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책의 감동, 저자의 의무감
최근에 읽었던 한 에세이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나름 유명하다는 작가의 글인데도 평소에 손이 가지 않아 장바구니에만 묵혀두다가, 한 회원의 제안으로 읽게 된 비교적 짧은 분량의 에세이였다. 독서모임에서는 이 작가를 좋아하는 젊은 회원도 동참을 해서 분위기도 좋았다.
해당 작가는 예전에 팟캐스트로 접하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독서관련 팟캐스트가 많지 않았기에 장시간 운전을 하면서 들을 목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정작 그 작가의 책은 읽은 적이 없었다.
뜻하지 않은 기회로 읽기 시작한 저자의 책은 알아보니 예전에 연재되었던 글을 재편집하여 책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했다. 글은 올리브유를 잔뜩 발라놓은 오일 파스타처럼 독해의 어려움이 없이 미끄러지듯이 술술 읽혔다. 다만, 연재했던 글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글의 흐름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보통의 기승전결이나 팽팽한 긴장감의 조절이 없이, 강조점과 도입부와 말미의 마무리마저도 희미하여 맥락을 잡기 어려운 글이었다. 오히려 김빠진 탄산음료처럼 히마리(힘)가 없다는 인상만 받았다.
게다가, 일상을 사진 찍듯이 묘사는 잘 하지만, 거기에 대한 깊은 고뇌와 사상적 성찰까지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이 자체만으로도 충격을 받았다. 이 정도의 유명한 저자라면 심금을 울리는 감동까지는 아니어도, 다시 읽어볼만한 명문이나 단 한 줄이 주는 여운이라도 있을 법한데 나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이는 사진으로 비유하자면, 스마트폰으로 어쩌다 잘 찍은 사진 정도로만 평가가 가능하지, 찰라의 단상에 이야기까지 담아내는 전문 사진작가의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심지어, 번역서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한글 수필에서 기대하는 우리글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했다.
또한, 제목이 주는 배신감도 있다. 마치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라도 있는듯 보였지만, 그냥 몇 사람의 지난 삶에 대한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것도 본인의 일방적인 관점으로 일관한 다소 이기적인 글이었다. 내 생각에, 글에서 소개된 인물들은 나름 평생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단지 몇가지 불완전한 구석이 있는, 그래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들의 단점을 비추어서 통쾌감을 유도할 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들만의 사연은 소개되지 않았다. 아니 찾으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글이란 이왕 재미있으면 좋다. 더군다나, 웃기면 더 좋다. 그런 면에서도, 이 저자는 몇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재미를 유도했지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글자 몇 줄로 독자를 웃기기 위해서는 인간적 오류와 극단의 상황까지 자연스럽게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바보같은 상황연출로 웃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왠지 모를 희망이 깊은 내면으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걸 느꼈다. 주체할 수 없는 옅은 미소와 함께. ‘이 정도만 쓰면 책이란걸 낼 수 있고, 작가라고 당당히 직함을 내밀 수 있고, 더군다나 돈 벌이를 할 수 있다는건가?’
난 쉬운 글을 쓰는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밥벌이용 책은 더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여지저기에서 지식을 끌어모아 마치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것처럼 꾸며 놓은 책도 혐오하지만, 전문 작가라면 독자가 읽고 ‘저자는 평생 이 한 권만을 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는 인상은 줄 정도로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책을 선택하든 그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본인이 좋다면 그것으로 더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왜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냥 좋으면 된 것이다.
저자와 저술에 대한 비판을 할 경우 개인의 취향까지 폄하한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별개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아직도 만화책을 좋아하지만 그것으로 누군가 유치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만화책에도 수준이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수필가가 독자를 의식하여 본인의 사상과 관점을 타협하면서 어설픈 문장력으로 대충 글을 쓴다면, 결과적으로 독자가 책을 읽는 목적인 생각, 미학, 그리고 즐거움을 빼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여성잡지에 실릴만한 가십 (gossip)을 찾아내 읽으려고 한 것이 아닌 이상은....
첫댓글 제목이 주는 배신감
제목을 보고 호기심을 갖고 무슨 책이길래 하며 보았는데.
추천도서는 아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