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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6장 3-10절. 이단을 경계하라는 목회적인 교훈
1. 이단에 대한 경계는 1장 3-17절과 4장 1-11절에서도 이미 말씀했는데, 여기서 다시 세 번째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바울 서신에서는 이단에 대한 경계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율법주의 이단에 대한 경계, 골로새서는 영지주의에 대한 경계, 데살로니가서는 지나친 종말주의 신앙에 대한 경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2. 3-5절은 이단의 성격에 대해 말씀하면서, 3절은 이단자는 다른 교훈을 가르치고, 4절은 변론을 좋아하고, 5절은 불의의 이를 탐한다고 했습니다.
6-10절은 참된 교사의 모습을 대조시켜 말씀하면서, 물질에 자족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3절.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f anyone advocates a different doctrine and does not agree with sound words, those of our Lord Jesus Christ, and with the doctrine conforming to godliness,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εἴ τις ἑτεροδιδασκαλεῖ
if anyone teaches another doctrine
직역하면 ‘만일 누가 다른 교훈을 가르치면’이란 뜻입니다.
‘다른 교훈을 가르치면’(ἑτεροδιδασκαλεῖ)은 현재형으로서(teaches another doctrine) 현재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ἑτεροδιδασκαλέω)은 ‘다른’(ἕτερος)이라는 접두어와 ‘교사’(διδάσκαλος)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다른 교훈을 가르치다’는 뜻입니다.
바른 말--- 따르지 아니하면
καὶ μὴ προσέρχεται ὑγιαίνουσιν λόγοις
and not he draws near being sound words
‘바른’(ὑγιαίνουσιν)이란 단어는 현재분사로서(being sound) 항상 건전하다는 뜻이고, 원형(ὑγιαίνω)은 ‘건강하다, 건전하다’(be well, be sound)라는 뜻의 동사입니다.
‘따르지 아니 하면’에서 동사(προσέρχεται)는 현재형으로서(he draws near) 현재 바른 교훈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προσέρχομαι)은 ‘향하여’(πρός)라는 접두어와 ‘가다’( ἔρχομαι)라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τοῖς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that of the Lords of us Jesus Christ
경건에 관한 교훈을
καὶ τῇ κατ’ εὐσέβειαν διδασκαλίᾳ,
and the according to godliness teaching
1. ‘다른 교훈’이란 1장 3절에서도 쓰였는데, 여기서는 ‘이단 사상’을 가리킵니다.
‘바른 말’이란 건전한 교훈으로서 정통 신앙을 가리킵니다.
‘따르다’는 말(προσέρχομαι)은 ‘건너오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여기서 개종자(proselyte)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건너오는 것이 개종이고, 바른 신앙에서 이단으로 건너가는 것이 타락한 것입니다.
본 절에서는 이단 사상에서 바른 교훈으로 건너오지 못한 이단자에 대한 경계의 말씀입니다.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하신 교훈의 말씀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근거로 말씀한 사도들의 교훈을 포함한 말입니다.
3. ‘경건에 관한 교훈’이란 바른 말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경건 생활에 대한 교훈을 가리킵니다.
즉 바른 교훈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외부적인 경건 생활로 표현되는 것을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즉 ‘경건에 관한 교훈’이란 경건으로 이끄는 교훈(teaching which leads to godliness), 경건을 증진시키는 교훈(teaching that promotes godliness: CSB, HCSB)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다고 하셨고(마 7:17), 숨긴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하셨으며(마 10:26),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약 2:17-22).
4절.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he is conceited and understands nothing; but he has a morbid interest in controversial questions and disputes about words, out of which arise envy, strife, abusive language, evil suspicions,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τετύφωται, μηδὲν ἐπιστάμενος,
he has been puffed up, nothing knowing
‘교만하여’(τετύφωται)는 완료 수동태로서(he has been puffed up) 이미 교만해져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에서 동사(ἐπιστάμενος)는 현재분사로서(knowing) 현재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ἀλλὰ νοσῶν περὶ ζητήσεις καὶ λογομαχίας,
but being sick about controversies and disputes about words
직역하면 ‘변론들과 언쟁들로써 병들어 있어서’라는 뜻입니다.
한글 새번역에는 ‘논쟁과 말다툼을 일삼는 병이 든 사람입니다’로 되어 있습니다.
