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하나가 되는 것의 의미
마가복음 10장 6-9절에서『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여기에서『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 부분을 헬라어로 보면, ἀπὸ δὲ ἀρχῆς κτίσεως ἄρσεν καὶ θῆλυ ἐποίησεν αὐτούς 여기에서, ἀπὸ(아포: ~으로 부터) δὲ(데:접속사) ἀρχῆς(아르케:첫째되는) κτίσεως(크리데오스:창조물의). 이것을 다시 한글로 다시 번역하면, “첫째 되는 창조물로부터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으니”라고 해야된다. 첫째되는 창조물은 아담(사람)인 것이다. 남자도 아담, 사람도 아담으로 되어있으므로 번역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사람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사람(아담)에게서 여자(갈비뼈)를 분리해내셨으므로, 그 사람(아담)이 남자(아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첫사람은 남녀가 되기 전의 사람인 것이다.
창세기 2장 21-23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이샤)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이쉬)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장 21절, 22절, 23절의 아담은 이름의 아담이 아니라 사람(아담)이라 해야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깊히 잠들게 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취하신 그 갈비대로”, 라고 번역해야만 한다.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이 부분도 히브리어를 보면, 이샤(여자) 키(~즉) 메이쉬(남자에게로) 루카하(취하여졌다) 조트(이 여자를) 그래서 이 부분을 다시 번역하면, 『이것(여자)이 남자에게로 취하여졌기 때문에 여자라 불러질 것이다.』메이쉬를 문법적으로 분석하며, 메는 민이라는 전치사(방향을 의미)의 생략형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남자와 여자로 분리된 것을 강조한다. 사람은 첫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상징한다. 그리고 남자(그리스도)와 여자(범죄한 천사의 영)는 사람으로부터 분리된 자들을 의미한다. 곧 여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범죄한 천사의 영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세상에 갇혔는데, 회개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은 창세기 2장 24절에서『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이샤)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여기에서, 부모는 하나님이시다. 남자는 그리스도, 아내라고 번역되었지만, 이샤(여자)이다. 여자는 하나님을 떠난 범죄한 영을 의미한다.
이것은 신약성경 에베소서에서도 같은 의미로 강조되고 있다.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안드로포스: ἄνθρωπος)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귀나이카: γυναῖκα)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안드로포스는 사람 또는 남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는 남자로 번역함이 타당할 것이다. 귀나이카(기본형은 귀네)는 여성 또는 부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여자로 번역함이 타당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창세기 2장 24절의 의미와 같아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교회는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의미한다. 성도는 원래 하나님을 떠난 자(영이 흙과 결합된 존재)였는데, 그리스도를 만나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하나님을 떠났다가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가 되었는데, 다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신도가 율법 속에 있다가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 율법 속에서 희생제물을 통하여 그리스도(복음)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것을 믿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는데, 그리스도를 떠나 다시 율법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이제 복음 속에 있는 자를 받아드렸는데, 어떻게 인간이 이 복음을 거부하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만일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는 자가 있다면, 그는 복음의 의미를 잘 모르는 자일 것이다. 스스로 복음을 받아드렸다고 믿지만, 의미도 모른채 말로만 믿는 것이다.
마가복음 10장 2-5절에서『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모세가 써 준 이혼증서는 율법을 의미한다. 영적 이혼은 하나님의 복음을 떠나 율법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 속으로 들어가는 자는 마음이 완악한 자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천국을 이룬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는 말이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는데, 율법을 따르는 것은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이다. 마태복음 7장 6절『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개라고 표현할 때, 개의 습성을 나타낸다. 잠언 26장 11절에서『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이 말은 율법에서 자유함을 주었는데, 다시 율법에 얽매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빌립보서 3장 2절에서『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몸을 상해하는 일은 율법에 따라 육체에 할례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개와 행악 자와 육체에 할례를 받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율법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을 말한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에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율법에 대해서 다 죽었는데, 다시 율법을 적용받으려고 한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무시하는 개와 같은 자들이 되는 것이다.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팔아서, 값을 주고 사는 교회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지만, 여전히 율법을 따르려고 하며, 죄 가운데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을 개와 돼지라고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가 사해졌지만, 율법에 근거해서 다시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판단해서 거룩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그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개, 돼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개와 돼지들이 교회(복음의 성도)를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율법을 신봉하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을 발로 밟고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율법주의자들이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회유하여 다시 유대교로 돌이키도록 한 것이다. 그들이 핍박과 회유를 해서 성도들을 괴롭혔다.
오늘날 교회에서 율법주의로 회귀하는 사례가 많다. 십일조가 의무조건이라든가,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현혹하고, 주일성수를 고집하고, 안식일을 지켜 행해야 한다거나, 신종 절기를 만들어서 지켜나가야 한다는 등의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 그들은 엄밀히 복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0장 11-12절에서『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다른데 장가가고 시집가는 행위는 복음을 두고 율법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반쪽 복음이라고 한다. 반쪽복음은 죄의 문제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적으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육체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십자가의 죽음만 눈에 들어오고 부활은 믿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남의 일처럼 여긴다.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보혈만 적용되고 부활은 육체가 죽어서 적용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연합되어야 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현재적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인 것이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로마서 6장 3-5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