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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살인
'이번에 경식이가 고교장 추천을 받는다면서?'
서울사립 고등학교인 K고교의 학생인 김영민과 우장연은 고교장 추천이
이미 확정된 이경식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둘은 모두 같은 반으로 전교
에서 2,3등을 다투는 수재들이었다.
'응... 경식이는 추천 받지 않아도 S대에 확실하게 들어갈 수 있는
데 말이야..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걸..'
김영민은 고교장 추천이 아니면 자신이 S대에 백프로 합격할 것이라고 장
담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도 만약을 위해 고
교장 추천까지 가로챈 이경식이 마음에 안들 수밖에 없는 일...
'뭐... 어쩔 수 없잖아? 이미 확정된 일인걸.. 우린 그저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어.. 그나 저나 영민이 넌 이번 모의고사에서 몇점 맞았니?'
'응.. 나 392점 맞았어 경식이 그놈이 398점으로 일등이고 난 이번에도
역시 이등이야..'
'휴우.. 그럼 이번에도 내가 삼등이네? 난 385점 맞았는데..'
우장연은 아무리 노력해도 어떻게 따라 잡을 수가 없는 이경식과 김영민
에게 감탄사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385점이 장난인 점수가 아니잖아... 그 정도면 S 법대는 힘들어도 Y대
나 K대 최고과는 들어갈 수 잇겠는데..'
'응 그걸로 만족해야지 뭐.. 오늘 과외에 올꺼지?'
'쳇 경식이 그 자식 얼굴 보기도 싫지만 공부는 해야지 오늘은 너희 집에
서 하는 거야?'
'응 과외 선생님이 오늘은 우리 집에서 한다고 하셨서...'
'이번 달로 그룹과외 그만두고 내달부터 개인지도 받아야겠어.. 아무튼
이따 보자 장연아'
김영민은 우장연에게 간단히 인사를 마친 후 영어 단어를 암기하며 집으
로 향했다. 우장연은 그런 김영민을 얼마동안 바라본 후 방향을 바꿔 집
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커피 한 잔씩 마시고 공부하자..!'
우장연은 자신의 집에서 과외를 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에게 각각 커피를
한 잔씩 끓여다 줬다. 그룹과외를 받는 학생들은 이경식 김영민 우장연
그리고 K고등학교가 아닌 S고교의 학생인 고한수 황규연 박강식 이렇게
모두 여섯 명이었다.
'이야.. 역시 장연인 너무 착해.. 항상 이렇게 우릴 신경써주니깐 말이
야.. 이럴 때 선생님도 오셨으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자습하는 것도 괜
찮아! 아무튼 잘 마실께'
자신도 공부하는 것이 힘든대 항상 다른 사람을 챙겨주는 우장연을 좋아
하던 고한수는 그가 건낸 커피를 기쁘게 받아 마셨다.
'흥.. 그럴 시간 있으면 공부나 더 하시지?'
하지만 싸가지가 밥맛인 이경식은 우장연이 타준 커피를 냉큼 받아먹으면
서도 입으론 별 거지같은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응 그래야지.. 그런데 오늘은 영민이가 좀 늦네...'
'흥 그 새끼 내가 이번에 추천받은게 배 아프니깐 어디서 술이나 한 잔
퍼마시고 있을테지..'
잠자코 이경식의 말하는 싸가지를 듣고 있던 박강식은 약간 언성을 높였
다.
'야이 새꺄! 공부 좀 잘한다고 싸가지가 밥맛이냐? 확 아구창을 돌려버리
기 전에 그 재수 없는 주둥아리 그만 놀려라 씹쌔야'
평소 한 주먹 하던 박강식의 말이었기 때문에 이경식은 하는 수 없이 입
을 다물었지만 계속해서 궁시렁 대는 것은 잊지 않았다.
'아무튼 머리 나쁜 새끼들은 무식하다니깐..'
'뭐라고 이 좆 만한 새끼가 너 죽을라고 환장했냐? 엉? 너 그 주둥아리
다신 못 놀리게 아구지를 찢어줄까?'
하지만 자신을 욕하는 건 자다가도 들리는 법 제 아무리 이경식이 조용
한 목소리로 궁시렁 거렸다고 하지만 자기에게 한 말을 못들을 박강식
이 아니었다.
