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들러리
김선희 장편소설
발 제: 김 보 영
2020년 9월 16일
발제에 앞서 막연함에 몇 분째 펜만 굴리고 있는 지 모르겠다.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좋을지 도통 가닥을 잡기가 쉽지 않다. 이 작은 책 안에 실제 현실 속에서 만연한 권력과 재력에 의해 움직이는 부조리와 특권의식, 밥그릇 챙기기, 유전무죄, 무전유죄 등의 사회적 병폐들이 총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입시제도의 헛점까지. 이렇게 큰 주제를 다루기엔 내 역량의 부족을 한참 느끼며 작가의 역량과 노력에 대해 짐작해 본다.
H고등학교는 빈부격차에 따라 암묵적인 계급이 형성되어 있다. 박잉걸을 중심으로 한 갤럭시 맴버들이 귀족계급이라면 나머지 변두리 아이들은 천민 내지는 노예나 다름이 없다. 특히 최상류층 자제인 박잉걸을 빛나게 하기 위해( 때론 그의 재미와 필요에 의해) 소용되는 등장인물들은 철저히 도구이거나 들러리 일뿐이다.
잉걸을 대신해 봉사활동 실적을 쌓아주던 동욱이 짝사랑 하던 지아가 잉걸과 사귀게 되고 예정된 수순대로 일회용처럼 소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참지 않기를 실행한다. 진실을 폭로한 댓가로 동욱이 정학처분을 받게 된 뒤 학교 도서관엔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한결같이 원하는 건 한 권, <유령>이라는 책이었다.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아이들에게 전송된 문자가 가리킨 <유령>은 H고 학생들과 선생님이라면 누구나 실화가 바탕이 된 소설임을 바로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일년 전 5월 5일 자살로 열여덟 인생을 마감한 문호민...... 그도 박잉걸에게 소용되다 버려지고 잘라내진 썩은 부위였다. <유령>은 문호민의 이야기였다. 누가 썼으며 유포하는 것인지 알 수 없던 학교에서는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난리가 난 상황이다. 분노한 고상하고 우아한 잉걸의 엄마 은여사는 본색을 드러내고 재력으로 쌓아 온 권력으로 학교를 호령한다. 계급은 천민이지만 좋은 성적과 인성으로 주변인들의 신뢰를 받던 송기수가 자신이 글 쓴이임을 당당히 밝히고 나서며 친구들과 학부모들 까지 동조하게 되고 일파만파 일이 커지며 급기야 교육청감사까지 받기에 이른다.
<1의 들러리>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금수저들의 안하무인식 광란이라던가 그것을 너무도 간단히 어쩌면 당연하게 묻어버리는 재력과 권력을 갖춘 부모들의 사례는 사실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입시부정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니 아예 입시제도 자체를 가진자들에 유리하게 바꿔버린다. 새삼 아이들의 고군분투가 그려지며 마음이 아리고 안쓰럽다. 그럼에도 자식들을 조금이나마 좋은 대학, 좋은 직장으로 보내기 위해 정당한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는 부모들도 역시 안쓰럽고 짠하기는 매 한가지다. 금서에 대한 기수와 임꺽정 선생님의 대화 부분이 좋았다.
“지식인이나 작가는 세상의 부조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비록 지식인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겠지만 그의 생각이 들불처럼 퍼져 수십만 혹은 수백만 명의 민중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까지 역사가 진보해 온 거 아닐까.”
권선징악적 결말도 마음이 편해서 좋았다. 완전한 결말은 아닐지언정 현실에서 보다 시원스런 마무리가 아닐까? 오만한 가해자들이 왜곡된 사회의식으로 진실을 가릴지언정 진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세상에 희망은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법은 큰 물고기만 빠져나가는 촘촘한 그물이라는 말이 있다. 숨겨져 밝히지 못할지언정 밝혀진다면 만명에게만 평등한 법이 아닌 진정으로 만인앞에 평등한 법이 집행되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편법과 부조리 불공정에 대해 공정한 법의 잣대를 꿈꾸며 갈무리하겠다.
홧팅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