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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설>
공감각적 심상의 표현과
물활론적 세계관
- 이창식 시집 『갈대꽃 사고 파문 눈뜨고』
지은경 (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
1.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개념에서 문학을 보면 글쓴이는 글을 통해 나의 생각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래서 ‘글은 그 사람’이라는 말은 생각과 글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이창식 시인의 첫 시집 『생각 꼬투리』에 이어 두 번째 시집 『갈대꽃 삭고 파문 눈뜨고』를 출간한다고 하여 그의 시를 눈여겨 읽어보았다. 평자의 입장에서 분명 제1시집과 제2시집은 차별화 되고 있으며 새로운 해석의 문을 열 수 있어 기쁘다. 전체적인 시의 느낌은 사유가 깊고 넓어져 많이 발전한 모습에 놀랍기만 하다.
이창식 시인의 시상은 아폴론적이다. 단정하고 이성적이며 결코 파토스적이지 않다. 그의 시가 아폴론적이란 말은 시작법에서도 드러나는데 자기감정 절제를 잘 유지하고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절제된 시선은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넘는 철학적 사유와 물활론적 고양된 언어가 생명력을 지닌다. 시 편수마다 필력이 힘차고 잘 빚은 건축물 같다. 시집의 첫 페이지 ‘시인의 말’에서 “마음이 떠돈다//바람風 같고/바람望 같고/늪에 갇혀 허우적거리고//맴을 돌다 사라진다/징검다리 건너듯/계절을 건너고/하늘을 질주한다//손끝에 잡힐 듯 말 듯/귓속말을 걸어두고/바람이 된다//시詩가 그렇다” 저자의 내면의 풍경을 잘 보여주는 한 편의 시로 읽힌다. ‘바람’은 기압의 변화에 따른 공기의 흐름과, 또 하나의 ‘바람’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바라는 소망을 뜻하는 것이 중층구조를 이루며 맛깔스럽게 전달된다. 프랑스 철학자 쟈크 데리다(1930~2004)는 현대시 시어의 의미 분석에서 일반적인 해석과 달리하는 것은 언어는 텍스트의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용된다는 주장과 맞물리고 있다.
2.
현대시의 비평이 용이하지 않은 것은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내면의 표출을 언어와 논리로 명확히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과 생각의 세계가 파편화되기 때문인데 이것을 쟈크 데리다는 언어의 해체에서 차연差延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차연은 이미 문학비평 용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의미의 흐름과 언어의 상호 관계가 텍스트에서 어떤 고정된 의미를 도출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텍스트의 구조와 그 안에 내재된 의미를 분석하고 그 의미가 다양하고 불확정적 모순이 내포된 의미를 제시한다. 그래서 텍스트의 의미는 절대적 의미를 지니지 않으며 항상 새로운 해석으로 변용된다. 다시 말해서 언어에서 그 의미가 어떻게 차이가 나고 지연되는지 의미는 항상 차이를 통해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어!
게눈 솟듯 눈 뜨네
새털처럼 가볍군
세상을 불사른다
불꽃휘몰이
뜨거워라
한 세상은 재 되었구나
젖니 빠진 자리
새 이빨 섰어
세상을 돌리리
후진 곳 없이
아픈 곳 없이
어머니의 물레같이
편안하고 공평하게
새 것 빚으리라
새 세상 여리라
따뜻함이여!
청사靑蛇의 똬리 같은
꿈이여!
