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사
실무자 권오숙
2박3일간 정운씨네 가족여행을 끝내고 귀가하기 위해 인천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한정운씨와 안영순선생님 그리고 서희학생을 보니 며칠 새 빨갛고 검게 탄 얼굴과 피부지만 표정만큼은 밝고 환했습니다. 이 여행을 끝으로 단기사회사업을 마무리하게 되는구나!
돌이켜보니 두려움과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무게감으로 시작한 2018년 극락마을 단기사회사업 원더풀데이가 어느새 마무리 시점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간의 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처음 이사장님께서 우리 시설도 단기사회사업 한번 해 보면 좋겠다고 하셔서 시작 되었고 단기사회사업에 선정된 후 경북에서는 처음이라는 말을 듣고 부담감을 안고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4월 9일 1차 실무자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월평빌라 박시현 소장님으로부터 들은 복지요결 핵심가치는 당사자의 자주성과 지역사회의 공생성이라는 말을 듣고 이것이야말로 당사자의 삶을 정말 풍성하고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귀한 사회사업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1차 실무자 회의 후 잘 해보고 싶은 열정으로 과업에 대한 포스터를 만들고 인근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공문과 메일을 보내고 사회복지과에 적을 둔 지인들께 부탁도 하며 대학생들이 많이 지원해 주길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어 애가 탔습니다.
5월 9일 2차 실무자 회의 후 9개 기관들은 학생모집에 탄력을 받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으나 우리 기관만은 그때 까지 지원자가 없어 제자리걸음 이였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인근 4개 대학 사회복지과를 직접 찾아 강의시간을 빌러 학생들에게 단기사회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홍보하였지만 별 진척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차 모집기간 마지막 날 경북도립대 남학생이 지원하였지만 개인사정으로 중도 포기하여 이 과업을 실무자가 진행해야 될지 접어야 할지 기로에 선 상태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6월 마지막 주 경북도립대 학과장님이신 전보경 교수님의 추천으로 서희학생이 지원하게 되어 합동연수 일주일 전 대학생 1명, 실무자 2명, 슈퍼바이져 1명으로 팀을 꾸려 힘겹게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모집에서부터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른 기관보다 뒤 늦은 출발로 마음이 바빴습니다.
서희학생의 지원사와 자기소개서를 받고 당사자 면접에서 합격발표까지 숨가쁘게 일주일을 보내고 지리산 유스호스텔로 합동연수를 갔었습니다.
합동연수에서 복지요결 저자이신 한덕연 선생님으로부터 복지요결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단기사회사업 어떻게 진행해야 될지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졌고 복지요결방식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알았습니다.
합동연수 마지막날 일정표를 다듬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각 기관 실무자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피드백은 진행에 힘을 실어주었고 원더풀데이 일정을 설명하며 질문받는 서희학생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아! 이제는 학생의 머릿속에 구체적인 실행방법이 그려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복지요결이라는 책과 방법을 처음 접해본 학생에게 연수를 통해 단기사회사업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심어주게 된 것을 보며 합동연수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서희학생의 지원사와 자기소개서에 쓴 강점처럼 편안함을 주는 공감능력, 어릴적 운동선수 경험에 의해 다져진 건강하고 긍정적인 마인드, 대학 학생회를 이끄는 간부로서의 리더십을 십분 발휘해 성실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당사자와 지역사회에 인사하고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고 감사하면서 기본에 충실하며 잘 거들어 줘서 감사했습니다.
둘레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사하기위해 정운씨와 의논해 팸플렛을 만들고 팸플렛을 주는 구실로 자연스럽게 둘레사람들과 인사하고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고 감사하면서 한정운씨의 삶이 풍부해 졌습니다. 중간평가에 한정운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요즘 시장에 갔다 남부이발관이나 털보식당, 행복식당에 들어가면 기분 좋게 맞아 주시고 할 얘기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정운씨도 둘레사람들과 인사 정도만 하고 지냈지 지금처럼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고 감사드린 경험이 없어 팸플렛을 들고 인사하러 갔을 땐 뜬금없다는 눈빛 이였으나 한번가고 두 번가며 지역민으로 이웃으로 어울리고 격려, 응원, 칭찬받으며 관심 가져주어 좋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발전이고 성과 입니까? 감사한 일입니다.
정운씨가 가족여행에 대한 의논도 하고 부모님께 식사대접을 하고 싶어 어머님께 전화 드리며 아버지와 함께 나오시도록 말씀드렸더니 아버지 참석에 회의적이셨습니다. 정운씨가 실망스러운 눈치였습니다.
