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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디모데전서 2:1~4)
최광희 목사
시작하는 말
지난 5월에는 한 달 동안 가정을 말씀위에 세우려고 말씀도 전하고 기도해왔습니다. 가정이 평안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제대로 안 되죠. 그런데 가정만 평안해서는 안 되고 우리나라도 잘 되어야 합니다. 온 동네 물난리가 나면 우리집도 안전할 수 없듯이 나라가 잘 되어야 우리가정이 평안합니다. 이번 6월에는 현충일도 있고 13일 지방선거도 있고 또 북미회담은 어떻게 진행될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요즘 전 세계 경제가 호황인데 우리나라만 경제가 많이 침체되었다고 합니다. 혹자는 이것이 문재인 정부 1년간의 성적표라고 말하고 또 혹자는 이명박근혜 9년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과연 어느 말이 옳은지 각자 생각은 있겠지요.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런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토론을 잘 못해요. 토론을 할 때 의견이 다르면 상대방이 내 인격을 공격한다고 느낍니다. 자칫하면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워진 후에 대통령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대통령과 정부에 불평이 많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헷갈립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우리 성도들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다행스럽게도 성경에는 우리의 이런 고민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으로부터 답을 얻고 크리스천 시민으로서 성경적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통치자를 위해 기도하라
2016년 3월에 저는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와 박근혜대통령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저를 보고 수구 골통 적폐라고 할 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2018년 3월에도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서 대한민국과 문재인대통령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둘 중에 한 명만 축복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저와 용인의 여러 목사들은 양쪽 다 참석했습니다.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서 저는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의 말씀을 보니 좀 더 마음을 다해 그들을 축복했어야 했습니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2:1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어서 2절에서 기도를 하되 특히 임금들과 높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J. Calvin도 말했지만 바울 시대의 임금들 즉 황제들은 대부분 박해자이며 교회의 원수들입니다. 그런 황제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좋은 일일까요? 여기서 황제를 ’위하여‘ 라는 말이 혹시 다른 뜻일까요? 영어에서 for는 '위하여'와 '때문에' 두 가지 뜻이 다 있습니다. 혹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 때문에 기도하라는 말일까요? 즉 박해하는 황제가 속히 망하도록 기도하라는 뜻일까요? 그런데 로마서 12:14을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롬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여기서 바울은 뜻밖에도 박해하는 황제를 축복하라고 합니다.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예레미야 29:7을 보면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유다인들에게 잡혀간 그 나라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다. 바벨론은 유다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허물었습니다. 그 악인들의 나라가 망하도록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평안하도록 기도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가 평안해야 너희도 평안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다가 망해도, 예루살렘이 무너져도 적국에 끌려가도 평안하게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유
디모데전서 2:3에서는 황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합니다. 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를 죽이는 황제를 축복하며 기도하는 것이 왜 선한 일일까요? 하나님은 왜 그런 황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4절에 나와 있는데 한글 성경을 보면 3절과 4절의 연결성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헬라어 원문의 구조를 가장 잘 드러낸 번역은 NIV인데 스마트폰에서 NIV를 찾아서 3절과 4절을 큰 소리로 읽어주세요.
(딤전 2:3) This is good, and pleases God our Savior, (딤전 2:4) who wants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to a knowledge of the truth.
여기서 4절은 3절의 'God our Savior'를 수식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진리를 알기 원하시는 분이라고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받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한 명이라도 더 하나님을 알고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한 명이라도 더 하나님을 알고 구원받으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 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바울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바울보다 자기들이 전도 실적을 더 올리려고 전도하다니 얼마나 괘씸합니까? 그런데 바울은 울분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동기로 하나 불순한 동기로 하나 전도만 되면 기뻐하고 또 기뻐한답니다.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히거나 맞아 죽어도 전도만 더 잘 되면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을 바울은 알았습니다. 옛날, 스데반이 억울하게 죽었지만 전도는 더 잘 되었죠.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지금 바울이 억울하게 갇혔는데 전도가 잘 되었죠.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스데반이나 바울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억울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도 억울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억울한 재판을 받고 가장 고통스럽게 죽으셨지만 그렇게 해서 인류를 구원하므로 하나님은 그것을 좋아하십니다. 예수님 자신도 그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잠깐만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악한 통치자들을 다 망하게 하시고도 전도가 잘 되게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맞아요.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고 제 생각에도 제발 그렇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선교사들이 고생하고 맞아 죽도록 하지 말고 어디서나 대우받으면서 전도가 잘 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파선(破船)되어 멜리데에 도착했을 때의 일입니다. 바울이 모닥불에 장작을 집어넣다가 뱀에 물렸습니다. 섬사람들은 바울이 신의 노여움을 샀다고 생각하며 죽을 거라고 했는데 바울은 붓지도 않고 멀쩡했습니다. 또 추장의 아버지와 여러 사람의 병을 고쳐주고 대접도 잘 받고 전도도 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이 이상하게도 항상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 안 하실까요? 그거야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나중에 천국에 가면 다 알게 됩니다. 천국에 가면 악한 통치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완전한 통치자 예수님이 영원히 왕 노릇하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맘에 안 들어도 우리의 통치자를 축복하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로마서 13:1에서는 모든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네로 황제도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3:3에서는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12:14 박해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합니다. 참 이상하죠. 교회의 원수인 박해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면 교회가 망하라는 말일까요?
