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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3 일 토요일 설악산 화채능선
한계령 (03:00) – 대청봉 ( 06:00) – 만경대 (10:00) – 화채봉 (11:40) – 토왕성폭포 상단 ( 14:00) – 설악동 C지구 (16:30)
반더룽 산악회 : 29,000 원
현오 권태화 그리고 하치윤 씨 동행
산행거리 : 약 20 km 산행시간 : 약 13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217795
거리 20.8 km
소요 시간 13h 26m 46s
이동 시간 10h 45m 27s
휴식 시간 2h 41m 19s
평균 속도 1.9 km/h
최고점 1,737 m
총 획득고도 1,657 m
난이도 힘듦
프로로그
금지된 장난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쾌감을 제공한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살다 보면 법으로 금지한 행위를 하고 싶은 경우도 많이 생긴다. 대부분 불법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 자제하면서도 어떤 때는 그 법을 어기더라도 꼭 해보고 싶다는 구미가 땡긴다.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산행을 하면서 왠만한 산에는 다 올라 보았다. 경사가 급하고 높이가 높아 오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드는 곳이라도 무박으로 극복하면서 찾아 다녔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산을 찾아 다니면서 수려한 경관을 감상하고 산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산행을 하다 보니 전국 수많은 산들이 휴식년이라는 명목으로 또는 국립공원 관리법 등으로 탐방을 금지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남이 개인적으로 가꾸는 농작물을 훔치는 일 말고는 등산목적으로 가지 못할 곳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처럼 입산 자체를 제한하는 곳이 많은 것을 보고 저으기 놀람을 금치 못한다. 더구나 이렇게 입산을 제한하는 곳은 대부분 풍광이 수려하기로 유명한 곳이니 법을 어기고서라도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산행기
지난 번 지리산에서 만난 현오 권태호님이 화채능선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지난번 산행할 때 내가 설악산과 지리산의 비경지(秘境地)에는 탐방이 금지된 곳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미 현오는 그런 비탐구역을 대부분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 때 나눈 대화를 기억하고 본인이 잘 알고 있는 코스를 안내해 줄 생각을 했나 보다. 고마운 마음에 얼른 회신하고 산악회에 신청을 해 놓았다.
금요일 밤 자정에 복정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다. 모두 이맘때면 불타오르는 설악의 단풍을 보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이다. 2년전인 2016년 10월 초에 설악의 공룡능선을 처음 걸은 이후 나는 그 멋진 풍경에 매료되었다.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바위산이 생기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해는 뒷전으로 치워두고 어마어마한 암봉들이 깊은 골짜기를 만들면서 삐죽 삐죽 솟아 있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경외였다. 그리고 다니는 길가에 피어 있는 야생화는 그런 신비감을 더해준다.
설악산 무박산행을 갈 때 늘 들리는 휴게소가 철정 설악휴게소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관광버스가 이곳에서 대기 했다가 설악산 문을 여는 3시에 임박하여 출발한다. 산객들은 이곳에서 이른 아침밥을 먹기도 하고 필요한 산행장비(랜턴, 장갑, 모자 등)를 사기도 한다. 현오님과 아침을 먹으러 휴게소 식당에 들어가 황태해장국을 시켜 먹는데 산꾼들에게 얼굴이 많이 알려진 현오님과 알고 있는 한 분이 테이블에 동석한다. 우리와 같은 버스로 혼자 왔는데 원래 계획은 한계령에서 12 선녀 계곡을 거쳐 남교리로 하산하는 것이라 한다. 화채봉을 훔치려는 우리 계획을 듣고 반색을 하며 동행하기로 계획을 변경한다.
오전 3시 임박하여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하여 일부 회원들을 내려주고 오색탐방소에 가까이 다가 가자 버스는 옴짝달싹 못하고 탐방소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내려준다. 버스의 헤드라이트와 산객들의 랜턴 불빛으로 설악산 입구는 불야성을 이룬다. 간단한 채비를 갖추고 방금 열린 매표소 입구로 들어서니 앞서 들어간 산객들의 행렬이 명절 때 고속도로처럼 정체다. 앞사람이 한 발짝 움직이면 나도 따라 그 만큼 나아갈 수 있다. 모든이가 머리에 또는 손에 전등을 착용하고 이렇게 긴 행렬을 이루고 움직이는 모습은 단풍철 설악산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귀한 광경이다.