다시 오후에 용기 내 아버지께 전화드렸습니다. 식사하러 나오시라 말씀드리자 “그러지 뭐”라고 허락하셨습니다. 통화 후 흥분되고 격양된 목소리로 “시설에 와 아빠랑 처음 통화했어요, 아빠가 식사하러 오신데요”신나는 목소리로 자랑하였습니다. 그동안 정운씨의 노력이 아버지 맘에 닿았나 봅니다. 순간 서희학생도 울컥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17일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 하고 차 마시며 여행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이 더운데 여행은 무슨 여행을 가자고 그러냐, 정운아 선생님들하고 다녀와라” 정운씨 표정이 금새 어두워지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화를 내었고 아버지는 아무말씀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조금 후 아버지께서 “여행 가자” 라고 말씀하시자 그제야 어머님께서 TV에 나온 좋은 곳이 있어 적어두었다며 집에 가 전화 하겠다고 적극성을 보이셨습니다.
식사자리 후 본격적인 여행준비를 위해 정운씨는 생활실 컴퓨터와 핸드폰, PC방을 이용해 어머니께서 추천하신 문갑도를 찾아보았습니다. 문갑도는 인천에서 덕적도로 배를 타고 들어가 다시 덕적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동거리가 너무 멀어 힘들다며 부모님과 상의 후 장소와 날짜를 조율해 22~24일 2박3일 인천 시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장소가 정해지자 숙소, 교통편을 알아보고 예약했습니다.
올해가 어머니 칠순이라 선물을 드리고 싶다며 어떤 것이 좋을지 둘레 분들과 의논해 풍기 인견으로 부모님 옷도 한 벌씩 마련하고 손 편지도 썼습니다.
정운씨가 아들노릇하며 부모님 모시고 여행할 수 있게 여행지 검색하고 숙소 알아보고 예약하며 내 일이며 내가 다했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세워주고 답답함을 참고 한자 한자 자판 칠 수 있게 기다려주면서 서희학생이 참 잘 거들어 주었습니다.
22일 일요일 아침8시 풍양서 출발해 점촌터미널에서 9시 인천행 시외버스를 타고 인천버스터미널 도착했습니다. 곧 부모님께서 오셨고 한눈에 봐도 아버지랑 정운씨가 많이 닮았습니다. “아버님과 정운씨와 많이 닮아 처음 뵙는데도 알아보겠습니다.” 빙그레 웃으시며 더운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며 반겨주셨습니다.
이동하는 중간 중간 어머니는 정운씨를 챙기셨고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말씀이 없으셨지만 표정만은 부드러웠습니다. 삼목항으로 이동하는 중간 중간“나도 여기는 처음 와봐요”라며 간간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정운씨 덕분에 인천도 와보고 삼목항과 시도라는 섬에도 가게 되어 정운씨 고마워요”라고 하자 아버지와 정운씨가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지하철과 공항철도 시내버스를 번갈라 타며 삼목항에 도착했습니다. 삼목항에서 다시 신도가는 여객선을 타고 신도에서 다시 숙소 차량을 이용해 시도 수기해변에 있는 폴사이드 팬션으로 이동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성한자식 걸림돌 될까싶어 보냈더니 멀쩡한 지식하고도 못가는 여행을 아픈 자식하고 가게 되네” 라고 하셨습니다.
평소 화병이 있어 늘 아프시다며 넋두리를 한참 하셨습니다.
“우리 정운이가 효도한다고 여행을 가자하고, 난 정운이가 하도 어릴 적에 아프기도 많이 아파 이렇게 클 줄 몰랐어요, 지 아버지와 형보다 키가 더 크다니깐” 대견한 듯 또 정운씨를 쳐다보셨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여객선이 어느새 신도 항에 도착했습니다.
신도에서 시도로 이동 오후 4가 되어 팬션에 도착했습니다.
참 많은 곳을 거쳐 숙소까지 왔듯 정운씨도 참 긴 세월을 돌아 이제야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 한켠이 아렸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그리워하고 꿈꿔왔을 가족여행일까라는 생각에 이 시간들이 정말로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운씨와 부모님은 206호, 서희학생과 실무자인 우린 207호에 짐을 풀었고 밖을 보니 벌써 정운씨와 부모님은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짐을 정리하는 사이 어머니와 아버지, 정운씨는 갯벌체험을 하신다며 갯벌 호미를 사 바닷가로 가셨습니다.
