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진주에서는 일가족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부인과 두 자녀를 찌른 뒤 범인은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함양으로 도주하였으나 붙잡혔고 딸을 제외한 두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다. 당시 함양에서도 그 사건은 유명했으며 피해자 중 한 명이 몇 년 전 전학을 간 아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옛 친구의 비극적인 결말은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는지라 그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한동안 좋은 대화의 소재가 되었고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범죄, 장애, 실종 등 각종 ‘비극’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좋은 소재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은 전 세계 영화 중 흥행 순위 4위로 20세기 초 발생한 타이태닉호의 침몰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실제 승객들을 모티브로 하여 이들의 침몰 당시 이야기를 최소한의 각색으로 재현하였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해외에서도 극찬받는 대표적인 한국 영화로 당시의 미제사건인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궁금한 이야기 Y> 등 각종 사건을 다루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 등은 이미 유명하며 나 역시 이러한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했었고 그뿐만 아니라 직접 각종 미제, 살인 사건 등을 찾아보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비극’을 ‘소비’한다. 그렇게 소비된 비극은 ‘교양’이란 이름으로 기억의 저편에 처 박한다. 그 후 몇 마디 수다의 소재로 쓰인 뒤 다시 머릿속의 구석으로 버려진다. 마치 비극적인 영화나 소설의 감상을 이야기하듯이 말이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4월 16일은 3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이 사고는 사망자들의 대부분이 수학여행을 가던 어린 학생들이었다는 점, 책임자인 선장과 정부의 잘못된 대처로 피해가 더 커졌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고 그 결과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다. 약 2년 전에는 서울의 번화가 이태원에서는 핼러윈을 맞아 거리에 모인 인파로 압사 사고가 발생해 150여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최대의 도시 서울, 그중에서도 가장 ‘핫’ 한 곳 중 하나인 이태원에서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참사들이 발생했을 때는 앞선 사례와 달리 언급조차 엄숙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추모의 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참사들과 다른 비극의 차이가 무엇이길래 사람들의 태도에 차이가 생기는 것인가? 매일 같이 전쟁과 기아, 재해로 죽어가는 많은 사람 중 왜 하필 그들인가?
베르테르 효과는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는 현상으로 독일의 문학가 괴테가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이후 자살한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를 모방한 젊은이들의 자살이 급증해 붙여진 이름이다. 1974년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후 일반인의 자살이 뒤따름을 증명하는 유의미한 통계를 발견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과는 조금 달랐다.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유명인’보다 ‘언론’에 있었다. 언론에서 자살 사건이 더 많이 보도될수록 자살률이 높아졌으며 지역의 신문 구독률과도 관계가 있었다. 추가적인 연구에 따르면 자살 사건에 관한 기사 내용이 죽은 이를 감상적으로 미화하거나, 슬픔을 과대 포장하거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치부하는 경우 자살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 구글을 이용해 뉴스 카테고리에서 ‘세월호’를 검색해 보았을 때 약 37,600개의 검색 결과를 찾을 수 있었다. 같은 방식으로 ‘코로나’를 검색해 보았을 때 찾은 검색 결과는 약 13,500개였다.
이번엔 세계 최대의 동영상 재생 사이트인 유튜브에 ‘세월호 당시 뉴스’라는 문장을 검색하여 뉴스를 찾아보았다. 가장 상단에 제시된 두 뉴스는 “이번엔 아프지만 3년 전 참혹했던 그날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에 촬영된 화면을 보면 더욱 가누기가 힘이 듭니다”처럼 아나운서의 감정적인 표현으로 시작한다. ‘이태원 압사 사고 뉴스’라고 검색하였을 때 가장 상단에 제시된 뉴스에선 “서울 한복판에서 수백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최악의 토요일”이라는 기자가 붙인 사건의 별칭으로 마무리된다.
‘살인 사건 뉴스’를 검색하여 뉴스를 찾아보았을 때 최상단의 뉴스는 “오늘 아침 초등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성인 남성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라는 아나운서의 객관적인 보도 내용의 전달로 시작되어 “피해자가 숨진 상태라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전망입니다.”라는 기자의 건조한 마무리로 끝이 난다. 대중이 추모하는 비극들은 언론에서 더 많이 더 감정적으로 보도되었다. 세월호는 불편해하면서 <타이타닉>과 <살인의 추억>이 즐거운 모순의 이유다.
