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지산 **
민주지산의 민岷은 산맥을 뜻하고 주周는 둘레를 의미한다.
다시말해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산이라는 뜻이다. 동으로 석기봉(石奇峰 . 1,242m)과 삼도봉(三道峰 . 1,178m)이 북으로는
각호산(角虎山 . 1,202m)이 좌우로 독수리 날개를 활짝 펴 기상하면서 백두대간을 굽어보는 산이다.
< 빨간색: 등짐쟁이 4번째 비박코스('03.2.23)..파랑색: 조은산악회 백두대간 코스 ('02.2.25, 우두령-삼도봉-부항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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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지산은 "동국여지승람" 이나 "대동여지도" "무주부읍지" 에 표기된 이름은 백운산(白雲山)이였다. 일제강점기때 산세가 민두름하다 해서 "민두름산"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표기 과정에서 민주지산岷周之山이 되었다고 한다. 민두름은 충청도 사투리로 "밋밋하게 둘러있다" 는 뜻이다.
삼도봉三道峰은 산을 경계로 충청북도와 전라북도, 경상북도 3도가 갈라지는 곳이다. 조선 태조 14년(1414) 조선을 8도로 분할 할 때 삼남의 분기점이었으며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변방지역으로 서로 각축을 벌였던 요충지였다.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옛날 삼도봉에는 돌무데기가 충청북도 쪽, 경상북도 쪽, 전라북도 쪽 세곳에 쌓여 있었다. 충청도 사람,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들이 각각 자기 지역에 있는 돌무데기에 돌을 던졌다. 돌이 많이 쌓인 도道가 그 해 액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 해묵은 지역 감정을 1990년10월10일 충청북도 영동군, 전라북도 무주군,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합작해 대화합기념탑을 용과 지구본을 본뜬 형상으로 세웠다. 우리나라에는 민주지산의 삼도봉 외에 두군데 더 있다. 경남, 전남, 전북의 경계인 지리산 삼도봉과 경남, 경북, 전북의 경계인 초점산 삼도봉이 있다. 이 중에서 민주지산 삼도봉은 이곳을 깃점으로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의 언어와 풍습 그리고 음식까지 확연한 차이 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역사적 의미로 되새겨 볼 때 단연 돋보이는 道 경계의 산이다. | |
** 우리가 걸었던 민주지산 일대 **
민주지산 일대는 우리민족의 등줄기 백두대간 우두령->부항령 구간의 삼도봉에서 뻗어나온 1,000미터 높이의 민주지산 주줄기인
석기봉->민주지산->각호산->도마령으로 이어지며 능선을 경계로 전북 무주, 충남 영동 그리고 경북 김천이 등을 맞대고 있습니다.
2012년 백두대간을 걸으며 무심코 지나쳤던 민주지산 줄기를 2013년 비박을 통해 민주지산의 주 줄기를 걸으며
현대사의 아품을 안고있는 민주지산을 다시 한번 더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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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백두대간팀>>
ㅇ산행일자: 2012.2.25(토)
ㅇ대간코스: 백두대간 14구간 (우두령-삼도봉-부항령)
ㅇ함께한분: - 산행진행: 야미 - 총 무: 파도타기
- 그외: 춘삼이.삐리.무명가수.맹짱이.인청.푸르미 .선비.깨몽 .
은빛진주. 청묵 .김날구.태양벌.피아 (총 15명)
ㅇ산행후기
http://v.daum.net/link/26336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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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한계곡 **
민주지산의 대표적인 명소는 물한계곡이다. 물이 차다는 한천마을 상류에서 시작한 계곡은 20km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 식물종의 16%가 자생하고 있다고 하니 야생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즐거운 산행이 될 것이다. 하지만 숲이 울창하고 깊기 때문에 시간을 잘 계산해서 산행을 하는 것이 좋다. 대낮에도 어두운 숲이 있는 곳이다. 행여 숲속에서 밤을 맞이하게 되면 낭패다. 물한계곡을 따라 하산을 시작하면 물소리는 들리는데, 물이 보이지 않는다. 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하기도 하다. 그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내려가서야 물한계곡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계곡이 아름다워 질 때쯤이면 '계곡수 보호구역'이라는 경고문구와 함께 펜스가 쳐져 있다. 아쉽지만 멀리서 펜스너머로 감상하는 도리 밖에 없다. 황룡사를 지나면서부터는 펜스가 없어진다. 이곳의 경치 역시 나무랄 데 없이 좋으니 펜스에 상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ㅇ 등짐쟁이의 민주지산 첫 걸음은 물한계곡을 따라 걸어 오릅니다.