‘병들어 있어서’(νοσῶν)는 현재분사로서(being sick) 현재 병들어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νοσέω)은 ‘병들어 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병들어 있다’(be sick, of mental or spiritual disease)는 뜻입니다.
‘변론’(ζητήσεις)이란 의미 없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을 가리키고(meaningless question to debate, controversy), ‘언쟁’(λογομαχίας)은 무익한 논쟁( unprofitable controversy)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영어의 ‘logomachy’(언쟁)가 나왔습니다.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ἐξ ὧν γίνεται φθόνος, ἔρις, βλασφημίαι, ὑπόνοιαι πονηραί,
out of which come envy, strife, slander, suspicions evil
‘나며’(γίνεται)는 현재형으로서(come) 언제나 나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투기 분쟁 비방과 악한 생각’이란 ‘시기하고, 분쟁을 일으키고, 인격을 모독하고, 여러 가지 악한 생각’에 빠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비방’(βλασφημίαι)은 보통 하나님께 대한 훼방(blasphemy)에 대해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는 사람에 대해 비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1. 겸손한 사람은 진리를 알려고 하는데, 교만한 사람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변론과 언쟁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인격을 모독하고, 악한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평화와 행복감이 깃들기 때문에, 화목하고 남을 존경하고 선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성도는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이단들은 온갖 악한 생각과 악한 말과 악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갈 5:19.23)
5절.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constant friction between men of depraved mind and deprived of the truth, who suppose that godliness is a means of gain.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διαπαρατριβαὶ
constant frictions
동사가 없으나 좋은 번역입니다.
‘다툼’이란 끊임없는 논쟁(constant arguing)과 쓸모없는 논쟁(useless debate)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διεφθαρμένων ἀνθρώπων τὸν νοῦν
having been corrupted among men the in mind
직역하면 ‘마음이 부패해진 사람들 가운데’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는 뜻입니다.
‘부패해진’(διεφθαρμένων)은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corrupted) 이미 마음이 부패해져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진리를 잃어버려
καὶ ἀπεστερημένων τῆς ἀληθείας,
and having been deprived the truth
‘잃어버려’(ἀπεστερημένων)는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deprived) 이미 진리를 잃어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νομιζόντων πορισμὸν εἶναι τὴν εὐσέβειαν
considering means of gain to be the godliness
‘이익의 방도로’에서 동사(εἶναι)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e) 현재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생각하는’(νομιζόντων)은 현재분사로서(considering) 현재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마음’(νοῦν)이란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곳을 가리키는데, 마음이 부패하면 진리를 잃어버립니다.
진리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한 때 진리를 소유했던 것을 가리키는데, 마음이 부패하여 분별력( φρόνησις: prudence)을 잃어버리면, 진리를 잃어버리고 마귀와 욕심에 이끌려 살게 됩니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한다’는 것은 마음이 부패하여 진리를 잃어버린 이단들이 거짓된 교훈을 경건(εὐσέβειαν)과 종교(religion)란 이름으로 포장하여 물질적 사례비를 요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물질적인 욕심이 생기면, ‘다툼’(διαπαρατριβαὶ: 끊임없는 다툼: constant frictions)이 생깁니다.
야고보서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2.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기도하고 성령님이 충만하게 주장하시고 인도해주시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는 아름다운 삶을 사시고, 축복과 행복이 넘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6절.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godliness actually is a means of great gain when accompanied by contentment.
ἔστιν δὲ πορισμὸς μέγας ἡ εὐσέβεια μετὰ αὐταρκείας·
is however gain great the godliness with contentment
직역하면 ‘그러나 자족하는 경건은 큰 이익이다’는 뜻입니다.
‘되느니라’(ἔστιν)는 현재형으로서(is) 언제나 큰 이익이 된다는 뜻입니다.
1. ‘자족’(αὐταρκείας)이란 ‘ 스스로’(αὐτός)란 접두어와 ‘만족하다’(ἀρκέω)란 단어의 합성어인데, 바울 당시의 스토아 철학자들의 좌우명이었습니다.
앞 절에서 이단자들은 경건(신앙)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했으나, 참된 신앙인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경건생활을 하면, 그 경건이 마음에 행복을 주고, 심신에 큰 유익을 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4장 8절에서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시면서, 경건을 추구하면, 하나님께서 금생에서도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13절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30장 7-9절에서는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고 했습니다.
