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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세탁소 [ 양장 ]
양은정 글/적성초등학교 어린이들 그림 | 청개구리(청동거울) | 2020년 04월 11일
* 이 동시집은 세종도서문학나눔에 선정되었습니다.
책소개
양은정 시인의 첫 동시집.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순창을 배경으로 일상의 소소한 것들은 물론 자연과의 교감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동시집이다. 각 시편마다 묻어나는 시인의 생활에 대한 애착과 삶의 철학이 아이들의 시선과 목소리 속에 어우러져 잔잔한 울림을 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정겨움이 물씬 느껴진다. 동시집을 읽다 보면 “시어 하나 하나, 표현 하나 하나를 정성껏 갈고 다듬어서 그의 동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정갈하고 단아”하다는 이준관 시인의 평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90262755>
글 : 양은정
순창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에게 독서와 미술을 통합하는 수업을 즐겨 해왔습니다. 지금은 섬진강변에서 동시와 그림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림 : 적성초등학교 어린이들
그림은 전교생이 아홉 명인 모교 적성초등학교 후배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자 함께 그렸습니다.
책 속으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도영이가 병설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하며 운동장에 있는 벚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벚꽃 그늘에 쪼그리고 앉아 혼자 써 내려갔던 꿈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다시 꿈꾸었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이었던 정미례 선생님으로부터 그림 지도를 받으며 동시 쓰기를 자주했었는데 그것이 단초가 되어 어른이 된 지금,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느새 커 버린 도영이의 맑은 눈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햇볕과 바람의 숨결로 항아리 안에서 맛있게 발효되는 고추장·된장처럼 내 꿈에도 발효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시인의 말」중에서
출판사 리뷰
아이들 일상과 생각을?
아이들의 목소리로 해맑게 그린 동시집!
동심이 가득한 세계로 어린이들을 초대해 온 청개구리 출판사의 동시집 시리즈 [시 읽는 어린이] 116번째 도서 『햇빛 세탁소』가 출간되었다. 시와 동시, 그림책 등 넓은 문학 스펙트럼을 가진 양은정 동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양은정 동시인은 “고추장을 품어 안은 순창”의 어느 섬진강 강변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금까지도 순창을 떠나지 않는 걸 보면 고향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각별한지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햇빛 세탁소』에는 순창을 떠올리게 되는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장군목 요강바위」「힘센 돌멩이」「섬진강 미술관」「섬진강」 등 섬진강이나 지역 명소에 대한 작품을 읽다 보면 순창에 다녀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래도 ‘순창’하면 뭐니 뭐니 해도 고추장이 아닐까. 양은정 시인도 이에 대해 「발효의 시간」「장독대」「순창 고추장」「살아 있는 된장」 등으로 그려냈다. 단순히 고추장에 그치지 않고, 고추장과 된장이 발효되는 시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작품들이다. 그중 동시집의 초입에서 독자들을 맞이하는 「발효의 시간」을 살펴보자.
순창 할머니가
장독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 보이며
―요렇게 낮에는 해를 보고
밤에는 달을 보고
그래야 좋은 균이 생긴단다
썩지 않고 좋은 균이 나오는
마술 같은 장독 안에서
날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해님 달님만 아는 비밀이라고
오래오래 품어야 나오는 비밀
할머니가 그랬다
된장, 고추장, 간장독 열어 보며
―이제 됐다!
할머니 입에서
이 말이 나와야 합격이다
―「발효의 시간」 전문
맛있는 장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낮에는 해를 보고/밤에는 달을” 봐야 한다거나, “오래오래 품어야” 한다는 것이 순창 할머니의 ‘비밀’스러운 비법을 기대한 독자들에겐 조금 허무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꾸준히 품어 안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렵지 않을까? 양은정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10여 년 동안 캄캄한 항아리 안에 넣어 두었던” 자신의 동시에 대해 고백한다. 그래서인지 “장독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 보”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시인 자신의 모습이 엿보인다. 아마도 시인은 자신의 작품들을 매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마술’과도 같은 발효의 시간을 거쳤을 게다. 결국 “이제 됐다!”는 외침이 이 동시집을 이루어내지 않았을까? 해설을 쓴 이준관 시인 역시 “시어 하나 하나, 표현 하나 하나를 정성껏 갈고 다듬어서 그의 동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정갈하고 단아”하다고 하였다.
