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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적시는 수필 한 편 (16)
저녁 구름
헤르만 헷세
내 거실 겸 서재의 동쪽 벽에는 발코니로 통하는 좁은 문들이 있는데, 그 문들은 5월부터 9월이 꽤 깊을 때까지 열려 있고, 그 앞에는 한 걸음 너비에 반 걸음 깊이인 아주 자그마한 석재 발코니가 매달려 있다.
이 발코니는 나의 소유이다. 이 발코니 때문에 나는 몇 년 전 여기에 눌러 앉기로 작정했고, 또 이 발코니 때문에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늘 어떤 감사의 마음 같은 것을 느끼며 다시 여기 나의 떼쌩 집으로 향하곤 했다.
집을 아름답게 하고 사는 것, 그리고 창에서 보면 빼어나게 아름다운 멀리 트인 전망을 가지는 것은 일찍이 나의 자랑이자 나의 재주였다. 그렇지만 전에 내가 즐겼던 그 어느 전망도 이곳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그 대신 벽에서는 횟가루가 군데군데 떨어지고, 벽에 걸린 융단이 너덜너덜 하더라도 ― 여러 가지 안락한 시설이 없더라도 ― 이 전망 때문에 나는 여기서 살고 있다.
발코니 앞에는 해묵은 남국의 과수원이 산기슭을 따라 가파르게 내리 뻗어 있다.
우듬지가 두터운 부채 모양인 종려, 동백, 석감, 미모사, 박태기나무하며 완전히 참등덩굴로 덮여 버린 주목들이 늘어서 있고, 장미덩굴을 올린 좁은 테라스도 몇 개 있다.
나와 세상 사이에 드리워져 있는 것이 이 잠에 취한 듯한 해 묵은 과수원이다. 또 내려다 보면 그 꼭대기가 보이는 밤나무 숲이 우거진 몇 개의 조용한 작은 계곡도 그렇다. 밤나무 숲 우듬지에서는 밤낮으로 나무파도 소리가 들리고, 저녁이면 처량한 부엉이 울음소리가 건너온다.
이 숲은 세상으로부터, 집들과 사람들 및 소음과 먼지로부터 나를 지켜 준다. 그러니 만큼 나는 세상을 아주 등진 것은 아니고 또 그러려고 하지도 않지만, 그러면서도 그런 대로 그럭저럭 보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아무려나 우리 마을로 올라오는 길이 하나 있어 그 위로 매일 다니는 우편 자동차가, 없어도 좋을 편지나 안 와도 좋을 방문객을 여기로 실어다 준다. 그 중에는 물론 가끔씩 반가운 편지나 손님도 있지만,
현관문을 잠가 두는 시간에는 세상의 어떠한 부름도 나에게 닿지 못한다. 그것은 오후의 몇 시간인데, 대개는 저녁 시간까지 연장된다. 그럴 때면 대문은 잠겨 있고 초인종은 없다. 그러니 내가 정원의 테라스를 발 아래에 두고 나의 난쟁이 발코니에 앉아 있을 때, 나를 방해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럴 때 나는 정원과 숲의 계곡 저 너머에 구세주의 모습이 그리고 그 뒤에 자비의 성모상이 서 있는 것을 본다. 플레짜의 길게 뻗친 반짝이는 지류와 코머호 저편, 그리고 이른 봄 늦게까지도 정수리에 눈을 이고 있는 높은 산들을 바라본다.
가끔씩, 저녁에 그렇게 앉아서 저 건너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고지에서 떠다니고 있는 저녁 구름을 건너다보고 있을 때 나는 만족을 느낀다.
나는 저 밑에 내려다보이는 세상을 보며 생각한다. 누가 내게서 너를 훔쳐 가도 좋다고.
나는 이 세상에서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세상에 잘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세세아도 나의 혐오에 충분히 응수를 하고 앙갚음을 하였다. 여태 살아 있으니, 세상과 싸우면서도 견디어 온 셈이다.