이와 같은 현상이 위험한 이유는 이것이 남용되어 그릇되게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비극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좋은 자극적인 소재이며 이는 여론의 관심과 대중의 분노를 눈먼 화살로 쏘아 이용하는 자들에게 훌륭한 재료이다. 즉 대중의 관심은 정치에 가장 잘 이용된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당시 야당이 여당의 정권을 공격하는 근거로 사용되었고 이후 2년 뒤 대통령의 탄핵에도 이용되어 야당의 정권 교체를 실현하였다. 2년 전 이태원 참사의 경우도 사건의 진상과 책임자를 규명하고 유가족과 피해자를 보상하는 ‘이태원 특별법’이 야당의 주도로 가결되어 사건 당시 경찰의 소속인 행정부를 통솔한 여당의 정권을 압박하기도 하였다.
2002년에는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두 여중생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대한민국에 만연했던 반미 감정을 발화시켜 시위와 집회를 발생시켰고 일부 반미 단체들의 주도로 정치적 목적의 추모 행사와 추모비 건립 등의 행사가 추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유족들의 의사와는 관련이 없었다. 사고 10년 뒤인 2012년에 피해자의 아버지 심수보 씨는 인터뷰에서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웠으며 추모를 정치적 의도로 이용함을 원치 않고 사고의 원인인 미군들을 용서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하였다.
물론 대중이 요구하는 바를 정치에 반영하는 것은 정치인의 의무이다. 그러나 대중은 언론 등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아 선동당하기 쉬운 존재이다. 선동된 대중은 주체적인 의지를 잃고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하기 어려워지기에 일제와 나치의 파시즘과 같이 그릇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성숙하지 못한 군중의 여론을 명분 삼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중대한 판단을 맡김과도 같다.
이 사례들은 비극에 대한 추모를 정치적 의도로 변질시켜 여론이란 이름의 무기로 사용한다. 물론 순수한 의도를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자들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눈과 귀가 가려짐조차 의식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 없다고 과연 장담할 수 있는가? 군중의 목소리는 큰 힘을 갖기에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무언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다면 그것이 어디로 향하는 지를 예의주시하여 휩쓸리지 않게 유의하여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한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들은 무언가의 시체인 것이 그중 하나인데, 이는 우리의 생존에 다른 존재의 희생이 필연적이란 것을 의미한다. 이를 인지하고 불편해진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식물 역시 생명이라는 사실, 생산과정에서 사용되는 농약이나 착취되는 빈국의 노동력과 같은 불편한 진실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채식주의는 주장하는 바를 실천하는 행위가 주장에 모순된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스스로 진실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금 덜 불편한 진실로 도피하는 위선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대중이 상술한 참사들을 추모하는 것은 불편한 진실에서 도피하려는 행동이다. 자신이 그들을 추모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주년마다 추모의 의사를 밝힌다. 비극의 소비라는 사실을 그들에 대한 추모로 벗어나려는 것이지만 이 역시 도피에 불과하다.
그러니 비극과 그에 대한 추모를 스스로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지 마라. 선함은 과시하지 않아도 의미 없는 것이 되지 않는다. 너 스스로가 선하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 비극을 소비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너를 선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예수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장 3~4절)라고 하였다. 그대는 피아노를 칠 때 손의 움직임을 의식하는가? 건반을 누르는 것은 의식이 행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는 것은 몸이 기억하는 무의식적인 움직임이다. 스스로 선행을 드러내지 않으며 그것이 선행임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위선이 아닌 ‘왼손이 모르는 오른손의 일’, 진정한 선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진실이 아무리 불편하다 해도 그것을 마주 보아야 한다. 그때 우린 생존에 따르는 필연적인 희생에 채식이란 도피가 아니라 그에 감사하는 자세와 헛되이 쓰이지 않게 하려는 의지로 대처할 수 있다. 비극을 소비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라. 식탁에 올라온 음식을 남김없이 감사하며 먹듯, 비극과 그에 대한 감정이 무의미하거나 그릇된 일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일을 유의하여라. 너의 선함이 위선이 되는 것을 막아라. 우리는 앎으로서 스스로 설 수 있다. 기립하여라. 그것으로 벽 너머 먼 곳을 보아라.
