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 청도의 귀신 이야기
원정리 '귀신(鬼神) 무덤' 전설
야간에 경부선 열차를 타고 청도를 지나다 보면 화양읍 삼신리 부근에 사계절 화려한 전등을 밝혀 빛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 국내 유일의 프로방스 포토 랜드를 볼 수 있다.
여기는 6만 500㎡ 면적을 프랑스의 프로방스 마을을 모델로 공원을 조성하였고, 특히 밤에는 전역에 1천만 개 이상의 LED 조명이 은하수처럼 상시로 조명 쇼를 연출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청도에 살면서 아직 여기에 가보질 못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아내가 밤 나들이를 좋아하지 않고, 김해 사는 아이들은 주말 밖에 시간을 낼 수 없어 언젠가 한 번 밤에 마음먹고 아들 내외와 함께 찾아갔다가 마땅한 주차공간을 찾지 못해 그냥 돌아온 후, 혼자 뻘쭘하게 다시 가 볼 수도 없어 기회를 엿보고 있는 참이다.
내가 프로방스에 꼭 가봐야 할 이유는 그 화려한 조명의 장관도 보고 싶지만, 여기에 ‘귀신 열차’가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유의 놀이 시설에는 입가에 피를 흘리는 소복한 여인이 음산한 조명과 함께 괴성을 내면서 등장하거나 도깨비 같은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는 등의 천편일률적인 내용이기 마련이고, 조금 발전된 시설은 관람객의 종아리나 목덜미 등을 촉감으로 느끼게 하기도 하는데 능히 예감할 수 있는 뻔한 내용임에도 요즈음 같은 한여름에는 더위를 식히기 충분할 정도의 오싹함을 느낄 수 있다.
프로방스가 우리 고장 청도의 태마 랜드로 개장한 것은 1996년이었고, 2012년 새롭게 재개장하여 지금은 청도의 대표적임 관광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풍의 분위기가 이채롭기는 하나 청도의 전통적인 태마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런 것이 있는가 해서 가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고장의 대표적인 전설 원정리 ‘귀신 무덤’ 이야기가 프로방스의 귀신 열차 납량 소재로는 제격인 듯싶어 시설 운영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청도읍 원정리는 내가 사는 매전면에서 덕산리 곰티 터널을 지나면 부야리 다음 마을이고, 송원리 건티 고개를 넘으면 바로 전설의 현장에 다다른다.
이 이야기는 ‘내 고장 전통문화(1981년)’ ‘청도군지(1991년)’ ‘대한민국 구석구석(2010년)’ ‘디지털청도문화대전(2013년)’등 여러 곳에 실려 있으나 그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 이 가운데도 ‘디지털청도문화대전’에 실린 영남대학교 박유미 교수의 글이 가장 잘 정돈된 것 같아 다음과 같이 본문 그대로 옮긴다.
귀신(鬼神) 무덤-박유미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정리 뒷산에는 한때 무덤 터였던 곳이 있다. 옛날 한 나무꾼 총각이 원정리 뒷산에 나무하러 갔으나 하도 고단하여 양지바른 곳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한참을 곤히 잠을 자다 깜짝 놀라 깨어 보니 벌써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총각은 급히 나무를 하기 시작하였지만, 나뭇짐 한 짐을 지게에 얹을 때쯤에는 사방이 캄캄하였다.
총각은 나뭇짐을 메고 한시라도 빨리 마을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총각이 괴이하게 여겨 다리를 내려다보니 누군가가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총각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 자리에 조금 전까지 없던 무덤이 있고, 그 무덤에서 나왔는지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총각의 다리를 붙들고 있었다. 총각은 놀라고 소름이 끼쳤으나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때 소복을 입은 여자가 가냘픈 음성으로 “살려 주세요.”라고 간청하였다. 총각은 다시 한 번 정신을 바짝 차리고 뒤를 돌았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보이던 귀신이 보이지 않았다.
총각은 나뭇짐을 팽개치고 그길로 마을로 뛰어 내려와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총각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한 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아침 일찍 산으로 올라가 나무를 하던 곳으로 가 보았다. 하지만 나뭇짐만 있을 뿐 어제 본 무덤은 온데간데없었다. 총각은 자신이 너무 무서워서 헛것을 보았나 하고 나뭇짐을 챙겨 마을로 내려왔다. 총각은 귀신을 본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에게는 하지 않았다. 괜한 놀림감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어느 날 밤 온 마을이 시끌벅적해졌다. 총각이 뛰쳐나가 보니 총각의 친구인 다른 나무꾼이 산에 올라가 밤이 깊었는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산으로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총각도 사람들을 따라 산을 올라갔다. 총각이 전에 귀신을 본 자리에 가보니 친구인 나무꾼이 그 자리에 넘어져 기절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깨우며 온몸을 주물러 주자 나무꾼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나무꾼은 정신을 차리고서도 한동안 “당신은 누구요? 당신은 누구요?” 하고 헛소리만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꾼을 업고 마을에 내려온 뒤 방에 눕히고 미음을 끓여 먹였다. 겨우 제정신을 차린 나무꾼은 몇 달 전 총각과 당한 일과 똑같은 일을 당하였다고 하였다. 알고 보니 똑같은 변을 당한 사람이 마을에 마흔다섯 명이나 되었다. 그 후 모두가 겁이 나 그 자리를 귀신 무덤이라 하고 뒷산에는 아무도 나무하러 가지 않았다고 한다.
박유미 교수가 분석하는 이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원귀(冤鬼)의 출현’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원정리 뒷산에는 누구도 나무하러 가면 안 된다는 금기를 내포하고, ‘살려 주세요.’라는 귀신의 목소리를 통해 억울한 여자의 한이 서려 있다는 사실이 실감을 더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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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에 가봤는데-시원한 그늘 먹거리도 있고 손자들 댈고 놀기 좋았습니다-
원정리면 온막리 출신 식성군 이운룡 장군의 후손들이 많이 사시는 동네네요
그 옛날은 최단거리 산길로 다녔기 때문에...온막 호방 장연동 용전등 청도읍 갈려면...온막뒷산 월봉산(달뱅이)---바깥서나무---안서나무---삭고개---원정리 부야로 갔습니다. 이운룡장군 선조도 이길을 따라서 명대로 오지 않았나 추측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