'야..야.. 강식아 그만 참고 우리 커피랑 요것도 함께 먹자!'
고한수는 이경식과 박강식에 의해 분위기가 갑자기 험학해지자 사태 수습
차원에서 아껴놓았던 초콜릿 한 박스를 꺼내 들었다.
'공부 할 때는 머리에 공급되는 에너지가 많아서 수시로 이런 에너지 보
충식을 먹어줘야 한다고'
고한수는 싱글벙글 웃으며 고열량 에너지 식품인 초콜릿을 꺼내 박강식
과 우장연에게 건냈다.
'쳇 과학도 못하는 놈이 별 희한한 건 다 알고 있네..'
역시 이경식은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또 싸가지가 밥맛인 소리를 지껄여
댔다.
'저 씨팔쌔끼 진짜 아구창을 쑤셔 박아 버려야지...'
다시 한번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박강식은 이경식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야 강식아 참아라! 맘 잡고 공부한다고 했잖아..'
박강식과 같은 반인 황규연은 고한수가 꺼낸 초콜릿을 한 주먹 입에 넣
은 다음 우물우물 거리며 말했다.
'저런 새끼 상대해봐야 너만 더 열받는다 그냥 저 주둥아리로 뭘 지껄이
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자..'
황규연은 이렇게 말하며 초콜릿을 한 움큰 집어들어 박강식에게 던졌다.
'씨팔.. 암튼 K고교의 이경식이랑 김영민 이 두 새끼는 싸가지로 양대 산
맥이다 양대 산맥 장연이 너는 공부도 잘하면서 이런 좆만한 새끼들이랑
틀리다는게 난 정말 신기할 뿐이다.'
우장연은 박강식의 말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너무 그러지마 경식이랑 영민이도 알고 보면 착한 얘들이야 그냥 이놈
의 입시 때문에 신경질적이 된 것뿐이지만...'
'아이고 배야... 근대 방금 전부터 왜 이렇게 배가 아프지...?'
황규연은 배가 아프다면서도 초콜릿을 입에서 우물우물 거리며 화장실로
뛰쳐 갔다.
'그러고 보니 나도 배가 살살 아픈대...'
박강식도 속이 안 좋은지 배를 살살 쓰다듬기 시작했다.
'윽.. 내 초콜릿 때문인가..? 나도 배가 아프네...'
고한수까지 배가 아프다고 하자 이경식은 먹을려고 까고 있던 초콜릿을
냅다 던져 버렸다.
'어.. 나도 초콜렛 먹었는대...'
우장연은 더 먹기 위해서 까고 있던 초콜릿 한 봉지를 조용히 내려놓았
다.
'고한수 너 이새끼 나 공부 못하게 할려고 일부러 이런 초콜릿 가져 온거
지?'
이경식은 초콜릿을 냅다 던진 후에 싸가지 밥맛인 어투로 고한수를 쏘아
붙였다.
'뭐 저런 씹새끼가 다있냐?.. 말을 말자 말을... '
통증이 심해졌는지 배를 더 심하게 주무르고 있던 박강식은 이경식의 말
에 제대로 토도 달지 못한 채 신음소리를 연발했다.
'야! 장연아 여기 화장실 더 없냐?'
'안방에 하나 더 있긴한데.. 우리 부모님이 사용하시는 거라..'
'야 배가 아퍼 죽겠는대.. 씨팔 좀 사용하자!'
박강식은 우장연의 동의도 듣지 않은 채 쏜살같이 안방 화장실로 뛰어갔
다.
'휴우... 급하긴 급했나 보네...'
떼굴떼굴 뒹구르고 있던 고한수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갑자기 일어서
서 테이블 한 쪽으로 짱박혀 져있던 티슈를 빼냈다.
'야이 씨팔.. 옆집에 가서라도 해결해야겠다..'
'하..한수야 잠깐만.. 그거 우리 부모님만 사용하시는 티슈거든? 자 이
거 가지고 가!'
우장연은 자신의 부모님이 외국여행때 가지고 온 베니치아산 고급티슈를
뺏어들고 두루마기 휴지를 고한수에게 던졌다.
'야이 씨팔! 급한대.. 이... 이런.. 휴...휴..지... 으 윽 곧 나올 거 같
다...'
고한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문으로 뛰어 나갔다.
