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미타사>
동양 최대라는 지장보살상이 있고, 대웅전 대신 극락전이 있다. 지장보살은 광활한 납골공원을 굽어보고 있다. 대부분 산지 아닌 평지에 조성되어 있다. 광활한 지역에 인가도 사람도 없이 사찰 관련 건물들로 한 세계를 이루어 인간세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든다. 사찰 입구의 마애여래입상이 오랜 불국을 지켜온 듯하다. 아담한 사찰은 비구니 스님이 구절초로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1. 사찰대강
명칭 : 미타사, 마애여래입상
위치 : 충북 음성군 소이면 소이로61번길 164
입장료 : 없음
방문일 : 2023.10.2.
2. 둘러보기
사찰은 진입로에서부터 다섯 단계로 순차적으로 구성된다. 일주문을 지나 요양원, 납골당과 지장보살, 마애불상, 그리고 사찰이 그것이다. 일대는 별로 인가도 없고, 그리 높지 않은 평지에 조성되어 있고, 작은 저수지를 끼고 있으며 별세계의 마지막엔 아담한 사찰이 있다. 사찰 경내에는 들국화 구절초가 지천이어서 당우보다 꽃을 쫓다보면 뭐하러 왔는지, 어디에 왔는지 별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불교의 이러한 현실에의 동참 방식이 새로운 지향을 제시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천주교에서 많이 시행하는 요양원 사업, 공원묘지 등의 기여가 불교에서는 지장보살의 가피에 힘입어 탄력을 받을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주문에 '가섭산미타사'가 아닌 '지장제일도량'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일 듯도 하다. 일반 사찰과 달리 후면에 산과 사찰 이름이 붙어 있다.
대구 근교 거조암은 놀라운 나한상들 못지 않게, 마당의 꽃에 담긴 생명력이 더 기억에 오래 남았는데, 이 사찰이 그런 경우다. 들국화는 앞마당이 아닌 뒷마당, 아니 정확히는 뒷바위를 덮고 있어 사찰이 온통 구절초에 묻혀 있는 듯하다. 들국화에는 여러 들풀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구절초다. 사찰의 꽃들은 구절초인 듯하다.
하늘하늘 구절초가 군락을 이루어 품위도 가을 정취도 모두 담고 있고, 사찰의 협소함이나 일천한 듯한 당우의 무게에도 격조를 더한다.
3. 둘러보기
1)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사찰의 유물로 보아 고려 말기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4년 이 폐사에 수덕사의 비구니 명안(明岸)이 중창의 원력(願力)을 세워 1965년 4월 8칸의 당우를 건립하였으며, 승려 금오(金烏)와 혜암(惠庵)이 수도자가 도를 깨칠만한 도량이라고 하였다. 그 뒤 1979년 사역대확장작업과 함께 흙벽 8칸의 기와집을 헐고 그 자리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집 극락전과 삼성각(三聖閣)을, 그리고 이듬해 선방 등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고려 말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높이 90㎝의 석조 아미타여래좌상과 미타사 입구에서 서쪽으로 약 700∼800m 지점에 있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된 높이 230㎝의 마애불이 있다. 이 중 아미타여래좌상은 현몽을 하여 이 절을 중창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삼성각 안에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 1976년 법당 앞 채소밭에서 출토된 지름 75㎝의 맷돌과 범자(梵字) 등이 새겨진 명문와(名文瓦), 9개의 연꽃잎이 3중으로 조각된 고려 말기의 숫막새, 대웅전 기초공사를 하다 출토된 물오리 모양의 기와, 1973년 3월 법당 뒤에서 출토된 금동불(金銅佛) 등 많은 유물들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일주문. 지장제일도량이라는 현판에 사찰 이름이 없어 특이하다. 일주문 안으로 멀리 황금빛 지장보살이 보인다. 미타사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가섭산(迦葉山)에 있는 절이다. 보통 일주문 앞쪽 현파에는 산과 사찰이름을 명기하는데, 여기서는 두 가지 공식을 다 깨고 있다. '가섭산미타사'가 아닌 '지장제일도량'이다.
나중 일주문을 통과 뒤돌아서 보니 뒷쪽 현판이 산이름과 미타사가 명기되어 있다. 너무 멀어 무슨 산인지 잘 식별되지 않는다.
일주문 안으로 들어와서. 나중 사진으로 보니 일주문 뒷면의 현판 글씨가 잘 해독되지 않는다. OO산 미타사. 가섭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요양원
범종루
2) 소개 : 지장보살
불교의 큰 보살. 중생의 구원자로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자의 영혼을 모두 구제한 후에 스스로 부처가 될 것을 서원했다. 6세기 이후 중국에서 지장보살이 널리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에는 신라 진평왕 때 원광이 '점찰보'를 설치하면서부터 지장신앙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지장보살은 삭발 승려로, 머리 뒤에는 서광이 빛나고 두 눈썹 사이에는 백호가 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고통 받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여섯 세계에 상응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지장보살은 명부전, 지장전, 시왕전이라 불리는 법당의 주존으로 모시고 있다. (다음백과)
지장보살 신앙은 일본이 유별난 거 같다. 특히 영유아 사망시에는 지장보살로 모셔 사찰 입구에 작은 불상을 옷을 입혀 명복을 비는 모습은 매우 특별하다. 여러 사찰에서 그런 모습이 확인되는데 특히 동경의 조죠지사가 특별하다.