또 성공을 거두는 공장주인이나 권투선수 혹은 영화배우는 못 되었지만, 열두 살 때 머리 속에 새겨 두었던 시인이 되었고, 여러 가지를 배우는 중에도 세상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거기서 뭘 바라지 않고 그저 조용히 주의 깊게 자기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에게 주는 게 많은데 그것은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 세상의 총아들은 알지 못하는 무엇이라는 것도 배웠다.
관망한다는 것은 탁월한 재간이다. 세상을 살면서 얻어지는 것이고 치유력이 있는, 가끔씩 매우 유쾌한 재주이다.
나는 이런 재주를 저녁 구름에게서 배웠다. 저녁, 나의 시간에 이렇게 작은 발코니에 앉아 있을 때면 언제나 구름과 함께 있다.
높직이 올라앉은 새둥지 같은 나의 집은 구름이 한가운데를 들여다보고 있다.
우천시, 그리고 이 지방 특유의 거칠고 사나운 악천후에는 구름들이 방안으로 들어오고, 발코니의 격자난간에 걸리고, 신발 속까지 기어 들어온다.
저 바깥에서는 구름들이 몸부림치며 번개가 칠 때마다 소스라쳐 환하게 밝아지는 흠뻑 젖은 푸른 산골짜기로 달리다가, 빨려들 듯이 창백한 하늘의 높이로 치솟곤 한다.
옛날, 젊었을 때 나는 구름에 대해 경건하고 엄숙한 태도를 지녔었다.
늙어가고 있는 이즈음에는 구름을 덜 사랑하는 것은 아니면서도 그전처럼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다.
구름은 아이들이다. 부모는 아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만, 그러는 사람은 부모뿐이지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 조부모만 해도 아이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법이다. 그들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만큼.
그렇다. 그들은 스스로가 벌써 다시 어린아이로 되어가느라고 바쁜 판의 노인들인 것이다.
열정이란 멋진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젊은 사람들에게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들에게 보다 잘 맞는 것은 유우머요 웃음이다. 스스로가 덧없는 저녁 구름의 유희 같은 존재인 것처럼 범사를 심상하게 받아들이는 일, 세상을 비유로 변용 시키는 일, 사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이 제격인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붓을 든 주제는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자―장마가 막혀 습기가 남아 있으면서도 맑고 화창했던 어제 저녁에는 구름이 정말 굉장했다. 방금까지도 긴 층을 이루어 하늘에 가로놓여 있던 구름이 덩어리가 되어 낮게 드리우는가 하면 거센 바람에 날려 천천히 둘둘 말리더니 모두가 한데 꼬여 점차 혼자 소리 없이 일하고 있는 압연기 로울러의 형상이 되어갔다.
방금 그렇더니 또 금새 온 하늘이, 알알하고 싸늘한 녹청색 기운이 하늘을 뒤덮고 있지만 않았다면, 리본과 쿠션의 조직이었다가 천천히 꿈틀거리며 서서히 몸체와 밀도가 불어나는 거대한 뱀의 모습이 되었다 ― 그러더니 지금 채 1분도 못 되게 한눈을 판 사이, 갑자기 하늘이 그대로 비어 있어 섬광처럼 싸늘하고 맑기만 했다. 그리고 구름은 모조리 조그맣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어 기를 못 펴고 지평선에 꾹 눌려 있다. 위쪽은 흰빛과 황금빛이고 배는 새파란데 길게 끌려있어 흡사 비행선 같기도 하고 고래 같기도 한 형상이 되어서 모두 입체적으로 딴딴하게 뭉친 모습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 장미 빛과 황금빛이 보석 같은 산봉우리를 떠나자 대지는 모두 그 빛을 잃고 하늘에만 아직 날 빛이 남아 잠시 빛나고 있었다. 구름 배들은 센바람이 부는데도 겉으로 봐서는 꼼짝하지 않고 엉거주춤 산등성이 바로 위에 정박해 있어서 차가와 져 가는 그들의 색깔에 아직은 빨강과 구릿빛 갈색이 조금 섞여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구름들을 그때그때 알아보려면, 맞바람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구름들을 놓치지 말고 잘 보고 있어야만 했다. 구름들이 딱딱하고 굼떠서 미동도 하지 않을 듯이 보이는 동안에도 실은 그들의 형태가 줄곧 안에서 겉으로 혹은 속에서 이리저리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름은 겉으로는 독실한 척하지만 일과가 끝나고 나서 하는 장난짓거리는 다 했던 것이다. 마치 학교 담에 붙어서 있는데 선생님께서 지나가시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기는 하지만 선생님께서 미처 돌아보실 겨를도 없이 달아나 버려, 보이지는 않고 담장 너머에서 왁자한 웃음소리만 어지럽게 들려오는 그런 소년들처럼.