- 시 「일출」 전문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일출을 만나러 동해로 간다. 사진 촬영 마니아들도 일출의 절묘한 순간을 찍으러 명소를 찾곤 한다. 을사년乙巳年은 60간지 중 42번째 해 이다. 화자는 여명에 새해 맞이를 하고 있다. 푸른뱀 을 의미하는 청사靑蛇의 태양이 똑같은 태양임에도 새 해를 맞는 일출은 유난히 커 보이고 밝아 보인다. 정월 에 보는 일출이 더 큰 것은 태양의 주기상 과학적으로 도 증명되고 있다. 화자가 만난 일출은 “게눈 솟듯 눈 뜨”는 일출이다. 새털처럼 가볍고, 세상을 불사르는, 불꽃휘몰이 뜨거운 일출이다. 화자의 눈조리개에 포착 된 일출의 절묘한 순간이 ‘게눈’, ‘새털’, ‘뜨거운 불꽃’ 으로 셔터를 누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솟아오른 태양은 젖니 빠진 자리에 새 이빨 섰다고 말한다. 자연 현상의 하나에 불과한 태양이 시인의 눈에는 특별한 일 출로 부각 되고 있어 데리다의 차연으로 해석되며 자연 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다. 마지막 연에 “편안하고 공 평하게/ 새것 빚으리라/ 새 세상 여리라”는 것에서 시 인의 시집 첫 번째 시로 새롭게 시작하는 꿈을 싣고 있 다. 박두진의 시 「해」에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 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와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희망을 실어주는 시이다.
오솔길 걷다가
굼틀 봄이 밟힌 듯하여
까치발로 눈치 살핀다
키 작은 민들레
노란 웃음 짓고
쫑긋쫑긋 풀싹 만세 부른다
발아래 딴 세상
함부로 발 내민 일
이렇게 미안한 날도 있다
눈뜨고 못 보는 것
봄을 딛고서야 봄을 알고
길섶에 앉아 봄이 되었다
- 시 「봄날」 전문
사계절의 하나인 봄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이 시는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며 상호의존적인 물활론적 세계관을 보여 준다. 물활론은 자연을 사물로만 보지 않고 인간과 같이 생명체가 있다고 생각하여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조화로운 관계로 보는 시선이다. 화자는 “오솔길 걷다가/ 굼틀 봄이 밟힌 듯하여”는 봄을 살아 있는 것으로 보는 감각적이고 생동감 있는 표현이다. “키 작은 민들레/ 노란 웃음 짓고/ 쫑긋쫑긋 풀싹 만세 부른다”는 길가의 민들레들도 만세를 부른다며 생명적 교감을 하고 있으며, 키 작은 생명들이 다칠까 발걸음도 조심하고 있다는 것에서 화자는 자연을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로 보는 물활론적 시선이다. “봄을 딛고서야 봄을 알고/ 길섶에 앉아 봄이 되었다”는 참신한 표현으로 아직은 차가운 바람에 봄이 보이지 않지만 이미 봄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으며 시각적 촉각적 감각적 감성을 열어놓고 화자 자신이 봄이 되고 있다. 형이상학적이며 공감각적 심상의 표현이 뚜렷한 시이다.
냉이 뿌리
얼굴에 굼틀 손등에 굼틀
가게 앞 양달에 쭈그리고
냉이를 가린다
가며 보고 오며 보는데
줄지 않는 할머니 소쿠리
쳐다보는 손님도 없는데
소쿠리에서 서커스 하는 냉이
냉이 나물의 냉이 냄새
할머니 손 냄새다
손등에 기어 다니던 냉이뿌리가
쫄깃쫄깃 씹힌다
봄이 젓가락 타고 오른다
- 시 「냉이할머니」 전문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겨울 生나물은 냉이와 달래이다. 영하의 추위를 견디고 푸른 잎을 틔우는 냉이의 생명력은 인생의 풍파를 견디고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과 닮았다. “냉이 뿌리/ 얼굴에 굼틀 손등에 굼틀” 이부분은 거친 냉이의 뿌리와 할머니의 주름진 손등을 동일시하는 감각적 표현이다. 화자는 오며 가며 할머니와 바구니를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는다. 소쿠리의 냉이가 줄지 않아 할머니를 안쓰러워하는 것에서 따스한 인간적 정情을 느끼게 한다. “손등에 기어 다니던 냉이뿌리가/ 쫄깃쫄깃 씹힌다/ 봄이 젓가락 타고 오른다”는 냉이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보고 있는 것이며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으로 표현하는 의인화 기법은 해학적이며 자연과 인간과의 상호 교감을 통해 조화를 지향하는 공존의 정서를 읽게 된다. 물론 냉이가 살아 있는 생물이지만 쫄깃쫄깃 씹힌다거나 봄이 젓가락 타고 오르는 미각적 감각과 의태어 활용은 물활론적 사고로 사물을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시적 발상이 시의 텐션을 높이고 있다. 위 시는 화자의 물활론적 세계관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특징을 지닌다. 물활론적 사고는 인간과 자연을 조화롭게 하며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3.
