에 있는 두 개의 점이 잘못 그려진 것에 대해서는 퇴계 선생께서 한원락의 본뜻이 아니라고 여겨서 개정하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이 한 조항에 대해서만은 그르게 여겨 엄하게 배척하였다. 이는 생각건대 한원락의 도설(圖說)에 대해서 우연히 제대로 살펴보지 못해서 그런 것일 뿐이다. 모르겠지만, 나의 이 설이 어떠한가?
“5를 포함하여 10을 얻는다.〔含五得十〕”의 주에 나오는 “옥재 호씨가 말하기를, ‘아래의 한 점은 천일의 상을 포함하고, 위의 한 점은 지이의 상을 포함하고, 왼쪽의 한 점은 천삼의 상을 포함하고, 오른쪽의 한 점은 지사의 상을 포함하고, 가운데의 한 점은 천오의 상을 포함한다.’ 하였다.〔玉齋云 下一點含天一之象 上一點含地二之象 左一點含天三之象 右一點含地四之象 中一點含天五之象〕”
○ 살펴보건대, 이것은 바로 낙서의 중오에 대해 논한 것이다. 그런데 ‘위의 한 점은 지이의 상을 포함하고, 오른쪽의 한 점은 지사의 상을 포함한다.’라고 하였다. 어찌하여 하도를 논함을 인하여 잘못 구분하였단 말인가? 이제 마땅히 ‘지이’를 천구(天九)로 고치고, ‘지사’를 천칠(天七)로 고쳐야 한다.
“5와 10을 쌓는다.〔積五與十〕” 한 데 대해 《전의》에서 말한 “포함하고 있는 바의 1, 2, 3, 4를 쌓으면 10이 되고, 여기에 5를 아울러 쌓으면 15가 된다.〔積實所含之一二三四爲十 而幷五爲十五也〕”
○ 살펴보건대, 주자가 이른 바 ‘5와 10을 쌓는다.’라고 한 것은, 이는 본신(本身)의 5라는 숫자와 5를 포함해서 얻은 바의 10이라는 숫자를 쌓으면 15가 된다고 한 것이다. 퇴계 선생이 말한 바는 아주 교묘하다. 그러나 ‘5와 10을 쌓는다.’라고 한 글의 문세를 가지고 살펴보면, 아마도 그렇지 않은 듯하다. 더구나 중오가 1, 2, 3, 4, 5를 포함하는 것은, 바로 하도이고, 낙서의 중오는 1, 3, 5, 7, 9를 포함한다. 그런데도 옥재 호씨는 잘못해서 1, 2, 3, 4, 5를 가지고 말하였으며, 퇴계 선생께서도 잘못하여 이를 그대로 답습함을 면치 못하였다. 이는 필시 우연히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이다. 나의 이 설이 어떠한가?
“태극이 양의를 낳는다.〔是生兩儀〕”의 주에 나오는 옥재 호씨가 주자의 설을 인용한 것 가운데 “의는 필이다. 이른바 한 쌍이니 한 대니 하는 것과 같다.……〔儀 匹也 如所謂一雙一對 云云〕”
○ 살펴보건대, ‘필(匹)’은 한쪽이라는 뜻인 척(隻)이다. 이것이 서로 배합되면 쌍(雙)이 된다. 주자는 ‘의(儀)’를 한 쌍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대개 양의(兩儀)가 한 쌍이 됨을 이른 것이다. 양의는 양척(兩隻)이라는 말과 같으니, 바로 한 쌍을 이른다. 생각건대, 태극은 바로 형이상자(形而上者)이니 도(道)이고, 음양은 바로 형이하자(形而下者)이니 기(器)이다. 성인(聖人)께서 한 개의 기수와 한 개의 우수를 그어서 음양의 형체를 모사(模寫)하였으니, 의(儀) 자에는 의형(儀形)의 뜻이 있는 듯하다. 음의(陰儀)라고 하는 것은 음의 형체를 이르는 것이고, 양의(陽儀)라고 하는 것은 양의 형체를 이르는 것이다. 사상(四象)이라고 할 때의 상 자가 이미 형상(形象)의 뜻이니, 양의(兩儀)라고 할 때의 의 자는 의형(儀形)의 뜻으로 훈독하는 것이 역시 적절할 듯하다. 나의 이 설이 어떠한가? 아마도 잘은 모르겠지만, 선유(先儒)들이 이미 이러한 설을 말한 것이 있는데도 내가 고루하여 미처 보지 못한 것인가?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四象生八卦〕”의 주에 나오는 “주자가 말하기를, ‘노양이 거쳐 가서 음을 사귀고, 노음이 거쳐 와서 양을 사귀는 것이 바로 태와 간의 위에 있는 제3획이 된다. 소음과 소양이 사귀는 것이 바로 진과 손의 위에 있는 제3획이 된다. 이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위차가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하였다.〔朱子曰 老陽過去交陰 老陰過來交陽 便是兌艮上第三畫 少陰少陽交 便是震巽上第三畫 所以知其如此者 他這位次相挨傍〕”와 “옥재 호씨가 말하기를, ‘태와 건과 간과 곤과 진과 손 여섯 괘는 위차가 서로 끌어당긴다.’ 하였다.〔兌乾艮坤震巽六卦 位次相挨也〕”
○ 살펴보건대, 주자는 이 조항에서 단지 태와 간과 진과 손에 대해서만 논하였지, 건과 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옥재 호씨는 문득 건과 곤을 가지고 말을 늘어놓으면서 여섯 괘가 서로 끌어당긴다고 하였다. 무릇 태와 건과 간과 곤은 참으로 서로 끌어당긴다. 그런데 사귄다는 뜻에서 무슨 취할 것이 있어서 아울러 말한단 말인가. 주자가 이른 바 ‘이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이라고 한 뜻은 제대로 밝혀 말하지 않은 것으로, 후학(後學)들로 하여금 주자가 말한 본뜻을 알지 못하게 하였으니, 몹시 의아스럽다.