그런데 그 사이 길다란 구름들 중의 하나가 다른 구름들 위로 헤엄쳐 올라가, 녹색 하늘 속에서 저 혼자 장미 빛으로 떠돌다가 갑자기 송두리째 밝은 붉은 색으로 활활 타오르면서 아주 예쁜 고기 모양이 되어갔다. 빛을 내는 한 마리 거대한 금붕어가 푸르스름한 작은 지느러미로 헤엄쳐 가고 있었다.
웃으며, 더없이 즐거워하며, 죽음을 향하여 빛이 마지막으로 스러져 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나의 금붕어는 더 살아 있을 시간이 없어져 버렸다.
벌써 꼬리 쪽에서는 점점 갈색이 짙어져 무거워 오고, 배 쪽은 더 파래지고, 벌써 그 밝은 빨간색과 황금빛은 등어리 맨 위 가장자리에서만 불타고 있었다.
그때 금붕어는 번개같이 꼬리를 오므라뜨리고 머리를 부풀려 아주 둥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러더니 빛이 스러지고 마지막 황금빛도 잃어버리게 되는 동안 금붕어는 돌돌 뭉쳐 공만 해 지더니 그 공에서―마치 혼을 다 뿜어내어 놓으려는 듯이―잿빛 구름의 베일 두 가닥을 뿜어내었다.
뿜어내고 또 뿜어내다가 흩날리면서, 점점 엷어져 가는 베일 속에 풀려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아직 그렇게 재미있는 종류의 자살을 본 적이 없었다. 이 금붕어 녀석은 덩어리로 뭉쳐지자 그 자신의 혼을, 그 자신의 실체를 저 혼자의 힘으로서 입으로, 아가미로, 숨구멍으로 뿜어내었고 저 자신도 비실체 속으로 뿜어내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일찍이 내가 저 아래, 세상에서 살고 있으면서 나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했을 때, 나는 여러 가지를 체험했었고, 이해하기 어렵고 견디기 어려운 것도 함께 많이 보아왔었다. 그러나 방금 물고기의 처신에서 본, 그토록 아연한 무엇, 그토록 아기의 장난기가 뒤섞인 무엇인가를 어느 사람이나 민족, 의회 같은 데서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일찍이 내 사진을 진지한 것으로 생각했던 시절 저 바깥 세상에서 본 것도 적지는 않았다.
금붕어는 떠났다.
그리고 오늘분의 나의 기쁨도 사라졌다. 안에서는 아주 아름답고 좋은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나는 또 한 시간을 나의 금붕어와 함께 헤엄치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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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을 적시는 수필 한 편 (16)을 띄우며
헤르만 헤세는 우리에게 늘 꿈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모든 인간 존재의 기본 조건이 되는 핍박과 위험들,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불확실하고 위협받는 현존재의 혼란 같은 것이 문제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본연의 인간성을 간직할 줄 앎으로써, 부단히 깨어 있고 회의하는 의식을 가진 현대 작가였다.