『햇빛 세탁소』에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다양한 상상력과 동심으로 빚어낸 동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빨랫줄에 걸린 가족들의 빨래가 마르는 풍경을 평화롭고 정겹게 그려낸 표제작 「햇빛 세탁소」 외에도 「제트기 지나간 자리」「초승달」처럼 익숙한 하늘을 상상력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 작품도 눈에 띈다. 또한 「인사」「논밥」「나무 그늘」「왕자두나무 과수원」등 자연과의 교감을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들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은 익숙한 자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될 것이다.
엄마빵이 방바닥에 누웠다
나는 얼른 엄마빵 위로 올라가 고기가 되었다
동생은 양상추라며 내 위에 올라간다
엄마빵이 움직인다
꿈틀꿈틀 흔들흔들
앗, 햄버거가 무너지면 안 되는데
―아빠빵, 빨리 오세요!
나는 출장 간 아빠를 불렀다
―「햄버거 만들기」 전문
양은정 시인의 작품에는 아빠가 부재하는 가정이 자주 등장한다. 「햄버거 만들기」는 그러한 작품 중 하나다. 출장 간 아빠를 그리워하는 어린 화자의 마음이 느껴지지만 어둡지는 않다.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인 ‘나’와 양상추인 동생이 올라간 탓에 엄마가 흔들리긴 하지만 위태로운 느낌은 아니다. 함박눈 내리는 아침에 “눈뭉치 동글동글 굴려/손자손녀 만들고/둥글둥글 굴려 아들딸 세우고/하늘나라 가신 할아버지까지//나란히 세워 놓고/합죽합죽 웃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린 「눈사람」 역시 비슷한 이미지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그리움마저도 놀이로 승화시키는 인물들에서 시인이 가진 긍정의 힘을 엿보게 된다.
『햇빛 세탁소』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선배가 시를 쓰고 후배들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후배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자신이 졸업한 모교 어린이들의 그림을 함께 동시집에 담은 시인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접어보기
추천평
양은정 시인의 동시는 꾸미거나 가식하지 않아서 진솔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동시에 담았고 가족들의 단란한 모습도 소박하고 정겹게 담았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교감을 나누면서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모습을 정감 있게 그렸습니다. 또한 자신의 고향 순창의 특산물과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렸습니다.
그는 생활 주변이나 일상생활 속의 동심을 참신한 비유와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맑고 깨끗한 동심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담아냈습니다. 그래서 그의 동시를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동심의 세계에 빠져들고 섬진강 자락에 피는 풀꽃 향기 같은 동심에 흠뻑 젖어들게 됩니다.
