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들이대도 “아니다.” 하고,
논리를 들이대도 “아니다.” 하는 바보,
그대를 위해 애가哀歌를 짓네.
“예수님이 성육신하셨을 때 신성은 없었다.”고 어떤 바보는 말한다.
곰팡이 냄새 펄펄 나는 이단 요설을 재탕하고 있는 것이다.
사골이면 진한 육수가 배어 나오겠으나,
유통기한이 2000 년이 넘었으니, 썩어도 보통 썩은 게 아니라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만 오셨다.’고 가정하자.
‘하나님의 모든 것을 비우고 오직 인간으로만 오셨다.’고 생각해 보자.
“하나님이셨다가 인간만으로 오셨다가, 다시 하나님으로 원천복귀하셨다.”고
바보가 말한 대로 따라가 보자.
헌데 이 바보는 성경을 말하지만, 성경을 믿지는 않는다.
이 바보는 어떤 때는 자기 편리한 대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침 튀기다가,
어떤 때는 자기 유리한 대로 “성경에 문자적으로 없으니 교리를 죽여야 한다.”고 고집한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하라.”는 말을 외통수 일방통행 원수로 삼고 있으니,
그 꼴이 가관이 아닐 수 없다.
하는 말마다 고삐 풀려 좌충우돌하는데,
상대가 필요 없고,
스스로 하는 말에 걸려 넘어지고 자빠지고,
호랑나비 춤추다가,
스스로 딴지 걸리고,
자기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도 모르면서
남에게 “독해력 없다.”고 코웃음을 친다.
이제 이 바보가 주장한 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으로만 오셨다.”고 가정하기로 하자.
이 숨은 뜻이 뭔지 이 바보는 모르고 있다.
자기주장에 숨은 뜻······. 그게 무엇인가?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분이 하나님으로 다시 원상복귀하셨다.’면,
‘인간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교만한 주장과 다르지 않다.
‘우리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가능하면서, 가당한 말인가?
그러나 이 바보는 그 말 의미가 그러한지 자기는 모르고 있다.
그게 이 바보 특성 중 하나다.
이 바보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이 완전한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이 되시는 것은 옳은 말이지만,
여타 인간은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이렇게 불을 켜고 덤벼들 것이다.
그러나 바보가 이렇게 반박한다고 해도 자기 논리 함정에 자기가 빠진 것이다.
그럼 처음 아담도 하나님이 됐어야 마땅했다. 선악과 따먹기 전에······.
말인즉슨, 그러하지 않는가?
바보, 그는 결국 “인간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도 눈 가리고 아웅거리며,
어린 아해가 얼굴만 가리고 ‘자기를 가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과 꼭 닮았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절대간극’이 존재한다.
잊지 마시라. ‘절대간극’이다.
이 절대간극을 인간은 넘어갈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실 수 있다.
아브라함 실화에서 우리는 그 예를 더듬어 볼 수 있지 않는가?
‘마므레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천사를 대접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라는 옷을 입으시고, 아브라함이 차려드린 상을 받으셨다.
영으로 강림하셨다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 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셨을 때
사라가 웃자,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며 면박하셨다.
그렇다.
육신을 입으셔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능치 못할 일이 있으신가?
자기를 비워 겸손하게 되신 예수님더러 “신성이 비었다.”고 골빈 소리를 하고 있으니,
돌들이 비웃을 것이다.
이 바보는 돌들 비웃음을 사도 싸다.
‘그런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겸손하셔서, 왕이셨음에도,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셨음에도,
자기를 비우고 비우셔서, 성령으로 잉태돼 낮은 종의 모습, 육신으로 오셨다.’고 하셨는데,
‘신성을 따로 국밥처럼 잠시 유보하고 성육신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바보는 “그렇다.”고 말한다.
‘신성은 따로 국밥이다.’고······.
그럼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셨을 때 신성이 하나님 곡간에 고이 모셔져 있었을까?
그 신성은 어디로 잠시 사라진 것일까?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질을 옷처럼 벗어 장롱 속에 걸어 놓으셨을까?
사정이 그러하다면,
아브라함에게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잠시 신성을 옆집에 맡겨 두고 오셨는가?
하나님의 천사에게 “내 금새 돌아 올 테니, 고이 간직하고 있으라.” 명령하고 강림하셨을까?
이 바보는 또 이렇게 주장한다.
