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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 백제의 옛 도읍지로 뛰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백제문화의 유물·유적이 산재해 있는 문화관광지이다. 부여읍·규암면·은산면·외산면·내산면·구룡면·홍산면·옥산면·남면·충화면·양화면·임천면·장암면·세도면·석성면·초촌면 등 1개읍 15개면 191개 동리가 있다. 군청소재지는 부여읍 동남리이다. 면적 624.80㎢, 인구 85,682(2003), 인구밀도 137.2명/㎢(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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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읍 전경 | 지금의 부여군은 1914년의 군면 폐합 때 옛 부여현·홍산현(鴻山縣)·임천군(林川郡) 전역과 석성현(石城縣) 일부가 통합되어 이루어졌다. 옛 부여현 지역은 부여읍·은산면·규암면·초촌면 등 동북부, 홍산현 지역은 홍산면·외산면·내산면·구룡면·남면·옥산면 등 서북부, 임천군 지역은 임천면·장암면·세도면·충화면·양화면 등 남부, 석성현 지역은 동부인 석성면 일대에 해당한다. 옛 부여현 지역에는 선사시대의 취락지와 많은 청동기 유물·유적이 발견되어 일찍부터 인간의 거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초산국(楚山國)이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고 있으며, 백제 때는 소부리현(所夫里縣 또는 莎比, 泗比)이었다. 백제는 538년(성왕 16)에 웅진(熊津 : 공주)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南扶餘)로 바꾸었다. 이후 660년(의자왕 20)까지 6대 123년 동안 이곳은 백제의 왕도로서 백제문화의 꽃을 피웠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동명주도독부(東明州都督府)를 설치하고 웅진·노신(鹵辛)·구지(久遲)·부림(富林) 등의 영현을 두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신라가 이곳을 장악한 뒤 671년(문무왕 11)에 소부리주(또는 사비주)를 두었으며, 686년(신문왕 6)에 군으로 고쳤다. 757년(경덕왕 16)에 부여군으로 고치고 웅주(熊州 : 공주) 관하에 두었다. 이때 석산(石山 : 지금의 석성면 일대)·열성(悅城 : 지금의 청양군 정산면 일대)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고려시대에는 1018년(현종 9)에 공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태종 13) 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별호는 여주(餘州)였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 공주부 부여군, 1896년 충청남도 부여군이 되었다. 1960년에 부여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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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 | 군의 북쪽·서쪽은 충청남도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차령산맥의 말단부에 해당되는 산지이고, 남쪽·동쪽은 금강 유역의 충적평야와 저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대체로 '북서고남동저'(北西高南東低) 형태의 지세를 보인다. 북서 산지지역에는 성태산(星台山 : 631m)·월명산(月明山 : 544m)·만수산(萬壽山 : 432m)·축융봉(祝融峰 : 455m) 등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의 남동사면은 200m 이하의 저산성 산지로 이루어진 구릉지대를 형성하여 주요 전작지대(田作地帶)를 이룬다. 군의 남동부 지역에서는 백마강(금강)이 부여읍을 감싸며 군의 남쪽 경계를 이루면서 서해로 흘러든다. 북서산지에서 발원하는 은산천(恩山川)·구룡천(九龍川)·금천(金川)·사동천(寺洞川) 등이 주변에 충적평야를 형성하며 금강에 합류된다. 특히 금천과 구룡천이 합류하는 구룡면·규암면·남면 일대에 펼쳐진 구룡평야·남면평야는 군내의 대표적인 쌀 생산지이다. 연평균기온 11.4℃ 내외, 1월평균기온 -2.2℃ 내외, 8월평균기온 26.2℃ 내외이고, 연평균강수량은 1,326.2㎜ 정도이다. 식생이 풍부한 편은 아니며 활엽수림대에 속한다. 주로 소나무·참나무·느티나무·팽나무·단풍나무 등이 자라며 100여 종의 약용식물이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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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읍 군청 앞 중심가 | 인구감소 현상이 계속 심화되고 있는 지역이다. 1960년대 중반까지 안정적으로 증가하여 1964년 19만 5,843명의 최대 인구를 기록한 이후, 부여읍을 제외한 전체 면지역에서 인구이출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1970년에 17만 4,984명, 1980년 15만 3,817명으로 1970~80년에 약 12%가 감소했으며, 1996년에는 10만 869명으로 1980~96년에 전체 면지역에서 감소현상이 더욱 심화되어 약 34.4%의 감소율을 보였다. 