- 1998년 4월 1일 저녁 20:10분
흑룡부대 23대대 행군 선두 부대가 이곳을 따라
황룡사 인근 민가에 도착합니다.
5일간의 행군과 민주지산 정상에서의 눈보라와 사투를 벌이며
탈진상태에 있었던 대원중
오수남하사(19),전해경하사(22)는 후송 중 사망....
ㅇ 등짐쟁이 선두팀이 황룡사를 지나갑니다. 아침햇살이 참 따사롭습니다.
- 1998년 4월 1일 저녁 흑룡부대 선두부대가 이곳을 지나면서
안도의 한숨과
후미에서 추위와 눈보라에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전우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던 곳입니다.
ㅇ 등짐쟁이들 황룡사를 거쳐 물한계곡을 따라 오르다 민주지산 정상을 오르는 가파른 등로를 따라 오릅니다.
- 1998년 4월 1일 저녁 19:00
민주지산 5부능선에서 행군 선두부대 전해경하사외 다수가 탈진상태로
2차 구호소가 설치됩니다.
- 21:00 후미부대 6부능선
이수봉 중사 탈진으로 추가 3차 구호소가 설치 됩니다.
ㅇ 등짐쟁이 가파른 등로를 따라 드뎌 민주지산 주 능선에 올라서 민주지산 대피소 방향으로 걷습니다.
- 1998.4.1일 저녁 18:30
행군선두 부대는 탈진대원과 탈진
가능성있는 대원들을
구호소에 격리 조치하고
이 길을 따라 물한계곡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 민주지산 무인 대피소 **
민주지산 정상에서 대피소까지는 10분 정도면 닿을 수 있습니다.
능선에서 약20m아래에 자리한 무인대피소는 영동군이 민주지산 일대 정비 사업을 추진하던 지난2001년11월에 지어졌습니다.
단층 구조에8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목조건물로 내부에는 넒은 평상이 설치되어 있고,한쪽 구석에는 비상 시 나무를 뗄 수 있는 페치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사실 국립공원도 아닌 곳에 이런 무인대피소가 있다는 사실은 뜻밖이었습니다.알고 보니 대피소 건립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민주지산 일대에30cm가 넘는 많은 눈이 내렸던 지난1998년4월,행군훈련 도중 강풍과 폭설로 조난을 당한 특전사 대원6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던 것. 당시 사고가 발생한 곳도 지금의 대피소 자리 부근입니다.
ㅇ 무인대피소에는 난로가 설치되어 있어 혹한기 혹은 우중 시 긴요한 시설입니다.
- 1998.4.1일 무인대피소만 있었더래도
비극적인 사고는 피할 수 있었을 텐데요.
참 안타깝습니다.
ㅇ 하룻밤을 이곳에서 지내면서 대피소의 고마움을 알았습니다.
비박 준비 전 그리고 출발 전에
민주지산에 얽힌 이야기를 알았다면
좀더 엄숙하고
의미있는 하룻밤이 되었을텐데요..
ㅇ 등짐쟁이 일부는 밖에 텐트를 치고 일부는 대피소에서 일박을 하기로 합니다.
해가 서서히 져가고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1998.4.1일 18:20
민주지산을 넘어오던 선두부대는 9부능선에서
이광암하사(23)가 최초 사망합니다.
-1998.4.1일 18:30
- 흑룡부대 대대장은 이곳에 1차 구호서를 설치하고
허재성하사 등 탈진가능성있는
대원들을 격리 응급조치하고 나머지 대원들을 내려보냅니다.
ㅇ 무인대피소에서 난로를 밝힐 나무를 하러 계곡 아래까지 내려갔습니다.
- 1998.4.1일 18:20
바로 이곳 인근에서
첫번째 사망자 이광암 하사가 숨을 거둔곳입니다.
ㅇ 등짐쟁이 일몰의 시작.....각호산을 들러 일몰을 보기위해 쉬지않고 한숨에 달려 민주지산 정상에서 일몰을 맞이합니다.
- 1998.4.1일 17:00
흑룡부대 선두팀이 민주지산 정상을 통과합니다.