'휴.. 나도 초콜릿을 먹었더니 배가 살살 아퍼 오는 거 같은대.. 넌 괜찮
냐?'
우장연은 내심 이경식이 걱정스러운 듯 물어봤다.
'쳇... 난 안 먹었으니깐 괜찮아..'
우장연은 이경식의 말을 듣자 안심이라는 듯 밝게 웃었다.
'그나저나... 아까 영민이에게 전화왔는대 너에게 무슨 할말이 있다고 하
는 것 같은 대...'
이경식은 우장연의 말 따윈 관심없다는 표정으로 보던 책을 계속 봤다.
'씨팔.. 선생 안 올 줄 알았으면 집에서 공부할 걸 그랬다.'
이경식은 책을 보면서도 뭐라고 계속 지껄여댔다.
'따르르릉!'
'경식아 잠깐만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집에 전화가 오자 우장연은 냉큼 일어났다.
'받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고 나 방해나 하지마'
우장연은 거실 테이블에 있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영민이구나! 응 경식이 있는대 왜?'
'누구야 영민이 전화냐?'
화장실을 갔다가 온 황규연과 박강식은 우장연의 옆으로 왔다.
'응! 경식아 영민이가 너 좀 바꿔 달래!'
이경식은 귀찮은 듯한 표정이었지만 자신에게 온 전화니 어쩔 수 없이 받
았다.
'여보세요! 난 왜 찾아? 뭐? 내가 왜? 알았어 중요한 얘기 아니면 두고
보자'
이경식은 상당히 기분 나쁘게 전화를 끊은 후 다시 자리에가서 앉었다.
'영민이가 뭐래?'
우장연은 스터디클럽에 오지 않은 김영민이 궁금한지 물었다.
'30분 후에 중요한 얘기가 있다고 좀 만나잔다.. 씨팔 오늘 이거 다 외워
야하는대'
'뭐 누가 만나자는대?'
옆집 화장실에서 일을 시원하게 봤는지 약간은 밝아진 표정으로 들어온
고한수가 말했다.
'응 영민이가 경식이좀 이따 만나자 그랬대...'
'그래?'
고한수는 별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경식아 지금쯤 가 봐야 되지 않을까? 분명 롯데리아에서 만날텐데 거긴
여기서 15분 거리라서 지금 가야지 시간 맞출 수 있겠는대?'
우장연이 이경식에게 말했다.
'이쪽 페이지만 보고 일어날꺼야!'
이경식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응! 아 참! 우리 집에 영양제가 두 알 있거든 나 한 알 먹으면 남는대
너희들 중 누구 안 먹을래?'
우장연은 냉장고 특별 보관실에 넣어놨던 영양제 두 알을 꺼냈다. 영양제
는 상당히 큼지막한 게 예사 제품이 아닌 듯 했다.
'이게 말이야! 아프리카산 희귀벌의 로얄제리로 만든거라 수험생에겐 그
만이래!'
우장연은 영양제 한 알을 보여줬다.
'이 씨.. 나도 먹고 싶은대 지금 속이 울렁거려서 도저히 못 먹겠다.'
박강식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
'나도... 설사 때문에 못먹겠어..'
고한수와 황규연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응 그래? 경식아 너 먹을래?'
이경식은 수험생에게 좋은 영양제라는 말에 눈이 번뜩 뜨이는지 우장연에
게 다가왔다.
'흠.. 함 먹어볼까? 이거 진짜 희귀종 로얄제리냐?'
이경식은 어디서 아프리카산 희귀종 로얄제리가 좋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는지 물어봤다.
'응! 우리 부모님이 외국에 자주 나가시잖아! 한 알 먹어볼래!?'
이경식은 먹어볼까? 라는 말도 없이 우장연의 손에서 영양제 한 알을 뺏
어 들어 입에 넣었다. 우장연은 그런 이경식의 모습을 보면서 빙긋이 웃
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나도 먹어야지'
우장연도 이경식이 가져가고 남은 영양제 한 알을 입에 털어넣었다.
'나 가볼란다.'
이경식은 영양제를 삼킨 뒤 물을 한잔 들이키고 나서 말했다.
'응 그래라!'
'씨팔 가던지 말던지'
우장연과 박강식이 동시에 말했다. 이경식이 집을 나가자 박강식은 재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저 새끼 진짜 재수 없어.. 어디가서 확 디져 버렸으면 속이 시원하겠
다.'
