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수상자 : 조정임
수상년도 : 2023년
수상작품 : 수필의 향기를 뿜어내는
—김선화 작가의 『공진(共振)』을 읽고
수필의 향기를 뿜어내는
『공진(共振)』은 『둥지 밖의 새』부터 『우회의 미』까지 총 9편의 수필집 안에서 가려 뽑은 34편을 수록한 것임을 김선화 작가는 밝히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작가의 많은 작품 중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도 있겠다. 수필을 공부한 연륜이 길지 않은 내게는 이 독서가 더없이 좋은 기회로 생각되어 이 수필 선집을 정독했다. 책이 두껍지 않은 것도 이 책을 선택한 이유로 한몫 거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어쩌면 꿈을 그려내는 사람이 아닐까. 책머리에 ‘문조지몽(⽂⿃之夢)을 꿈꾸며’라고 하듯 그가 꿈꾸는 좋은 글은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글이라고 생각된다. 꿈속에서 은사님으로부터 받은 ‘난과 매화가 그려진 누런 필목’에는 실제로 본 분재의 ‘담홍색 꽃잎과 노란 꽃술 사이에서 뿜어지는 향기’를 담고 있는 듯 꿈속에서조차 철저히 문인(⽂⼈)이고자 하는 작가의 글 향기가 흠뻑 느껴진다.
비가 올 때는 자연의 초목처럼 사람도 원초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작가는 촉촉한 감성으로 두 남녀를 클로즈업하며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따라서 동굴에서 만난 두 남녀에 대한 상상은 독자의 몫이 된다. 하필 소낙비 올 때 두 남녀는 동굴로 뛰어들었을까. 「포옹」과 오버랩 된다. ‘지극히 젊고 뜨거운 연인’이었으면 그래서 ‘정애에 겨워 와락 안기도’ 했을 듯싶고, 깊은 키스도 나누었으리라. ‘봄비 찰박대는 날이면 감성이 먼저 내달아 소낙비를 맞고 섰다.’ 이렇게 멋진 문장이 있을까. 노트에 적어본다. 작가는 「소낙비」라는 작품에서 소설적 심리묘사를 꾀해 삶의 진실을 토로해 보고자 했다고 다른 글(제24회 대표에세이문학회 세미나 발제 원고)에서 말한다. 장르의 넘나듦과 작가의 치밀한 구성이 내게 긴 여운을 주고 있다.
작가의 감성은 더 나아간다. 「첫사랑」을 이야기할 때 얼굴을 붉히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수줍게 여미어둔 어설픈 그 첫사랑⎯은 세월 속에서 어엿하니 자란다. 다지면 다질수록 고개를 들고 사람의 나이를 따라서 덩달아 성숙한다.’ 젊은 날 누구나 한번쯤 가슴 저린 사랑을 해보지 않았던가. 첫사랑 이야기는 우리를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하니 조금은 부끄럽지만 그러면서도 소중한 부적처럼 장롱 깊이 넣어 잊기도 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열어 볼 때가 있지 않은가. 오랜 훗날 꿈속에서 첫사랑을 만나 맺어지지 못했음을 ‘시대적 가난 때문’이라고 소리치지만 담담히 지난 사랑을 더듬어 보게 하는 작가를 따라 나도 잊었던 빛바랜 첫사랑의 기억을 끌러보고는 하! 하고 한숨을 내쉰다.