말을 대패질한다
편한 한마디 말
글 되면 비척이고
더 콧대 세우는 글
시의 얼굴은 글
말에서 시작하지만
날개 달고 떠도는 글
말을 깎아서
시의 옷을 입히다 보면
말뚝 하나만 우뚝
시 쓰기는
말 지우기다
- 시 「말 지우기」 전문
말이란 사람의 생각과 뜻을 담아 소리를 내어 상대방에게 전달한다. 오가는 대화는 말의 표현수단으로 의사소통의 교감을 이루어야 한다. 화자는 첫연 첫행에 “말을 대패질한다”. 대패는 거친 나무를 매끄럽게 하는 도구이다. 화자는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고심하는 부분이다. 화자의 시 짓기 과정을 거친 나무와 대패를 비유하는 것에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다시 말해서 말을 대패질하는 것은 시의 함축성을 의미한다. 그 함축된 말이 시가 되면 비척鼻脊이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비척은 코의 등성이로 잘 갈거나 닦인 시어가 제대로 말이 되어 ‘콧대 세우는’ 시가 된다는 뜻으로 시의 레토릭이다. 사람의 얼굴에서 중앙에 우둑한 코는 얼굴 윤곽을 뚜렷하게 한다. 시 또한 비척인 것은 코의 등성이처럼 반듯하고 우뚝한 시가 날개 달고 세상에 나가게 된다. 그러면 시는 어떻게 날개를 달게 되는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바탕에 두어야 한다. 인仁은 사사로운 욕망을 절제하고, 의義는 공동체 집단을 생각하며, 예禮는 인간관계의 근본을 기억하고, 지智는 배움을 뜻하는 말을 담아야 할 것이다. 이 시에서 화자의 ‘말’은 시인이 시를 쓰는 말로, 즉 시어 고르기이다. 시의 얼굴은 글로써 ‘글은 바로 그 사람’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므로 말을 깎아서 시의 옷을 잘 입히다 보면 말뚝 같은 우뚝한 시를 쓴 시인이 될 것이다. 시의 옷을 제대로 입힌다는 것은 시적 형상화가 된 글로 품격 있는 시를 말함일 것이다.
사각사각
가위 소리 가볍다
묵은 날들이 떨어진다
뭉텅뭉텅 먹구름 같고
경주마의 갈기 같더니
실비처럼 흩날린다
꼭 요만큼 길이로
몇 날을 서성거렸을까
나를 붙들고 마음 졸이고
걸음걸음 쌍지팡이 들고서
한결 가볍다
한결 새롭다
누구에게나 가을은 가볍고
누구에게나 계절은 새롭고
푸른 잎 마르다 떠난 자리
붉은 꿈 옹기종기 모이듯
갈대꽃 삭는 겨울 언저리
뽀글뽀글 파문波紋이 눈 뜬다
- 시 「갈대꽃 삭고 파문 눈 뜨고」 전문
위 시의 제목 「갈대꽃 삭고 파문 눈 뜨고」는 시집의 표제이기도 하다. 갈대꽃은 가을 강가에 무리지어 피어 꽃들이 장관을 이룬다. “사각사각/ 가위 소리 가볍다// 묵은 날들이 떨어진다”는 사각사각 머리카락을 자르는 가위 소리를 차용하여 뭉텅뭉텅 바람에 날아가는 갈대를 비유한다. 갈대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마치 가위로 사각사각 가볍게 잘라내는 감각적 표현이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를 경주마의 갈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각사각이나 실비처럼 흩날리는 청각적 감각과 시각적 감각의 상상력은 공감각적 표현의 묘사들로 싱그럽다. “한결 가볍다/ 한결 새롭다/ 누구에게나 가을은 가볍고/ 누구에게나 계절은 새롭”다는 것은 바람에 뭉텅뭉텅 잘려나간 갈대의 머리를 가볍고 새롭게 하고 있다. 