강풍과 폭설로 인한 지형 식별이 곤란하여 행군대열이 분산됩니다.
ㅇ 정상에서 석기봉으로 향합니다.
-1998.4.1일 17:00
흑룡부대 선두부대가 민주지산 정상을 통과하였으나
기온이 급강으로 인해
무전기 배터리 성능저하 및 송화 유니트 결빙으로 통신장애가 발생합니다.
ㅇ 등짐쟁이들 민주지산을 넘어 석기봉으로 가는 능선은 평탄한 걸음입니다. 좌우로 펼쳐진 풍광이 한폭 한폭이 그림입니다.
- 1998.4.1일 16:50
민주지산 9부능선에서
일부대원들이 탈진증세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ㅇ 아침에 구름은 걷히고 파란하늘 그리고 아름다운 산 능선이 민주지산의 멋을 발휘하고..한걸음 한걸음이 아쉬운....
- 1998.4.1일 16:30
민주지산 9부능선은 폭설과 강풍으로 인한
시계 제한 및 빙판으로 인해 흑룡부대 행군의 속도가 지체됩니다.
ㅇ 석기봉에 올라선 우리 등짐쟁이들.......모두가 그림입니다...아~ 민주지산이여!~
-1998.4.1일 16:00
민주지산 8부능선 ..
시간이 지나면서 강풍을 동반한 폭설이 몰아칩니다.
ㅇ 석기봉을 지나 이제 하산길입니다...삼도봉을 포기하고 바로 물한계곡으로 하산 결정!~
- 1998.4.1일 하두마을을 13:00에 출발(천리행군 5일차)한
흑룡부대 23대대는
15:00 민주지산 6부능선을 걷고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뀝니다..
** 민주지산 특전사 사고 경위 **
1998년 4월1일, 천리행군을 하던 육군 특수전사령부 흑룡부대원들이 산악에서 갑자기 몰아친 추위 속에 탈진해 6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고는 나흘 전 충남 청양 칠갑산을 출발해 계룡산과 속리산을 거쳐 대마산에 이르는 9박 10일간의 대대 전술종합훈련에 나선
특전부대원들이 해발 1249m의 민주지산을 넘을 때 일어났습니다. 사고 부대는 1일 오후1시 전북 무주를 출발, 20㎞를 3시간 동안 강행군한 끝에
민주지산 정상부근에 도착해 야영에 들어갔죠. 그러나 밤이 되자 야영지에는 기후가 급변하면서 영하 10도 이하의 추위가 닥치고
낮부터 내리던 비는 폭설로 변했습니다.
사고당시 현장은 이미 30㎝가량의 폭설이 내린데다 초속 40㎞의 강풍으로 체감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급강하해 사실상 훈련이 불가능한 기상상태였죠.
출발 때부터 계속 쏟아지는 빗속의 강행군으로 체력이 급격히 소모된 데다 갑작스런 강추위로 탈진증상을 호소하는 장병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헬리콥터조차 뜰 수 없는 악천후로 구조작업이 늦어지면서 결국 대위 1명을 포함해 6명이 사망하고 1명 실종, 6명이 부상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조사에 착수한 육군은 “16일부터 계속된 훈련으로 대원들의 피로가 누적된데다 지옥훈련과정인 천리행군도중 악천후로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저체온증을 유발,
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직접 사인은 탈진으로 인해 피부와 근육이 갈라지는 열상과 간기능저하”였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방한복과 야영장비, 응급의약품 등 산지야영에 대비한 충분한 대비 없이 무리하게 훈련을 강행했던 지휘관의 과실도 드러났습니다.
기상악화로 첫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산악훈련을 중단하지 않고 예정된 집결지로 모이도록 하는 훈련을 강행해 추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도 밝혀졌죠.
국방부는 사고의 지휘책임을 대대장을 보직해임한 데 이어 여단장과 여단 정보참모에 대해 훈련감독 부실 책임을 물어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습니다.
순직한 특전사대원 6명의 합동영결식은 3일 특수전사령부장으로 거행되었고,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사고 현장 아래 물한리 계곡에는 안타깝게 숨져간 젊은 군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비가 서있습니다.
**흑룡부대(공수특전사여단 대대전술 훈련 **
<천리행군> ㅇ천리행군 1일차 1998. 3.28~29(48km) - 충남 청양군 칠갑산->공주9->계룡산
ㅇ천리행군 2일차 .3.30.