7절.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we have brought nothing into the world, so we cannot take anything out of it either.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οὐδὲν γὰρ εἰσηνέγκαμεν εἰς τὸν κόσμον,
nothing for we brought into the world
직역하면 ‘왜냐하면 아무것도 세상에 우리가 가지고 온 것이 없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가지고 온’(εἰσηνέγκαμεν)은 부정과거로서(we brought) 과거에 가지고 온 것이 확실히 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ὅτι οὐδὲ ἐξενεγκεῖν τι δυνάμεθα·
because nothing to carry out anything are we able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에서 ‘가지고 가지’(ἐξενεγκ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carry out) 틀림없이 가지고 가지 못하는 사실을 확정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맨 뒤의 동사(δυνάμεθα)는 현재형으로서(are we able)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1. ‘가지고 온다’(εἰσφέρω)는 동사는 ‘(세상) 안으로’(εἰς)란 접두어와 ‘가지고 오다’(φέρω)는 동사의 합성어로서 ‘가지고 들어오다’(we brought in)는 뜻이고, 이와 대조적으로 ‘가지고 가다’( ἐκφέρω)란 동사는 ‘밖으로’(ἐκ)라는 접두어와 ‘가지고 오다’(φέρω)는 동사의 합성어로서 ‘가지고 나가다’(carry out)는 뜻입니다.
2. 본 절은 구약 성경의 가르침과도 일치합니다.
욥기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전도서 5:15.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f we have food and covering, with these we shall be content.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ἔχοντες δὲ διατροφὰς καὶ σκεπάσματα,
having however food and covering
직역하면 ‘그러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가지고 있으면’이란 뜻입니다.
‘있은즉’(ἔχοντες)은 현재분사로서(having)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τούτοις ἀρκεσθησόμεθα.
with these we shall be content
직역하면 ‘이것들로써 우리는 만족해져야 할 것이다’는 뜻입니다.
동사(ἀρκεσθησόμεθα)는 미래 수동태로서(we shall be content) 만족해져야 할 것을 가리키고, 여기서 미래형은 구약성경의 법률 용어처럼 명령형의 의미입니다( the future has imperative sense as used in the legal sense of the OT: L.Key 633).
1. ‘먹을 것’(διατροφὰς)은 복수형으로서 의미상 일생 동안( διά+ὥρας) 먹을 것들과 모든 생활 필수품들’(food and supplies)을 가리킵니다.
‘입을 것’(σκεπάσματα)도 복수형으로서 모든 옷과 덮을 것과 거처 등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족한 줄로 알라’는 말씀은 최소한의 필수품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란 말씀이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면 모든 것을 다 주신다는 것을 믿고 만족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건강에 필요한 의약품이나 집이나 자녀 교육비나 자동차나 애경사나 사람들에게 인사할 돈이나 수없이 많은 생활 필수품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필요경비를 주님은 만족하게 주실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고 노력하면서,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이 말씀은 주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이 음식 뿐 아니라 모든 생활 필수품을 포함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근거로 극빈생활을 신앙인의 가치와 목표로 강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에게 큰 부요와 높은 지위와 자녀의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다윗 등이 그 모범적인 예입니다.
3. 특히 이 말씀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주신 목회적인 교훈으로서, 오늘날 목회자들도 이런 정신으로 목회하고 돈을 탐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9절.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those who want to get rich fall into temptation and a snare and many foolish and harmful desires which plunge men into ruin and destruction.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떨어지나니
οἱ δὲ βουλόμενοι πλουτεῖν ἐμπίπτουσιν εἰς πειρασμὸν καὶ παγίδα
those however desiring to be rich fall into temptation and snare
직역하면 ‘그러나 부하게 되기를 원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에 빠진다’는 뜻입니다.