도중에 힘에 부쳐서 길옆으로 비껴 서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올라가는 행렬이 조금씩 수월해진다. 수량이 풍부한지 큰 소리로 떨어지는 설악폭포 물소리가 들릴 때쯤이나 되어서야 우리 앞 뒤 간격이 조금 헐거워졌다. 보통 선두에 서서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면서 빠른 걸음으로 오르면 2시간만에 도달하는 정상인데 인파에 막혀 걷다 보니 3시간 걸려서 6시에 대청봉에 닿았다. 앞서 올라온 사람들이 정상석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으려 장사진을 치고 있다. 속초시 너머 동해 바다 수평선에 구름이 붉게 물들었다.
전날 설악산에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떨어졌다는 뉴스를 접하고 옷을 두텁게 입고 왔는데 생각보다 포근하다. 올라올 때는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왔으나 정상에는 조금 찬기운이 돌아 파카를 입기에 적당하다. 맑은 날시에 조망도 무척 좋은 편이다. 조금 기다리면 해가 완전히 올라올 것 같은데 우리가 오늘 목표로 삼은것이 일출이 아니므로 우리는 해가 수평선 위로 머리를 빼꼼이 내밀 때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금단의 땅으로 발을 디뎠다.
키작은 나뭇가지가 맨손을 할킨다. 저 앞에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데 선두에 선 현오님이 그 앞쪽으로 인도한다. 뒤에 선 치윤님과 나는 그저 앞만 보고 따를 뿐이다. 밤새 내린 이슬이 얼어 마른 풀과 맨땅에는 성애가 하햫게 끼어 있다. 산불 감시초소 앞에는 출입금지 팻말이 땅에 넘어져 있다. 우리는 초소를 지나자 마자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철조망을 넘었다.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그동안 숱한 불법 탐방꾼들이 드나들었슴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느 산길 못지 않게 뚜렸하게 보인다.
산길따라 조금 내려와 숲에 가려진 곳에 다달아서야 우리는 한숨 돌리고 머리를 드니 동해에서 올라 온 햇살이 대낮같이 밝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제 산행을 시작했을 뿐인데도 우리는 완전범죄를 저지른 듯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첫번째 조망바위에 올라서서 방금 전까지 우리가 서 있었던 대청을 올려다 보고 신선대에서 시작하여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공룡능선을 바라보고 또 앞으로 가야 할 화채능선과 그 옆으로 펼쳐진 천불동 계곡의 신비스런 암봉들을 감상했다. 처음 중청에서 공룡능선을 내려다 보았을 때의 큰 감동이 다시 한 번 더욱 크게 가슴으로 밀려 온다. 마치 거장이 손으로 빚어 놓은 것 같이 오밀조밀 솟아 있는 바위 봉우리가 눈앞에 가까이 펼쳐진다.