납골당을 굽어보고 있는 관음상
범종루 앞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 안래 멀리 드물게 인가가 있다.
범종루에서 차로 조금 이동하면 마애불을 지나고 조금 가파른 길을 올라서면 사찰이다.
아담한 미타사. 역시 이곳도 크고작은 불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어 안정적인 모습을 찍기는 어렵다.
극락전 앞 삼층석탑
극락전. 대웅전이 따로없이 극락전이 본당을 이루고 있다.
극락전
들국화. 오늘의 주인공이다. 쑥부쟁이라고 표준말로 정해둔. 대웅전 주변을 완전 감싸고 있다.
문살무늬
3) 소개 : 들국화
들국화
들국화는 국화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가을철을 대표하는 꽃으로서, 산과 들에 저절로 나는 야생 국화이다. 겨울이 되면 잎과 줄기는 말라 죽고, 뿌리로 겨울을 난다. 집에서 가꾸는 국화와 비슷한 꽃이 피는데, 국화보다 작고 향기가 그윽하며 색깔이 고와 싱그럽고 청초하다. 들국화에는 산국 · 감국 · 뇌향국 · 구절초 · 갯국화 · 개미취 · 쑥부쟁이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산국은 산과 들에서 자라며, 키는 1~1.5m쯤이다. 가을에 지름이 1.5cm쯤의 노란색 꽃이 핀다. 감국은 산국과 비슷하나 꽃이 조금 더 크다. 뇌향국은 양지바른 산지에서 자라며, 잎에는 향기가 있다. 갯국화는 바닷가에서 자라며 키는 30~40cm이고, 가을에 노란색의 작은 꽃이 핀다. 개미취는 키가 1.5~2m쯤이고, 7~10월에 자주색 꽃이 핀다.(학습그림백과 전재)
지천으로 핀 들국화. 들국화의 여러 종류 야생화 중 구절초인 듯하다.
삼성각
삼성각 내부. 산신각과 비슷하다. 삼성각 내부에 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는데 보지 못했다.
삼성각. 정면에서
다시 내려가며 대웅전 옆모습
약사전
부도군
2) 미타사 마애여래입상 소개
전체 높이 4.05m, 불상 높이 4.05m. 198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마애불입상은 사찰 진입로 개울가에 솟아 있는 수직 암벽에 동향하여 조각되어 있다. 현재 암반의 전면을 가로질러 길게 균열이 가 군데군데 틈새가 벌어진 상태이다. 축대를 쌓고 별도의 예배석(禮拜石)을 설치하였다.
4m가 넘는 거불(巨佛)로 상체는 둘레를 얇게 파낸 후 고부조[高浮彫 : 높은 돋을새김]로 처리하여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아래로 가면서는 차차 약화되어 선각[線刻 : 선으로 새김]에 그치고 있다. 불상의 얼굴은 비만한 방형[方形 :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신체에 비해 다소 커다란 편이다.
넓은 이마에는 관모[冠帽 : 벼슬아치들이 쓰던 모자]를 쓰고 있다. 반원을 그리고 있는 양 눈썹은 윤곽이 분명하다. 눈두덩과 두 눈의 표현은 다소 희미하나 미간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넓적한 코가 친근감을 준다. 두툼한 입술은 아래위를 살짝 눌러 지긋이 다물고 있다. 빚은 듯한 양 귀는 어깨까지 늘어졌다. 양 뺨이 부푼 후덕한 모습이다.
살이 많이 오른 장대한 어깨에는 양어깨를 감싸는 통견(通肩) 형식의 대의가 걸쳐져 있다. 옷주름의 표현이 상당히 형식화되고 있다.
가슴 앞으로는 날카로운 이중의 V자형 옷자락 무늬가 늘어지고 있다. 그리고 양 소맷자락과 하단부에도 몇 줄의 규칙적인 사선 주름이 거칠게 접혀지고 있다. 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평판적인 소략한 착의 형태를 보여 준다.
손 모양 또한 전반적인 마멸로 인하여 형태 파악이 상당히 어렵다. 손바닥을 안으로 향하고 있는 오른손의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식별할 수 있다. 그리고 왼손은 새끼손가락을 펴고 있어 아미타설법인(阿彌陀說法印)을 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원만한 상호[相好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와 착의 형식, 약한 조각 수법으로 미루어 볼 때, 1973년 법당 정리 작업 도중 출토된 미타사 소재의 금동불상과 동시대인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 위 두 개의 문화재 해설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장에서 관람객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 외에 별 내용이 없다는 것. 이런 해설은 현지에 가서 목도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눈에 알 수 있고, 대부분은 사진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전문가 해설이라는 것이 누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문자로 옮겨놓은 것이라면 해설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마지막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측하는 이유도 사실상 납득하기 어렵다. 상호, 착의형식과 약한 조각 수법 어디에 고려시대 양식을 담고 있다는 것인가. 이것들은 조선시대 양식과 어떤 차별성이 있다는 것인가. 참 알 수 없는 해설이다. 실증주의의 폐단이 이런 것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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