내가 일찍이 이에 대해서 반복해 생각해 보고는 ‘위차가 서로 끌어당긴다.’고 한 설은 단지 아랫단락에 나오는 진과 손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지, 윗단락에 나오는 간과 태까지 통틀어서 논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그렇게 말하느냐 하면, 태양(太陽)은 초효(初爻)의 자리에 있고 태음(太陰)은 사효(四爻)의 자리에 있어 그 위차가 서로 가깝지 않다. 그러므로 태양이 태음을 사귐에 있어서는 반드시 소음과 소양 두 자리를 거쳐 가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쳐 간다.〔過去〕’라고 한 것이다. 그런 다음 서로 사귐에 미쳐서 간의 상효(上爻)를 낳게 되는데,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단지 그대로 태음의 자리에 있으면서 간을 낳기를 마치 남편이 아내의 방으로 가서 아들을 낳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
태음이 태양을 사귐에 있어서도 역시 소양과 소음 두 자리를 거쳐 와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쳐 온다.〔過來〕’라고 한 것이다. 그런 다음 서로 사귐에 미쳐서 태의 상효를 낳게 되는데, 역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오지 않고 단지 그대로 태양의 자리에 있으면서 태를 낳기를 마치 아내가 남편의 집으로 가서 딸을 낳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 그 위차가 서로 먼 것을 말미암았으므로 과거(過去)니 과래(過來)니 하는 글자를 붙여서 뜻을 밝힌 것이다. - 양에 대해서는 거(去)라고 말하고, 음에 대해서는 내(來)라고 말한 것은, 양을 위주로 하여 말한 것이다. -
소음이 이효(二爻)의 자리에 있고 소양이 삼효(三爻)의 자리에 있는 데에 이르러서는 위차가 서로 바짝 붙어 있어 둘이 서로 끌어당기는바, 그 사이에는 다시 둘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없다. 이에 소음이 소양을 사귐에 있어서는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와서 진의 상효(上爻)를 낳고, 소양이 소음을 사귐에 있어서는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와서 손의 상효를 낳는 것이다. 이는 태양이 태음에게 가서 간을 낳고, 태음이 태양에게 가서 태를 낳는 것과는 같지 않다. 그러므로 ‘과거’니 ‘과래’니 하는 글자를 붙이지 않고 단지 소음과 소양이 사귄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태양이 위로 한 음을 낳으면 태가 되니 태음이 와서 사귀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리고 태음이 위로 한 양을 낳으면 간이 되니 태양이 서로 사귀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이것은 쉽사리 알 수 있는 것이다. 소음이 위로 그대로 한 음을 낳아서 진이 되고 소양이 위로 그대로 한 양을 낳아서 손이 되는 데에 이르러서는, 또한 각각 본래의 자리에 있어서 마치 사귐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스스로 낳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특별히 드러내어서 ‘소양과 소음이 사귀어서 진과 손을 낳는다는 것을 안 것은, 위차가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만약 ‘위차가 서로 끌어당긴다.’는 설이 간과 태까지 겸하여 말한 것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뜻을 취함에 있어서 어려울 듯하고, 설을 미루어 나아갈 수가 없게 된다.
대개 ‘양이 음과 사귀어서 아무 괘를 낳고, 음이 양과 사귀어서 아무 괘를 낳는다.’라고 하는 것은, 《대전(大全)》에서 이른 바 ‘건이 곤을 찾아가서 여(女)를 얻고, 곤이 건을 찾아가서 남(男)을 얻는다.’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이지, 처음으로 괘(卦)가 생겨날 때 이와 같다는 것을 이른 것이 아니다. 단지 이는 괘획(卦畫)이 이미 이루어진 뒤에 이러한 상(象)이 있음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상을 취함을 인하여 천지간의 음양이 서로 사귀는 이치를 밝힌 것일 뿐이다.
이제 그 위차가 서로 먼 것을 취할 경우에는 그것을 일러 ‘거쳐 가서 사귄다.’라고 하고, 그 위차가 서로 끌어당기는 것을 취할 경우에는 비록 각각 본래의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그것을 일러 ‘사귄다.’라고 하는 것이다. 생각건대, 아마도 성현들께서 상(象)을 취한 뜻은 단지 이와 같이 평범하여 알기 쉬운 곳에 있지, 깊이 탐구하여야만 알 수 있는 오묘한 뜻을 가지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르겠지만, 나의 이 설이 어떠한가?
“천지가 자리를 정한다.〔天地定位〕”의 아래 분주(分註)에 나오는 주모(周謨)가 물은 내용 가운데 “춘분은 태괘의 아래에 있어야 하고 추분은 비괘의 아래에 있어야만 한다.〔春分合在泰卦之下 秋分合在否卦之下〕”
○ 살펴보건대, 태(泰)는 바로 정월의 괘이고 비(否)는 바로 7월의 괘이다. 그러므로 태는 마땅히 대장(大壯)으로 고치고, 비는 마땅히 관(觀)으로 고쳐야 함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요해(要解)》나 《전의》에서는 모두 고치지 않았다. 나의 이 견해가 어떠한가?
괘기가 차고 줄어든다.〔卦氣盈縮〕
○ 살펴보건대, 주모(周謨)가 물은 바는 두 조항이 있는데, ‘괘기의 월분(月分)은 처음에는 엉성하고 끝에는 조밀하다.’는 것이 한 조항이고, ‘임괘(臨卦)가 춘분이 되고 둔괘(遯卦)가 추분이 된다.’는 것이 두 번째 조항이다. 이 두 조항은 모두 복희씨(伏羲氏)의 선천원도(先天圓圖)를 가지고 문왕(文王)의 십이벽괘(十二辟卦)를 참작해서 말한 것이다. 주자가 이에 대해 답하면서 이르기를, “복희씨의 역(易)은 그대로 복희씨의 말이고, 문왕의 역은 그대로 문왕의 말이다. 그러니 참으로 서로 합해지기를 구해서는 안 된다.” 하였는바, 이 한마디 말만 가지고서도 이미 주모가 말한 두 조항의 의의(疑義)를 다 깨뜨려서 다시는 남아 있는 의심이 없다.
주자가 또 그 아래에서 계속해서 말하기를, “보는 바의 〈선천도(先天圖)〉에 나오는 괘기의 차고 줄어듦은 극히 자세하다. 나 역시 일찍이 이와 같이 이해하기는 하였으나, 그에 대한 설을 얻지는 못하였다.……” 하였다. 만약에 문왕의 십이벽괘로써 복희씨의 선천도와 서로 참작해 보지 않았다면 또 어디를 말미암아서 괘기가 생겨나는 것이 처음에는 엉성하고 뒤에는 조밀하다는 의심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마도 주모가 이른 바 아무 달은 아무 괘이고 아무 달은 아무 괘라고 한 설이 비록 그르기는 하지만, 그가 논한 ‘음양이 생겨나는 것은 처음에는 엉성하고 나중에는 조밀하다.’라고 말한 것은 필경 의심해 볼 만한 것이다. 주자가 이른 바 ‘이해하기는 하였으나, 그에 대한 설을 얻지는 못하였다.’는 것은 이를 가리켜서 말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옥재 호씨가 이 조항을 해석한 것은 또다시 월분(月分)의 설에 구구하게 얽매여서 예전대로 서로 간에 합하기를 구하는 논(論)이 된다. 모르겠지만, 이것이 과연 주자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능히 이해한 것인가?