우리나라의 불교가 우상숭배를 조장하고 거짓 교리를 가르쳐도 망하지 않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말인가 했더니 성도들이 기도할 때 ’절망하지 않게 하소서‘ 하기 때문에 절이 망하지 않는다네요. 이건 농담입니다.
그런데 설마 하나님은 교회가 망하는 것을 원하셔서 박해자를 축복하라고 하실까요? 그러나 그렇게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너무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판단력이 없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축복하며 기도하는 것이고 그 기도를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제가 마태복음에서 찾았습니다.
복이 되돌아오리라
마태복음 10:12~13에 보면 예수님께서 전도자를 파송하실 때 전도자가 어떤 집에 들어가든지 그 집에 평안을 빌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이 합당하면 그 평안이 그 집에 임할 것이지만 만일 합당하지 않으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박해자를 축복하라는 말과 연결시켜 봅시다. 우리가 어떤 통치자를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통치자가 기독교의 원수라고 생각해보세요. 그 통치자에게는 축복이 합당하지 않겠죠. 그렇다면 성도의 축복이 그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축복은 어디로 갑니까? 그가 받지 못하면 축복한 성도에게 되돌아옵니다.
한번은 제가 어떤 목사에게 카카오뱅크에서 축의금을 보냈는데 그 목사가 고맙다고 해 놓고는 그냥 두었습니다. 그리고 24시간 후에 그 돈이 저에게 돌아와 버렸습니다. 자기 계좌를 입력해야 하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설명해준 후에 다시 보내주었습니다. 만일 설명해 주지 않으면 그 분은 내 돈을 받지도 못하고 받은 줄 알고 있겠죠. 나중에 그분이 혼자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분명히 돈을 받았는데 돈이 어디로 갔지?”
카뱅에서 돈을 보냈는데 상대방이 못 받으니 내게 돌아오듯이 악한 통치자를 위한 축복은 그가 받기에 합당하지 않으면 그 축복이 내게 돌아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통치자가 악하든지 선하든지 걱정하지 말고 축복하면 됩니다. 그가 복을 받기에 합당한지 어떤지 판단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카뱅회사가 실수로 이체완료하지 않듯이 하나님이 실수로 악한 자에게 복을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재판 받을 때 악한 대제사장이나 빌라도 총독을 저주할 수도 있었습니다. “너희 대제사장들, 빌라도 당신, 나한테 그런 짓하면 영원히 저주할거야.”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예수님의 첫 마디는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23:5에서 바울이 재판을 받는 중에 자기 입을 때리라고 하는 사람에게 위선자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감히 대제사장을 향해 함부로 말한다고 나무랐습니다. 그때 바울은 즉시 대제사장을 비난한 것을 취소하며 그가 대제사장인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성경에도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했는데 그 성경은 바로 출애굽기 22:28입니다. (출 22:28) 너희는 재판장을 욕하거나 너희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마라.
축복이 전도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처럼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있을 때도 통치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면 이제 우리는 나라뿐 아니라 학교, 회사, 가정 등으로 바꾸어 생각해보겠습니다. 가정의 부모님이 설령 어리석더라도 축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온 가족이 평안합니다.
학교 선생이나 회사의 사장 혹은 상사가 참 못 됐고, 무책임하고, 나의 신앙생활을 방해한다면 그를 미워하고 욕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를 마음껏 축복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축복하는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언젠가 그 사장/ 상사가 회개하면 여러분 보다 더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울은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지마 그가 변하여 사도 바울이 된 이유는 스데반의 기도 때문입니다.
(행 7: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행 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요즘 지방선거 운동기간입니다. 이 기간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더 좋은 후보가 당선되도록 기도하세요. 그러나 일단 누구든지 당선되고 나면 그를 축복하며 기도하세요. 물론 크리스천도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국민으로서 사실에 근거하여 정당한 비판은 할 수 있습니다. 제발 정의가 서도록 기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로 지도자를 비난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닙니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하신 하나님은 그런 욕설과 저주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마치는 말
성도 여러분은 통치자와 높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도지사, 시장,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구청장을 축복하며 기도하세요. 그리고 학교의 선생님과 교장, 회사의 사장과 상사, 가정의 가장을 축복하세요. 특별히 교회의 담임목사를 축복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저주하지 말고 마음껏 축복하세요.
혹시 내가 축복해서 그들이 평안하고 형통해서 못된 짓을 더 많이 하면 어쩌나 걱정하지 마세요. 축복이 그에게 합당하지 않으면 그 축복이 내게 되돌아온다고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기왕이면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 통치자로 세워지면 좋겠죠.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통치자가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축복하고 기도하세요. 그럴 때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첫댓글 물론 다윗에게 나단이 있었고 헤롯에게 세례요한이 있었듯이 직언할 사람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신정국가가 아닌 세속국가이기에 나단보다 세례요한이 필요하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직언하고 죽었다. 모든 성도가 세례요한은 아니기에 바울의 말은 대다수의 성도에게 한 교훈이다. 임금을 축복하고 기도하라는 말은 정치와 종교가 결탁하라는 말도 아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고 축복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