첫번째 조망처에서 올려다 본 대청봉 방향
화채능선
신선대와 공룡능선 그리고 그 위로 황철봉
안내 산악회를 이용하면 정해진 시간안에 버스 탑승장소에 도착해야 한다. 이번 설악산 무박산행은 복잡함을 감안하여 13시간 30분이 주어졌다. 오후 4시 30분까지 주차장에 도착하면 된다. 현오님은 주어진 시간이 럴럴하다며 남는 시간을 어찌 할까 걱정한다. 늘 시간이 모자라서 버스 출발시간에 간신히 맞추어 승차하던 나로서는 남는 시간을 어찌 할까 고민하는 현오님이 부럽기 짝이 없다. 지난 번 지리산 산행 때도 축지법을 시전하듯 잰 걸음으로 내려가 샤워까지 하고 느긋하게 하산주를 즐겼었다. 홀로 백두대간을 완주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홀대모 회원이라 하니 저런 강한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설악산의 가을은 이미 5부 능선까지 내려와 앉았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산길엔 이미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고, 잎이 져버린 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홀가분하게 흔들어 댄다. 능선길에 자라는 나무는 주로 신갈나무 등 참나무 종류에다 줄기가 하얀 자작나무가 섞여 있다. 수령이 오래되어 고목이 된 신갈나무와 고사목으로 서 있는 잣나무가 보여주는 원시림은 우리가 금지된 구역에 서 있슴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작은 씨앗이 땅아 떨어져 비바람을 이겨내고 저렇게 큰 나무로 자라 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이 있었을까. 한 순간의 실수로 저렇게 귀중한 산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두 시간 여 아름다운 풍광에 빠졌었다. 치윤님이
바람 없고 볕 드는 곳을 찾아 아침을 먹자 한다. 그러고 보니 설악휴게소에서 황태해장국을 먹은 것은
현오님과 나 둘 뿐이다. 나도 은근히 시장기를 느끼는 중이었다. 길위에
널찍하게 빈 공간이 나타났다. 누군가 의자로 사용한 듯 엉덩이만한 돌들이 흩어져 놓여 있다. 이신전심 마음이 통했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배낭을 벗어 두고 각자 싸온 것을 내 놓는다. 치윤님이 박걸리 한 병에 순대와 떡뽁기를 꺼낸다. 이제까지 산에 다니면서 족발을 싸오는건 보았으나 순대와 떡뽁기는 처음 본다. 두 사람은 술을 즐겨 마시는 애주가들이다. 내게도 따라주는 막걸리 한 잔을 받아 마셨더니 입에서는 받는데 얼굴까지 화기가 올라 온다.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풍류를 즐길 수 있는건데 체질상 맞지 않는 것이 술이니 적당히 한 잔으로 얼굴에 가을
단풍빛을 물들인다.
우리가 길가에 앉아 아침을 먹는 동안 두 팀이나 대청에서 내려와 시끄럽게 떠들면서 우리 곁을 지나간다. 화채를 훔치는 도둑산행을 해도 저렇게 떳떳한 걸 보니 상습범들인가 보다. 남이야 어떻든 우리는 귀한 보물을 훔치는 의적(義賊)으로서 체통을 지키면서 조용히 화채능선이 품고 있는 진면목을 살펴 볼 참이다.
대청봉에서 한참을 내려 온 후 화채봉으로 오르막이 어어진다. 간간이 왼쪽으로 터지는 조망처마다 신선대와 공룡능선의 비경이 펼쳐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하는 바위산이 가을 단풍으로 불타고 있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보았다는 무릉도원에 대해 설명하는 걸 듣고 안견이 그렸다는 몽유도원의 모습이 저런것일까. 그 옛날 신선들이 들어 앉아 바둑을 두면서 도끼자루를 썩히던 곳이 저런 곳일가. 산과 산 사이에는 끊임없이 맑은 물이 흐르고 그 물이 또 작은 폭포를 만나 굉음을 내면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진다. 바위 봉우리 끝에는 늘 푸른 소나무가 천년 전처럼 꿋꿋하게 서서 가끔씩 지나가는 산꾼들을 바라본다. 이곳은 인간계가 아니라 신선들이 노니는 선계임에 틀림 없다. 그런 곳을 인간이 찾아 들어 잠시 엿보고 가는 것이다.