- 이준관 (시인,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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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세탁소의 해맑고 정갈한 동심의 세계
이준관 ( 시인, 아동문학가. (전) 한국동시문학회 회장)
1
양은정 시인의 동시 세계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시인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번 동시집은 독자들에게 시인의 인간과 문학을 알리는 첫 동시집이기 때문입니다. 양은정 시인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시와 동시를 공부했습니다. 문학과 미술을 함께 공부한 특별한 경력을 갖고 있는 시인이지요. 그는 신춘문예 시 부문에 응모해 최종심에 두 번이나 올라갔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탄탄한 문학적 재능을 갖고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전북 미술 대전 등 각종 미술 대전에서 특선과 입선을 한 화가로서 지금도 섬진강미술관에서 서양화가로 유명한 박남재 화백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림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공공도서관과 초등학교에서 18년 동안 미술 강사와 독서 강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미술학원 원장, 영재미술 출강, 독서교실, 독서캠프 출강 등 미술지도와 독서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았습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자연스럽게 동시에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박예분 시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박예분 시인은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로 당선하여 전북아동문학상, 아르코문학 창작기금 수상, 유망작가지원자로 선정 되는 등 많은 상을 수상한 시인입니다. 이런 박예분 시인을 만나 <전북 동시 읽는 모임>에 참여하고 공부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동시를 본격적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고에 다닐 때 학생회장도 했을 정도로 친화력과 리더십을 갖추고 있어서 지금도 지역 사회에서 활발한 예술 활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양은정 시인은 시와 그림, 미술지도와 독서지도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재능을 갖고 있는 화가이자 시인입니다. 문학과 미술에서 탄탄한 기량과 소양을 갖추고 있어서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기대되는 시인이지요.
2.
그의 동시를 읽으면서 먼저 든 생각은 '동시가 참 해맑고 정갈하구나 '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이의 눈으로 오롯이 세상을 바라보고 맑고 깨끗한 동심을 어려운 말이나 기교를 부리지 않고 아이들 눈높이에 딱 맞는 신선한 비유와 표현으로 담아냈습니다. 시어 하나 하나, 표현 하나 하나를 정성껏 갈고 다듬어서 그의 동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정갈하고 단아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의 동시는 다음에 소개하는 ‘햇빛 세탁소’를 참 많이 닮았습니다.
운동장에서 뒹굴던 내 옷과
오줌 싼 동생 팬티가
햇살 반짝이는 하늘 줄에 매달렸다
산바람이 살랑살랑
들바람이 설렁설렁
옷을 번갈아 입어보며 킥킥거리자
낮잠 자던 흰둥이가
눈을 번쩍 뜨고 하늘 줄 바라보며
멍멍멍 멍멍
해님이 발그레 웃으며
옷이 다 말랐다고
햇빛 세탁소 문을 스르르 닫는다.
「 햇빛 세탁소」 전문
빨랫줄에 가족들의 빨래가 걸려 햇살과 바람에 마르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정겹습니다. 이 동시는 그런 빨랫줄의 풍경을 아주 신선한 비유와 의인법을 구사하여 정겹게 그려냈습니다. 우선 '빨랫줄'을 하늘에 걸린 '하늘 줄'이라고 표현한 것이 놀랍습니다. 그러고 보니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걸려 있는 빨랫줄이 하늘에 걸린 줄을 많이 닮았습니다. 빨랫줄에 빨래가 걸려 햇살과 바람에 말라가고, 빨래 흔들리는 기척에 낮잠에서 깨어난 흰둥이가 멍멍 짖어대는 평화로운 풍경을 눈에 보일 듯 생생하게 그려낸 동시입니다.
빨래가 맑은 햇살에 씻기고 바람에 말라가는 풍경을 세탁소에서 더러운 빨래를 깨끗이 세탁하는 것에 비유하여 재미있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동시는 생각이나 상상이 동심적이고 동화적입니다. 어려운 말도 없고 비유도 까다롭지 않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오롯이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이의 마음으로 상상하여 아이들의 일상어와 아이들 눈높이에 딱 맞는 비유로 쓴 동시입니다. 시어와 시세계가 햇살처럼 맑고 깨끗합니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한 편의 짧은 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양은정의 동시는 이처럼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이의 마음으로 상상하여 아이들의 일상어로 소박하고 단순하게 동심을 담아낸 점이 특징이자 매력입니다
3
양은정 시인은 일상생활 속의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눈여겨보고 동시로 옮겨놓았습니다. 꾸미거나 가식하지 않은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장식하거나 덧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소박하고 단순하게 그렸습니다. 피자 조각을 몰래 먹고 계속 스컹크처럼 방귀를 뀌어 들킨 천진한 동생 ( 「들켰다」 ), 전학 가는 친구와 10년 후 첫눈 오는 날에 동네 팽나무 밑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는 아이(「약속」), 합기도장에서 긴장 속에 겨루기 시험을 치르는 아이( 「시험 보는 날」 ) 등등 개구쟁이 짓도 하고 친구를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고 시험에 시달리기도 하는 아이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아이들의 일상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그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동시를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동심의 세계에 빠져들고 동심에 흠뻑 젖어들게 됩니다
곤충 박물관에 다녀온
동생이 돌돌돌 이불을 말고
몸을 숨긴다
-형아, 나 지금 탈바꿈 중이야!