그러나 부여읍은 계속 인구가 증가하여 현재 군 전체인구의 29.7%가 부여읍에 거주하고 있다. 인구이동은 전입 7,152명, 전출 9,620명(1996)으로 전출이 전체 이동인구의 57.3%를 차지하며, 주로 군내의 부여읍과 대전·서울 등 대도시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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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포린 부여공장, 충남 부여군 석성면 증산리 | 경지면적이 204.60㎢로 경지율은 32.8%이며, 그 가운데 논이 154.91㎢, 밭이 49.69㎢(1996)로 논이 전체 농경지의 75.7%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농산물은 쌀·인삼·담배·고등채소 등이며, 특히 인삼·담배 등의 특용작물 재배면적이 증가하고 있다. 인삼은 규암면·구룡면·홍산면 일대가 재배 중심지이며, 담배는 임천면·은산면·양화면에서 많이 생산된다. 수박·토마토·채소류는 금강 주변에서 주로 생산되며, 임천면은 서천군의 한산(韓山)과 함께 모시생산으로 유명하다. 임야는 군 전체면적의 51.9%를 차지하며, 충청남도 제1의 밤 생산지이다. 축산업은 한우사육농가 육성책에 힘입어 한우사육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최근에는 부여읍을 중심으로 젖소사육도 늘고 있다. 현재 3개의 광산이 가동중이며 외산면·홍산면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주로 서천화력발전소에 공급된다. 군내에 128개의 공장이 입지하고 있으나 대부분 중소규모이다. 1978년 부여읍에서 규암면으로 신축·이전된 고려홍삼창(高麗紅蔘廠)에서 홍삼제품을 특수가공하여 수출하고 있으며, 1986년 석성면에 한국타포린 부여공장이 설립되어 합성수지제품(천막지)을 생산하고 있다. 상업은 예로부터 모시거래를 주로 하는 은산장·신기장·임천장 등이 유명하고, 1950년대 이후 각 면단위로 정기시장이 개설되어 20여 년간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부여읍에 상설시장이 설립되고 상가 및 교통이 발달함에 따라 현재는 4개의 정기시장만이 남아 있으며 부여장을 제외하고는 그 기능이 쇠퇴하고 있다. 해방 전부터 유명하던 부여군 일대의 가축시장들은 1981년 부여읍 구교리로 통합·이전되었다.
대전-장항을 잇는 국도가 군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홍성-김제, 보령-공주를 잇는 국도와 교차한다. 따라서 논산·공주·예산·장항·청양 방면으로의 교통이 편리하다. 또한 논산시를 지나는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과 연결되며 서울까지는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도로총길이 344km, 도로포장률 78.8%이다(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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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능산리고분군, 사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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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산리고분의 비운문과 연화문(백제 7세기), 충남 부여군 | 백제문화가 꽃피었던 부여군은 풍부한 유물·유적과 주변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룬 관광지이다. 국가지정문화재(국보 4, 보물 13, 명승 1, 천연기념물 1, 사적 14, 중요민속자료 3, 중요무형문화재 1),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21, 무형문화재 2, 기념물 21, 민속자료 1), 문화재자료 37점, 기타 문화재 15점이 있다. 선사시대 유적으로 송국리선사취락지(松菊里先史聚落址 : 사적 제249호)를 비롯하여 군내 곳곳에 지석묘와 청동기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백제시대 유적으로 능산리고분군(陵山里古墳群 : 사적 제14호)·태양리석실고분(太陽里石室古墳) 등의 고분과 성흥산성(聖興山城 : 사적 제4호)·부소산성(扶蘇山城 : 사적 제5호)·청마산성(靑馬山城 : 사적 제34호) 등 다수의 산성이 있으며, 그밖에 쌍북리요지(雙北里窯址 : 사적 제99호)·궁남지(宮南池 : 사적 제135호) 등 많은 유적지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부여읍의 정림사지(定林寺址 : 사적 제301호)·정림사지5층석탑(국보 제9호)·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석불좌상(石佛坐像 : 보물 제108호)이 있으며, 보광사대보광선사비(普光寺大普光禪師碑 : 보물 제107호)·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大鳥寺石造彌勒菩薩立像 : 보물 제217호)·무량사(無量寺) 극락전(極樂殿 : 보물 제356호)·5층석탑(보물 제185호)·석등(보물 제233호)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부여향교(扶餘鄕校)를 비롯한 석성향교·홍산향교·임천향교 등 4개 향교의 대성전(大成殿)과 칠산서원(七山書院)·의열사(義烈祠)·삼충사(三忠祠) 등이 있으며, 그밖에 홍산보부상유품(鴻山褓負商遺品 : 중요민속자료 제30호)·은산별신제(恩山別神祭 :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내산면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20호) 등이 있다. 