만경대 (萬景臺)
화채봉에 이르기 전 작은 봉우리를 만난다. 별다른 이름은 없고 그 산의 높이에 따라 1253봉이라 부르는 봉우리다. 현오님은 이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 능선을 타고 내려간다. 탐방을 제한하는 구역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다닌 좁은 길을 제외한 주변은 말 그대로 자연의 보물창고다.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이 어두운 숲속에 스며든 작은 햇빛에 반사되어 꽃보다 더 화사한 모습으로 피어난다. 현오님은 만경대로 가는 길이라 한다. 아름들이 신갈나무가 여기 저기 서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올퉁 불퉁 튀어 노온 옹이에다 속이 텅비어 곧 쓰러질 것 같은데도 위에서는 수십갈래로 가지가 번져 노란 단풍잎을 달고 있다. 저 나무들은 늙어서도 쉬이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면서 그늘을 만들어 다른 수종이 자라나는 것을 억제하고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던풍과 멋진 바위 그리고 커다란 고목이 어우러진 만경대 가는 능선길은 태곳적 전설을 품고 있는 듯 하다. 햇볕이 잎새 사이로 스며드는 작은 양지에는 노루오줌과 애기나리 등 풀들이 자라고 있다.
천불동 계곡 쪽으로 점점 내려갈수록 참나무가 사라지고 잣나무와 소나무가 바위틈에서 자라는데 키그 그리 크지 않아 시야가 트이고 천불동 건너편에 있는 바위 군상들이 한 눈에 다 들어 온다. 왼쪽으로는 아침에 해돋이를 봤던 대청봉에서 흘러 내려온 화채능선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그 옆으로 염주골과 죽음의 계곡 그리고 그 옆에 지금은 폐쇄된 백두대간길 소위 이박사 능선과 현재 소청에서 희운각으로 이어진 등산로가 있는 능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정면으로는 공룡능선과 이어진 신선대, 그 아래로 범봉과 그 옆에 왕관봉, 그리고 그 아래로 이어진 칠형제봉 등 빼어난 암봉들이 마치 미니쳐 조각처럼 박혀 있다.
만경대에서 바라본 신선대와 공룡능선
만경대에서 올려 본 대청과 중청봉
공룡능선에서 이어지는 능선이 백두대간의 연장선인 황철봉이고 그곳에서 설악동쪽으로 떨어지는 저항령계곡과 천불동계곡의 비선대와 그 윗쪽으로 세존봉 등 눈에 익은 암봉들과 계곡이 가까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망군대의 바위들이 단풍든 나무 사이 사이 서있다. 공룡을 보려면 공룡에 가지 말고 화채로 가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만경대에서 바라본 신선대와 공룡능선
망군대 방향
뒤로 돌아 우리가 가야 할 화채봉을 보니 마치 고깔을 쓴 머리 모양인데 언뜻 화채라는 말이 상여(喪輿)의 머리를 의미하는 것도 있다 하니 정말로 상여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든다. 화채(華彩)라는 한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화려한 채색이란 뜻이니 이 능선에 단풍이 들었을 때나 봄에 진달래 철쭉이 피었을 때의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화채봉 아래에 칠성봉(七星峰) 과 칠성암이 있는 것을 보고 화채라는 말이 단순히 산의 화려함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옛날 민간에서는 장수무병을 기원하는 칠성사상은 우리 생활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 절에는 칠성각이 있고 가정집에서도 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하던 대상도 칠성님이었다. 칠성세계는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이상적인 세상을 의미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죽으면 북두칠성 별자리 모양의 구멍이 뚤린 칠성판에 시신을 올려놓고 염을 올렸다.
만경대에서 올려본 화채봉
저 옛날 누군가 이 화채봉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상여를 타고 칠성세계에 드는 장면을 연상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암봉들이 늘어선 모습을 내려다 보면서 신선들이 사는 곳이란 뜻으로 집선봉이라 이름짓고 옥황상제가 주제하는 이상향으로 칠성봉을 정하고 인간이 수명을 다 하면 저 화려한 상여에 올라 칠성세계에 드는 것을 상상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선대는 선녀가 날아간 곳이고 그 아래 와선대는 마고가 놀던 곳이라 하니 어쩌면 이 설악산 전체가 신들이 노니는 곳인지도 모른다.