'야..야 아무리 그래도 그게 뭐냐? 그냥 병신이나 되면 좋겠다'
황규연은 낄낄낄 웃으며 박강식의 말을 받아쳤다.
'뭐 그런소리들을 하니? 음... 나도 초콜릿 때문에 배가 안좋다... 화장
실좀 갔다가 올게'
우장연도 배를 쓱쓱 비비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학생은 수배했나?'
박경감은 고통에 겨운 듯 한 표정으로 쓰러져 있는 한 학생의 시체를 바
라보았다.
'모든 증인들을 확보하고 김영민이라는 학생을 긴급 수배하도록 해'
'에 선배님!'
강형사는 박경감의 지시에 따라 롯데리아에서 학생의 죽음을 목격한 모
든 증인을 소환했다.
'휴우.. 사인은 뭔거 같습니까?'
박경감은 담배를 한 대 물어끼고 시신을 관찰하고 있는 부검의에게 물었
다.
'자세한 건 부검을 끝내보고 알겠지만 아마 맹독성 독약에 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것도
먹으면 바로 즉사하는 극약 같습니다.'
박경감은 부검의에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 김영민이라는 학생이 여기서 이 학생에게 극약을 먹이고 바로
사망하자 당황하여 도망간 것이 확실한 것 같군.. 게다가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는 증인도 있으니..'
'선배님 이 분이 두 학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봤다는 대요.. 말 한
번 들어보시죠'
강형사는 소환한 증인들 중 종업원으로 보이는 아가씨를 데려왔다.
'이 아가씹니다!'
박경감은 강형사가 데려온 종업원을 쳐다봤다.
'아.. 당신은..?'
'에 경감님 안녕하셨어요?'
예쁘게 생긴 여종업원은 겁에 질린 얼굴로 박경감에게 인사를 했다.
'자넨 그렇게 기억력이 없어서 어떡해 형사 짓을 하나? 이 분은 저번 K은
행 김대리 살인사건때 계시던 조지현씨 아닌가? 근대 어째서 이런 곳
에...'
'아... 은행에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그 지점이 문을 닫고.. 전 그냥 여기
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중이었거든요..'
조지현은 살짝 말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아.. 그렇군요... 이런 무서운 사건을 두 번씩이나 당하시다니... 아무
튼 당시 상황을 자세히 말씀 좀 해주시겠습니까?'
'도망간 학생이 먼저 와서 저 학생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리
고 약 15분 후에 저 학생이 왔죠.. 전 주문을 받으려는대 서로 약간 언쟁
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유심히 바라봤어요 그런대 얼마간 언쟁 후 죽은
학생이 배를 움켜쥐며 쓰러지는 거에요 그러자 도망간 학생이 그 학생에
게 다가가 뭐라고 얘기를 하더니 도망가 버렸어요....'
'음..역시 즉사하는 극약이라면 용의자는 그 학생과 음식을 가져다 준 조
지현씨 뿐이로군요 음식을 직접 만든 사람이 사망한 사람이 먹은 음식에
만 독을 집어넣을 순 없을테니깐요..
둘이 시킨 음식이 같은 종류의 햄버거였죠? 그리고 조지현씨가 이 학생
을 죽여야 할 동기가 전혀 없기 때문에 역시 범인은 그 도망간 김영민이
라는 학생뿐이군요.. 강형사 모든 인원을 총동원해서 그 학생을 빨리 잡
아들이도록 하게..'
'에 선배님..'
'어쨌든 증언 감사했습니다. 한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대. 조
지현씨를 제외하곤 그 어느 누구도 그 두 학생 근처에 가지 않았습니까?'
'에 저 말고는 두 학생 근처에 어느 누구도 가지 않았어요'
'에 감사합니다. 확실하군요'
만족한 표정의 박경감이 피고 있던 담뱃불을 끄자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
께 한 아주머니가 뛰어왔다.
'경식아! 경식아!'
'사망한 이경식 학생의 어머니랍니다.'
강형사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오는 아주머니를 가로막지 않은 채
박경감에게 말했다.
'대체 누가 누가 우리 아들을 이랬어? 곧 있으면 명문대에 진학할 우리
아들을 누가 이랬어?'
