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유감
2019. 7. 29. 일 비 신 승 엽
빗속을 뚫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엠아무 마트를 찾았다.
시원하게 콩물국수를 점심에 즐기려 마른국수 한 묶음을 샀다.
좁은 매장에는 마지막 장맛비에 멀리가지 않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국수를 사서 계산대로 향하는 도중에 스쳐지나가는 사십대 아줌마가 순간적으로 눈앞에 들어왔다. 아! 정말 보기에 민망하다. 눈길을 얼른 다른 곳으로 돌렸지만 순간적으로 보아버린 장면은 그녀의 적나라한 하체가 그대로 보이는 레깅스 차림새...... 그녀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했다. 순간 복잡한 생각들이 동시에 머리에 떠올랐다. 요즈음 유행인 ‘살빼기 운동(클로스피트)’을 하다가 마트에 온 것일까?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지 못해서 집에서 입던 대로 편하게 나왔을까? 아니면 그동안 살빼기로 날씬하진 몸매를 자랑하기 위해서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전에 어느 글에서 읽은 여성들의 심리 즉 남성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복장인지 순간적으로 판단하기엔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장이나 마트, 사람들이 자신의 차림새를 볼 수 있는 거리 같은 공개된 장소에는 자기의 신체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레깅스 입는 것은 좋지 않은 옷차림인 것 같다. 과문寡聞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말고 레깅스 차림으로 거리를 나다니는 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도 없다고 생각된다.
나는평소 옷차림을 편하게 한다. 여름에는 늘 청바지나 짧은 바지에 편안한 반팔 남방셔츠나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격식을 차려야 할 때는 간편한 윗도리를 갖추어 입는다.
오늘 아침에도 6시 전에 일어나서 텃밭에 들려 김을 매고, 비료를 주고, 늦 옥수수를 심었다. 한 시간 반 동안 텃밭을 돌보고 늦게 골프연습장에 들려 삼십분 정도 짧은 시간 운동을 하고 돌아왔다. 온 몸이 땀에 젖어 두 번째 샤워를 했다.
농작업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게 청바지에 감색 면 티셔츠 차림에 집을 나선다. 저녁 산책길에도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나간다. 맞은편에 오던 노부부가 나의 차림새를 보고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여보, 당신도 청바지 입어요.” 이말을 듣고 나는 청바지(데님denim)를
더욱 애용하게 되었다.
아침에 만난 레깅스leggings차림의 여인이 나의 청바지 차림새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서로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대 차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레깅스를 당당하게 입자고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레깅스에 관한 글들을 읽어 보았다. 레깅스 입는 것을 노출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당한 생활복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인터넷 메거진에서 많이볼 수 있었다.
요즈음 베이징시를 비롯한 중국 당국은 국제행사를 앞두고 남자들의 배를 드러내고 더위를 식히는 풍습(이러한 옷차림을 외국언론들이 '베이징 비키니'라고 이름을 붙였다) 을 고치려고 벌금4만 원을 물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들의 눈에 예의 없는 옷차림으로 비쳐질 것이 틀림없는 레깅스 차림으로 공공장소에 다니지 않도록 하는 운동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언제 부터인가 우리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는 말은 먼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고 고루한 이들이나 쓰는 말이 되고 말았다. 625를 겪고 양풍이 밀물처럼 들어 온 이후 우리는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외래풍조가 미군이 진주하면서 직접 한반도에 자연스레 상륙하였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공항에 도착한 일이 화제 거리가 되었던 것이 이제는 해외여행이 일상이 되다시피 되었고 해외문물은 좋은 풍습이나 부끄러운 풍습이나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 무비판적으로 들어오니 사람들은 가치판단을 할 겨를이 없다.
유행의 아노미anomie현상이랄까.
고루한 노파심이라고 해도 좋다. 양풍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저급한 외래풍조는 따라하지 말고 우리만의 고유하고 아름다운 미풍양속은 살렸으면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레깅스는 운동할 때와 같이 합당한 장소에서만 입으면 젊은 그들의 건강미와 활력이 얼마나 보기 좋고 자연스러울까? 거리를 활보하거나 마트, 극장 등 공공장소에서 입으면 그것을 보아야하는 많은 이들이 불편해질 것이다. 남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함께 사는 우리 사회의 상식이요. 도리라 여겨진다. 레깅스를 입는 이들이여, 남이 불편해 할 곳에서는 입지 않는 것이 아름답지 않겠는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