‘부하기 되기를’(πλουτεῖν)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be rich) ‘원하는’(βουλόμενοι)은 현재분사로서(desiring) 현재 부하기를 원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떨어지나니’(ἐμπίπτουσιν)는 현재형으로서(fall) 현재 떨어지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καὶ ἐπιθυμίας πολλὰς ἀνοήτους καὶ βλαβεράς,
and desires many foolish and harmful
‘욕심’(ἐπιθυμίας)은 ‘위에’( ἐπί)와 ‘정욕’(θυμός)의 합성어로서 어느 한 곳에 욕심이 딱 고정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키며, 강한 열망이나 욕심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바울이 성도를 간절히 보고자 할 때도 사용되었고(살전 2:17), 성도가 주님이나 재림의 날을 간절히 사모하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눅 17:22).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αἵτινες βυθίζουσιν τοὺς ἀνθρώπους εἰς ὄλεθρον καὶ ἀπώλειαν.
which sink the men into ruin and destruction
‘빠지게 하는 것이라’(βυθίζουσιν)는 현재형으로서(sink) 언제나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는 뜻이고, 깊은 곳에 빠지는 것(to sink into the deep)을 가리킵니다.
1. 하나님의 은혜로 부한 생활을 하는 것은 큰 축복이지만, 지나치게 부하려고 욕심을 부리게 되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떠나 시험에 들게 되고, 잘못하면 마귀가 놓은 ‘올무’(παγίδα)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님의 충만함과 인도를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2. 성도와 목회자가 주님과 목회에 열정과 욕심을 갖는 것은 참 아름답고 좋은 일이나, 지나친 부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서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빠지는 것은 성령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마귀에게 사로잡히는 일입니다.
이처럼 마귀의 올무에 사로잡히면,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됩니다.
예컨대 성도가 돈에 눈이 어두워서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마약이나, 사기로 사업을 하면 망하게 되고, 목회자가 돈에 눈이 어두워서 교회 재정으로 개인 사업에 투자하면 공금 횡령죄로 망하게 됩니다.
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e love of money is a root of all sorts of evil, and some by longing for it have wandered away from the faith and pierced themselves with many griefs.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ῥίζα γὰρ πάντων τῶν κακῶν ἐστιν ἡ φιλαργυρία,
root for of all of the evils is the love of money
직역하면 ‘왜냐하면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들의 뿌리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으로서(is), 돈을 사랑함이 항상 모든 악들의 뿌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ἧς τινες ὀρεγόμενοι ἀπεπλανήθησαν ἀπὸ τῆς πίστεως
which some longing for was seduced from the faith
‘탐내는’(ὀρεγόμενοι)은 현재분사로서(longing for) 현재 탐내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ὀρέγω)은 ‘손을 뻗치다, 간절히 사모하다’( stretch out, yearn for)는 뜻입니다.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에서 동사(ἀπεπλανή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seduced) (미혹을 받아서) 확실히 떠난 것을 가리키고, 원형(ἀποπλανάω)은 ‘에서 떠나’( ἀπό)란 접두어와 ‘떠나서 방황하다’(πλανάω)란 동사의 합성어로서 별이 본 궤도에서 벗어난 것을 가리킵니다(go astray, get off-course; deviate from the correct path).
‘미혹을 받아’란 번역상 첨가한 것입니다.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καὶ ἑαυτοὺς περιέπειραν ὀδύναις πολλαῖς.
and themselves they pierced with sorrow many
‘찔렀도다’(περιέπειρ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pierced) 확실히 확 찌른 것을 가리킵니다.
1. ‘돈을 사랑함’(φιλαργυρία)이란 말은 돈에 대한 지나친 탐심(covetousness)을 가리킵니다.
돈 자체는 선하고 대단히 유용한 것이지만, 돈밖에 하나님도 모르고, 부모 형제도 모르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돈만 벌겠다는 탐심은 악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돈에 대한 탐심 때문에 구주 예수님을 팔았다가 목 매여 자살했고(마 27:5),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돈 주고 교회에서 명예를 사려다가 죽었고(행 5장), 마술사 시몬은 돈 주고 성령의 은사를 사려다가 파문을 당했습니다(행 8:1-20).
‘근심’(ὀδύναις)이란 ‘심신의 고통, 슬픔, 고민’(pain, sorrow, distress, of body or mind)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돈을 지나치게 사모하면, 심신에 많은 고통을 당하여, 마음이 병들고 몸이 망가지게 됩니다.
‘찔렀다’(περιέπειραν)는 말은 ‘관통했다’(pierced)는 말로, 많은 근심과 고통이 마음과 몸을 관통해서 병들어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치 마귀가 쏘는 화살이나 창이 성도의 마음과 몸을 관통한 것을 가리킵니다.
2. 그러므로 예수님은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장 좋으신 성령님을 날마다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마음에 평안과 행복을 주시고,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해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