만경대에서 화채능선으로 오르는 길에 단풍이 화려하다
숙은노루오줌
만경대에서 다시 화채능선으로 올라와 화채봉으로 향한다. 만경대에서 한 시간 정도만 보내고 올라와야 하는데 환상적인 풍광에 취해 무려 두 시간 가까이 지체하고 말았다. 초행인 나로서는 전체적인 시간배정을 알 수 없으나 현오님은 이렇게 느리게 가다가는 하산주를 마실 시간도 없겠다며 몹시 서두른다. 그러나 꼬리가 못따라가는데 머리만 혼자서 달아날 수는 없는 법이다. 가파른 길을 돌아가며 전에 야영을 했던 자리를 지나고 다시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올라 거의 정오가 되어서야 화채봉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화채봉으로 오르는 길
금마타리 잎도 가을을 맞았다
화채봉(華彩峰 1328m)에서는 만경대에서 올려다 보이던 공룡능선을 비롯한 맞은편 풍광이 더욱 뚜렷하게 내려다 보인다. 정상에는 삼각형으로 쪼개진 자연석 두 개가 포개져 있는데 그 위에 누군가 검은 매직으로 산이름과 표고를 적어 놓았다. 그동안 꼭 가보고 싶었던 화채봉을 오르게 된 감회가 새롭다. 이 화채봉 정상에서는 외설악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공룡능선으로 이어진 황철봉과 울산바위를 지나 하얀 호랑이 모양을 한 달마봉도 뚜렷하게 보인다. 왼쪽으로는 대청봉에서 내려오는 화채능선과 그 왼쪽으로는 속초로 벋어 내린 관모능선 (잡채능선이라고도 부른다)도 자세히 볼 수 있다. 맑은 하늘에 하얀 구름 몇 조각이 둥실 떠다니는 풍경이 한가롭다. 봉우리에서 천불동계곡쪽으로 발아래를 내려다 보면 까마득히 깍아지른 바위절벽이다.
신선대 너머로 안산까지 조망된다.
비선대 세존봉 그리고 그 위로 황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화채봉 정상석
대청봉과 중청 소청 삼형제
울산바위와 달마봉이 보인다
이어서 칠성봉(七星峰 1076)에 오르면 발 아래 집선봉 (集仙峰) 바위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멀리 권금성 케이블카 타는 곳에 녹색 지붕을 한 건물이 보인다.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두눈에 박히도록 정성스레 담아 둔다. 가는 곳마다 조망이 훤히 트여 멋진 암봉을 감상하며 지난다.
참바위취
동쪽으로 울산바위와 달마봉이 보인다. 가운데 아래로는 권금성 케이블카 정거장 지붕이 파란 점으로 보인다.
소위 숙자바위라고 부르는 작은 암봉을 지나고 나서 우리는 오른쪽 계곡으로 한참을 내려왔다. 마음이 급한 현오님이 저 만치 앞장 서고 걸음이 느린 나와 치윤님은 현오님을 따라가기 급급하다. 활활 타오르는 가을 단풍도, 이제 끝물 중에서도 끝물인 산오이풀꽃도 그리고 이제 한창 무리지어 피어 있는 산부추 꽃도 스쳐가듯 외면하고 내리막 길을 뛰다시피 걸어 내린다.
소위 숙자바위라고 부르는 암봉 위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다. 그 너머로 속초시가 조망된다.
산오이풀
“물소리가 들리지요?” 한참을 내려가니 현오님이 묻는데 내 귀에는 물소리인지 뚜렷하지는 않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니 바닥이 하나의 큰 돌로 되어 있는 개울물이 졸졸 흐른다. 그제서야 물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물은 맑고 차다. 손을 씻고 나서 개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눈앞에 절벽이 펼쳐지고 그 앞에 노적봉이 우뚝 서 있다. 토왕성폭포 상단이었다. 지금 내 앞에 졸졸 흐르는 이 물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토왕성폭포가 되어 300 여 미터 비단 같은 물줄기로 떨어져 내려 비룡폭포로 흘러 가는 것이다. 겨울에는 빙벽을 타는 사람들의 메카가 되기도 하는데 그 개울 건너편 한 구석에는 이 폭포에서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의 영혼을 기리는 비석이 여러 개 세워져 있다.