그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이나 핍박 가운데서 정신의 힘을 경험했다. 그리하여 그는 과거의 종교적 전통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그와 동시에 모든 규범에 저항하고 자기의 경험을 신뢰해야 하는 필연적 요청에 직면한다. 그는 문학적 사건과 형상, 인물과 모티프를 통해서만, 인간으로 하여금 존재의 어두운 힘을 몰아내고 확실성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대응 방식을 드러내려 했다. 그는 종종 절망과 믿음의 갈등에 관해서도 말했고,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는 타고난 재능"도 강조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을 이루는 일련의 인물들은 친족성(親族性)을 드러낸다. 그 계보는 헤르만 라우셔에서 출발하여, 페터 카멘친트와 한스 기벤라트에서 크눌프와 데미안으로, 클링조르와 싯다르타로, 하리 할리와 골드문트로, 그리고 마침내는 요제프 크네히트로 이어진다. 각 인물에서마다 우리는 한 개인의 체험 연관과 한 인격체의 삶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인생 행로에 마주치게 되고, 그 인생 행로는 깊이 회상의 세계로 몰입해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소설적 사건의 소재가 되고 소설적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 저녁 구름>은 동화적인 요소가 다분하지만 깊은 생각의 문을 열게 한다.
파란 많은 삶을 살았으면서도, 이처럼 천진한 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의 천재성일지도 모른다. 하늘을 바라보며, 비가 온 뒤 하늘에 떠있는 구름들을 바라보며, 거기에 저녁 해가 비쳐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모습을 헤세처럼 바라보며 연일 기록을 갱신하는 더운 이 여름날을 이겨보면 어떨까?
[에세이코리아] 가족 여러분 또 한 주 동안 건강하세요. 그리고 더욱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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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만 헷세(Hermann Hesse)는
1877년 독일 남부의 뷔르템베르크 주의 작은 도시 칼브에서 개신교 선교사인 요하네스 헤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1881년 집안이 스위스 바젤로 이주하여 부친은 바젤 선교학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1883년에는 부친이 스위스 시민권도 취득하였으나 1886년 집안이 다시 칼브로 돌아가게 되었고, 헤르만은 그곳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890년 괴핑겐의 라틴어 학교에 입학했고, 1891년 뷔르템베르크 지방 시험에 합격. 그 해 9월에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1892년 7개월만에 신학교를 자퇴. 작가가 되기 위해, 혹은 전혀 아무것도 되지 않기 위해 자유로운 생활을 시도하다가 자살까지 하려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슈테텐에서 신경질환 병원에 입원(6월부터 9월까지)도 했고, 칸스타트 고등학교에 취학도 했고, 1894년 칼브에 있는 페로트 시계 공장에서 견습공으로도 일했다.
1895년 튀빙겐에 있는 헤켄하우어 서점의 점원으로 취직했는데 1899년부터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 습작소설 [고슴도치(Schweingel)]는 원고를 분실당했다. 시집 [낭만적인 노래(Romantishe Lieder)]. 한밤이 지난 뒤의 한 시간(Stunde hinter Mitter nacht)]을 출간했다. 그해 가을에 바젤의 서점으로 직장을 옮겼는데 1901년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여행. 플로렌스, 제노아, 피사, 베니스 등지를 돌아보았다. [하르만 라우져(Hermann Lauscher)]를 출간하고. 지방지<알게마이네슈바이처>신문에 기사와 평론을 기고하는 기자가 되었다. 이 일로 그는 사회적 지위를 격상시켜 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그는 소설 <페터 카멘친트>(1904), <수레바퀴 밑에서>(1906), <게르트루트>(1910), <로스할데>(1914), <크눌프>(1915), <데미안>(1919), <싯다르타>(1922), <요양객>(1925) 등을 썼으며, 많은 시와 산문을 썼다.
1904년 8월에 아홉 살이나 연상인 마리아 베르 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9월 4년의 별거 끝에 정식으로 이혼하고, 1924년 여류작가 리자 벵커의 딸인 루트 벵거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실패하여 루트 벵거의 요청으로 합의 이혼하였다.
1931년 프랑스 귀화인이며 역사학자인 니논 돌빈과 결혼하여, 처음으로 행복한 가정을 갖게 되었고, 1946년에는 프랑크푸르트의 괴테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1962년 8월 9일 85세에 뇌출혈로 몬타뇰라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부인 니논은 1966년 9월 71세로 사망하였다.
♣ 헤르만 헷세(Hermann Hesse)에 대하여는 http://essaykorea.net 의 [독자의 방] '헤르만 헷세'를 보시면 보다 많은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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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8월 04일.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수필마을에서
에세이코리아 수필지기 늘샘 최원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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