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 추억되는 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평강공주'와의 사랑으로 고구려의 '용장'이 된 '온달장군'이 신라군 과 전투 중 이곳 아차산성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온달장군이 목을 축였다는 온달샘과 고구려의 '산성 안의 산성'인 '보루'의 흔적도 대부분 남아 있다. 삼국시 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던 까닭에 백제 초기부터 고구려의 남진에 대비해 축조된 아차산성 은 둘레의 길이가 약 1㎞, 평균 높이는 약 10m에 이른다. 험하지 않은 등산로를 오르면 서 울시내와 멀리 성남의 남한산까지 조망할 수 있고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풍광을 즐길 수 있어 걷기와 산행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475년 하남 위례성을 빼앗고 백제는 완전히 물러갔지만 고구려는 동맹 관계이던 신라와 이 한강 유역의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고구려 평온왕 때 죽령 이북의 고구려 땅을 신 라에게 빼앗긴 바 있는데 이를 되찾도록 온달 장군을 보냈는데 신라군과 싸우다 전사하였고 그가 아차성에서 죽었다는 기록이 있어 아마도 온달 장군은 이 곳 아차성에서 죽었으며 온 달 장군의 고토 회복 임무는 완수되지 못하고 신라군에게 한강 유역을 내주게 된다. 백제가 475년까지 그리고 고구려가 590년까지 그리고 신라가 한강 유역을 돌아가며 차지 하고 한강을 차지한 나라가 5세기, 6세기, 7세기의 패자로 군림한다는 것은 한강 유역이 군 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얼마나 중요한 요충지였는가를 새삼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아차산성은 5세기말부터 6세기 후반까지 고구려 전성기의 패권국가로서 백제와 신라를 위 압 했던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지나 더 남쪽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고 백제를 위축시키고 신 라를 조공을 받으며 신라의 내정 간섭이나 왕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갈아치우는 등의 위세 를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지나침을 모자람만 못한 법, 신라와 고구려는 사이가 안 좋아지고 결국 아차산성의 보루가 무너지고 신라군이 아차산을 점령해 버린 후 668년 패망 하기까지 한 번도 다시는 이 한강 지역에 패권을 온전히 되찾지는 못한 듯하다.
▲아차산성(阿且山城):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사적 제234호. 둘레 약 1,000m. 아차산성이라고도 쓴다. 한강변에 위치한 광장동은 남북 교통의 중요한 나루인데, 그 뒤편 아차산 위에 있는 아차산성은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허리 일대에 위치했으며, 지금은 워커힐 구역에 있다. 산성은 표고 200m의 산정에서 시작해 동남으로 한강을 향하여 완만하게 경사진 산 중턱 이상의 부분을 둘러서 성벽을 쌓았다. 테뫼식에 속하는 말굽형의 산성이지만 규모가 크며 성 안에는 작은 계곡이 있다. 성벽의 높이는 평균 10m 가량인데, 동쪽·서쪽·남쪽에 문터가 남아 있다. 성벽의 구조는 삭토법에 의하여 대체적인 형태를 축조하고 그 위쪽에 돌아가면서 낮은 석축 성벽을 쌓았다. 현재는 성벽이 무너져서 토석혼축과 같은 외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아차산성을 중심으로 그 남북으로 장성이 연결되어 있다. 즉 장성유적은 본래 뚝섬 부근의 한강변에서 시작되어 북쪽으로 고지를 따라 아차산에 이르고 있고, 여기서 다시금 망우리에 이르는 산줄기를 따라 축조되어 있다. 그런데 아차산 줄기를 따라 양쪽 평야지대로 뻗은 곳인 중곡동과 면목동 쪽의 중랑천으로 뻗어 있는 아차산 지봉에는 방위목적을 가진 수많은 보 등이 설치되어 있고 이것이 산등성이를 따라 축조된 장성벽과 연결되어 구리시 아천리 쪽으로 뻗은 곳까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 장성은 서쪽의 뚝섬평야로부터 침입하는 적에 대비한, 왕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그 일원의 방위에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차산성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하여 축조된 백제의 '아단성'으로 볼 수 있다. 실제 그 기능은 백제 왕성인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는 몽촌토성을 방어하는 시설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즉 한강 북안에 자리잡고 있는 지형적 조건을 이용하여 한강 상류와 하류 쪽에서 올라오는 선박의 움직임을 빨리 포착하여 왕성으로 연락해주는 진성이었다. 475년 고구려군에게 백제 왕성이 함락되었을 때 개로왕이 붙잡혀 죽은 곳이 이 산성 밑이다. 그리고 고구려의 온달장군이 실지회복을 위하여 출정해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곳을 이 산성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차산성은 삼국 항쟁기에 있어서 각별한 방어요새였음을 알 수 있다.
▲삼거리에서 좌측 길을 버리고 직진 길로 진행한다.
▲광장중학교 정문 앞을 지나 가락공판장 앞 좌측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천호대로에 서고(현대1201고층건물) 앞에서 좌측 도로로 내려간다.
▲한북수락지맥을 광나루역에서 종료한다. 광나루역(廣-驛/長神大驛)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아차산로에 있는 지하철역(5호선)이다. 수락지맥은 지금의 어린이대공원 능선으로 하여 중랑천이 한강에 합수하는 한강수변공원까지 약6km 정도 더 진행하는 것이 정상인데 도심의 개발로 인하여 마루금이 없어지고 빌딩숲과 미로같은 도로 사이를 지나야하는 불편함 때문에 이곳에서 종료하고 5호선전철을 타고 종료5가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세류역에 하차 귀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