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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도 박사, 석사코스가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 인도가 박사, 남미를 석사코스라고 한댔다. 2004년 7월 난 아프리카 , 인도에 이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남미에 대해 아는 거라곤 영화 ‘미션’, ‘에비타’ TV에서 본 ‘정열의 삼바 축제’ 뿐, 하지만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와 39세의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간 ‘체 게바라’ 그 땅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다.
두 개의 대륙에 걸쳐있는 북남미는 파나마 운하를 경계로 위쪽은 북미, 중미 아래쪽을 남미라 한다.
이곳의 매력은 모든 기후지대를 포함한 다채로운 자연체험과 마야, 아즈텍, 잉카등 고대문명, 그리고 유럽의 식민지를 거치며 형성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 보는 것이다.
멕시코, 고대도시 속으로
뉴욕 죤 에프 케네디 공항을 출발 밤 10시(한국 낮 12시)가 넘은 시각에 멕시코 시티에 도착했다. 여기는 치안이 엉망이라 밤 외출은 하지 말란다.
멕시코 지형은 분지형태로 호수를 메워 현재모습이 되었으며 크기는 한반도의 약 9배 면적으로 60%가 메스티조<유럽인+원주민>이고 백인은 9%밖에 되지 않는다.우리가 흔히 일고 있는 멕시코시티의 정식명칭은 시우다드 데 메이꼬이다.스페인어로 발음을 하면 벡시코는 메이꼬가 되는 것이다.중미를 통틀어 경제력,역사,문화, 건축, 인구 등. 여러 지표면에서 최고로 꼽히는 도시가 바로 멕시코의 중심 멕시코시티이다.그만큼 볼거리도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2천만명의 사람이 모여 사느라하루에 8백만대의 차가 움직인다는 거대한 도시, 이곳엔 현대적인 건물과 역사를 품은 오래 된 건물들이 공존한다. 멕시코시티는 빈부의 차가 심한 도시이다. 도시를 지나다 보면 산 중턱에 콘크리트 라인 벽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무허가 건물이 천만 명 넘어 더 이상 산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지책이며 우리의 60년대처럼 고지역 주민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 물차가 물 배달을 한다.
떼오띠와칸의 피라밋
중남미 3대 문명으로 꼽히는 잉카는 페루이고, 아즈텍은 맥시코시 중심이며, 마야문명이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 온두라스 지역에 뻗쳐있다. 떼오띠와칸은 멕시코시 북동쪽 파추카 방면으로 50킬로쯤에 위치한 고대 도시이다.236개의 계단으로 이루워진 신전으로 정연한 구획과 시원한 전망,도시의 관개시설. 이것이 과연 인간의 도시였을까를 의심할 만큼 아름답고 일종의 전율을 느낀다. 일반적으로 피라밋하면 이집트를 연상하지만 (미국 일리노이주 콜린스빌에서 발견된 ‘카오키아 피라밋, 브라질의 마토그로소 피라밋,영국과 중국에도 유사한 것이 있음)다만 이집트의 피라밋은 파라오의 (왕) 무덤이었슴에 반해 떼오띠와칸은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성스러운 제단이요 달력이었다. 높이 65m,길이 224m, 용적 110만 제곱km.
춘분날이면(3월21일) 원주민, 사제, 점술가 및 세계각지의 사람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봄맞이 에녹시스 축제가 열린다.
멕시코인들은 전통에 따라 흰옷을 입고 해의 피라미드를 오르면서 우주의 기를 온 몸으로 받아 들인다.
춘분날 오후 2시~4시 사이 66.6초동안 해의 피라미드 계단에 똑같은 피라미드 그림자가 나타나는데 이때 기를 받으면 1년내내 무병장수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해와 달의 피라미드가 웅장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서 있고 돌과 돌 사이엔 석회를 바르고, 벽이 갈라지지 않게 검은색 현무암을 촘촘히 박아놓은 것은 그 자체로도 예술이었다.
프레스코 기법으로 채색된 벽화에는 뱀, 재규어, 독수리, 옥수수등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들은 신의 매개자로서 신성시 하였고 뱀은 지하세계 즉 죽음, 과거이며 재규어는 현재, 독수리는 하늘을 지배하는 미래, 비를 의미하며, 옥수수는 풍년을 기원하였다.
