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에 도착하자 날카로운 햇볕이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듯했다. 한국에선 한창 추운 1월인데도 그토록 뜨거운 날씨였다니 정말 낯선 경험이었다.
스페인이 ‘태양의 나라’라는 것을 제대로 실감한 순간. 세비야에 와서야 ‘아, 그래 이게 바로 스페인이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유럽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광장, 스페인 광장 Plaza de España
강변을 따라 걷다가 스페인 광장의 야경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방향을 틀었다. 세비야의 명소들은 모두 걷기 좋은 거리 안에 모여 있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스페인 광장은 일반적인 유럽의 다른 광장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지리적 거점에 자연스럽게 생긴 광장이 아니라 1929년 라틴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13년 전, 배우 김태희가 CF에서 플라멩코를 춘 장소로 유명한 광장도 멋지지만 반원 형태로 광장을 둘러싼 고풍스러운 건축물에 더욱 눈이 가는 게 사실이었다.
9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웅장하고 섬세해서 광장의 분수대를 바라보며 테라스를 걷는 동안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어느덧 해가 완전히 지고,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자 스페인 광장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맹세컨대, 지금까지 내가 본 광장 중에서 이렇게 야경이 아름다운 곳은 없었다.
안달루시아를 관통하는 큰 줄기, 과달키비르 강 Rio Guadalquivir
그라나다에서 기차를 타고 오후 늦게 세비야에 도착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좀 더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산책이나 할 겸 길을 나섰다.
딱히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걷다 보니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강가로 향했다. 낮게 뜬 해는 강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평화롭고 느릿한 유럽의 강가풍경은 여행자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노을빛에 젖어 천천히 카약을 즐기는 청년,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 자전거로 강변을 달리며 웃음을 보내는 젊은이들. 세비야 시민들의 일상을 한 겹 걷어내고 들여다본 기분이랄까.
강은 아랍어의 ‘Wadi al Kebir(큰 강)’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안달루시아에서는 가장 큰 강이니 그런 이름이 붙을 만도 하다. 강가에 위치한 토레 델 오로(황금의 탑)에 오르면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열정적인 가톨릭 축제, ‘세마나산타’를 아시나요?
독실한 기독교 국가인 스페인 사람들은 부활절 직전의 일주일을 ‘세마나산타 (Semana Santa, 성 주간)’라 하여 거룩하게 보낸다.
이 기간에 성모자상과 십자가의 그리스도상, 성모마리아상과 종교화를 실은 행렬이 어마어마하게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이 세마나산타로 가장 유명한 도시가 바로 세비야기 때문에 이 기간에는 전국, 아니 세계 곳곳의 가톨릭 신자와 이 장관을 놓치고 싶지 않은 여행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든다.
이 기간의 세비야 대성당 앞은 엄청난 인파로 그야말로 인산인해. 올해의 세마나산타 기간은 3월 20~27일이다.
세마나산타가 끝난 직후에는 ‘페리아 데 브릴(Feria de Abril)’이라고 하여 화려한 춤과 온갖 퍼포먼스가 펼쳐지는데 많은 여행자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열정적인 축제’로 꼽는 데 망설임이 없다.
세비야의 새로운 랜드마크, 메트로폴 파라솔 Metropol Parasol
2011년 완공된 메트로 폴 파라솔은 엔카르나시 온 광장(Encarnación square)에 설치된 목조 구조물로 세비야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다.
발굴된 로마 유적지를 지상에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세워졌는데 기이하다 할 만큼 독특하고 개성 강한 디자인으로 ‘거대한 팽이버섯’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입장료를 내고 옥상에 올라가면 세비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옥상 위 산책로를 걸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여행 중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스페인 왕족이 살고 있는 곳, 알카자르 Real Alcazar
세비아 대성당과 인접해 있는 성. 콜럼버스와 마젤란을 비롯한 유럽의 탐험가들이 자금을 원조받기 위해 스페인 국왕을 알현하던 곳이다.
스페인이 대항해시대의 첫 포문을 연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슬람 양식은 기본, 고딕이나 르네상스 양식 등 다양한 요소와 결합해 이곳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미로같이 얽힌 수많은 방,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규모를 뽐내는 이슬람식 정원, 은밀한 왕궁의 뒷얘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지하 목욕탕까지….
지금도 알카자르의 일부는 스페인 왕실 가족들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으니 그 스토리는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크고 아름다운 성당 건축의 꽃, 세비야 대성당 Catedral de Sevilla
유럽을 여행할 때 흔하디흔한 것이 성당 건축물이지만 세비야 대성당은 좀 다르다. 바티칸 대성당과 영국의 세인트폴 대성당 다음으로 세 번째로 규모가 크기 때문.
안달루시아 지방의 다른 성당들이 그렇듯 세비야 대성당 또한 8세기에 건설된 모스크 위에 지어졌다. 모스크의 흔적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곳이 세비야 대성당의 랜드마크인 히랄다(Giralda) 탑이다.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미나레트에 28개의 종을 달고 고딕식 지붕을 얹은 것이라고. 그래서 세비야 대성당은 다른 지역의 성당에 비해 찾는 관광객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유명한 성당답게 볼거리는 풍부한 편이다.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제단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기본이고, 유언 때문에 미처 땅에 묻히지 못하고 공중에 들려 있는 콜럼버스의 무덤도 구경할 수 있다.
그러나 비싼 입장료를 내고 이 성당을 찾는 관광객들의 목적은 따로 있다. 34층 높이의 히랄다 탑 꼭대기에 올라가서 세비야의 전경을 보기 위해서다.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즐비한 세비야 시내 풍경은 유럽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물론 34층을 오르는 동안 숨이 턱 끝까지 차겠지만, 확실히 올라가볼 가치가 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미사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스페인어로 진행되지만 세비야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가톨릭 신자라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입장한 관광객이 경건한 예식을 방해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제지하고 있으니 경비원에게 “요 소이 카톨리코(Yo Soy Catolico, 나는 가톨릭 신자예요)”라고 이야기하면 문을 열어줄 것이다.
(출처:에이비로드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