전국 10대 관광권 중 하나인 부여군은 널리 알려진 부여8경과 함께 수많은 유물·유적이 있고 금강과 외곽지역의 유서 깊은 절과 명산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1983년 부여읍의 구두래지역이 국민관광지로 선정되고, 1984년 사적 및 명승 제6호로 지정되었으며, 1985년에는 국토순례보도시설이 완공되었다. 이와 함께 중서부 고도문화유적개발(古都文化遺蹟開發) 10개년계획이 완료되어 관광사업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며, 매년 내·외국인 관광객수가 증가하고 있다. 1996년 현재 연 관광객수는 약 140만 명이며 관광수입은 83억 7,100만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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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사석조보살입상(고려), 보물 제217호, 높이 10m, 충남 부여군 임천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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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사적 제5호)의 군창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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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5층석탑(백제), 국보 제9호, 높이 833cm, 충남 부여군 부여읍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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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영정, 충남 유형문화재 제64호, 충남 부여군 외산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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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향교,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 삼국시대 이래로 오랜 교육전통을 지녀온 부여군의 전통 교육기관으로는 조선시대의 부여향교 등 4개의 향교와 칠산서원·부산서원 등 다수의 서원과 서당이 있었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0년대초에 민족계 사립학교인 신명의숙(信明義塾)이 설립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고 공립보통학교에 흡수되었다. 1996년 현재 유치원 49개소, 초등학교 37개교(분교 7개교 포함), 중학교 13개교(분교 1개교 포함), 고등학교 5개교가 있다. 1954년 창립된 부여문화원은 향토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한 각종 행사와 전시회 등을 개최하고 부여박물관회와 백제사적연구회에서는 유물·유적들을 연구·발굴하는 등 전통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충청남도 주최로 부여와 공주에서 각각 격년으로 백제문화제가 열리는데 문화예술행사·민속행사 등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지며, 은산별신제보존협회 주관으로 3년마다 은산별신제가 벌어진다. 그밖에 민속놀이로는 동화(洞火)놀이, 원당산부녀자등산놀이, 두레농악 등이 있으며, 설화로는 〈백마강 위어(葦魚)〉·〈복신장군과 은 산〉·〈삼강연(三綱淵)전설〉 등이 알려져 있다. 민요로는 〈산유화가〉·〈달노래〉·〈상여소리〉 등이 전해진다. 1996년 현재 종교기관으로는 개신교 교회 176개소, 천주교 교회 8개소, 불교 사찰 39개소, 유교 교당 4개소, 원불교 교당 1개소가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병원 2개소, 의원 18개소, 치과의원 9개소, 한의원 8개소, 조산소 1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16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 삼신보육원과 12개소의 보육시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