달의 피라미드와 해의 피라미드 사이의 넓은 대로는 사자(死者)의 길이라 불리는데 신전에 받쳐질 제물로 뽑힌 자가 걸었던 길이기 때문이란다.
이 도시에는 왕, 신관, 귀족들이 2만명정도 거주했었고 일반인들은 도시밖의 흙집에 거주하였다.
지금 십분의일 정도 발굴상태라는데 이 규모가 얼마큼 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위대한 과거를 자랑하는 멕시코인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영혼이 응축된 뿌리이며 멕시코 최대의 문화사적인 이곳을 직접보고 밟았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1521년 스페인의 에르난 꼬르떼스가 정복할 때까지 올메카, 마야, 떼오띠와칸, 아즈텍 문명이 세계와 단절된 채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그 문화의 현장에 서서 난 새삼 인간의 끝없는 창조정신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으며 장중한 아름다움과 막강한 역사의 무게를 새삼 가슴으로 되새겨 보았다.
피라미드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마루아치<거리의 악사>라 불리는 기타를 든 남자 둘이 ‘베사메 무쵸’, ‘엘콘도 파사’ 콴타라메아‘등의 노래를 불러 여흥을 돋우었다.
옥수수가 주식이어서 ‘또르띠야’라는 옥수수 전병에 야채를 싸서 먹는데 맛이 담백하여 낮부터 만찬 분위기가 저절로 났다. 시내로 돌아와 소깔로 광장으로 갔다. 예전에 이곳은 13.14세기 아즈텍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 나라 전설에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에 앉아 있는 곳에 나라를 세우라는 예언에 그들은 거대한 수중도시 ‘테노치틀란’을 세웠었다. 멕시코기의 중앙에는 이 문양이 새겨져 있다. 1700년경 아즈텍 고대유적을 발굴하지 못한다고 한다.아즈텍 문화위에 서있는 문화도 세계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세계문화유산 720개 중 멕시코 12. 중국 9. 한국 7개로 멕시코가 가장 많다.
청춘의 빛 -깐꾼
저녁 6시 5분발 비행기로 깐꾼(마야어로 방울뱀)으로 향했다. 이 깐꾼은 멕시코 5개주 중 동쪽에 위치한 유카탄주(정글지역)에 있으며 마야 문명과 카리브해의 보석이라 칭하는 세계 최고의 휴양지를 보유하고 있다.
7자형으로 이루어진 깐꾼은 바깥쪽은 호수, 안쪽은 1년내내 난류가 흐르는 에머랄드 빛 바다와 23 길로미터나 되는 자연모래톱, 유적, 섬크루즈, 해상공원, 녹색지평선, 힐튼 골프장, 플렌테이션<야자나무>이란 가로수길을 갖추고 있어 더할나위 없는 지상낙원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또 2천개가 넘는 방을 갖고있는 리조트만 2백개가 넘고 공항을 이용하는 1s년 여행객만 450만명 정도, 남미나 멕시코인들은 가격이 비싸 비행기는 엄두도 못내고, 주로 버스를 이용하며 유럽에서 오는 다이렉트 비행기까지 합하면 관광객은 점점 더 늘어날 추세이다. 아직도 남쪽으로 25킬로중에 130킬로의 모래톱이 더 남아 있다니 왠지 부럽기까지 하였다.
치첸이사
‘치첸이사’로 가는 길은 정글이 이어진다. 스페인이 정복시 마야인들은 정글지역에서 소부족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완전정복이 어려웠던 탓으로 순수 마야언어를 유지하며 순수 혈통을 가진 마야인만 현재 5백만이 살고 있다.
마야인들은 ‘해먹’이라 불리는 그물 침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머리가 몸에 붙은 모습니다. 또 이들은 솜씨가 뛰어나 수공예품을 잘 만들며 메스티조가 거의 없는 곳이다.
