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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흉 |
효 사 |
주 요 효 사(爻 辭) 및 점 사(占 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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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길함 (小吉) |
상 육 |
겸손이 과해서 군사를 부려 정벌할 일을 자초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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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오 |
부유하지 않아도 이웃과 함께 한다. 정벌도 길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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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사 |
두루 겸손을 떨치기 때문에 이롭지 않음이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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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삼 |
자신의 공로가 있지만 겸손하다. 일의 마침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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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이 |
겸손을 떨친다. 굳게 올바름을 지켜야만 길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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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육 |
겸손하고 겸손하면 곤란 중에도 해를 입지 않는다 |
1. 괘사(卦辭) : ‘겸’(謙)은 겸손함, 비움,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괘상은 곤상간하(坤上艮下)이다. 곤(坤 ☷)은 땅, 소, 암말, 노모, 온순함을 뜻하고 간(艮 ☶)은 산, 개, 귀신, 제사, 소남, 착실함, 그침을 뜻한다. 높은 산이 자신을 낮추어 땅 밑에 있는 것이 겸손이다. 괘상으로 보면, 유일한 양효인 구삼이 다섯 음효들을 통솔하지만 하괘에 머물러 있다. 소임을 다하면서도 자신의 공로(功)와 수고를 자랑하지 않는다. 겸손(謙)은 자신의 능력과 덕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소인은 욕심 때문에 공이 있게 되면 그 덕과 수고를 자랑하기 때문에 서로 막혀서 통하지 않는다. 겸손하려고 하지만 그것을 굳게 지킬 수 없어서 마침이 있기 힘들다. 그러나 군자는 덕과 공로가 있더라도 남의 인정과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다투지 않고 물러나서 항상 스스로를 낮추기 때문에 마침내 마침이 있는 것이고, 겸(謙)이 형통한 이유이다. 화천대유(火天大有)와 지산겸(地山謙)의 효사에는 흉하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 겸손은 높아도 빛나고 낮아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군자의 마침이다. 군자가 겸을 살펴서 많은 것에서 덜어서 적은 것에 더하여 주고, 재물을 저울질해서 공평하게 베푼다.
2. 효사(爻辭)
[ 초육 ] 謙謙君子(겸겸군자) 用涉大川(용섭대천) 吉(길)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이다.
대천을 건넘도 가능하고 길하다. 象曰 謙謙君子(겸겸군자) 卑以自牧也(비이자목야)
겸겸군자는 낮춤으로써 스스로를 기른다.
초육은 겸(謙)의 시작이다. 초육는 겸손한 군자 중에서도 가장 아래에 있어서 겸손하고도 겸손하다. 이와 같이 자기를 낮춰서 수신(修身)함으로 자기를 기르면 비록 대천을 건너는 것같은 위험한 일에도 해(害)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초육은 양효도 아니고 위로 정응도 없기 때문에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고 말하지 않고 용섭대천 길(用涉大川 吉)이라고 했다. 비록 대천을 건너는 것과 같은 위험에도 해(害)를 입지 않고 길하다. 초육이 효변하면 지화명이(地火明夷)이 된다. 폭군이 존위에 있어서 자신의 밝음을 드러내면 상하게 된다. 그 해(害)를 피해서 날개를 늘어뜨리고 달아난다. 3 일을 먹지도 않고 피해서 날아가니 주인의 말이 있다.
[ 육이 ] 鳴謙(명겸) 貞吉(정길) 겸손을 떨친다. 굳게 바르게 하면 길하다.
象曰 鳴謙貞吉(명겸정길) 中心得也(중심득야) 명겸정길은 중심으로 얻었기 때문이다.
육이는 유순하고 성품이 바르고 중용의 덕이 있어 겸손(謙遜)이 두루 떨친다. 겸손은 쌓이고 쌓여서 심중에서 우러나서 저절로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것이 바르고 길하다. 하지만 육이가 음효이기 때문에 굳게 올바름을 지켜기 힘들어서 굳게 바르게 하면 길하다고 경계했다. 육이가 효변하면 지풍승(地風升)이 된다. 나무가 땅 밑에서 자라나서 시기에 알맞게 위로 올라가는 때이다. 진심을 다하면 간소한 제사라도 이롭고 허물이 없다. 소박하지만 진심을 다하면 기쁨이 있다.
[ 구삼 ] 勞謙君子(노겸군자) 有終吉(유종길) 공로가 있어도 겸손한 군자이다. 마침은 있으니 길하다. 象曰 勞謙君子(노겸군자) 萬民服也(만민복야) 노겸군자는 만민이 승복한다.