아주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보며 외쳤다.
'아주머니.. 진정하십시오'
박경감은 이성을 잃은 이경식의 어머니를 말렸다.
'놔! 당신 경찰이야? 누가 우리 아들 이랬어? 명문대 진학이 확정된 창창
한 우리아들 누가 이랬어?'
'훗.. 저 아줌마는 아들이 죽은 것 보다 대학에 못 간게 더 서러운가 보
군... 크크크 비상에 의한 독살인가?'
조지현과 강형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한 사내가 조롱 섞인 어투로 말했
다.
'아줌마! 정신차려! 당신 아들은 대학을 못 가는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아주 사망한거야!'
사내의 호통소리에 이경식의 어머니는 정신을 차렸는지 아들의 주검을 잡
고 울기 시작했다.
'쳇...'
사내는 코웃음을 한 번 친 후에 이경식의 시신을 물끄런히 바라봤다.
'복통을 호소하다 혼수상태 직후 즉사라... 확실히 비상에 의한 사망이
야'
사내는 턱짐을 진 채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누구시오? 여긴 살인현장입니다. 민간인은 출입할 수 없소'
박경감은 턱수염의 더부룩한 모습으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사내에게 말
했다.
'아.. 난 그냥 지나가던 사람인대.. 내가 독약에 대해선 좀 알아서 하는
말이요'
'음.. 의사십니까? 비상이라는 독이 맞소?'
박경감은 시신을 계속 관찰하고 있던 부검의에게 물었다.
'에..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망한 자는 극약에 의해 복통
을 호소하다 혼수상태 직후 즉사했습니다. 그리고 피부의 반점이 비상에
의한 중독과 일치합니다. 저분의 말씀이 맞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비상
은 잘 안 알려진 독이라서 저도 확신을 하지는 못했는데 저분은 확실하
게 알아내시는군요..'
조지현은 갑자기 등장한 턱수염의 사내를 물끄럼히 바라보고 있었다.
'크크크.. 내가 독에 대해선 좀 알고 있수다. 비상은(arsenic trioxide)
무색 무취이고 맹독성이기 때문에 이런 대에 쓰면 바로 즉사하고 말지.
크크크...'
'아.. 조언 고맙습니다...'
'크크크.. 인사가 늦었군요.. 전 서울시 강력계 검사입니다. 그래서 독
에 대해서 좀 알고 있지.. 이번 사건 내가 범인을 공소 할테니 같이 동행
해도 괜찮겠소?'
박경감과 강형사는 검사라는 말에 약간은 불쾌한 듯 했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사건 수사는 경찰의 몫입니다만...'
'크크크.. 이번 살인의 범인을 영악한 한 학생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서
한번 동행해 보고 싶습니다만... 아.. 방해는 안 할 겁니다. 그냥 공소하
기 전 확실한 증거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을 뿐이요'
박경감은 어쩔 수 없었다.
'좋습니다. 검사님의 말씀인데....'
'선배님 사망한 이경식군의 사망 전 행동을 파악했습니다. 이경식 학생
은 사망 바로 전 자신의 친구인 우장연이라는 학생 집에서 그룹과외를 하
는 도중 김영민군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우장연이라는 학생과 그때 같이 있었던 학생 모두를 참고인
으로 소환해 오도록 하게 지금 즉시!'
'에 그러죠'
강형사는 시원하게 대답한 뒤 사라졌다.
'검사님도 경찰청으로 같이 가시겠습니까?'
박경감은 시신을 계속 살펴보고 있던 검사에게 말했다.
'크크크 그러죠 이거 흥미로운데요..'
박경감은 검사의 말이 떨어지자 재빨리 시신을 부검의에게 옮기도록 하
고 현장 수습을 끝냈다.
'자 그럼 가시죠!'
'크크크 좋습니다.'
박경감은 현장이 모두 정리되자 검사와 함께 롯데리아를 빠져나왔다. 계
속해서 검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조지현은 뭔가를 알아낸 듯한 표정
을 지은 후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롯데리아를 빠져나가던 수염난 사나이가 조지현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자
급기야 그녀는 겁에 질린 모습으로 쓰러졌다.
'흠... 그러니깐 김영민군의 전화를 받고 나서 15분 뒤에 이경식군이 나
갔다는 말이지?'
'에!'