“건의 한 기가 이제 나뉘어져서 팔괘의 제3효가 된다. 초효와 이효의 4가 이제 또 나뉘어져서 8이 된다.〔乾一奇 今分爲八卦之第三爻 初爻二爻之四 今又分爲八〕” 한 데 대해 《전의》에서 말한 “두 개의 ‘금’ 자는 모두 여섯 획이 이미 이루어진 뒤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兩今字 皆指六畫旣成後言〕”
○ 살펴보건대, 이 조항은 본디 복희씨의 〈육십사괘원도(六十四卦圓圖)〉에 대해 논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1절에서는 32개의 양과 32개의 음을 양의(兩儀)로 삼았고, 제2절에서는 16개의 양과 16개의 음으로 사상(四象)을 삼았고, 제3절에서는 8개의 양과 8개의 음으로 팔괘(八卦)를 삼았다. 이는 모두가 여섯 획이 이루어진 뒤를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제1절에 나오는 ‘금(今)’ 자는 양의가 성립되었을 때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고, 제2절에 나오는 ‘금’ 자는 사상이 생겨났을 때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며, 제4절에 나오는 ‘금’ 자는 팔괘가 생겨났을 때를 가리켜서 말한 것으로, 이에 이르러서는 나뉘어져서 아무 것이 되고, 이에 이르러서는 나뉘어져서 아무 것이 된다고 하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전의》에서는 두 개의 ‘금’ 자를 가지고 ‘여섯 획이 이미 이루어진 뒤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개 ‘지(指)’ 자의 뜻은 ‘거(據)’ 자와는 의미가 다른바, 말이 분명치 않은 듯하다. 그리고 각절마다 모두 ‘금’ 자가 있는데도 유독 이 절에 나오는 ‘금’ 자에 대해서만 말하였으니, 이 역시 의심해 볼 만한 부분이다.
“양이 양 가운데에 있고, 음이 음 가운데에 있으면 모두 순하게 행한다.〔陽在陽中 陰在陰中 則皆順行〕”의 주에 나오는 옹씨(翁氏)의 설 가운데 “양은 올라가는 것을 위주로 한다.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것은 역시 순한 것이다.〔陽主升 自下而升 亦順也〕”
○ 살펴보건대, 〈선천원도(先天圓圖)〉는 본디 음양이 소장(消長)하는 이치와 한서(寒暑)가 운행(運行)하는 이치의 묘함을 밝히기 위해 그린 것이다. 그러므로 그 순서가 북쪽으로부터 동쪽, 남쪽, 서쪽으로 돌아서 다시 북쪽으로 와 끝나는바, 바로 자(子)로부터 해(亥)에 이르고, 봄으로부터 겨울에 이르는 순서이다. 양이 양 가운데에 있으면 북쪽에서부터 동쪽으로 가고 다시 남쪽으로 가며, 음이 음 가운데 있으면 남쪽에서부터 서쪽으로 가고 다시 북쪽으로 간다. 이는 모두 천도(天道)의 운행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順)’이라고 한 것이다. 양이 음 가운데에 있으면 북쪽에서부터 서쪽으로 가고 다시 남쪽으로 가며, 음이 양 가운데 있으면 남쪽에서부터 동쪽으로 가고 다시 북쪽으로 간다. 이는 모두 천도의 운행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逆)’이라고 한다.
옹씨의 설은 단지 〈선천원도〉의 남쪽이 위가 되고 북쪽이 아래가 되는 것만을 가지고서 말하였다. 그 설은 순행(順行)하는 한 부분에만 통할 수 있을 뿐이며, 역행(逆行)하는 한 부분에 대해서는 통할 수가 없다. 대개 양이 양 가운데에 있으면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바, 양은 올라가는 것을 주로 하는 상(象)이다. 그리고 음이 음 가운데에 있으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바, 음은 내려가는 것을 주로 하는 상이다. 그러니 그 설이 역시 교묘하다. 그러나 양이 음 가운데 있을 경우에도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고, 음이 양 가운데에 있는 경우에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서 각각 본래의 방위(方位)에 있는 경우와 차이가 없다. 그러니 역시 ‘순’이라고 할 수가 있지, ‘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옹씨의 설은 앞에서는 통하나 뒤에서는 통하지 못하는바, 천착하여서 잘못됨을 면치 못한 것이다.
문왕의 〈팔괘도〉〔文王八卦圖〕
○ 살펴보건대, 괘획(卦畫)은 모두 바깥쪽을 위로 삼았으면서도 괘명(卦名)은 모두 거꾸로 썼으니 아주 잘못되었다. 그러니 마땅히 복희씨의 팔괘도에 의거하여 괘명을 고쳐 써야 한다.
“소자가 말하기를, ‘지극하다. 문왕이 역을 만든 것은’ 하였다.〔邵子曰 至哉文王之作易也〕”의 주에 나오는 “동은 위로부터 서쪽으로 가고, 서는 아래로부터 동쪽으로 간다.〔東自上而西 西自下而東也〕”
○ 살펴보건대, 이는 이괘(離卦)가 본래의 자리인 동으로부터 천도(天道)에 순응하여 가서 건남(乾南)을 경유하여 서쪽으로 가 감괘(坎卦)의 자리에 이르러서 그치는데, 남쪽을 위로 삼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서쪽으로 간다.’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감괘는 본래의 자리인 서쪽에서부터 역시 천도에 순응하여 가서 곤북(坤北)을 경유하여 동쪽으로 가 이괘의 자리에 이르러서 그치는데, 북쪽을 아래로 삼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래로부터 동쪽으로 간다.’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전의》에서는 이르기를, “서쪽이 위가 되고 동쪽이 아래가 된다. 그러므로 감괘와 이괘의 변화는 동쪽은 올라가서 서쪽으로 가고 서쪽은 내려가서 동쪽으로 간다.〔西爲上 東爲下 故坎離之變 東上而西 西下而東也〕” 하였다. 이것은 곧장 ‘상(上)’을 위로 올라간다는 뜻으로 여기고 ‘하(下)’를 아래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여긴 것으로, 주자가 ‘위로부터〔自上〕’라고 하고 ‘아래로부터〔自下〕’라고 한 뜻과는 서로 다르다. 그리고 〈선천원도〉에서 오른쪽을 위로 삼고 왼쪽을 아래로 삼은 것은 참으로 맞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이르러서 또 억지로 끌어 붙여서 오른쪽을 위라고 하고 왼쪽을 아래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말할 경우에는 감괘와 이괘의 사귐은 마땅히 미제괘(未濟卦)가 되어야지 기제괘(旣濟卦)가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옥재 호씨가 이르기를, “감괘가 동쪽이고 이괘가 서쪽이라면 감괘가 위쪽이고 이괘가 아래쪽이기 때문에 사귀어서 기제괘가 된다.” 하였으니, 옥재 호씨가 어찌 도(圖)의 오른쪽이 위가 되고 왼쪽이 아래가 된다는 것을 몰랐겠는가. 이 부분은 모름지기 이와 같이 서로 바꾸어서 말해야만 한다. 역(易)의 도리는 무궁하여 어느 하나만을 준칙(準則)으로 삼을 수 없음을 여기에서도 잘 알 수가 있다. 퇴계 선생의 설 가운데 상(上) 자와 하(下) 자는 아마도 주자의 본뜻이 아닌 듯하다. 나의 이 견해가 어떠한가?