“만약 우리들 말처럼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것이 신인을 갖춘 것이라면
어떻게 사도들이나 초대교부들이 그렇게 중요한 신인형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냐?”며
“그것은 잘못된 교리일 뿐”이라고······.
‘예수님의 신성은 너무나 명백해서
사도들은 예수님이 육체로 강림하신 것을 오히려 강조했음.’을
바보 그대는 얕보고 있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사도 요한은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요한 2서 1:7]라고
예수님의 인성을 역설했겠는가!
초대교회 많은 이단들도 예수님의 신성을 스스로 증언하고 있다네.
이전 이단들은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네.
양심이라기보다는, 그래도 독해력과 이해력은 좀 있었다네.
결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신이라는 본질을 벗어 버린 적은 없고,
그노시스 영지주의자들도 ‘예수님께서 명백한 하나님 되심’은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가현설[도케티즘(Docetism)]을 주장해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으신 것은 헛것이다.” 했으며,
단성론자 (單性論者,Monophysite ) 유티케스도 차마 명백한 예수님의 신성은 어쩌질 못해
“예수님의 성육신은 신성만이 나타난 것이었다.”고 종알거렸는데,
이 바보는 오히려 한술 더 떠 ‘명백한 신성’을 부인하며 “인성만이 존재했었다.”고 하니,
그 처량함은 다른 이단과 비할 바 못 되는 하수 중 하수라네.
이것만은 상식으로 가지시게나.
‘인간은 절대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완전한 인간이라도 마찬가지라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입으실 수 있다네.
인간이 되실 수 있다는 것이네.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입으셨어도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아닌 적이 없으시다.'는 것을······.
그러함에도 “신성의 본질이 사라졌다.”고 사특한 말을 지껄이는 바보,
그대에게 남은 것은 멸망이라네.
이 바보는 성경을 말하지만 성경을 인용해 논리를 전개한 적이 없다네.
그러면서 자기를 “성직자”란다.
그러나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성직 문란자요, ‘진리의 사생자’가 바로 이 바보 다른 특성이라네.
아~ 어리석은 자여!
“이 땅 위 성자 예수그리스도께 인성만 있었다.”고 고집하려면,
그대는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 있음’을 먼저 증명해야만 한다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으셨을 때에도
그 육신에 신성이 충만 (골로새서 2:9)했음’을
그대 바보는 애써 외면하려는가?
그 많은 성경의 증언을 바보 그대는 하나하나 모두 논박해야 한다네.
성경이 틀리고 자네가 맞다는 참람한 일을 자네가 해야 된다는 것이네.
그런 일은 젖혀 두고 다른 사람 댓글 트집 잡아 독해력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바보 그대의 벽창호 기질을 어찌하려나?
펠라기우스는 이단이었지만
그의 품성과 고매한 인격만은 아우구스티누스도 감탄해 마지않았네.
그러나 자네는 눈곱만치도 인격을 찾아 볼 수도 없으니,
그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가 오죽하겠는가?
먼저 평균인간 정도의 인격부터 수양하게나.
“순종의 열매를 맺혀야 영생 얻는다.”고?
“혀를 제어하라.”는 야고보 사도 말씀부터 실천해 보게나.
자네 1 년 글을 되돌아 보게나.
혀 차는 소리 “쯧쯧쯧!”이 바보 자네가 한 말 전부이네.
혀 천장이 성한지 안부 물어 보겠네.
“안녕하신가?”
내가 볼 때, 여기에 댓글 다는 모든 사람보다 바보, 자네는 아직 멀었네.
인격에서도 그렇고,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데서도 그들이 자네보다는 몇 갑절 상수이네.
유아 특징이 뭔지 아는가?
자기 똥을 얼굴에 발라도 더러운 줄 모르는 것이 애의 행태이네.
애가는 그래서 애가가 되네.
똥오줌 가릴 줄도 모르면서 선생이 되려 하니······.
내 그대를 한숨 짖네.
어느 바보를 위한, 바보에 대한, 바보의 엘레지······.
황혼의 엘레지.
자네 날 수가 얼마 남지 않았네.
예수님을 그만 희롱하시게.
그러다 멸망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 않는가?
교회사는 간식으로 씹어 먹었는가?
그 바보가 박창진 자네라고 생각되면, 목을 곧게 해 진리를 거스르지 말고 돌아서게나.
늦지 않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