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딸} 읽기 ⑥:
{목사의 딸}은 故 박윤선 목사님을 존경하시는 분들이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②
朴埰同 (2015.03.14.12:05)
다음은 {목사의 딸} 56쪽~60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나는 그날 이후 밤마다 실종되신 어머니를 찾아다니는 꿈을 꿨다. 어디선가 내 목소리와 닮았다는 어머니 따뜻한 음성이 “혜란아!” 하고 부를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신기한 일이 있었다. 사고당하기 바로 전 날, 그러니까 1954년 3월 17일에 어머니가 미국에 있는 언니에게 편지를 써 보내신 일이다. 유언이 돼 버린 그 편지는 거의 20 년이 지나서야 미국에서 언니를 만나 읽어볼 수 있었다.
춘자에게
3월 17일 오후. 이즈음 먼 나라에 있는 네 몸은 하나님 은혜로 평안하며, 할아버지 할머님도 주님 안에서 안녕하시지? 네가 보낸 생일축하 편지도 반갑게 봤다. 자식을 근 이십 년을 키웠더니 생일축하도 오고 내게는 큰 영광이다. 공부도 우등으로 했다니 참 부모로서는 영광이다. 이 모든 것이 첫째는 하나님 은혜요, 둘째는 벌레이 할머님ㅡMrs Burley, 언니의 보호자. : 지은이 주ㅡ 은혜라 생각하고, 감격에 눈물도 한두 번 흘린 것이 아니다. ···(중략)··· 내가 영어를 알았다면 붓으로라도 발레리 할머님께 감사의 말을 기록해 보냈을 터인데 참 유감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 편지를 쓰려니 그것도 부자유하다. 네가 모쪼록 말을 잘 전해다오.
야, 춘아,ㅡ어머니는 춘자 언니를 “춘아”로 부르셨다. : 지은이 주ㅡ 오빠 춘호를 위해 특별히 기도 많이 해라. 지금은 술과 담배를 여사로 하고 있고, 네 올케 해산날도 멀지 않았다. 남부끄러워 머리를 못 들겠다. ···(중략)···
어제는 고려신학교 개학이었다. 새로 오신 선교사님이 설교를 하셨다. ···(중략)···
나는 네게 부탁한다. 속히 배워서 한국 여성에게 큰 지도자가 돼라. 우리나라는 아무리 봐도 눈물뿐이고 적막뿐이다. 사회질서가 여지없이 문란하고 도덕은 말할 것도 없다. ···(중략)···
한국 청년이 많이 가 더 많이 배워 우리나라를 살려야 한다. 나를 위해 살지 말고 내 민족을 위해, 내 민족의 영혼을 위해, 온 세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다. 그러므로 네 부친께 부탁받은 사람, 우선 네 사람은 유학을 보내줘야 하겠는데, 아직도 해결이 없어 걱정이다. 우리 진영 안 학생 중에 특히 남학생 영일이가 신앙도 제일이고 지식도 제일이다. 영자는 휘튼대학에서 허락을 한 모양이나 재정보증이 큰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본 결과, 네가 재정보증인을 좀 구해볼 수 없겠니? 기도해 보고 말 좀 해 봐라. 이것은 형식이지 꼭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 백성을 동정하는 의미에서 수고롭지만 좀 해 달라고 해 봐라. 네 학교 교장이나 혹은 교회 장로든가 또는 할머니께서 혹은 할머니 딸 중에. ···(중략)··· 그리고 성금이 동생은 네가 맡아 놓고 하려무나. 네가 있는 학교에 소개해 입학도 하게 하고 보증인도 얻어 줘라. 그 애는 돈이 많으니까 쉽지 않겠니? 전부 제 돈으로 할 것이다.
그리고 [파수꾼] 잡지를 보내려는데, 몇 날 후에 주석과 [파수꾼]을 보내겠다. 이름표와 할머님이 부탁하신 것을 오는 금요일쯤 보내겠다. 3월 20일 경에.
네 학교 졸업 날짜는 언제냐? 대학교는 언제 입학하느냐? 앞으로 비용은 어떻게 할지 나는 하나님 전에 기도할 뿐이다. ···(중략)···
서울에는 교회를 많이 세웠다. 고려신학교 계통에서는 한 열 개 세웠다. 돈이 없어도 교회는 많이 부흥된다. 첫째는 일꾼이 부족하고, 둘째는 돈이 없어 교역자들 고생이 말할 수 없다. 언제나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 같이 살아보겠는가! 앞으로는 미국 학생이 우리나라에 와서 공부하게 하면 좋겠다.
몇 날 전 나는 요한이와 유엔 공동묘지에 가 봤다. 세계 깃발이 휘날리고 있더라. 아마 한 삼천 명 이상은 되는 모양이라. 인생은 왔다 가면 그뿐이더라. 그런고로 우리는 예수님 잘 믿어야 되고, 우리 백성은 특별히 죄가 많아 모든 열국 백성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희생당한 것을 볼 때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모르겠더라. ㅡ어머니 편지에서 몇 단어는 바꿨으며 철자법과 띄어쓰기를 바로 잡았다. : 지은이 주ㅡ
나는 이 편지를 읽을 때마다 하나님 섭리를 보는 것 같다. 하필 돌아가시기 전날 이 편지를 쓰셨으니···. 편지에는 어머니가 꿈꾸시던 자녀들 미래와 이 나라 미래가 한 데 어우러져 있고, 무엇보다 아버지 부탁을 어떻게든 이루고자 하셨던 마음이 절절하다. 요한 오빠와 나를 데리고 유엔 묘지에 자주 가셨던 어머니 뜻을 깨달을 수도 있다. 편지 한 장에 어머니는 참 많은 마음을 담아내신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새삼 만나는 마음이었다. 어머니 생각은 구체적이면서 동시에 높은 꿈과 넓은 이웃 사랑을 품고 있었다. 참 대단한 어머니셨다.
저는 故 김애련 사모님 편지를 읽으며 ‘아, 선각자 김애련 사모님께서 주님을 위해 선각자 박윤선 목사님과 동행하셨구나. 여자가 배워서 어디에 쓰냐는 남존여비 사상에서 벗어나신 선각자 박윤선 목사님과 한 몸 한 뜻, 하나 된 사명감으로 하나님을 위해, 한국 교회를 위해, 우리나라를 위해 지사충성至死忠誠의 길을 걸어가신 게 김애련 사모님 짧은 신앙의 여정이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 선각자 김애련 사모님으로 하여금 좀 더 이 세상에서 지사충성의 길을 걷도록 하셨다면···.’ 하는,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김애련 사모님 유언과 같은 이 편지에서 내 눈길을 끈 단어가 있습니다. “몇 날 후에 주석과 [파수꾼]을 보내겠다.”라는 문장에서 “주석”이라는 단어입니다. ‘그 당시 박윤선 목사님께서 쓰신 성경 주석을 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내 눈길을 끈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목사의 딸}에서 아버지 ‘박윤선 목사 성경 주석집’을 비하한 박혜란 님은 오직 새어머니를 향한 ‘증오’라는 들보로 눈이 가려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지사충성의 길로서 사명’으로 여기셨던 일을 비하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