단지 이 네 자리는 양 가운데 음이 있고 음 가운데 양이 있다.〔只此四位 陽中有陰 陰中有陽〕
○ 살펴보건대, ‘양 가운데 음이 있다.’는 것은 이괘를 가리키고, ‘음 가운데 양이 있다.’는 것은 감괘를 가리킨다. 팔괘 가운데 순수하기로는 건괘나 곤괘만 한 것이 없으며, 중간이기로는 감괘나 이괘만 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성인이 이를 중요시하여 두 개의 중간 괘로써 네 방위의 정위(正位)에 처하게 해 사람들에게 중정(中正)의 뜻을 보였다. 성인께서 역(易)을 만들어 가르침을 베풀면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차이가 없게 해 대중지정(大中至正)의 도리로 나아가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64괘 가운데에서 여러 차례나 이 네 괘에 대해서 뜻을 두었다.
무릇 양이 삼효(三爻)에 있고 음이 사효(四爻)에 있는 것은 정(正)이기는 하지만 중(中)은 아니다. 그리고 양이 이효(二爻)에 있고 음이 오효(五爻)에 있는 것은 중이기는 하지만 정은 아니다. 오직 양이 오효의 자리에 있고 음이 이효의 자리에 있은 다음에야 중이면서도 또한 정인 것이다. 중이면서도 또한 정인 것은 그 사(辭)가 항상 길하다. 이것이 문왕(文王)과 주공(周公)의 계사(繫辭)로서, 중하고 정한 것을 숭상하는 것이 그러한 것이다. 지금 감괘와 이괘가 사유(四維)에 처해 있으면 중이기는 하나 정은 아니다. 사정(四正)이 다른 괘에 위치해 있으면 정이기는 하나 중은 아니다. 반드시 감괘와 이괘가 사정에 자리해 있은 다음에야 중이면서도 또한 정이 되는 것이다. 괘(卦)를 그려서 도(圖)를 만든 처음에 이미 이러한 뜻을 붙였으니, 사람들을 가르치는 뜻이 깊고도 절실하다고 하겠다.
옹씨(翁氏)가 이른 바 복희와 문왕의 은미한 뜻이라고 한 것은 대개 이를 이른 것이다. 그가 ‘양 가운데에 음이 있고, 음 가운데에 양이 있다.’라고 이른 것은 바로 감괘와 이괘의 덕(德)이 음과 양의 중간을 얻어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을 드러내어 밝힌 것일 뿐이다. 그런데 《전의》에서는 ‘자(子)와 오(午)는 하나는 극(極)이고 하나는 생(生)이며, 묘(卯)와 유(酉)는 하나는 극이 아니고 하나는 가운데에 있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그러나 옹씨가 한 말의 위아래 어세(語勢)를 잘 살펴보면 그런 뜻이 아닌 듯하다. 모르겠지만, 나의 이 설이 어떠한가?
“네 번 경영(經營)하여서 역이 이루어진다.〔四營而成易〕”의 주에 나오는 “일효에서 양의의 획을 얻고, 이효에서 사상의 획을 얻고, 삼효에서 팔괘의 획을 얻고, 사효가 이루어져서 십육자의 일을 얻고, 오효가 이루어져서 삼십이자의 일을 얻는다.〔一爻而得兩儀之畫 二爻而得四象之畫 三爻而得八卦之畫 四爻成而得其十六者之一 五爻成而得其三十二者之一〕”
○ 살펴보건대, 괘획(卦畫)이 나뉨에는 한 번 그은 것이 두 개가 있는데 이것을 일러 의(儀)라고 하고, 두 번 그은 것이 네 개가 있는데 이것을 일러 상(象)이라 하고, 세 번 그은 것이 여덟 개가 있는데 이것을 일러 괘(卦)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이름이 있다. 그러나 네 번 그은 것이 열여섯 개가 있고, 다섯 번 그은 것이 서른두 개가 있는 데에 이르러서는 모두 이름이 없다. 그러므로 주자가 이에 대해서는 ‘십육자(十六者)의 일(一)’이라고 하고 ‘삼십이자(三十二者)의 일(一)’이라고만 하였다. 이는 대개 횡도(橫圖) 가운데 제4와 제5 두 단(段)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옥재 호씨의 해석은 지나치게 자세하게 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무릇 ‘초설(初揲)을 하여
을 얻은 경우에는 양의 의가 되고,
을 얻은 경우에는 음의 의가 된다.’라고 하면 이미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다시 덧붙여 말하기를, ‘건괘로부터 복괘(復卦)에 이르기까지가 32괘이고, 구괘(姤卦)로부터 곤괘에 이르기까지 32괘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재설(再揲)을 하여
을 얻은 경우에는 태양(太陽)이 되고,
을 얻은 경우에는 소음(少陰)이 되고,
을 얻은 경우에는 소양(少陽)이 되고,
을 얻은 경우에는 태음(太陰)이 된다.’라고만 하면 이미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다시 덧붙여 이르기를, ‘건괘로부터 임괘(臨卦)에 이르기까지가 16괘이다.……’ 하였다. 그리고 또 ‘삼설(三揲)을 하여
을 얻은 경우에는 건(乾)이 되고,
을 얻은 경우에는 태(兌)가 된다.’라고만 하면 충분하다. 그런데 다시 덧붙여서 이르기를, ‘건괘로부터 태괘(兌卦)에 이르기까지가 8괘이다.……’ 하였다. 그리하여 지루하고 번잡하게 해서 이미 주자가 본래 말하고자 하였던 뜻이 아니게 되었다. ‘사설(四揲)을 하여 사효(四爻)를 얻는다.’라고 한 데에 이르러서는 바로 ‘16괘 가운데 한 괘’라고 하고, ‘오설(五揲)을 하여 오효(五爻)를 얻는다.’라고 한 데에 이르러서는 바로 ‘32괘 가운데 한 괘’라고 하였으니, 이는 또 주자의 본뜻을 아주 크게 잃은 것이어서 아마도 말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을 듯하다.