참고 자료
-베르테르 효과,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한 동조·모방현상
한국강사신문/한상형 기자/2019.11.25.
-온 국민 가슴 아팠던 그날…세월호 침몰 당시 / SBS
SBS 뉴스 유튜브 채널/유덕기 기자/2017. 3. 23.
-급박한 순간...필사의 탈출 장면 / KBS뉴스(News)KBS 뉴스 유튜브 채널/김기화 기자/2014. 4. 18.
-제보·SNS 영상으로 본 '이태원 참사' 현장 (2022.10.30./뉴스특보/MBC)
MBC 뉴스 유튜브 채널/구나인 기자/2022. 10. 30.
-초등학교에서 친형 살해‥부모도 숨진 채 발견(2023.04.28./뉴스데스크/MBC)
MBC 뉴스 유튜브 채널/이규현 기자/2023. 4. 28.
-[오늘 이 뉴스] "찬성 177표" 이태원특별법 통과, 국민의힘 퇴장..유족들 '눈물' (2024.01.09./MBC뉴스)
MBC 뉴스 유튜브 채널/MBC 디지털뉴스제작팀/2024. 1. 9.
-"막내딸 미선, 가슴에 묻은지 10년.. 반미단체 정치적 추모행사 불참"
동아일보/ 조영달 기자/2012. 6. 4.
<수행평가 감상>
처음 주제 정한 주제는 죽음의 계급화 였습니다. 지난 수업 이후 하루를 고민하고도 한 수업 시간을 더 쓰고 정한 주제였지만 시간이 없어 급히 정한 주제였기에 이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결론을 내자는 생각이었고 그렇게 글을 쓰면서 평소의 경험이들을 연관지어 '비극의 소비'라는 주제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글을 쓰면서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계속 결론을 찾았습니다. 그러던 중 연관지은 경험이 식사중 생각하던 '불편한 진실' 이었고 이것이 비극의 소비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결말을 정하지 않고 연재하는 작가들이 이런 기분일까요? 지금까지 했던 다른 수행평가들 중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이 마치 머릿속에 있던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보는 듯 했는데 맞춰갈수록 머릿속의 다른 조각들이 계속 튀어나와 퍼즐이 점점 커져갔습니다만 그래도 이번엔 기한에 맞춰 제출하는데 성공하여 성장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용한 표현 전략>
설의: '그대는 피아노를 칠 때 손의 움직임을 의식하는가?' 외
비유: '성숙하지 못한 군중의 여론을 명분 삼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중대한 판단을 맡김과도 같다.' 외
이중 부정: ' 선함은 과시하지 않아도 의미 없는 것이 되지 않는다.' 외
첫댓글 괜찮네
비극을 소비한다는 것이 마치 우리나라 전체를 관통하는 말 같아서 내가 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극과 같은 자극적이 것들을 좋아하고 행복한 이야기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든다. 이런 상황을 생각했을 때 비극을 소비한다는 주제는 정말 잘 정한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 나온 개인의 사례가 나도 아는 이야기라 굉장히 슬펐다.
비극을 소비한다라고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례들을 활용하여 공감하기 쉬웠던 곳 같다.
우리 근처에서 일어났던 사건, 모두가 알만 한 사건으로 읽는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공감하기 쉽게 잘 쓴 것 같다.
사람들이 기피하며 언급을 꺼려하는 불편한 진실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현실을 깨우치게 도움이 되는 글이라고 생각되었다
예시가 내가 잘 알고 있고 재밌어하고 자극적인 것들이라 더 재밌었고 자살률이 올라간다는 연구결과가 흥미로웠다
선함은 과시하지 않아도 ~너를 선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너무 와닿는 말이였고 가끔가다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주제였다 주제가 너무 좋고 채식주의자등 나도 평소에 자주 샹각하는 예시들을 써서 너무 좋았더~^^ 처ㅣ고!!
제목이 너무 흥미로워서 들어왔는데 글을
읽는동안 소름이 돋앗다
그동안 내가 다른 사람들의 비극을 소비하고 있었구나 생각하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