구삼은 겸(謙)에서의 유일한 양효이자 주효이다. 구삼은 다섯 음효들을 위해서 헌신하지만 자신의 수고와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군자이기 때문에 모든 음효들이 승복한다. 구삼은 다른 음효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음에도 위로 유약한 군주 육오를 받들면서도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 않아서 더욱 더 음효들이 따른다. 시작은 없어도 마침은 있다고 함은 비록 그 공로(功)는 군주에게로 돌아가겠지만 겸손하게 그 소임을 다할 수 있어서 마침은 있다. 구삼은 처한 자리가 위태롭고 하괘의 윗자리에 있고 정위에 있어서 과강하기 때문에 겸손히 노력해야만 한다. 구삼이 효변하면 곤위지(坤爲地)이다. 육삼은 안으로 빛남을 머금고 있어 올바름을 지킬 수 있다. 혹여 왕의 일을 하더라도 이루는 바는 없겠지만 마침은 있다. 공을 탐하거나 첫머리가 되려 하지 않는 것은 그 지혜가 빛나고 크기 때문이다.
[ 육사 ] 无不利(무불리)撝謙(휘겸) 겸손을 두루 베푸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象曰 无不利撝謙(무불리휘겸) 不違則也(불위칙야) 무불리휘겸은 법칙에 어긋나지 않음이다.
육사는 이르는 곳마다 두루 겸손을 베푼다. 그것을 두고서 손을 휘젓는 ‘휘겸’(撝謙)이라고 했다. 육사는 양강한 구삼을 올라타고 위로는 유순한 군주를 보필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다행히 육사는 위(位)가 바르니 유순하고 겸손하다. 또한 구삼은 공로가 있어도 그 공(功)을 내세우지 않는 군자로, 친비하기 때문에 위아래 두루 겸손을 베풀 수가 있고 이롭지 않는 것이 없다. 노겸군자인 구삼이 그 공로를 육사에게 돌리기 때문에 육사가 손을 휘저으면서 사양한다고도 본다. 육사가 효변하면 뇌산소과(雷山小過)이다. 음이 자라서 평소보다 지나친 것으로 가끔 다소 과하게 해서 바르게 해야 할 때가 있다. 과하지 않아서 허물이 없고 만나게 된다. 가면 위태하므로 반드시 경계하라. 오래 올바름을 고집하지 말라.
[ 육오 ] 不富以其隣(불부이기린) 利用侵伐(이용침벌) 无不利(무불리)
부유하지 않고도 그 이웃이 함께 한다. 정벌함이 이롭다. 이롭지 않음이 없다.
象曰 利用侵伐(이용침벌) 征不服也(정불복야) 이용침벌은 불복하는 자를 다스림이다.
육오는 유순한 겸(謙)의 군주이다. 부유하지 않지만 그 이웃이 함께 함은 이해득실을 넘어선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육오는 군주의 지위에 있음에도 유순하고 겸손하므로 천하가 마음에서 우러나와 귀의한다. 군주는 겸손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로는 불복하는 자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무력도 필요하다. 위엄과 겸손함이 조화를 이루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 육오가 효변하면 주역의 4 대 흉괘인 수산건(水山蹇)이 된다. 그러나 중정한 구오가 몹시도 험난하니 벗들이 와서 도와준다.
[ 상육 ] 鳴謙(명겸) 利用行師(이용행사) 征邑國(정읍국) 겸손을 떨친다. 군사를 부리면 이롭다. 읍국을 정벌한다. 象曰 鳴謙(명겸) 志未得也(지미득야) 可用行師(가용행사) 征邑國也
(정읍국야) 명겸은 뜻을 얻지 못함이고 가용행사는 읍국을 치는 것이 가하다.
상육은 겸(謙)과 곤(坤)의 극(極)에 있어서 겸손함과 유순함이 지나치다. 정응인 구삼에게 가고 싶지만 육사와 육오에게 가로막힌다. 어쩔 수 없이 군사를 부려서 읍국을 정벌한다. 육이는 중용의 덕이 있어서 겸손이 베어 나오기 때문에 굳이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지만, 상육은 부중(不中)해 지나쳐서 그 뜻을 얻지 못하고 군사를 부리게 된다. 읍국(邑國)은 한 나라 안의 영지를 말하기에 자기 자신을 다스린다는 의미도 있다. 상육이 효변하면 간위산(艮爲山)이 된다. 그쳐야 할 때 그치는 것은 자기 분수를 알기 때문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그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거나 욕심 때문이다. 상구는 그 마침에 있음에도 돈독하게 그치니 길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