토왕성폭포 위에 있는 계곡
토왕성 폭포위에 있는 계곡
토왕성폭포로 떨어지는 폭포 상단 너머로 노적봉과 그 너머로 달마봉이 멋있게 서 있다.
이제 다 보았으니 부지런히 내려가야 한다. 오후 2시가 넘었다. 버스를 타는 C지구로 하산 하는 길을 가려면 일단 화채능선 갈림길까지 올라가야 한다. 아까 칠성봉이며 숙자바위며 토왕성폭포를 보려고 왼쪽 능선으로 갈아 탔으니 그 갈라진 능선이 내려 온 곳까지 올라갔다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벌써 십여 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던지라 몸이 제법 지쳐가는데 약 2 km 쯤 비탈길을 치고 올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시간에 쫒기는 상황이라 온힘을 다해 빠른 걸음으로 능선을 잡았다. 산에서 내려오는 노인을 만났는데 그는 송이 능이 버섯을 채취하러 다니는 주민이었다. 이런 국립공원에도 버섯을 따러 다니는 사람이 있다니.
산길에 처녀치마가 널려 있다. 겨울을 나고 봄에 꽃대를 올린다.
단풍도 큰산에 피는 단풍이 더 아름답다.
이제부터는 내리막 비단길이라고 한다. 현오님은 물 만난 고기처럼 힘이 나는지 축지법을 시전하듯 쏜살같이 저만치 앞서 간다. 난 그렇게 서둘러 가면서도 단풍이 예쁜 풍경이 나오면 사진에 담으면서 가다 보니 맨 뒤에 쳐지게 되었다. 치윤님도 힘들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산길은 눈으로 식별이 될 만큼 뚜렷하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는데 현오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실수로 오른쪽 계곡으로 들어가서 길이 엇갈리니 개의치 말고 능선을 타고 쭉 따라 가라 한다. 방향은 제대로 잘 잡고 가는 것 같은데 초행길이다 보니 거리를 가늠할 수 없다.
어찌 보면 봄에 피는 꽃보다 가을에 피는 단풍이 더 아름다운것 같다.
앞서 간 치윤님이 밟고 간 자국이 가끔씩 흙길에 나 있다. 산길은 능선이 끝날 즈음 왼쪽 계곡으로 떨어진다. 계곡은 아직 4시도 안되었는데도 어둑 어둑 하다. 산길은 끊어졌다 이어지길 반복하더니 다시 왼쪽 산허리를 타고 올라 능선으로 이어진다. 앞서 간 치윤님이 흩어 놓은 발자국이 가끔씩 보인다. 산길이 끝나가는지 길이 더욱 선명해지고 넓어진다. 부드러운 흙길이라 뛰어도 좋다. 그리고 마침내 숲에서 빠져나와 왼쪽 상가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만났다. 오후 4시 12분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고작 13분 남았다. 현오님은 벌써 도착해서 모텔에 들어가 샤워를 하겠다고 전화로 알려준다. 길가에 오리방풀과 배초향 등 야생화가 예쁘게 피어 있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저런 꽃들을 감상하며 걸어갈텐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난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한참을 내려왔다.
왼쪽 계곡으로 들어가니 산길이 희미하다.
바쁜 걸음에 꼬리풀이 눈에 밟힌다.
4시 25분 마침내 제시간에 버스 탑승지에 도착했다. 몸을 씻을 시간은 안되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버스를 타고 갈 수 있게 되었다. 현오님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어디냐고 묻는다. 버스에 올라왔다고 하니 맥주를 사오겠다고 한다.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에게는 그 말만 들어도 목줄기가 시원해 지겠지만 나는 우선 대충이라도 씻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 배낭을 짐칸에 실어 놓고 산대장(인솔자)에게 샤워할 시간이 되느냐고 물으니 인원점검만 하고 곧 떠날거라서 안된다 한다. 화장실로 가서 수건에 물을 묻혀 대충 씻고 서둘러 버스로 돌아 오다가 치윤님을 만났다. 그는 내가 앞서서 간줄알고 나처럼 뛰다시피 왔다고 한다. 우리는 버스에 올라 현오님이 사온 맥주로 목을 축이고 하룻동안 빠져나갔던 혼을 추스려 담고 자리에 앉았다. 움직일 때마다 씻지 않은 몸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올라 오지만 개의치 않았다. 소중한 보물을 훔쳐 오는데 그깟 땀냄새가 무슨 대수겠는가.