여기에서 이른 바 ‘16괘’니 ‘32괘’니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이른 것인가? 건괘에서부터 대장괘(大壯卦)까지와 소축괘(小畜卦)에서부터 태괘(泰卦)까지로 나눌 경우,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누면 모두 열여섯 단위가 된다. 그러니 그것을 일러 ‘열여섯으로 나눈다〔十六分〕’라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것을 일러 ‘열여섯 괘〔十六卦〕’라고 해서는 안 된다. 건괘가 아니면 쾌괘(夬卦)이고, 대유괘(大有卦)가 아니면 대장괘라고 할 경우,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누면 모두 서른두 개가 된다. 어찌 이것을 가지고 마침내 ‘삼십이괘(三十二卦)’라고 해서야 되겠는가.
주자가 이른 바 ‘한 효(爻)가 이루는 것은 단지 32괘가 있고, 두 효가 이루는 것은 단지 16괘가 있다.……’ 한 것은 서(筮)를 가지고 점치는 것은 그 이치가 짧고 귀(龜)를 가지고 점치는 것은 그 이치가 긺을 논함으로 인해서 이러한 설이 나온 것일 뿐이다. 그런즉 이 부분의 주에서 이른 바 ‘일효(一爻)에서 양의(兩儀)의 획을 얻고, 이효(二爻)에서 사상(四象)의 획을 얻는다.……’ 한 것과 더불어서는 뜻이 가리키는 바와 말의 맥락이 저절로 서로 달라서 각각 따로따로 한 가지 설이 된다. 그런데 옥재 호씨는 끌어대어 증명하면서 이 주(註)를 해석하였으니, 틀린 것이다.
〈노음괘륵도(老陰掛扐圖)〉의 아래 주에 나오는 옥재 호씨가 괘륵(掛扐)의 숫자를 팔괘(八卦)의 상(象)에 해당시킨 설에 “한 번 변하여 양의의 상을 얻는다.……〔一變而得兩儀之象 云云〕” 한 데 대해 《전의》에서 해석한 “건괘, 진괘, 이괘, 태괘의 제1변은 모두 기수이고 감괘, 간괘, 곤괘, 손괘의 제1변은 모두 우수이다. 이것이 한 번 변하여서 양의의 상을 얻는 것이다.……〔乾震離兌之第一變 皆奇 坎艮坤巽之第一變 皆偶 此一變而得兩儀之象 云云〕”
○ 살펴보건대, 옥재 호씨는 이 조항에서 괘륵의 전체 숫자인 64개의 모양을 가지고 64괘의 상(象)이 있다고 보아, 반복해서 추론해 나아가 밝혔는바, 아주 교묘하고도 상세하다. 그러나 “한 번 변하여 양의의 상을 얻고, 두 번 변하여 사상의 상을 얻고, 세 번 변하여서 팔괘의 상을 얻는다.〔一變而得兩儀之象 再變而得四象之象 三變而得八卦之象〕”라고 한 것은, 바로 주자가 말한 설이다. 옥재 호씨가 이 조항에서 논한 바는 실로 주자의 이 설에 근본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자의 말이라고 칭하지 않았으니, 몹시 의심스럽다.
그리고 그가 이른 바, “처음 변해서 우수(偶數)를 얻는 것은 손괘(巽卦)의 한 음(陰)이 아래에 있는 것이다. 두 번 변해서 우수를 얻는 것은 이괘(離卦)의 한 음이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세 번 변해서 우수를 얻는 것은 태괘(兌卦)의 한 음이 위에 있는 것이다. - 나머지도 이와 같다. - ”라고 한 것은 단지 그 상(象)이 있음을 말한 것일 뿐이지, 곧바로 이것으로 손괘를 삼고 이괘를 삼고 태괘를 삼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전의》에서는 “건괘(乾卦), 진괘(震卦), 이괘(離卦), 태괘(兌卦)의 제1변은 모두 기수(奇數)이고, 감괘(坎卦), 간괘(艮卦), 곤괘(坤卦), 손괘(巽卦)의 제1변은 모두 우수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곧바로 그 괘를 가지고서 그 상(象)의 비슷한 점을 가리킨 것이다.
무릇 처음 변해서 5를 얻고 두 번 변하고 세 번 변해서 4를 얻는 것은 건삼기(乾三奇
)의 상이 있기는 하나 곧바로 이를 건괘라고 칭해서는 안 되며, 처음 변해서 5를 얻고 두 번 변하고 세 번 변해서 8을 얻은 경우에는 진하련(震下連
)의 상이 있기는 하나 곧바로 이를 진괘라고 칭해서는 안 된다. 나머지도 모두 이를 미루어서 알 수가 있다.
정사수(程沙隨)가 양의(兩儀)에 대해서 논하여 말하기를, “건괘의 획은 기수이고, 곤괘의 획은 우수이다.〔乾之畫奇 坤之畫偶〕” 하자, 주자가 답하여 말하기를, “이곳에서의 건 자와 곤 자는 온당치 못하다. 한 획에 대해서 말할 적에는 단지 음이니 양이니 하여야지, 그것을 일러 건이니 곤이니 할 수는 없다.” 하였다. 지금 세 번 변해서 한 효(爻)가 이루어지는 것을 가지고 곧바로 아무 괘니 아무 괘니 하고 말한다면, 그 말의 온당치 못함이 아마도 정사수의 설보다도 더 심할 듯하다. 모르겠지만, 나의 이 설이 어떠한가?
[주1] 전의(傳疑) : 《계몽전의(啓蒙傳疑)》로, 이황(李滉)이 주희(朱熹)의 《역학계몽(易學啓蒙)》에 대해서 변석(辨釋)한 책인데, 모두 1책으로 되어 있다. 첫 부분에는 저자의 소서(小序)가 실려 있으며, 본도서제일(本圖書第一), 원괘획제이(原卦畫第二), 명시책제삼(明蓍策第三), 고변서제사(考變書第四)로 이루어져 있다.
[주2] 채원정(蔡元定) : 송(宋)나라 건양(建陽) 사람으로 자는 계통(季通)이며, 호는 서산(西山)으로, 흔히 서산선생(西山先生)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가학(家學)을 이어받았다가 장성해서 주희에게 종유(從遊)하였는데, 주희가 제자로 여기지 않고 노우(老友)로 대우하면서 함께 학문에 대해서 논하였다. 한탁주(韓侂胄) 등에게 핍박을 받아서 도주(道州)로 폄직되었는데, 용릉(舂陵)에 이르자 원근의 학자들 가운데 와서 배우는 자가 날로 불어났다. 저서로는 《율려신서(律呂新書)》, 《팔진도설(八陣圖說)》, 《홍범해(洪範解)》 등이 있다.