‘치첸이사’란 마야어로 ‘우물가의 집’이란 뜻이며 900년에서 1500년경 후기 마야 문명의 중심지였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는 그 공통점이 강이 흐르고 평평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마야 문명은 밀림속에서 4만-6만 인구가 2천년간 번영을 지속시킨 이유는 뭘까? 마야의 땅들은 우기에 많은 비가 내려도 구멍이 숭숭뚫린 석회암 이어서 곧바로 땅속으로 스며들고, 우물을 파기도 어려웠다.
그 비밀은 회반죽에 있었다. 도시 전체를 회반죽을 발라 빗물 깔대기로 만들어 빗물을 받아 커다란 저수지에 모아 밀림 한가운데서 충분한 물을 얻었다고 한다. 올림픽 돔같은 저수지를 3개나 갖추고 상.중.하의 물을 용도에 맞게 사용하였다. 모든 건축물의 외벽.광장의 바닥까지도 회반죽을 사용했으며, 흰색의 눈부심을 예방하기위해 신전의 벽이나 피라미드엔 붉은색을 칠했다. 상상해 보라! 초록빛 녹음에 둘러싸인 붉은 건축물의 장엄한 모습을! 하지만 제국이 번성할수록 항상 물부족에 시달려야 했고,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 밀림에선 풍년을 기약하며 3월 20일 춘분때 우기전 파종을 해야했다. 옥수수가 주식인 마야인들은 숲을 태워 밭을 일구는 화전농법이었다. 숲의 황폐화를 막고 숲의 회복을 위해 매년 다른곳에 불을 질러 농사를 지어야만했다. 마야의 도시들은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고 따로따로 번성할 수 밖에 없었다. 마야인들은 동양의 60갑자처럼 52년을 주기로 계산하였다. 피라미드 벽면에 52개의 패널이 그 증거이다. 그들은 뛰어난 천문학자였다. 그들은 이미 1200년전 이곳에 천문관측소를 세워 360도로 하늘을 관측하였고, 안쪽 창문에서 바깥쪽 창문을 통해 금성의 움직임을 관찰하였다.
뱀을 모신 쿠쿨칸(풍요의 신) 신전은 91계단으로 기울기는 17도. 마야력은 한달을 20일 1년은 18개월, 사방의 91계단과 꼭대기의 기단은 1년(360일)나머지 5일은 하늘의 날로 셈하였다.정서로 지는 해를 17도 돌려 4방위를 배치한건 1년에 한번뿐인 춘분에 우기가 시작되고, 한해 농사의 시작이며 씨뿌릴때이기 때문이다.
뱀의 신전은 4방에서 오르도록 계단을 설치했고 북쪽 아래 계단에서 손뼉을 치면 쇳소리 같은 음이 울리는데 뱀신이 회답한다고 믿어 더욱 경배했다고 한다. 8세기 당시 마야에는 바퀴는 물론 철기문화 조차 유입되지 않았었다. 무엇으로 돌을 자르고 날랐을까, 어떻게 태양력을 저리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빛과 소리가 움직이는 통로를 알았을까, 그것들을 무엇으로 측정했을까, 마야 문명은 알수록 신비로움 그 자체다. 춘분날 하늘에서 뱀이 내려오는 듯,그림자가 지게 설계한 것과 벽돌 크기의 돌을 깍아 정교한 석벽을 쌓은 것은 그들의 기하학이 고도로 발달되었음을 증명해 준다.쿠쿨칸(카스티오섬),전사의 신전(천개의 돌기둥),경기장(엉덩이 축구장),희생의 샘, 비너스 제단등이 남아 있다. 이 곳에서 ‘파파로티’가 달밤에 공연을 한 후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전사의 신전 위는 살아있는 자의 가슴을 가르고 꺼낸 심장을 태양신에게 바친 장소가 보인다. 누우면 딱 맞게 만들어 놓았다. 심장을 잃은 머리는 30m 아래 땅으로 던저져 산산히 깨졌다. 볼게임장에서는 166m거리에 서있는 두 심판이 서로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게 설계되었다. 2.8km의 쇠공을 7m 높이에 달려있는 골대에 그것도 손이 아니라 엉덩이와 허벅지를 이용해 넣었다는 이 경기 자체도 불가사의다. 부족장이 왕권을 계승키 위하여 20-30세의 건장한 남자들을 희생 시켰는데, 부족별로 엉덩이 축구를 해서 이긴 조장은 진조장의 목을 쳤으며 이긴자는 신전의 제물로 바쳐졌다. 영웅이란 이름으로 젊은이를 쳐단한 이들의 문명은 쇠퇴되었고, 살아남기 위해 죽였지만, 그 죽음은 왕조의 멸망을 가져왔다.