- 계룡산->대둔산(03:00도착및 숙영)
ㅇ천리행군 3일차. 3.31 (47km)
- 충남 논산 벌곡면.->대둔산->전북지안 용담면 송림 (04:00 도착및숙영)
.가장힘듬..육체적 피곤..비가 내리기 시작함
ㅇ천리행군 4일차. 4.1
- 전북진안 용담면 송림->덕유산->무주군 설천면 하두 도착( 03:00) - 비내리기 시작함, .우천으로 숙영지에서 피로를 풀어주지 못하고
비에 적은 전투복을 마을에서 말림
ㅇ 천리행군 5일차. 4.1
* 1998.4.1..13:00 하두마을 출발하여 민주지산으로
적은양의 비내림
** 1998.4.1 민주지산 그곳에서는 **
ㅇ 13:00 무주 하두마을에서 출발 (천리행군 5일차) - 기상예보 비조금..그러나 한시간후에 꽤 많은양의 비가내림 ㅇ 15:00 민주지산 6부능선 - 비에서 눈으로 바뀜
ㅇ16:00 민주지산 8부능선
-.시간지나면서 강풍을 동반한 폭설 몰아침 ㅇ16:30 민주지산 9부능선
-푹설과 강품으로인한 시계 제한 및 빙판으로 인한 행군속도 지체 ㅇ16:50 민주지산 9부능선..
- 일부 대원들 탈진증세 발생
ㅇ17:00 선두부대 정상통과 ..기온 급강하로 인한 무전기 배터리 성능저하 및 송화 유니트 결빙으로 통신장애 발생
(후미쪽) ㅇ17:30 민주지산 9부능선 한오환하사 등 탈진대원 다수 발생
(선두쪽) ㅇ18:00 행군선두부대 (강풍과 폭설로 인한 지형 식별 곤란으로 행군대열 분산) ㅇ18:20 민주지산 9부능선 이광암하사(23)하사 최초 사상자 발생 ㅇ18:25 행군 후미부대 민주지산 정상 통과
ㅇ18:30 1차 임시구호서설치 , 허재성 하사등 탈진 대원과 탈진 가능성이 있는 대원들을 격리 응급조치함.. 이수봉중사 등 탈수상태에 있는 직원 대피소 격리하고 일부 내려감
ㅇ19:00 행군선두부대에서 탈진 환자 발생 (전해경하사외 다수) ㅇ19:10 민주지산 5부능선에 추가 구호소 설치 (2차 구호소) ㅇ20:00 후사면 4부능선에 오수남하사 탈진 ㅇ20:10 황룡사 부근 민가에 행군 선두 도착 ㅇ20:30 환자 최초 후송 ㅇ21:00 후사면 6부능선 이수봉 중상 탈진으로 추가 구호소 설치 (3차 구호소) ㅇ21:10 영동소방소 119구조대 도착 ㅇ21:30 전해경하사(22) 후송도중 사망 ㅇ21:35 오수남하사(19) 후송도중 사망 ㅇ21:45 후사면 김광석대위 사망 ㅇ22:30 하오환하사(22) 사망 ㅇ23:30 이수봉중사(24) 사망 (3차구호소)
ㅇ 우리가 걸었던 민주지산의 풍경들....
-끝없이 펼쳐진 산그리메가
펼쳐집니다. 산과 사람이 어울러져가며 살아가는 모습!
1998.4.1일의 아픈 역사는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갑니다.
ㅇ 석기봉 정상에선 등짐쟁이!~
-1998.4.1일 어둠이 내려앉으며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에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길을 따라
생존을 위한 사투가 벌어진곳!~
ㅇ 끝없이 펼쳐진 산그리메를 바라보며 감탄을 자아내지만.....
-1998.4.1일 저녁 죽음을 사투를 벌이며
생존을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하는 이곳!~
고인들이여 편히 잠드소서...
ㅇ
ㅇ 4월 그 따스한 봄에 30cm를 넘는 눈보라 속에서
얼마나 처절하고 고통스럽게 숨져갔을지 조국은 그대들을 기억할겁니다.. 고인들이여 편히 잠드소서
* 순직자*
충남대 ROTC 출신 팀장 김광석 대위 오수남하사 (19) 이수봉중사(24) 이광암하사(23) 한오환하사(22) 전해경하사(22)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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