[주3] 채씨가 …… 설 : 채원정(蔡元定)이 “천하의 만성이 한 번 합해지고 한 번 갈라지는 데에서 나오고, 천하의 만리가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는 데에서 나오고, 천하의 만수가 한 번 기수(奇數)가 되고 한 번 우수(偶數)가 되는 데에서 나오고, 천하의 만상이 한 번 모나고 한 번 둥글어지는 데에서 나온다.〔天下之萬聲 出於一闔一闢 天下之萬理 出於一動一靜 天下之萬數 出於一奇一偶 天下之萬象 出於一方一圓〕” 한 것을 가리킨다.
[주4] 생수(生數) : 오행상생(五行相生)의 수를 말한다.
[주5] 옥재 호씨(玉齋胡氏) : 송(宋)나라 무원(婺源) 사람인 호방평(胡方平)을 가리킨다. 호방평은 호가 옥재로, 《주역》에 정통하여 주자(朱子)의 역학(易學)을 이어받아 《역학계몽통석(易學啓蒙通釋)》을 지었다.
[주6] 호운봉(胡雲峯) : 송(宋)나라와 원(元)나라 때의 경학가(經學家)인 호병문(胡炳文)을 가리킨다. 호병문은 무원(婺源) 사람으로, 자가 중호(仲虎)이다. 주자(朱子)의 학문에 마음을 쏟으면서 주자가 주석한 사서(四書)에 대해서 더욱더 깊이 연구하였다. 쌍봉 요씨(雙峯饒氏)의 학설이 주자의 학설과 배치되었는데, 호병문이 《사서통》을 지어서 그 잘못된 것을 바로잡았다. 저서로는 《역본의통석(易本義通釋)》, 《서집전(書集傳)》, 《오경회의(五經會議)》 등이 있다.
[주7] 천원발미(天原發微) : 송(宋)나라의 포운룡(鮑雲龍)이 지은 것으로, 모두 5권 25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천수(天數)의 상(象)과 역(易)의 수리(數理)에 대해 밝힌 책이다.
[주8] 한원락(韓苑洛) : 원락은 명(明)나라 조읍(朝邑) 사람인 한방기(韓邦奇)의 호이다. 자는 여절(汝節)이다. 남병부상서(南兵部尙書) 등의 관직을 지냈으며, 성품이 강직하고 절개를 숭상하였다. 독서하기를 좋아하여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서책은 물론, 천문(天文), 지리(地理), 악률(樂律), 술수(術數), 병법(兵法) 등의 서책에도 정통하였다. 저서로는 《역학계몽의견(易學啓蒙意見)》, 《우공상략(禹貢詳略)》, 《원락지악(苑洛志樂)》, 《홍범도해(洪範圖解)》, 《역점경위(易占經緯)》, 《악률거요(樂律擧要)》, 《원락집(苑洛集)》 등이 있다.
[주9] 괘기(卦氣) : 역(易)의 64괘를 사시(四時)나 월령(月令)이나 기후(氣候) 등에 서로 배합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주10] 사유(四維) : 사방의 구석으로, 역(易)에서 서북쪽인 건괘(乾卦), 서남쪽인 곤괘(坤卦), 동북쪽인 간괘(艮卦), 동남쪽인 손괘(巽卦)를 가리킨다.
易學啓蒙傳疑疑義附
邵子曰。圓者星也云云。其下分註蔡元定說。易之陰陽策數。多少自相配合。皆爲六十。按多少必是老少之誤。而諸本皆同。且此書內凡錯誤處。傳疑幷皆是正。而此字不改。却可疑。易圖說作老西山蔡氏曰。天下之萬理出於一動一靜。按天下未有無理之氣。亦未有無氣之理。固無先後之可言。然若必欲推本而論。則須說先有理。大傳所謂太極是生兩儀。一陰一陽之謂道。周子所謂太極動而生陽。靜而生陰。朱子所謂若無太極便不飜了天地者。皆以理爲氣之所從出。今蔡氏若言理在一動一靜之中則可。謂理出於一動一靜則大爲可疑。竊詳蔡氏四脚立說文勢語脈。理字似是化字之誤。而傳疑亦不致疑。今未敢質言。然將那形而上者爲出於形而下者。恐無是理。如何。河圖以生數爲主云云。其下分註玉齋胡氏說。豈可惟以五數拘之哉。按朱子此條。本謂圖書中五各具五生數。五奇數之象。故玉齋推極其意而敷衍之。以爲不但具五生數五奇數而已。圖之成數及全數。書之偶數及全數。莫不具於中央之五。蓋極言中五爲圖書之主而無所不包也。其曰。豈可惟以五數拘之者。言不可但以五生數五奇數爲拘也。傳疑解此段云云。竊詳玉齋上下文勢。似不然。未知如何。其數與位皆三同而二異。註。玉齋胡氏曰。數則河圖自一至十。洛書自一至九之數。位則東西南北中央之位。三同而二異者。圖書之一六皆在北。三八皆在東。五皆在中。三者之位數皆同。圖之二七在南。而書則二七在西。圖之四九在西。而書則四九在南。二者之位數皆異也。陽不可易。專指一三五。陰可易。統指二七四九云云。按朱子三同二異之說。非統論圖書之數與位如玉齋之云也。特因上文論圖書中五各具五生數五奇數而發也。其上文論河圖中五云。其下一點。天一之象。其上一點。地二之象。其左一點。天三之象。其右一點。地四之象。其中一點。天五之象也。論洛書中五云。其下一點亦天一之象。其左一點亦天三之象。其中一點亦天五之象。其右一點則天七之象。其上一點則天九之象也。其下卽結之曰。其數與位皆三同而二異。詳觀三箇亦字兩箇則字。則所謂三同二異者卽此也。非指他也。豈不較然明甚耶。但其所謂陽不可易而陰可易者。主河圖五生數而觀。則一三五不易而二四易。固不難見。主洛書五奇數而觀。則七九亦陽也而易其位。恐後學之不能無疑也。故解之曰。成數雖陽。固亦生之陰也。乃所以發明七九之爲可易。而破後學之疑耳。非幷指圖書之成數而統論之也。胡氏之釋。必欲幷擧圖之生成書之奇偶而統論之。故其爲說未免有齟齬牽合之病。於三同處。旣幷擧六八。而於陽不可易處。輒云專指一三五。數語兩句之間。纔取旋舍。乍出乍入。此豈朱子立文說象之本意耶。今但曰。數則河圖一二三四五。洛書一三五七九之數。位則東西南北中央之位。三同。圖書一三五之在北東中者皆同也。二異。圖之二與四。書之七與九之位各異也。陽不可易。卽指一三五。陰可易。卽指二四七九云云。則似爲簡易明白。如何。按傳疑云。胡雲峯謂陽不可易而陰