숲을 따라가면 ‘희생의 샘’이 나오는데 깊이가 짐작되지 않은 연두색 큰 연못으로 가뭄시, 기우제를 올렸던곳, 12세 이하의 여자 어린이를 제물로 삼아 던졌던 곳이다. 신전 아래 해변에선 젊은 연인들이 키스를 하고, 노부부는 고대 도시의 일부였던 집터에 앉아 다리를 쉰다. 로맨스와 마야문명,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이 컨셉은 가장 아름다운 커플로 영원히 존재하리라.
깐꾼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엔 비가 내렸다. 반대편으로 가면 메리다 항구 도시가 이어진다. 이 곳은 우리 조상들의 슬픈 역사가 숨쉬는 곳이기도 하다.
1905년 1333명의 한국인들은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이 아닌 멕시코의 에니깽 농장에 내동댕이쳐졌다. (배안에서 28명이 사망, 1206명1명 출생)
에니깽은 선인장 이름으로 실을 뽑아 낚시줄이나 밧줄을 만든다. 그 때는 마야인들이 가장 낮은 신분이었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더 낮은 임금으로 생활하였고 이 곳에서 가시에 찔리며 번 낮은 임금을 모아 독립운동 자금에 보태었다고 한다.
2005년은 ‘에니깽’ 100주년이 된 해이다.
카리브 해.눈부시게 밝은 하얀 모래 톱과 에머랄드 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멀리하며 란칠레 항공에 몸을 싣는다. 산티아고 까지는 10시간(중간에 하바나에 잠시 머뭄)
처음 두툼한 항공권을 받았을땐 여행길의 거리가 실감나지 않았었다.
칠레-산티아고
8월 2일 월요일 아침6시 반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멀리 멀리 너무나 멀리 떠나왔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안데스 3100고지의 잉카호수를 보러갔다. 시내에 비가 내리면 그 곳은 눈이 내릴테고 길이 막힐지도 몰라 서둘러야 한단다. 정상 부근은 거의 S자 30구비, 눈쌓인 길을 뒤돌아보면 현기증이 절로인다.
안개에 쌓인 잉카 호수는 깊이를 알 수 없으며 바다와 통해 있고 스페인 인들은 많은 잉카인들을 여기에 수장시켰다.
겨울 이라곤 하지만 들판은 초록이고 풀도 무성하다. 골짜기에 들어서자 큰 선인장들이 나무처럼 서 있고 복숭아 꽃, 살구 꽃들이 빗속에서도 정겹게 우리를 반긴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 밭들, 지구 반데편에서 우리의 식탁을 채운다니 이웃이 따로 없다.
산티아고는 칠레의 수도로써 뱀장어 같이 좁고 긴 나라이며. 남미에선 그래도 정치,경제가 안정되어 있고 알젠틴까진 국경도로로 7시간밖엔 걸리지 않으며 사계절이 공존한다.
칠레는 북에서 남으로 6지역으로 나뉘며, 북은 열대 지방, 중앙이 산티아고, 남은 화산 지역으로 강수량이 풍부해서 온천, 호수, 목재, 펄프업이 발달, 남미의 스위스라 부른다.
칠레 남쪽에서 알젠틴 국경까지는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여행하고 싶은 인기 높은 곳이기도 하며 겨울엔 스키타기에 아주 좋단다.
칠레의 비냐 델마르(포도의 해변) 과 발파라이소 산동네 마을은 2003년 유네스코로 지정된 휴양도시이다.
붉은 벅돌로 층층을 이룬 집들은 밤이 되면 꽃등을 내건 성채처럼 그 아룸다움을 뽐낸다.