박강식을 비롯한 고한수 우장연 황규연은 갑작스런 사태에 놀란 듯 당황
한 모습들이었다.
'음 뭐 이경식군이 나가기 전에 특별히 먹은 음식이라도...'
'저흰 초콜릿을 먹은 뒤 모두 속이 안 좋아서 설사를 했거든요 경식이만
초콜릿을 먹지 않았어요...'
'크크크 그래? 화장실이 많아봐야 두 곳일텐데 학생들은 모두 어떻게 했
지?'
잠자코 옆에서 취조를 바라보고 있던 검사가 물었다.
'에.. 먼저 규연이가 화장실로 뛰쳐 가고 전 장연이 부모님이 쓰시는 화
장실을 어쩔 수 없이 썼어요..'
'저는 하도 급해서 옆집으로 뛰어 갔거든요.. 티슈를 하나 빼 들었는대
장연이가 부모님이 아끼는 거라고 해서 두루마리 휴지를 하나 받아 옆집
에 가서 해결했죠.. 장연이 집은 자주 가던 곳이라 옆집과 안면이 있었거
든요...'
고한수가 말했다.
'전... 경식이가 집을 나간 뒤 갑자기 배가 아퍼서 화장실에 갔어요...
그래서 얘들이랑 겹쳐 고생할 일은 없었죠..'
우장연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뒤 말했다.
'또 먹은 건 없나?'
검사는 박경감이 질문을 하기도 전에 자기가 취조하듯 물어보았다.
'에.. 초콜릿 먹기 전에 모두 커피를 한잔 씩 마시고 저와 경식이는 수
험생에 좋다는 영양제를 먹었어요...'
우장연의 말에 검사는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 그래? 그 영양제는 물론 이경식이라는 학생이 직접 골라 먹었겠
지?'
'에 경식이가 와서 먼지 집어가고 남은 걸 제가 먹었죠..'
'음.. 경감님.. 역시 범인은 김영민이라는 학생 같군요.. 비상은 먹은 동
시에 즉사하기 때문에 롯데리아 지점에서 그 학생이 몰래 먹인 것 같
소..'
검사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희들은 그냥 증인 인증 차원에서 부른
거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집에 돌아가라!'
박경감은 취조를 끝내자 얘들을 돌려보냈다.
'크크크 그럼 박경감 나도 이만 가보겠소! 김영민이라는 학생을 잡거든
나에게 범인을 인도해 주시오...'
'그럽시다..'
검사는 박경감과 간단히 인사를 한 후 학생들을 따라 경찰청을 나왔다.
경찰청을 나온 뒤 얼마동안 걸어가자 사내는 자신의 턱수염을 손으로 잡
아당겼다. 그러자 수염은 가짜였는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선글라스를
벗은 모습의 사내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경찰청을 나온 한 학생을 따라
갔다.
'크크크 맹랑한 꼬마로군.... 감히 나 J.D를 속이려 하다니..'
'어이! 우장연'
경찰청과 집이 가까워 걸어가고 있던 우장연은 갑자기 뒤에서 자신을 부
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크크크... 집에 가는구만.. 잠시 나랑 얘기 좀 할까?'
겁에 질린 우장연은 J.D를 보자 뒷걸음질 쳤다.
'누..누구시죠?'
'응..크크크 나 아까 그 검사! 수염이 거추장스러워서 방금 깎아버렸다
네'
J.D의 말을 들은 우장연은 안심이라는 듯 걸어왔다.
'에.. 검사님이시네요.. 근대 어쩐 일로..'
'크크크.. 이런 일을 당했으니 혼자 가기 무서울 것 같아서 말이야 다른
학생들은 모두 부모님이 데리러 왔던대 자네만 혼자 가길레 크크크'
'아.. 고맙습니다..'
'뭐 고마울 것까지야.. 우리 좀 쉬었다 갈까?'
J.D는 우장연을 데리고 벤치에 앉았다.
'전 정말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어요...'
우장연은 이경식의 죽음이 끝까지 믿기지 않는 듯 울먹울먹 거렸다.
'크크크 꼬마야.. 연극은 그만하거라..'
갑자기 변한 J.D의 말투에 우장연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연..연극이라니요?'
'맹랑한 꼬마... 범인이 너라는 걸 나는 다 알고 있다.'