可易。專以生數言。其說雖甚巧細。而不可從。故不取云。無乃雲峯之說。卽淺見所論之云耶。見天原發微云。而此無其書。未得考證。爲可恨也。韓苑洛則圖分卦圖下。先生說虛五與十最是。則圖作易之妙處。今乃幷五與十數以爲兩儀之分。則已失羲易本意云云。按苑洛圖。積一三五七九爲陽儀。積二四六八十爲陰儀。先生非之當矣。但考苑洛圖說。則云一三七九爲陽。二四六八爲陰。所謂兩儀也。蓋已虛五與十而爲說矣。則圖內五與十之點。恐是後人摸寫之誤耳。苑洛雖大膽。於此大頭腦處。必不敢立異也。大抵凡圖之點畫。易於訛舛。且如今啓蒙傳疑。刊行未久。而圖之訛誤。失先生本旨者。已不勝其多。況韓氏意見。刊行頗久。流布且遠。轉輾摸寫之際。安能保其無訛舛耶。故此圖內中五上下二點誤處。先生以爲非苑洛本意而改正之。獨此一款。嚴加非斥。想於苑洛圖說。偶失照勘而然也。未知如何。含五得十。註。玉齋云。下一點含天一之象。上一點含地二之象。左一點含天三之象。右一點含地四之象。中一點含天五之象。按此乃論洛書中五。而云上一點含地二象。右一點含地四象。豈因論河圖而誤分耶。今當改地二爲天九。地四爲天七。積五與十。傳疑云。積實所含之一二三四爲十。而幷五爲十五也。按朱子所謂積五與十。蓋言積本身五數及含五所得之十數則爲十五也。先生所說甚巧。然以積五與十之文勢觀之。則恐不然。況中五含一二三四五者。乃河圖也。洛書中五則含一三五七九。而玉齋誤以一二三四五爲說。先生又不免襲謬。必偶失照勘也。如何。
是生兩儀。註。玉齋引朱子說。儀。匹也。如所謂一雙一對云。按匹猶隻也。配則爲雙矣。朱子非以儀爲一雙。蓋謂兩儀爲一雙也。兩儀猶言兩隻。卽一雙之謂也。竊謂太極是形而上者。道也。陰陽是形而下者。器也。聖人畫一箇奇一箇偶。以摸寫陰陽之形。則儀字似有儀形之義。其曰陰儀。謂陰之形也。其曰陽儀。謂陽之形也。四象之象。旣是形象之義。則兩儀之儀。訓以儀形之意。亦似襯貼。如何。抑未知先儒已有此說。而孤陋未之聞耶。四象生八卦。註。朱子曰。老陽過去交陰。老陰過來交陽。便是兌艮上第三畫。少陰少陽交。便是震巽上第三畫。所以知其如此者。他這位次相族傍。玉齋云。兌乾艮坤震巽六卦位次相挨也。按朱子此條。只論兌艮震巽。而未及乎乾坤也。玉齋便將乾坤攙說。以爲六卦相挨。夫兌乾艮坤固相挨矣。於交之義。何取而幷言之耶。其於朱子所謂所以知其如此之義。無甚發明。使後學莫知朱子立言之意。極爲可疑。嘗反復思之。竊謂位次挨傍之說。只指下段震巽而言。非總論上段艮兌也。何以言之。太陽居一。太陰居四。其位次不相比。故太陽之交於太陰也。必歷少陰少陽二位。故曰過去。及其交而生艮上爻也。不還本位。只仍在太陰之位而生艮。如夫往婦室而生男也。太陰之交於太陽也。亦歷少陽少陰二位。故曰過來。及其交而生兌上爻也。亦不還本位。只仍在太陽之位而生兌。如婦歸夫家而生女也。由其位次相遠。故著過去過來字以明之。於陽言去。於陰言來。主乎陽而言也。 至於少陰居二。少陽居三。則位次密比。兩相挨傍。其間更無隔閡底物事。而少陰之交 少陽也。還本位而生震上爻。少陽之交少陰也。還本位而生巽上爻。非如太陽就太陰而生艮。太陰就太陽而生兌。故不著過去過來字。而只云少陰少陽交也。然太陽上生一陰而爲兌。則知太陰之來交矣。太陰上生一陽而爲艮。則知太陽之相交矣。此則容易見。至於少陰上仍生一陰而爲震。少陽上仍生一陽而爲巽。且又各居本位。似若無待於交而自生者。然故特發明之曰。所以知其少陰少陽交而生震巽者。位次相挨傍故也。若以位次挨傍之說爲兼艮兌言。則恐難於取義。而推說去不得也。大抵凡言陽交陰而生某卦。陰交陽而生某卦云者。猶大全所謂乾索坤而得女。坤索乾而得男。非 謂初間卦生時如此。只是卦畫已成後見有此象。故因取其象。以明天地間陰陽相交之理而已。今取其位次相遠也。則謂之過去而交取。其位次相挨也。則雖各在本位而亦謂之交。竊恐聖賢取象之義。只在如此平近易見處。不當深求而賾言之也。未知如何。天地定位下分註。周謨問云云。春分合在泰卦之下。秋分合在否卦之下。按泰是正月之卦。否是七月之卦。泰當改爲大壯。否當改爲觀無疑。而要解及傳疑幷不改。如何。卦氣盈縮按周謨所問有二款。卦氣月分始疏終密者爲一款。臨爲春分。遯爲秋分者爲一款。二款皆以伏羲先天圓圖。參之於文王十二辟卦而爲言也。朱子答之云。伏羲易自是伏羲說話。文王易自是文王說話。固不可交互求合。只此一語。已攻破盡周謨二款疑義。更無底蘊矣。其下繼之曰。所看先天卦氣盈縮極仔細。某亦嘗如此理會。而未得其說云云。夫若不以文王辟卦交互於伏羲之圖。則又何緣有卦氣之生。初疏後密之疑耶。甚不可曉。抑周謨所謂某月卦某月卦之說雖非。而所論陰陽之生始疏終密之云。則畢竟是可疑。朱子所謂理會不得者。指此而言耶。若然則玉齋之釋此條。又復區區於月分之說。依舊爲交互求合之論。未知此果能理會得 朱子難理會處耶。乾一奇。今分爲八卦之第三爻。初爻二爻之四。今又分爲八。傳疑云。兩今字皆指六畫旣成後言。按此條。本論伏羲六十四卦圓圖。故第一節。以三十二陽三十二陰爲兩儀。第二節。以十六陽十六陰爲四象。第三節。以八陽八陰爲八卦。是皆據六畫成後而言也。然其第一節今字。指兩儀立時。第二節今字。指四象生時。第四節今字。指八卦生時。猶言至此則分爲某。至此則分爲某也。傳疑以兩今字爲指六畫旣成後言。蓋指字之義與據字不同。語似未瑩。且各節皆有今字。而獨於此節言之。此亦可疑。陽在陽中。陰在陰中則皆順行。註。翁氏說曰。陽主升。自下而升。亦順也。