수기해수욕장은 모래가 아니라 갯벌로 되어 우리가 도착한 오후 4시경은 물이 빠져 갯바닥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고향이 바닷가라 어릴 적부터 조개 캐는 작업을 많이 해 바다가 좋다며 갯벌체험과 해수욕을 위해 수영복도 준비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세분이 허리를 굽혀 열심히 돌게 줍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즐기셨습니다. 오후 4시의 태양은 그 시각까지도 여전히 뜨거웠지만 세분의 모습에선 이미 태양의 열기는 아무것도 아닌 듯 즐거워 보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서둘러 바닷가로 갔습니다. 지켜보는 우리들의 등은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얼굴엔 땀이 가득했습니다.
부모님들과 정운씨가 갯벌체험을 하고 계시는 동안 함께 저녁 먹자던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 나 식당을 찾아 20분을 걸어 저녁거리를 장만해 함께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시 후 정운씨가 정성껏 쓴 손 편지를 읽어드리고 편지를 아버지께 드리자 아버지가 조용히 다시 읽어 보셨습니다. 이렇게 여행 첫날이 깊어갔습니다.
둘째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바닷가 갯벌은 사라지고 그 위로 바닷물이 가득했습니다.
아침 9시 정운씨 가족은 이미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계셨습니다.
덥지 않으신지 여쭤보았더니 물에 있으면 시원하다며 해수욕을 권유하셨습니다.
가족끼리 오붓하고 즐겁게 지내시도록 멀리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드렸습니다.
점심엔 전날 식당에서 준비해준 매운탕을 끓여 나눠드리자 맛있게 점심을 드셨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저녁엔 부모님과 고기 구워 먹고 싶다며 마트 가자고 정운씨가 전화했습니다. 멀리 시도 입구에 있는 농협 하나로 마트로 갔습니다. 농협 한켠에 조그맣게 마련된 마트라 돼지고기와 과자뿐 과일이나 채소는 없었습니다.
저녁에 어머님께서 인견 옷을 입고 나와 “이거 우리 정운이가 사줬잖아, 오래살고 봐야지 내가 정운이한테 옷을 다 얻어 입고”자랑을 하셨습니다.
식사도중 간간이 어머님이 아버님께 걱정스런 말씀을 하시자 정운씨가
“엄마는 아빠한테 잔소리 좀 하지 마”라며 아버지를 거듭니다. 싫지 않은 듯 아버지가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어머니도 웃으셨습니다.
조금씩 아버지와 아들이 이해하려고하고 배려하는 모습에 가족애를 느꼈습니다.
여행 마지막을 아쉬워하는 정운씨에게 곧 추석이고 추석 일주일이나 열흘 전 서울 집으로 올라와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께 “아드님과 여행 어떠셨어요?”묻자 겸연쩍은 미소를 보이며 “좋았습니다. 선생님들이 더운데 애쓰셨어요.” 조심히 가라고 정운씨와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동안의 일정을 되짚어보며 한 달 동안 정운씨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서희학생이나 실무자인 우리에게도 보람되고 의미 있는 시간 이였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박시현 소장님께서 합동연수때 용광로 보다 더 뜨겁고 열정적인 여름을 보내라고 영화 - 지도빌 포위작전(The Siege at Jadotville, 2016)의 첫 멘트를 들려주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태양이 라는 용광로가 있는데 이 용광로는 그대들을 녹이거나 혹은 단련시킨다”
올 여름 용광로처럼 뜨겁고 작렬하게 내리 쬐는 태양이 우리의 열정과 의지를 녹이지는 못한 걸 보면 힘들었지만 이번 과업을 통해 많이 단련되고 단단해 졌으리라 확신합니다.
단기사회사업이라는 낮선길을 어떻게 꾸리며 가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극락마을 팀에게 길잡이가 되어주고 용기주신 월평빌라 박시현 소장님, 복지요결을 이해하기 쉽게 직접 강의해 주시고 사회사업의 근본과 방향, 목표를 알게 해 주신 존경하는 한덕연 선생님,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천생 사회사업가이신 김동찬 선생님 이분들의 격려전화와 지지의 글은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더 잘 하려 노력한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이 과업을 무사히 잘 마무리 할 수 있게 믿고 열심히 해준 한정운님과 서희학생, 항상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신 이사장님, 김순선과장, 실무자로서 함께 걸어준 안영순선생님, 바쁘다며 배려하고 챙겨준 생활실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무더덥고 힘들었지만 단기사회사업때문에 행복하고 보람된 7월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7월 27일
뜨겁고 행복한 7월을 보내며 권오숙
원더플데이 권오숙 수료사.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