이제 거의 다 와 간다. 그리고 버스 출발시간도 거의 다 돼 간다.
설악동 C 지구 상가는 대목 맞은 시장같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도둑질한 장물을 꺼내 보듯 스마트폰에 담겨진 화채능선의 풍경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그 중 귀하게 생긴 것들을 골라서 가족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보내주었다. 몽골에 가 있는 형에게도 한움큼 쥐어서 보내주었다. 그깟 사진으로 보는 것이야 어쨌든 실제로 보는 것과 다를 텐데도 사진을 받아본 이들은 모두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많이 막히는데도 버스는 양평으로 우회하여 복정역에 8시경 도착하였다. 거의 24시간동안의 설악산 나들이를 마치고 9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했다. 설악아 잘 있거라 내 다시 오리니. 설악가의 한 구절이다.
8시 30분 천호역 도착
에필로그
돌아오는 버스에서 인터넷 기사에 히말라야 등반을 갔던 우리나라 산악인 5명이 사고를 당해 모두 사망했다는 비보가 올라왔다. 옆자리에 앉은 현오님에게 기사를 보여주니 등반대장인 김창호씨는 산악인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한다. 다른 이들은 보통 2차 3차 베이스캠프를 치고 정상에 오르는데 김창호 대장은 산의 맨 아래에 캠프를 두고 전구간을 한꺼번에 오르는 진정한 산악인이라고 한다.
이번 사고를 두고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심지어 자기 좋아하는 일 하다 죽었으니 그렇게 안타까운 일은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내가 주말마다 등산을 다니는 것에 대해서도 주위에서 말이 많다. 부럽다고 하는 이들도 많지만 왜 그렇게 몸을 혹사시키면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면서 먼 데까지 가느냐는 사람들도 꽤 많은 편이다. 이정도인 내 처지를 보고도 이러한데 에베레스트 등정을 하다 운명을 달리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오죽하겠는가.
과연 사람의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처음엔 가까운 동네 산에 오르면서 몸이 건강해지려고 등산을 시작했다가 점점 더 멀리 그리고 더 험한 산을 찾아 다니게 된다. 그리고 체력이 뒷받침 된다면 해외에 있는 높은 산에 오르고 결국 김창호 대장처럼 운명을 달리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욕심을 자신과 타협하여 적정선에서 물러날 수는 없는 걸까?.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돈을 따도 또는 잃어도 도박에서 손을 뗄 수가 없다. 이는 잃으면 본전이라도 찾으려는 마음이요 따면 자신의 운과 실력이 좋으니 더 재미가 붙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욕망과 타협하면 좋은가. 뭐든지 적당히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또는 그 무엇인가를 적당히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일까? 좋아하는 시늉을 내면 되는 걸까 ? 김창호 대장은 자신이 이번에 사고를 당할 줄은 몰랐더라도 그 동안 경험을 통해 언제라도 사고는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끊임없이 도전을 해 왔다면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추호도 후회하지 않을 듯 하다.
석가모니가 악마의 시험에 들었을 때 악마가 석가모니에게 높은 나무에서 뛰어 내리라고 말했다. 뛰어 내리면 천길 낭떨어지라 당장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 석가모니는 만일 자신이 거기서 뛰어내림으로써 도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뛰어 내리겠다고 하였다. 만일 뛰어 내리더라도 도를 얻지 못한다면 결국 그의 모험적인 행위는 허무한 과용에 지나지 않는다.
김창호 대장은 자신이 등반중에 사고를 당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 어쩌면 자신 만큼은 사고를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다섯명의 대원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