'그..그게 무슨 말씀이죠?'
J.D는 우장연을 한 번 노려보았다.
'너희들이 먹은 초콜릿은 아무 이상이 없었어... 아마 니가 타준 커피에
설사약이 들어있었겠지.. 그리고 니가 마실 것과 이경식이 마실 것에만
약이 안 타져 있었을 꺼야.. 크크크 니가 탔으니깐 약이 안든 것만 골라
내는 건 쉬운 일이겠지...그리고 커피에 설사약을 탄 이유는 뒤에 있을
어떤 트릭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지'
J.D의 말을 들은 우장연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검사가 아니시군요.. 무슨 증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우장연은 이태까지의 여린 모습과는 다르게 당당하게 나왔다.
'크크... 너희 집 안방에 있는 화장실은 부모님이 전용으로 쓰는 거라고
했나? 그런데 왜 부모님이 쓰시는 귀중한 티슈가 테이블 한 쪽에 있었을
까? 그건 그 화장실이 미리 다른 사람에게 사용될 것을 예상한 꼬마 니
가 치운 거겠지.. 크크크 그래서 고한수가 갑자기 그 티슈를 들고 옆집으
로 가려고 했을 때 당황하여 말린 뒤 두루마리 휴지를 준 것이고.. 부모
님이 사용하는 티슈가 아까워서 치워놨는대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줄 수
는 없으니깐 말이야.. 살인을 저지르는 꼬마치고는 좀 겁이 많군.. 크크
크 부모님이 쓰는 휴지가 사라지면 혼나기라도 하나?..'
우장연은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좋아요.. 하지만 어떻게 내가 경식이를 죽였죠? 그 독약은 즉사하는 맹
독성이라면서요?'
'크크크.. 그건 너와 이경식만 먹었다는 영양제에 답이 있지.. 그 영양제
를 이경식 에게만 먹이기 위해 넌 미리 다른 학생들에게 설사약을 먹여
그 뒤 학생들이 아무 것도 못 먹게 만들었어... 그리고 때마침 고한수가
초콜릿을 가져온 덕분에 커피를 사용한 트릭이 더욱 완벽해 졌지.. 롯데
리아에서 김영민이 맹독인 비상을 햄버거를 넣는다는 건 멍청한 짓이
야.. 먹자마자 죽는 독약을 그런 자리에서 먹이는 멍청이는 이 세상 어디
에도 없지.. 그래서 난 의심했어.. 크크크.. 독약을 미리 먹은 뒤 독이
바로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어딘가에 트릭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때마침 꼬마 니가 좋은 얘길 해주더군... 영양제를 먹었
다고 말이야.. 크크크 이경식은 초콜릿을 안 먹었기 때문에 초콜릿에는
독이 없었지.. 그리고 커피에 독을 넣었다면 독이 즉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트릭이 불가능해..그래서 커피는 영양제를 이경식 에게만 먹
이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사용한 것이고 하지만 영양제라면 가능하지..'
'어떻게요?'
'아마 캡슐을 여러 겹으로 쌓겠지.. 철저한 계산을 했겠군.. 몇 겹의 캡
슐을 싸야만 얼마 뒤에 효과가 나타나는지 계산한 너는 너희 집에서 친구
들이 잘 가는 롯데리아까지의 거리에 맞춰 캡슐을 만들었지.. 크크 그 전
에 미리 김영민과 이경식이 만날 거라는 사실을 알았겠지? 그리고 그 장
소는 항상 롯데리아라는 사실도 말이야.. 비상은 계관석에서 열승화를 시
키면 쉽게 얻어낼 수 있지... 크크크 공부를 잘하는 너 정도라면 그 정도
는 화학실에서 조제할 수 있었을꺼야..'