按圓圖本以明陰陽消長寒暑運行之妙。故其序自北而東而南而西而極於北。乃自子至亥自春至冬之序也。陽在陽中則自北而東而南。陰在陰中則自南而西而北。皆順天道之行。故曰順。陽在陰中則自北而西而南。陰在陽中則自南而東而北。皆逆天道之行。故曰逆也。翁氏之說則只以圖之南上北下而爲言。其說可通於順行一段。而不可通於逆行一段。蓋陽在陽中則自下而上。陽主升之象也。陰在陰中則自上而下。陰主降之象也。其爲說亦巧矣。然陽在陰中者。亦自下而上。陰在陽中者亦自上而下。與各在本方者無異焉。亦可謂之順。而不可謂之逆矣。此翁氏之說通於前而不通於後。未免於鑿而失之矣。文王八卦圖按卦畫皆以外爲上。而卦名則皆倒寫。甚誤。當依伏羲八卦圖。改寫卦名。邵子曰。至哉文王之作易也。註。東自上而西。西自下而東也。按此言離自本位東。順天而行。由乾南而西至坎位而止。南爲上。故曰自上而西也。坎自本位西。亦順天而行。由坤北而東至離位而止。北爲下。故曰自下而東也。傳 疑云。西爲上。東爲下。故坎離之變。東上而西。西下而東也。此則直以上爲上去之義。下爲下來之義。與朱子自上自下之義不同。且圓圖之以右爲上。以左爲下固矣。然到此又不可硬裝說右爲上左爲下。如此說則坎離之交當爲未濟。而不得爲旣濟矣。故玉齋云。坎東離西則坎上離下。故交而爲旣濟也。玉齋豈不知圖之右爲上左爲下耶。此處須如此互換說也。易道無窮。不可爲典要者。此亦可見。先生說上下字。恐非朱子本意。如何。只此四位。陽中有陰。陰中有陽。按陽中有陰。指離。陰中有陽。指坎也。在八卦中。純莫如乾坤。中莫如坎離。故聖人重之。以二中卦處四正位。示人以中正之意也。聖人之作易以設敎也。欲使人無偏倚過不及之差。而趨於大中至正之道。故六十四卦之中。屢致意焉。凡陽居三陰居四。正而非中也。陽居二陰居五。中而非正也。惟陽居五陰居二。然后爲中而且正。中而且正者。其辭常吉。此文王周公之繫辭而尙中正者然也。今坎離而處四維。則中而非正矣。四正而位他卦。則正而非中矣。必以坎離位之於四正。然后爲中而且正。畫卦作圖之初。已寓此意。其敎人之意深且切矣。翁氏所謂羲文微意者。蓋謂此也。其云陽中有陰。陰中有陽者。乃所以發明坎離之德陰陽得中。而無過不及耳。傳疑。以子午則一極一生。卯酉則一未極一在中爲說。熟觀翁氏上下語勢。似非此義。未知如何。四營而成易。註。一爻而得兩儀之畫。二爻而得四象之畫。三爻而得八卦之畫。四爻成而得其十六者之一。五爻成而得其三十二者之一。按卦畫之分也。一畫者二。謂之儀。二畫者四。謂之象。三畫者八。謂之卦。此三者皆有名。至於四畫者十六。五畫者三十二。則皆未有名。故朱子於此。但云十六者之一。三十二者之一。蓋指橫圖中第四第五兩段而言也。玉齋之釋。傷於太細。夫謂初揲而得一者。爲陽之儀。得ꁌ者爲陰之儀則已足矣。必繫之曰。自乾至復三十二卦。自姤至坤三十二卦。謂再揲而得ꁍ者爲太陽。得ꁎ者爲少陰。得ꁏ者爲少陽。得ꁐ者爲太陰足矣。必繫之曰。自乾至臨十六卦云云。謂三揲而得
者爲乾。得
者爲兌足矣。必繫之曰。自乾至兌八卦云云。其支離繁宂。已非朱子本說之意矣。至於四揲而得四爻處。乃謂十六卦中一卦。五揲而得五爻處。乃謂三十二卦中一卦。則又大失朱子之意。而殆不成說話矣。其所謂十六卦三十二卦者。果何謂耶。自乾至大壯。自小畜至泰。倣此者凡十六。則謂之十六分可矣。不可謂之十六卦。非乾則夬。非大有則大壯。倣此而分則凡三十二矣。豈可以此而遂謂之三十二卦耶。朱子所謂一爻成只有三十二卦。二爻成只有十六卦云云者。因論筮短龜長而有 此說耳。與此註所云一爻而得兩儀之畫。二爻而得四象之畫云云者。意指語脈自不相同。各爲一說。而玉齋引而證之。以釋此註。誤矣。老陰掛扐圖下註。玉齋胡氏掛扐數該八卦象之說曰。一變而得兩儀之象云云。傳疑釋之曰。乾震離兌之第一變皆奇。坎艮坤巽之第一變皆偶。此一變而得兩儀之象云云。按玉齋此條以掛扐全數六十四樣。有六十四卦之象。反復推明。極其巧且詳矣。然其曰。一變而得兩儀之象。再變而得四象之象。三變而得八卦之象云者。乃朱子之說。玉齋此條所論。實本於此。而不稱其爲朱子之言。
殊爲可疑。然其所謂初變得偶者。巽之一陰在下也。再變得偶者。離之一陰在中也。三變得偶者。兌之一陰在上也 他倣此 云者。只謂有其象耳。非直以是爲巽爲離爲兌也。今傳疑謂乾震離兌之第一變皆奇。坎艮坤巽之第一變皆偶云云。則是直以其卦。目其象之似者矣。夫初變得五。再變三變得四者。有乾三奇之象。而不可直稱爲乾矣。初變得五。再變三變得八者。有震下連之象。而不可直稱爲震矣。餘可推此而知也。程沙隨論兩儀而曰。乾之畫奇。坤之畫偶。朱子答之曰。只此乾坤字便未穩。當其謂一畫之時。只可謂之陰陽。未得謂之乾坤也。今以三變而一爻成者。直謂之某卦某卦。則其爲未 穩。殆甚於沙隨之說。未知如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