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thodox Korean Buddhism stems from Early Buddhism to #Avatamska Shun=Zen, preserving Buddha’s radical teachings and spir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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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는 은은한 향내음이 배어 있었다. 그 추억에는 우리네 어머니 어머니...의 비손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절을 떠올리는 내 상념에는 간간한 짱아치의 입맛이 갈무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절은...불교는...종교는 우리의 삶의 한 가닥이 되었고 이윽고 민족정서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불교는 원시불교=근본불교-소승小乘-대승大乘의 끝자락에서 초기 밀교를 누르고 #화엄선 #華嚴禪이 장악하더니 조선의 억불抑佛과 맞물려 얼어붙었다. 세계의 불교에서 실존불의 #아함 #阿含 사상을 간직한...세계불교의 종주국이라는 한국불교의 진면목이 거기 있었다.
고행불苦行佛->실존불實存佛과 대승불大乘佛->장엄불莊嚴佛의 각축角逐에서 한국불교는 대승의 장엄불과 밀교적 밀행密行을 수용하되 납의衲衣-독두禿頭에 잇댄 화엄의 웅숭깊은 사상을 융섭融攝 동화同和하여 그 원융圓融 정신이 숨 쉬는 한국인의 핏속으로 녹아들었을 것이었다.
이하 불교미술을 보는 눈 사계절 2001에서 인용
“왜 보현이 아니라 문수보살이예요?” 하고 묻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아가 “화엄은 보현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많은데 왜 문수예요” 하고 묻는 얄미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역시 태장계 금강계 만다라와 연관이 있다. 즉 보현보살의 행원과 자비를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 태장계, 문수보살의 금강과 같은 지혜를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 금강계 만다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대산 사상에서 문수보살이 중심이 되는 이유는 신라가 금강계만다라의 사상체계를 수용하였으며 그 사상은 역시 중국의 오대산에서 비롯되었다는 추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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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의궤에 따라 조성된 이른바 대승불교의 불상과 불화에는 실존했던 인간 석존, 즉 석가모니 부처님의 피와 땀과 눈물이 없다. 아함경과 상응부 경전이라 부르는 초기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근본불교나 원시불교에 나타난 석존의 모습, 이를테면 실존불의 모습은 이미 우리의 불교에서는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인간적인 실존불의 모습을 두고 금빛 찬란한 부처님으로 장엄했을까. 그것은 대승경전이라는 대본에 따라 전개되는 장엄하고 웅장한 우주의 대 서사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대승경전은 비유컨대 하늘과 땅, 천계와 지신, 천사와 악마, 선인과 악인, 그리고 성문, 연각, 보살, 대중이 십계를 무대로 연출하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요, 화엄경의 화장세계, 미륵불의 용화세계, 법화경의 영산회상, 그리고 아미타 정토요, 그 모든 것의 총화라 할만하다.
그 장엄의 현장을 재현해 놓은 것이 전당이다. 닷집이라고 부르는 보개 아래 후불탱화 앞에 찬란한 광배의 후광을 업은 부처님을 모신다. 대웅전은 인도의 옛말인 마하비라, 즉 대웅을 모신 곳이다.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협시로 한다.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봉안하고 그 바깥에 협시불인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시기도 한다. 후불탱화는 부처님 뒤의 그림을 말한다. 좌우에 협시로 문수, 보현 혹은 과거불인 연등불, 미래불인 미륵불과 함께 석가모니불의 삼존불을 모시기도 한다. 그외에 대범천, 제석천, 팔금강, 팔부중을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
전각안에 모셔진 금빛 부처는 보관을 쓰거나 상호에 맞는 수인, 혹은 지물을 보인다. 석가모니불은 선정인, 설법인, 시무외인을 손으로 지어 보이신다. 아미타불은 미타정인, 설법인을 짓는다. 협시불인 보현은 부처님의 행원을 상징하며 연꽃을 들고 코끼리를 탄 모습이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며 여의주나 청연화를 들고 청사자를 탄다. 그외에 모든 부처와 협시는 물론이거니와 바깥에서 불법을 지키는 외호중과 보살들은 엄정한 의궤에 따라 장엄하게 묘사된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불화가 되고 조각을 하면 불교조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