우장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잖아요? 부검으로 경식이의 위장을 모두 조
사한다 해도 이미 뒤죽박죽으로 소화된 위 속에서 어디에 독이 들었는지
는 어떻게 알죠? 그리고 또 하나 영양제를 골라 먹은 건 경식이에요.. 내
가 어떻게 경식이가 고를 영양제를 알고 그 독을 넣었을까요? 나도 그 영
양제를 먹었는데.. 죽을 위험을 물러 쓰고 내가 룰렛게임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흐흐.. 증거라.. 넌 룰렛게임을 할 필요가 없었어.. 두 영양제 모두에
독을 넣었으니깐 말이야.. 그런데 설사약을 먹지 않은 니가 왜 갑자기 배
가 아프다면서 화장실에 간 걸까? 크크 그건 바로 니가 먹은 영양제에도
독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지 넌 그걸 삼키지 않고 입에 넣고 있었을 꺼야
캡슐을 여러 겹으로 싸놓았기 때문에 위속이 아닌 입 속에서 그렇게 쉽
게 녹진 않았을 테니깐 그리고 이경식이 나간 뒤 배가 아프다면서 화장실
에 가 그걸 뱉어냈겠지...'
우장연은 박수를 쳤다.
'정답이군요... 그래서 어쩔 생각이죠? 말했듯이 증거가 없을텐데..'
'멍청한 꼬마.. 넌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트릭에서 한 가지 실수를 했다.
영양제를 화장실에서 뱉어낸 것.. 비상은 아주 강력한 맹독이지... 커다
란 물탱크 속에 조제한 비상 0.1그램만 넣어도 검출되게 되어있어... 아
파트의 정화조는 당일 날 모두 버리지 못하지.. 아마 정화조의 분비물을
검사해보면 비상이 검출 될꺼야.. 크크크 정화조 속에서 니가 뱉어낸 영
양제를 찾아낸다면 더 좋고 말이야... 경찰에서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
만.. '
J.D의 말에 우장연은 드디어 당황했다.
'그..그래서 어쩔 생각이죠?'
'응? 크크크 걱정하지 말아라! 경찰에 알려 줄 일은 없을 테니깐.. 살인
동기는 이경식이 받았다는 고교장추천 때문이겠지? 그런대 이경식이 죽게
된다면 다음 추천 대상은 김영민이겠군.. 그래서 넌 김영민을 범인으로
몰아세우기 위해 그 둘이 만나는 시간에 독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었
겠지... 그렇게 되면 김영민이 고교장추천을 받는 다는 건 불가능할 테
니 말이야... 범인으로 밝혀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고 확실히 하기
위해 넌 또 그 김영민이라는 학생도 살해할 생각일지 모르겠군.... 그러
나 걱정할 건 없다. 이 사실은 나만 아는 거니깐.. 크크크 박경감이 너
의 트릭을 알아낼 줄은 모르겠지만.. 하지만 만약 이 사건에 대한 의뢰
가 나에게 온다면.. 그땐 아마 넌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이 될 것이야
크하하하!!! 나에게 이 의뢰가 안 오길 기다리면서 목숨 부지나 잘하고
있거라... 넌 유능한 살인마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서 크크크 참 기
분이 좋구나 크하하!'
우장연은 사라져 가는 J.D를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크크크.. 한국의 입시제도가 유능한 인재 대신 지능적인 살인마 하나를
양성했군 크크크...'
'선배님.. 조지현씨 전홥니다. 상당히 겁에 질린 목소린 대요?'
강형사는 급하게 걸려온 전화를 박경감에게 바꿔졌다.
'그래? 어디 한번 바꿔봐'
전화를 받은 박경감의 표정이 서서히 변해갔다.
'에.. 그게 사실입니까?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경찰을 몇 명 보내서 신
변을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박경감의 표정에는 망연자실함이 엿보였다.
'무슨일입니까? 선배님!'
'강형사... 검찰청에 연락해서 아까 왔던 그 검사에 대해 조사해봐...'
'에 선배님'
얼마 후 강형사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선배님.. 검찰청에 연락해 봤는데.. 그런 검사는 없답니다..'
박경감은 담배를 한 대 물어 피웠다.
'역시.... 그 검사라는자... K은행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범인 둘을 살해
했던 그 탐정이야.. 우리가 완전히 속았어..'
박경감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담배를 쭉쭉 빨아댔다.
'크크크! 박경감.. 한국 사회의 범죄가 자네에 의해 모두 소멸됐으면 하
는 소망이 있군.. 내가 먹고살긴 힘들어 질테진 말이야! 크하하 그럼 수
고들 하게!'
이런 한국의 입시제도가 머리 좋은 학생을 인재가 아닌 천재 살인마로 만
들어 버렸네요... 이런 불상사가...
다음 얘기는 <더 체스 게임> 입니다. 많은 사랑 바랍니다
- 주인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