-번데기, 얼른 와서 밥 먹어.
그래야 나처럼 배추흰나비 되지.
동생이 이불 속에서 나와
두 팔을 날개처럼 너울거린다
늦잠꾸러기 막내 애벌레도
이불 속에서 방싯방싯 웃으며
탈바꿈 중이다.
「지금은 탈바꿈 중」 전문
곤충박물관에 다녀온 동생이 번데기 흉내를 내면서 “나 지금 탈바꿈 중”이라고 말합니다. 형이 배추흰나비가 되려면 “얼른 밥 먹어야 한다”고 말하자 동생은 배추흰나비처럼 두 팔을 벌리며 이불 속에서 나옵니다. 막내 동생 애벌레는 아직도 이불 속에서 '탈바꿈 중'입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애벌레에서 번데기를 거쳐 나비로 탈바꿈하는 것에 비유하여 아주 재미있게 썼습니다.
양은정 시인은 아이들의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일상도 동시로 옮겼습니다. 할아버지가 '거시기'라고 말만 해도 다 알아듣고 척척 맞춰주는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을 담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거시기」 ) 가족을 그리워하며 눈사람을 만드는 할머니의 안타까운 모습을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눈사람 가족」」 ) 단란한 가족을 햄버거 만드는 과정에 빗대어 쓴 다음과 같은 시는 아주 햄버거처럼 맛깔스럽습니다.
엄마빵이 방바닥에 누웠다
나는 얼른 엄마빵 위로 올라가 고기가 되었다
동생은 양상추라며 내 위에 올라간다
엄마빵이 움직인다
꿈틀꿈틀 흔들흔들
앗, 햄버거가 무너지면 안 되는데
-아빠빵, 빨리 오세요!
「햄버거 만들기」 전문
가족의 구성원들과 각각의 역할이 햄버거 만드는 과정과 어쩌면 이렇게 맞아떨어지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엄마는 늘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리라서 '엄마빵'이 되어 바닥에 눕고, 그 위에 '고기인 나'와 '양상추인 동생'이 올라갑니다. 그 무게로 엄마빵이 흔들립니다. 무너지면 안 되기에 '아빠빵'을 부릅니다. 드디어 아빠빵이 합쳐져서 가정이라는 햄버거가 완성됩니다. 아빠가 없어서 가족이 완전체가 안 되는 다음과 같이 안타까운 시도 있습니다.
분식집 길가에 핀 노란 해바라기
헤어져 사는 아빠처럼
나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늘 내가 최고라며
무동 태워주던 아빠 다음에 크면
다시 만나자던 목소리 들려온다
동그란 꽃대 안에
빼곡히 박힌 아빠 얼굴 보고 싶어
해바라기 옆에서 키를 재어본다.
