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 133년 11월 1일,2월 증산도대학교. 도기 133년 11월 5일, 철야수행 1일차 말씀 |
서양의 창조론과 동양의 개벽론 서양의 창조론과 동양의 개벽론, 이 두 관점은 무엇이 근본적으로 다른가? 그리고 또 공통된 인식이 있다면, 그건 또 무엇인가? 서양의 창조관은 자연의 변화가 오직 신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이원론에 빠지게 한다. 모든 것은 지음 받았다, 인간도 피조물이고, 따라서 나 자신도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에게 순종하고 신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어둠에 빠져 악마로 화해 버린다 이거여. 그게 가장 큰 죄악이라는 것이다. 그런 근본주의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종교가 이슬람교다. 이슬람교에서 주장하는 가장 큰 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다. 불신하는 죄, 그건 무엇으로도 용서가 안 된다. 중동 사람들은 직선 시간관을 가지고 있어. 중동의 사막 문화는 사시四時의 순환성에 대한 인식이 약하단 말여. 저 레바논이나 요르단을 가보면, 나무 하나 제대로 서 있는 게 없다. 몇 년 전에 내가 요르단 공항에서 내려 수도 암만으로 들어가면서 보니까 길가의 나무가 전부 기울어져 있어. 지중해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와서 그렇다는 거야. 또 거기는 거의 모든 건물들이 모래색으로 돼 있어. 관공서나 일반 호텔 할 것 없이 다 그렇다. 중동의 이런 환경이 창조론, 직선적 시간관 같은 신앙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쪽 사람들은 시간이 일직선으로 흐른다고 생각한다. 즉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있어서 신의 심판을 받으면, 거기서 선택된 자만 살아남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이 땅에서 영생을 한다는 것이다. 이법을 모르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 봐. “그게 아니다. 자연의 본성은 순환이다. 모든 만물의 생명은 순환을 본성으로 한다. 이것이 시간의 문제에서는 대자연의 사계절 문제다. 우주에는 인간을 길러내는 사계절이 있다. 지금은 선천 봄여름을 끝맺고 가을로 들어가는 때다. 앞으로 큰 겨울 빙하기가 오면, 이 지구는 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그런데 그 큰 겨울을 넘어 다시 봄이 되면 새로운 인간 종이 태어난다.” 그러면 깜짝 놀란다. 기독교 골수분자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를 한다고 대든다. “그러면 타락이 또 있다는 거냐?” 당장 이렇게 묻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창조, 타락’ 이게 아주 확연히 구분돼 있다. ‘하나님이 창조를 했고, 타락은 이번 한 번뿐인 사건이다. 게다가 예수님이 오셔서 죄를 대속했기 때문에, 예수님만 믿으면 전부 용서되고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천리를 모르는 신앙이다. 우주의 이법을 모르는 신앙이란 말이다. 우주일년의 주기 이번 가을개벽으로 지구촌 인종씨를 추려서, 후천선경 문화를 연다. 그것도 영원히 계속되는 건 아니다. 큰 겨울이 오기 전까지 5만년 동안이다. 그러니까 상제님의 선경 문화도 지상에서는 후천 5만 년 동안만 지속되는 거야. 천지자연의 이법으로 지구가 얼음 덩어리로 덮여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돼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서양에서 나온 『아이스 에이지 Ice Age』라고 하는 조그만 책이 있어. 거기 보면, 인간의 문명이 처음 태동되는 실질적인 출발점이 빙하기가 끝나고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때부터라는 거야. 이 책을 보면 과학자들의 고난에 찬 연구 과정이 자세히 나온다. 이 빙하기는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19세기부터는 많은 과학자들이 생애를 바친 연구 끝에 ‘빙하기가 오는 주기가 한 10만 년이 된다, 12만 4천 년이다.’라고 밝혀냈다. 그런 게 요새 『네이춰Nature』지에도 나온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우주원리, 이법적 상수론으로 알아버린 거야. ‘12만 9천6백년마다 우주가 한번 큰 개벽을 하는데, 이걸 일원一元개벽이라고 한다. 