발파라이소는 산티아고 북서쪽 190km지점에 위치하며 태평양에 면한 남아메리카 제1의 무역항이다. 안데스를 넘어 아르젠틴으로 통하는 대륙 횡단 철도의 기점이기도 하다. 1536년 에스파니아인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지진 피해가 잦아 시가지는 해안에 면한 구릉의 비탈면에 자리하여 낮은 지역은 상업지구 높은 지역은 주택지,공원,성당,대학, 문화의 중심지로 가꾸어졌다. 주택지는 서민들이 주로 사는데 후니끌라르(엘레베이터)가 산동네 위까지 오르내리며 요금은 100페소로 싼 편이다.
이런 시설은 마을에 20군데나 설치 되어있어, 서민들을 배려하는 시행정도 부럽고, 바다를 바라보며 유유자적하며 사는 그들의 삶 또한 가치있어 보인다.
9시가 거의 다되 한국식당에 도착해서 칠레산 연어회와 적포도주로 저녁을 마치고 안데스의 눈녹은 물로 씻고 나니 밤 12시, 물은 석회질이 많아 끈끈하다.
탱고의 도시-부에노스 아이레스
10시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깨끗한 환경)라는 멋진 이름의 도시로 향한다. 1시간 반뒤, 생떽쥐베리가 비행사로 일했던 아르헨에 도착, 바로 2004년 8월 2일 월요일, 열대 꽃들이 화사하게 핀 도시를 연상하며 에스파냐어가 난무하는 참으로 낯선 곳에 내렸다.
창 밖의 초원은 푸르고 끝이 없지만 옛 영화를 그리워하며 정치에 찌든 알젠틴 사람들의 현주소를 듣는다.
방목한 소의 갈비살을 숯불에 구운 아사도를 먹으며 낙천적인 많은 사람들은 남미의 다른 곳과는 다른 세련되고 멋진 모습들이다.
남미 사람들은 잘난체 하는 알젠틴을 싫어한다. 축구를 해도 알젠틴만은 이겨야 한다고 열을 낸다. 꼭 아시아의 일본 같다. 그들은 그래도 그 잘난 맛에 뽐내며 산다.
탱고가 탄생한 보카거리는 리아추엘로 강변에서 시작된다. 마데로항은 한 때 유럽인들이 희망의 돛을 달고 이 곳에 정착했었다. 리아추엘로 강과 라플라타 강의 합류점 부근에 있는 오랜 항구 지구이며 부두와 공업지구에 접하고 있으며 이탈리아계 주민의 독특한 생활을 엿볼 수 있다. 형형색색의 목조 가옥이 늘어서 있고 카바레,바. 레스토랑. 카페에는 보헤미안풍의 노동자와 뱃사람들이 드나들어 특이한 분위기를 풍긴다. 카메니토 가리는 이탈리아 요리로 유명하다.
백년이 더 된 영국식 창고, 사무실들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고급 식당가로 탈바꿈하여 빛바랜 순수함과 세련된 모습으로 낯선 여행객들에게 지난 날의 영화를 대변해 준다.
.보카 지구는 탱고의 발상지로 유명하다.탱고는 2박자의 경쾌한 춤곡으로 1910년대에 파리로 건너가 히트를 했고, 그 후 10년쯤 후 다시 본 고장으로 돌아와 사랑을 받으며 알젠틴의 상징이 되었다. 아코디온과 비슷한 밴드네온은 1846년 독일의 반도가 아코디온을 기초로 하여 고안했는데 1900년 후반부터 탱고 연주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탱고는 밴드네온에 맞춰 남녀가 애틋한 동작을 반복하는데 본래 이 춤은 연인들이 추는 춤이 아닌 배를 타고 돈벌이를 떠나는 남편과 아내와의 이별을 아쉬워 하며 추는 춤이라니 절제된 이별의 아품이 뱃고동처럼 서글퍼진다. 밴드네온의 호랑이라 불리는 ‘에드아르도 아르나스’와 비센테그레코‘의 음악이 유명.부에이노스의 보까 지구-주니어스 축구장-오월 광장-대성당-대통령궁-에비타가 묻힌 레골레타 묘지-도시를 빛내주는 여러 공원과 조각 작품들이 탱고의 선율만큼이나 감명을 주었다.