「해바라기」전문
분식집 길가에 핀 해바라기에서 아빠를 떠올리며 보고 싶은 마음을 간절하게 담은 동시입니다. 나를 무동 태워주고 크면 다시 만나자던 그리운 아빠. 그 아빠를 빨리 만나고 싶어 해바라기 옆에서 빨리 크기를 바라며 '키 재기를 하는 아이의 모습이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4
양은정 시인은 '순창'이 고향입니다. 순창 하면 고추장이 유명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섬진강의 맑은 물과 햇살과 바람으로 만든 고추장은그 맛이 일품입니다. 어디 고추장뿐일까요. 섬진강이 흘러가는 그의 고향은 섬진강 줄기 따라 그림 같은 풍경이 이어지고 인정 많은 사람들이 사는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입니다. 고향에 대한 시인의 사랑은 애틋하고 각별합니다. 그의 고향을 노래한 시를 읽으면 문득 차를 타고 가고 싶어집니다. 섬진강 자락을 따라 풀꽃들이 철마다 그림을 그리고 그 풀꽃을 캔버스에 정성껏 옮기는 구십 넘은 할아버지가 사는 섬진강 미술관, 요강 모양의 장군목 요강바위,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가 있는 체계산 출렁다리, 거북 장수 마을의 큰 샘, 섬진강 매화꽃 등이 보고 싶어집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의 고향은 먹거리도 많습니다. 고추장은 물론이고 섬진강 다슬기. 순창 순댓국, 된장 등 맛과 멋의 고장답게 볼 것도 먹을 것도 많습니다.
순창 할머니가
장독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 보이며
-요렇게 낮에는 해를 보고
밤에는 달을 보고
그래야 좋은 균이 생긴단다.
썩지 않고 좋은 균이 나오는
마술 같은 장독 안에서
날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해님 달님만 아는 비밀이라고
오래오래 품어야 나오는 비밀이라고
할머니가 그랬다
된장, 고추장, 간장독 열어보며
하시는 말씀
-이제 됐다!
이 말이 나와야 합격이다.
「발효의 시간」 전문
순창 할머니가 만드는 고추장, 된장, 간장은 해와 달이 오래 품어주어야 맛이 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래 기다리며 참고 견뎌야 깊은 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와 달이 품어주어야 자연의 맛이 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래 품어주고 오래 기다려주는 ‘발효의 시간’이 있어야 깊고 그윽한 맛이 나는 것은 비단 음식 뿐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 또한 그렇다는 것을 이 동시는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양은정 시인의 동시를 읽으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흰제비콩, 보다콩, 홀아비밤콩/꿩동부, 검정알룩이, 한아가리콩/검정팥, 각시동부, 곡성녹두, 흰작두콩// 씨앗 이름 잊을까봐/ 큰 달력 뒷장에 또박또박 써 놓고//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은/씨앗 봉지 바라보며/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는"(「씨앗 아파트」 ) ‘콩 씨앗 박사 순애 할머니’입니다. 그리고 호곡나루 줄배를 타고 곡성장에 가는 ‘후남이 할매와 끝순이 할매’(「「단짝」 )입니다
추석 쇠러 곡성장에 가는
호곡나루 후남 할매와 끝순이 할매가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줄배를 탄다
후남 할매가 온힘 다해
끙차끙차 이엉차 줄을 끌어당기면
햇밤 두 말, 말린 토란대 세 근, 열무 넉 단
말린 고추 서른 근, 누렁이까지
호습다고 하늘 보며 하하 웃는다
반도 못가서 후남 할매 힘 떨어지면
세 살 적은 끝순이 할매가
끙차끙차 이엉차 줄을 끌어당긴다
후남 함매는 듬직한 끝순이 할매가 좋아서
건들건들 틀니를 들썩이며
섬진강물에 웃음을 풀어놓는다.
* 줄배 : 강의 양쪽에 매어 놓은 줄을 잡아당기면서 건너게 되어 있는 배
* 호습다 : 흔들거려 재미있다.
