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강변의 봄놀이
서동애
미세먼지와 황사로 뿌옇던 하늘이 맑게 개었다. 창문 너머로 옆집 키 큰 라일락 보랏빛 향기가 작은 바람결에 나풀나풀 왔다. 난 다른 날 보다 서둘러 출근길을 나섰다.
독서 수업하는 지역아동센터는 집에서 짧은 거리지만 두어 번 환승을 해야 한다. 한강 변에 있는 흑석동에서 내려 환승을 하지 않고 걸었다. 길 가 아파트 입구에는 홍 단풍나무의 가녀린 잎이 햇살에 더욱 붉어져 가을 단풍처럼 곱다. 며칠 전부터 움트던 은행나무 잎도 제법 연둣빛을 지녔다.
한강의 봄은 어느 쯤 인가 궁금하여 효사정을 오르는 가파른 계단을 서너 개 오르다 접었다. 효사정에는 낮에도 혼자 가면 안 된다는 흑석동 사는 문우가 했던 말이 스쳤다. 큰길 옆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높이 서 있는 효사정 쪽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깊고 음침한 숲속에 있는 효사정(孝思亭 )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조선 시대 정자이다. 세종대에 한성부윤과 우의정을 지냈던 노한 (1376~1443)의 별서(別墅)이며 모친에 대해 그리움을 담아 지금의 한강 변에 세워진 정자이다.
산책로에는 애기똥풀이 노란 꽃을 피웠다. 빨간, 분홍 명자꽃과 돌 틈에는 샛노란 민들레도 꽃이 활짝 피었다. 큰 나무 아래 동작 빠른 민들레는 홀씨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꽃샘추위에 움츠렸던 꽃들이 앞다투어 꽃 자랑 대열에 합류했다. 백옥 같은 깨끗한 하얀 철쭉, 분홍철쭉, 붉은 철쭉나무의 저마다 고운 자태를 어느 유명한 화가는 ‘그 아름다운 색깔의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까?’ 했다는데 자연의 섭리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작은 고갯길을 오르자 눈앞에 아지랑이 모락거리는 한강의 봄 자락 펼쳐졌다. 저 멀리 남산타워가 잡힐 듯이 가깝다. 노들길로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노들강변’ 노래비가 서 있다. 가무에 빠지지 않고 불리는 노래. 나도 그 앞에 서서 한 소절을 불렀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 한 오리를 칭칭 동여서 매어나 볼까?’ 정말 노랫말처럼 주변에는 버드나무의 연녹색 잎이 축축 늘어졌다. 휘휘 늘어진 버들가지 하나를 잡았다. 노랫말처럼 덧없이 가는 세월을 묶을까, 나이를 묶어볼까, 생각해 봐도 딱히 묶을 게 없었다.
건너 노들섬과 연결된 한강 다리 위에는 수많은 차가 오간다. 그 다리 밑으로 작은 보트가 흰 물살을 가르며 지난다. 난 수 없이 불렀던 우리 민요 노들강변 속 봄버들과 만났다는 행복감을 만끽했다. 산책로 중간마다 놓인 간이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한강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깊게 들이마셨다. 속이 시원했다. 키 큰 오동나무에 밤색이 잎이 돋았다. 5 월이 오면 오동나무는 보랏빛 꽃 등불을 환히 밝힐 것이다.
한량처럼 노들강변 화사한 꽃길에 빠져 있다가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어느덧 수업이 임박했다. 버들가지로 묶었던 시간을 풀고 발길을 재촉했다.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