인간농사 짓는 우주일년이 있다.’ 이렇게 알았단 말이다. 신성神性과 이법理法을 동시에 동서양에서 진리를 들여다보는 방식이 무엇이냐? 서양 문화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 문화다. 그들은 자연의 가슴 속을 어떻게 들여다봤을까? 그들도 자연 속에는 신성과 이법이 함께 깃들어 있다고 했어. 진리를 통찰하는 눈으로 신성神性과 이법理法을 동시에 보려고 했단 말여. 고대 그리스 철인들은, 자연을 볼 때 지금의 자연과학자들처럼 질서만을 찾으려고 한 게 아니다. 그들은 자연에 합리를 넘어서는, 따지는 것만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어떤 신성이 있다고 봤다. 자연 속에는 음적인 면뿐 아니라, 만물이 탄생하고 변화해 가는 정교한 이법, 질서가 있다는 것을 통찰하고 그것을 동시에 보려고 했던 것이다. 서양의 복희, 피타고라스 서양의 철학자 가운데서도 우주는 물에 의해 태어나고, 물로 구성돼서 둥글어간다고 한 사람이 있다. 소위 서양철학의 시조라고 하는 탈레스다. 탈레스는 원래 이집트에 가서 공부를 했다. 그런데 그리스로 돌아와 지혜가 뛰어난 피타고라스를 만나서 이런 얘기를 한다. “자네는 이집트 현인들을 찾아가 다시 배워라. 그럼 큰 인물이 된다.” 그래서 피타고라스는 자기의 고향인 사모아를 떠나 이집트로 간다. 내가 몇 달 전에 사모아를 직접 갔었다. 피타고라스가 이집트 유학을 가는데 배를 탔다. 그 배에서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데, 피타고라스는 몇 마리가 잡혔다는 걸 다 안다. 수數를 통하고 영靈이 밝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잡은 고기를 다시 놔줘라. 그럼 내가 그 고기값을 쳐서 돈을 주겠다.”고 했다 한다. 그게 예수 이적 보는 것하고 비슷하잖아. 그러니 어부들이 놀랐을 것 아니야? 지중해 일대에 소문이 났다는 거야. 저 그리스 어디에서 이런 현인이 왔다고 말이다. 피타고라스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신성으로 충만했다. 그 어머니 아버지가 태양신인 아폴론에게 기도하고서 그가 태어났다고 한다. 그가 이집트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향 사모아로 돌아오지만 당시 주군이 너무 강압적이어서, 사모아섬 서쪽에 있는 굴에 자리를 잡고 제자들을 기르다가 이태리로 거처를 옮긴다. 화이트헤드는 서양 문명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한 사람이 피타고라스라고 한다. 피타고라스는 그 후대의 철인, 종교인들에게 강력한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수에 의해 지배된다(All is ruled by numbers).” 이게 피타고라스의 명언이다. 그런데 동양 문명의 시원을 쭉 거슬러 올라가면 태호복희씨를 만난다. 이분은 수로써 자연 속의 질서를 읽은 분이다. 물론 그 전에도 자연의 질서를 파악한 태고의 현인과 신인들이 있었겠지만, 그걸 체계적인 천지의 질서로 인간의 문명사에 드러내준 분이 복희씨다. 그렇기 때문에 복희씨는 인류 문명의 아버지, 철학의 아버지가 된다. 피타고라스는 서양의 복희씨와 같은 인물이다. 그러면 피타고라스는 어떻게 수로써 만물을 인식했을까? 100수의 조화 동양 문명은 그림 한 장에서 나왔다. 그게 뭐냐? 하도河圖다. 하도는 복희씨가 천지로부터 받은 우주 창조의 설계도이다. 이 하도는 1에서부터 10까지의 55수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후 중국 고대 하나라의 개조인 우임금이 9년 홍수를 다스리다가 낙수에서 그림 한 장을 받는다. 그걸 낙서洛書라고 하잖아. 이 낙서를 보면 10이 빠져 있다. 1에서 9까지만 있는데, 그걸 다 합하면 45수가 된다. 하도 낙서는 5가 조화를 부린다. 50에 5가 붙으면 55수 하도가 되고, 50에서 5가 떨어지면 45수 낙서가 된다. 그리고 상생의 원리를 보여주는 하도의 55수와 선천 봄여름의 상극의 이치를 보여주는 낙서의 45수를 합치면 100수가 된다. 주역에서는 이 100을 일원수一元數라고 해. 천지의 음양의 변화 질서의 근원이 되는 수라는 말이다. 상제님은 선천 세상을 정리하고 후천개벽을 준비하는 역사 정화의 준비 시간대를 일원수 100년으로 잡으신 것이다. 100일 기도를 해 보면 그 힘이 그렇게 위대하다. 99일째까지도 모르는데, 자고 나서 그 다음날 보면 내 정신, 내 몸의 기운이 뭔가 달라져 있어. 100일 공부를 제대로 하면 기가 막히다. 이제 그걸 반으로 나눠서 내일부터 49일 기도를 시작하는데 정신 바짝 차려야 된다. 지금 워낙 중요한 역사의 시간대로 들어간다.
출처 : 월간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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