「개 짖는 밤」은 단편소설을 읽는 듯했다. 새댁은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시어머니의 언어로 나는 새댁의 삶이 고단하고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음에 눈물지을 즈음, 작가는 오히려 검둥이를 등장시켜 한바탕 웃게 만든다. 작가는 상징과 은유적 표현이 직설을 피할 수 있어 수필의 향기를 더한다고 말한다.(앞의 세미나 발문에서)
작가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전통문화에 대해서도 애정이 각별함을 볼 수 있다. 한쪽 테두리가 떨어져 나간 조선백자 항아리를 ‘그 외양이 암팡지고 뚝심 있는 여성’으로 비유하는데, 그런 애정은 작가의 외증조할머니를 기리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흔적」이 단지 조선백자 뿐인가. ‘먼 훗날의 나, 수십, 수백 년 뒤의 나를 후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마음이 머문다.’고 토로함은 역사의식과 아울러 자신의 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문인들의 생가를 찾고 흔적을 찾아 나서는 일이 그에게 간접교감이 되고 글 쓸 용기를 준다고 한다. 그 빈집과 빈터의 흔적이 작가에게는 「상상의 곳간」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름치의 모성」을 ‘고정관념 깨뜨리기’(2006년 충북수필문학회 초청 세미나 발제문)라고 한다면, 목리와 새는 ‘새롭게 보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나무받침이나 하려고 얻어온 두 개의 향나무 조각에서 뜻밖에 두 마리의 새를 발견한다. 그 나무의 목리에서 작가는 ‘뜻을 펴지 못한 채 속울음 쟁여온 선인들의 한숨어린 발자취’까지 느낀다. 그러면서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겠다고 ‘무디어진 세포를 올올이 열어두고 저들이 전하는 작은 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겠단다. 그것이 그에게 부여된 사명이란다. 청거북 한 쌍이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이 생명체간의 소통임을 알게 된 것도 칠팔 년 어항에서 키웠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글로 맺어진 동인(同⼈)’의 가볍지 않은 인연은 ‘정신과 정신의 미세한 결이 닿은 매우 고급스러운 교류’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 간의 떨림을 작가는 공진(共振)이라 말하고 있다. 이런 인연의 울안에 들어와 선배 문인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된 나로서는 너무 감사한 말 「공진」이다.
결코 녹록하지 않은 삶은 11남매의 셋째 딸로 태어날 때 이미 작가에게 주어진 듯싶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라!’ 하는 이 말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작가이지만 그는 글을 썼다. 그는 스스로를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단다. 그러면서 작가는 「정점」을 생각한다. 글 쓰는 것을 팽이 돌리기에 비유할 때, 팽이가 맴돌다가 절정에 이르면 움직이고 있지만 멈춰 있는 듯 보인다. 정점(頂點)이다. ‘만 가지 생각이 응집되어 커다란 의미 하나를 이루어 내는 동안 고조된 기운이 한데로 몰리는 그 기점, 흔히 신들렸다고 하는’ 경지라고 할 수 있겠다. 진정으로 글 쓰는 맛을 누릴 수 있는 그 경지에 나는 도달할 수 있을까. 글쓰기의 그 엄정함을 일깨워 준 김선화 작가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내며 글을 맺는다.
수상 소감
정선된 작품이 주는 영양분
2023년이 달력 두 장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달력 한 장을 뜯어내도 아직 달력이 남아있음에 위안을 느낍니다. 조만간 그 종이는 떨어져 나가겠지요. 시간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고 합니다. 세월이 가면 몸의 기능은 점차 나빠질 테지요. 물론 몸뿐이겠습니까. 정신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고 매일을 염려 속에서 살 수는 없지요. 오히려 이 순간을 즐기자! ‘카르페 디엠(Carpe diem)’ 하고 외쳐 봅니다. 수상을 축하해 주실 때 함빡 웃고 마음껏 기뻐하겠습니다.
배추밭에서 배추벌레를 봅니다. 나비가 날아다니더니 그새 알을 까고 애벌레가 되었습니다. 포식을 했는지 통통합니다. 알에서 애벌레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이 계단은 가히 혁신적입니다. 같은 생명체임에도 전혀 다른 생명체 같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는가 봅니다. 작가에게는 그런 물질이 독서에서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김선화 선생님의 정선된 작품이 제게 그런 영양분이 된 듯싶습니다.
부족한 글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격려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조정임 nara15cho@naver.com
『한국수필』 등단(2018) (사)한국수필가협회 운영이사.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솔샘문학회 회원. 사임당 시문회 회원. 저서 : 『주말에 뭐 하세요』(2023), 공저 『글꽃 머문자리』(2020)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