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부샤부, 일본식 소고기 전골 ‘스키야키’서 유래된 요리
1200년 간의 육식금지령을 메이지 日王이 해제 샤부샤부에 담긴 소망 “국민의 체격을 키워라”
19세기 후반, 개화기 일본에서 소고기는 개화의 상징이었다. 그림은 소고기 전골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당시 유행한 소설 ‘아구라나베(安愚鍋)’의 삽화
19세기 후반, 개화기 일본에서 소고기는 개화의 상징이었다. 그림은 소고기 전골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당시 유행한 소설 ‘아구라나베(安愚鍋)’의 삽화.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 먹겠지.” 얼마 전 유행했던 개그다. 지금은 코미디 소재로 등장한 소고기지만 한때 일본에서는 왕이 소고기를 먹었다는 이유로 암살당한 뻔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41년 전인 1872년, 열 명의 자객이 메이지(明治) 일왕이 사는 궁궐에 잠입하는 사건이 있었다. 도중에 발각돼 네 명은 현장에서 사살됐고 한 명은 중상을 입었으며 나머지 다섯 명은 생포됐다.
범행 동기를 조사한 결과, 범인들은 일왕이 소고기를 비롯한 각종 고기를 먹으며 일본 정신을 더럽혔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 궁궐에 침입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인즉슨 메이지 일왕이 서양의 영향을 받아 육식금지를 해제하면서 일본인이 고기를 먹게 됐고 그로 말미암아 일본의 땅과 정신이 더럽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메이지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이방인을 몰아내어 일본의 신과 영토를 지키려는 것이 침입의 목적이었다고 했다.
지금 들으면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일본의 역사와 음식문화를 알면 수긍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과거에는 고기를 먹을 수 없었는데 육식금지의 역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뿌리가 깊다.
서기 675년, 덴무 일왕이 육식금지령을 내리며 소, 말, 개, 원숭이, 닭을 죽이지도 먹지도 말라며 살생 금지령을 선포한다. 불교가 일본에 전해진 직후여서 살생을 금지한 불교의 영향을 받은 면도 있지만, 정치·경제 및 군사적 이유가 더 컸다. 소와 원숭이는 주로 농업 및 종교적인 이유로, 말과 개와 닭은 군사적인 목적으로 식용을 금지했다. 말은 당연히 군용 목적이고 개는 적의 침입을 막아주는 초병 역할을 했기 때문이며 닭은 시간을 알려줘 금지 동물에 포함됐다.
일본인들은 이때부터 약 1200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 물론 어기는 사람도 많았는지 이후 몇 차례 더 육식금지령이 선포됐고 고기를 먹다 적발됐을 때 받는 처벌도 강화되면서 네 발 달린 짐승의 고기를 꺼리는 전통이 생겼다. 일본에서 어패류와 채식이 발달한 또 다른 이유다.
오랜 육식기피 전통을 깬 것이 메이지 일왕이다. 1866년 일본 왕실에서 처음으로 서양 외교관을 초청해 파티를 열었는데 이때 고기가 나왔고 일왕을 비롯한 대신들이 고기를 먹었다. 이후 일왕은 고기를 먹으며 국민에게도 육식을 권하다 1871년, 천 년이 넘게 이어진 육식금지령의 폐지를 선포했다.
“머리카락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이라며 목숨 걸고 상투와 수염 자르기를 거부, 단발령에 반발한 조선의 양반처럼 수구 사무라이들은 천 년 넘게 고기를 먹지 않은 일본의 깨끗한 정신을 더럽힐 수 없다며 육식금지령 해제에 반발했다. 자객이 궁궐에 침입할 정도로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일왕은 왜 국민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고기를 먹으라고 한 것일까? 이유는 키가 작아 왜(倭)라고 불린 일본인들의 체격을 키우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고기를 먹여 서양인처럼 체격을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일본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 유신은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화하는 것이 목표였다. 음식을 통한 체질개선도 유신의 목표 중 하나였는데, 그래서 일부에서는 메이지 유신은 일본인의 식성을 바꾼 음식혁명이었다고 말한다. 생선만 먹던 왜인이 고기를 먹게 됐고, 밥이 주식인 일본인의 식사를 빵으로 바꾸려고 했다. 장병에게 끼니때마다 밥 대신 빵을 지급했지만, 반발이 심해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반면 1000년이 넘도록 고기 맛을 보지 못했던 일본인이었지만 일왕이 육식을 장려하면서 조심스럽게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생선과 채소를 넣고 끓이는 일본 전통요리에서 생선 대신 소고기를 넣은 요리가 발달했다. 일본식 소고기 전골인 스키야키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처음 스키야키 전문점이 등장한 것이 1862년이었는데 15년 후인 1877년에는 도쿄에만 일본식 스키야키 전문점이 500곳을 넘었다.
일본식 소고기 전골인 스키야키에 이어 유행한 소고기 요리가 지금 우리나라 사람도 즐겨 먹는 샤부샤부다. 종잇장처럼 얇게 썬 소고기를 끓는 육수에 데쳐 먹는 요리가 언제 일본에 퍼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비슷한 요리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샤부샤부라는 이름 자체는 1952년 오사카의 한 음식점에서 비롯됐다.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라는 음식이름은 식당 종업원이 수건을 물에 흔들어 빠는 모습이 고기를 육수에 담갔다 데쳐 먹는 모습과 비슷해 식당 주인이 지은 이름이다. 물수건 빠는 모습을 표현한 의태어와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라는 것이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본 요리지만 샤부샤부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일부는 중국식 전골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중국 전골은 흔히 칭기즈칸 때, 몽골군이 전투 도중 끓는 물에다 양고기를 급하게 데쳐 먹고는 다시 기운을 차려 싸움에 나선 것이 요리로 발전했다고 하지만 근거는 없는 이야기다.
샤부샤부의 뿌리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천 년이 넘도록 고기를 먹지 않은 일본인의 체격을 키우겠다는 의도에서 일본 소고기 요리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다만, 부국강병의 노력이 침략전쟁으로 이어졌고 그 피해를 우리가 입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