탱고의 밤은 그렇게 저물고 새로운 날, 평화를 염원하는 플로라스 조각 꽃이 은빛으로 빛나는 빨래르모 공원을 지나 바다같이 넓은 라풀라타 강물을 뒤로 하며 공항으로 간다.
이과수 공항은 아주 작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40대의 강의구씨, 70년대 소령으로 예편된 아버지를 따라 한 달간 배를 타고 3살 때 브라질에 이민 온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반항의 시기를 보낸 사춘기 때 한국말을 쓰지 않으면 여지없이 뺨을 맞았노라며 그 덕에 한국어 가이더가 됐노라고 함박 웃음을 온 얼굴에 담고 자기를 소개했다.
여행사에서 담근 김치와 정글에서 나는 만쥬오카<고구마 맛>로 점심을 먹은 후 배로 파라과이, 알젠틴, 브라질 삼국이 만나는 T지점 빠라나강에 이르러서 왕복 5킬로의 파라과이의 과라니족 마을까지 정글투어에 들어갔다.
하늘로 쭉쭉뻗은 나무들, 이끼와 덩굴 식물들은 숲을 울창하게 채운다. 허파로 깊게 숨을 내쉬며 쌓인 피로를 내 뱉는다.
남미 여행의 절정은 자연의 위대함 이과수와 인간의 위대함 마츄피츄란다.
다음은 이과수 폭포를 만나는 날이다. 폭포는 60%가 알젠틴에 치우쳐 있지만 넓고 광활함은 브라질 쪽이다. 최고의 발전량을 자랑하는 수력댐 이따이푸는 과라니어로 ‘노래하는 돌’ 이란 뜻이며 본래는 섬 이름이었는데 댐 이름이 되었다.
터번 9개는 파라과이 브라질도 9개다.
이과수가 시작되는 곳엔 ‘악마의 목구멍’ 이라 불리는 폭포가 있다. 분화구 같은 둥글고 거대한 원 안으로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이 거대한 양의 물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 웅장한 자연 앞에 서면 나의 근원을 되돌아보게 하고 우리의 삶이 하늘의 섭리였음을 절감하게 된다.
이과수의 심장 부분엔 산마르틴섬이 있다. 이곳은 영화 ‘미션’의 주제가 됐던 곳이다.
이과수에서는 새로 태어난다고 한다. 새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란다. 이곳은 단순한 폭포가 아니라 신의 나라로 가는 입구이고 인간의 시원이다.
이과수는 버리게 하고 자신을 가지게 만든다.
트럭으로 정글투어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타자 붉고 고운 노을이 퍼지고 있었다. 우리도 생을 마감할 때 이처럼 곱게 안녕할 수 있으면, 내게 남겨진 삶이 습관적인 삶이 아니길 바라면서 하트 모양인 리오 데쟈네이로로 향한다.
리오 데쟈네이로
브라질은 스페인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포르투갈인들이 1월에 가나바라해변에 도착, 강인줄 알고 1월의 강이라 불러 (리오데자네이로)로 도시 이름이 됐으며 세계 3대 미항중에 하나로 꼽힌다.
꼬르꼬바도산 해발 710미터 정상엔 두 팔을 벌린 예수상이 서 있다. 키 30미터, 양팔 18미터 손바닥 3미터 무게 1145톤
이 크신 예수님은 1931년 브라질독립 100주년 기념물이다.
이빠네마 해변에는 사람들로 넘실거린다. 이들은 한번밖에 없는 이승의 삶을 그저 주어진대로 즐기며 산다.
빵 지아스카르산<옥수수모양>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른다. 13.9킬로미터의 니떼로이 다리는 리오를 바다건너로 연결한다.
