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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연대 | 종전의 소속명칭 | 변경 후의 명칭 | 근 거 |
고려말경 | 만가촌(萬家村) | 도화동(挑花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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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경 | 도화동(挑花洞) | ||
고려말경 | 연화동(蓮花洞) | ||
| 상도동(上都洞 | ||
1947년 | 상도청(上都廳) | 상도청(上都廳) | 정묘지(丁卯誌) |
1789년 | 도동(都東) | 도동(都東) | 도호부지(都護府志) |
1864년 | 도동(都東) | 도동(都東) | 대흥방약(大興坊約) |
1902년 | 도동(都東) | 도동(都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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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 도청리(都廳里) | 도동(都東) | 경술지(庚戌誌) |
1914년 | 도청리(都廳里) | 도동(都東) | 행정구역통합 |
<천관산에서 내려다 본 대덕읍 일대>
◎ 세대수, 인구, 마을임원
도동마을의 세대수 및 인구는 다음과 같다.
연도별 인구 및 세대수
연도별 | 세대수 | 인 구 (단위; 명) | 이장 / 연락처 | ||
남자 | 여자 | 계 | |||
2010.12.31 | 108 | 129 | 125 | 254 | 이만주 / 019-667-7872 |
2011.12.31 | 105 | 116 | 120 | 236 | 임연진 / 010-3620-1653 |
2012.12.31 | 임연진 / 010-3620-1653 | ||||
2013.12.31 | |||||
2014.12.31 | |||||
2015.12.31 | |||||
2016.12.31 | |||||
2017.12.31 | |||||
2018.12.31 | |||||
2019.12.31 |
<자료제공: 대덕읍사무소>
(2010.12.31.현재)
세 대 수 | 108 세대 |
인 구 | 남자; 129 명. 여자; 125명 (합계) 254 명 |
마을임원 | 이장: 이만주(019-667-7872). 새마을지도자; (남)임영길 (여)권양자 |
◎ 마을의 지명 설명
• 도청리: 구(舊)대흥면사무소가 있어 도청리라 하였으나 인구 번창으로 도동과 도 서로 나눔.
• 대흥면소터: 도동 복판 도청리 178~18번지에 있었음.
• 도동(都東): 동편 상도청(上都廳), 구도청(舊都廳)(古誌에 기록)
• 솔짓등: 솔기둥 도동. 위쪽에 있는 마을.
• 갈미개옹: 조리개옹 남쪽에 있는 개옹.
• 아리대미: 도동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아릿가매: 도동 동남쪽에 있는 들. 소금을 굽는 가마가 둘 있었는데 그 아래쪽.
• 아릿생기: 도동 남쪽 들 두 개의 샘이 있는데 그 아래쪽.
• 웃가매: 아랫가매 위쪽에 있는 들.
• 조리개옹: 도동 앞에 있던 개옹. 조리처럼 생겼음.
• 큰개옹: 조리개웅 아래에 있던 큰 개옹.
• 큰새암: 도동 동쪽에 있는 큰 샘.
• 연화동(蓮花洞): 도청리의 옛이름
• 만가촌(萬家村): 도청 이전의 마을. 만가촌(고려조) 다음 연화동(고려말, 이조초) 다음 도
리.
• 상도동(上都東): 도청리의 웃쪽에 있다는 마을.
• 청등포: 청등포, 풋개
• 율지보:
• 등다물:
• 풋등: 청룡등
• 풋등개: 청등포 갈미개웅 남쪽에 있다. 해초가 생산됨. 1966년부터 5년간 어장분 쟁 사건이 있었다.
•새논깨: 도청 동북쪽에 있는 들. 근처에 새로 만든 논이 있음.
◎ 마을의 문화유적
□만가촌의 고허(萬牧家의 古墟)
도청리의 주산인 어등산(御登山,古誌의 기록)아래 해안을 따라 5만여평의 광활한 벌판에 10,000여호가 살던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석기 시대의 유물인 기와석기 추출 돌들이 출토되어 큰 폐허촌임을 남기고 있다.
호남의 명산인 천관산에서 흐르는 어등천이 서쪽에서 동으로 흘러 마을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졌으며 북촌에는 이씨가 많이 살아 학자와 재사들이 끊이지 않고 배출되었으며 남촌에는 박씨가 많이 살면서 부자와 力士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평화롭고 풍속은 아름답고 인정은 순후한 큰 마을이 일조에 왜적의 잔악한 만행으로 멸망되고 폐허가 되었음은 천고의 비밀을 간직한 채 말이 없고 이제 남아있는 저 돌담울 만이 당시의 흔적을 남겨둔 채 조상들의 한 맺힌 넋이 분명 매몰되어 있을 것이다. 만가촌은 만여호가 살았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흥방 치소(大興坊治所)
도동 중앙지 도청리 178~18번지 소금가마터, 웃가마터, 대흥방의 치소인 면사무소가 있었고 대흥지방의 모든 조세및 토산물을 집수시킨 창고와 해상으로 반출한 포구가 있었다.
독립운동가로 일경의 추격을 받아 이곳으로 피신한 경남 거창 출신 김만석(金萬石)이 신성의숙(信誠 義塾)이란 사설학교를 세워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학문의 전당이 있었다. 초대교장은 장천호, 기독교가 처음으로 들어와 여덟 칸의 대하교회당(大廈敎會堂)을 건립하여 놓고 선교하니 번창하자 왜정은 이를 해체시키고 그 파괴한 재목으로 거정리에 옮겨 대덕면사무소를 짓고 일부는 제주도까지 반출하여 갔다고 한다.
□도동 고인돌
도청리 473번지 집 뒤에 1기가 있다. 간척 전에는 마을 앞 동쪽 100m까지 물이 들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북동쪽에 있는 사장나무 아래와 ‘독배기’라고 불리는 곳에서도 고인돌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 천연기념물
□정자목
□보호수 1
나무종류 | 느티나무 | 지정목적 | 당산목 | 수 령 | 380년 |
지정번호 | 15-12-3-3(장흥군제41호) | 소재지 | 대덕읍 도청리 도동마을 113 | ||
지정년도 | 1982년 | 나무크기 | •높이; 24M •둘레; 6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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