「단짝」전문
후남이 할매가 온힘을 다해 끌어주다가 지치면 끝순이 할매가 이어서 줄배를 끌어당겨 나루를 건너는 모습이 참으로 정답습니다. 끝순이 할매가 듬직해서 틀니를 들썩이며 웃는 후남이 할매 모습은 천진한 아이 모습 그대로입니다. 호습다고 웃어대는 햇밤, 고추, 누렁이도 아이들 모습 그대로입니다. 두 할머니와 농산물과 누렁이가 모두 단짝이 되어 추석장에 함께 가는 흥겨운 모습이 흐뭇하기만 합니다. 이 동시를 읽으면 한 폭의 그림처럼 섬진강 나루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릅니다. 그가 화가여서 그런지 그의 동시는 이처럼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와 회화적 묘사가 매력적입니다
5
양은정 시인은 ‘자연과 사람’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동시나 동화에서는 모든 자연과 사물이 사람과 같은 마음과 생각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동시인들은 자연과 교감을 나누고 의인법을 많이 구사합니다. 양은정 시인 또한 사람과 자연이 교감을 나누면서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동시로 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에헴’ 하며 뒷짐 지고 지나가면 붉은 수수와 벼이삭도 인사를 하고 (「인사」 ), 삼촌이 써레로 고르면 황새가 와서 밥을 먹습니다 (「논밥 」). 이렇듯 그는 사람과 자연이 서로 교감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의 고마움과 자연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줍니다. 또한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생각을 심어주어 자연 사랑의 마음을 갖게 해 줍니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일깨워줍니다.
우리 집 앞
왕자두나무 과수원에
꽃이 피었다
할머니가
무릎 관절 수술하고
밭일 시작하는 날
자두 꽃들이
하얗게 웃으며 반긴다
-할머니, 퇴원 축하해요!
과수원을 통째로
꽃다발로 받은 할머니도
하얗게 웃는다.
「자두나무 과수원」전문
과수원을 가꾸고 밭일을 하느라 무릎이 아픈 할머니의 고마움을 생각하여 자두꽃이 꽃을 피워 축하해 준다는 시인의 생각이 참으로 곱고 아름답습니다. “과수원을 통째로 꽃다발로 받았다”는 표현 속에는 평생을 일만 하고 살아온 할머니에 대한 시인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마제섬에
홀로 사는 우리 할머니
큰바람 큰비 온다고
발걸음 바쁘다
장독 뚜껑 날아갈 세라
큰 돌멩이 얹고
밭에 뿌릴 씨앗 날아갈 세라
비닐 씌워 돌멩이 얹는다
집안 구석구석
큰바람과 맞서는 할머니와
마제섬을 통째로 지키는
힘센 돌멩이들.
「힘센 돌멩이」 전문
할머니는 큰 바람, 큰비가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장독 뚜껑을 지켜주고 밭에 뿌릴 씨앗도 지켜주는 힘센 돌멩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찮은 돌멩이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무생물도 우리 삶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알고 보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어디 있을까요. 시인은 자연은 물론 사물과도 교감을 나누어 무생물도 사람과 다름없이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라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6
양은정 시인의 동시는 그의 고향 섬진강 물줄기처럼 참 맑고 깨끗합니다. 그의 동시를 읽으면 마치 빨래가 햇빛과 바람에 마르듯이 흐린 마음도 깨끗이 씻기고 젖은 마음도 뽀송뽀송 마릅니다. 그의 동시는 작품 하나 하나 정성껏 갈고 다듬어서 깨끗이 세탁된 빨래처럼 군더더기 없이 새뜻하고 깔끔합니다. 그래서 그의 동시집을 ‘햇빛 세탁소’라고 이름 붙여주고 싶습니다.
양은정 시인의 동시는 꾸미거나 가식하지 않아서 진솔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동시에 담았고 가족들의 단란한 모습도 소박하고 정겹게 담았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교감을 나누면서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모습을 정감 있게 그렸습니다. 또한 자신의 고향 순창의 특산물과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렸습니다.
그는 생활 주변이나 일상생활 속의 동심을 참신한 비유와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맑고 깨끗한 동심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담아냈습니다. 그래서 그의 동시를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동심의 세계에 빠져들고 섬진강자락에 피는 풀꽃 향기 같은 동심에 흠뻑 젖어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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