산위에서 보니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뚜렷이 구별된다. 난 가난한 동네가 더 이쁘다. 빵산에서 보는 노을이 최고라기에 모두 쪼그리고 앉아 어린왕자가 된다. 서서히 어둠이 쌓이고 예수님은 하늘 한 가운데 우뚝 서 계신다. 그 넓은 품으로 오라는 듯, 이렇게 조용하고 그윽하며 아름다울 수 있다니..., 이 순간 난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었다.
페루-잉카속으로
우리는 다시 산티아고를 거쳐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 잿빛의 도시를 맞이했다. 리마에서 한 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배꼽도시 꾸스꼬로 향했다.
하늘에서 본 안데스는 갈색의 거대한 덩어리이다. 뭉게구름이 떠있는 푸른 하늘은 어찌나 맑은지 싹 닦아 놓은 듯 정갈하기만 하다.
해발 3400미터의 꾸스코는 잉카의 수도였으며, 잉카인들은 도시를 세울 때 물이 있어야 했고, 없으면 물을 끌어올 수 있는 곳이여야 했다. 꾸스꼬는 푸마의 형태로 골짜기 건너편 마을 삭사이망<푸마의 머리>까지 수도시설을 했다. 푸마, 콘돌, 뱀은 신의 매개자로 잉카인의 숭앙을 받았다. 뱀-지하세계, 푸마-현제, 콘돌-하늘을 나는 미래를 상징한다.
꾸스꼬에선 삭사이와망-겐꼬<미아라>-푸카푸카라<요새>-탐보 마차이<물의 신전>-우르밤바<해발 2800미터 고지>-마츄마츄<해발2400미터>순이다.
잉카인들은 미이라를 만들 때 이집트인들처럼 내장을 파내지 않고 태아의 모습으로 하여 천을 이용, 번데기처럼 싸서 자연 건조되게 만들었다.어머니인 대지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멸되지 않는 생명의 영원함에 잠시 고개가 수그러든다.
올란타이에서 기차를 타면 우르밤바강이 옆으로 흐른다. 이 강은 잉카인들이 어머니의 젖줄이라 하여 성스럽게 여겼다. 비밀의 도시라 불리는 공중도시 마츄피츄는 잉카어로 ‘늙은산’ 이란 뜻이며 기차타고, 버스타고, 지그재그로 또 내려서 한사람만 지날 수 있는 바윗길을 20분 정도 걸으면 눈이 확 트이는 곳, 와! 마츄피츄다. 첫인상이 그랬다.
그 지겹던 고산증도 여기에선 씻은 듯이 사라진다. 1911년 미국인 하이람 빙엄이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800년전 잉카제국의 마지막 보루였다.
천혜의 오새인 이곳은 와이어피츄<젊은산>과 마츄피츄<늙은산>골짜기에 하늘에서만 보이는 인공도시를 세워 천명정도가 자급자족할 수 있게 하였다. 양쪽산 비탈 계단식 인공밭엔 실험재배한 농작물을 각 층마다 다르게 심었으며 물길을 끌여들여 맨위에서부터 차례로, 자연배수가 되게 하였다. 이곳에서는 이천명이 먹을수 있는 식량을 생산, 나머지는 비상식량으로 많으면 산비탈 바위창고에<냉장고>저장하였다.
면도칼이 들어가지 않게 끼워 맞춘 석벽들, 정을 사용하지 않고 짱돌로 돌을 갈아서 만든 정교함이라던지, 그 잦은 지진에도 끄떡없는 견고함, 1미터 50의 작은 체구들이 어떻게 이 집채만한 돌들을 장난감 다루듯이 하였는지 볼수록 신비 그 자체다.
우르밤바 강물이 하얗게 부서지는 차창밖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해가지고 있다. 내일은 8월 12일 마지막 여정지는 아마존 밀림 속 푸에르토 말로나도, 이곳은 남극 세종기지로 가는 길목이다. 버스타고 배타고 오지중의 오지에 도착한 우리는 삐걱거리는 원두막, 호야등불하나, 할 일이라곤 하늘 쳐다보는 것 뿐,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밤하늘이 또 있을까? 지구의 한쪽 구석에서 반짝이는 것도 모르며 살아왔다. 17일간의 남미여행은 육신을 허물어뜨린다. 단연코 남미여행은 석사가 아니고 박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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