묵은 것이 떨어져 나가면 새로운 것이 돋아남을 상기시키는 것에서 화자의 긍정마인드를 읽게 된다, “푸른 잎 마르다 떠난 자리/ 붉은 꿈 옹기종기 모이듯/ 갈대꽃 삭는 겨울 언저리/ 뽀글뽀글 파문波紋이 눈 뜬다” 푸른 잎 떠난 자리에 붉은 꿈이 모이고 물 바닥에서 파문이 눈 뜬다는 것은 자연의 신비와 함께 창작의 새로움이 눈뜨게 됨을 암시한다. 위 시는 별로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인이 감성의 문을 활짝 열고 있어 읽으면 그대로 느껴지는 가슴에 와 닿는 시이다. 청각적 시각적 공감각적 심상의 표현들이 잘 묘사된 시이다.
바람風이나
바람望이나
바람이고
너는 밖에서 서성이고
나는 안에서 서성이니
서로 얼굴 맞댈 일 없을 뿐
너는 세상을 구르고
나는 생각을 구르고
뭔가를 구른다는 것
그래서 너와 나 운명 같은 것
밤하늘에 별 같고 달 같은 것
넌 너의 회오리를
난 나의 회오리를
늘 감추고 살지만
끝내 회오리는 몰아치고
때로는 희열이 되어 넘치고
때로는 쓰라린 아픔이 되고
- 시 「바람의 끝」 부분
위 시는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의 시어를 차용하여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발음은 동일하나 뜻은 다의성을 지니는 ‘바람’이다. 바람風은 기압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공기의 흐름을 의미한다. 바람望은 바램, 소망을 뜻한다. 이미 앞의 ‘시인의 말’에 나온 시어이다. “너는 밖에서 서성이고 나는 안에서 서성”이므로, “너는 세상을 구르고 나는 생각을 구른다”는 것에서 ‘바람’은 서로 얼굴을 맞댈 일이 없고 만날 일이 없는 것 같지만 화자는 ‘바람’을 차용해서 시의 집짓기에 몰두하고 있다. “너의 회오리는 나의 회오리”에서 집짓기가 수월하지 않으며, 너와 나는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불가항력을 보게 된다. 그러나 예술가는 죽는 순간까지 백지 와 펜을 놓지 않는 것이다. 쓰리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희열이 될 때도 있다. 바람과 바람이 포개어지는 밀착된 불가분의 관계를 보여주는 시로 바람의 끝은 희열이 되어 넘치거나 아픔이 되기도 한다고 고백하는 부분은 데리다의 차연으로 해석하게 된다. 위 시는 사색의 그림을 그리듯 심상의 이미지가 시로 형상화되고 있다. 동일음의 다른 뜻을 지닌 바람風과 바람望이 서로 교감하며 반응한다. 창작의 실패에 대한 상실감과 완성된 때의 기쁨을 느끼는 과정에서 겪는 고민의 깊이와 넓이,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고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창작의 원초적이고 구체적인 탐구에서 리얼리즘의 영감을 얻게 될 것이다.
4.
문득 바다 가운데 섰다
사락사락 밀려와 울타리 치고
빠져갈 길 없는 비췻빛 바다
긴 호흡하고 서 있으면
양팔 사이로 가랑이 사이로
간질간질 스며드는 초록물
선 채로 푸른 산호가 되었다
간들간들 허리 채
보들보들 껴안고
삐우-삐우- 속삭이고
망뚱어랑 농게 펄 밖에 불러
못난이 인물 경연한다
재미에 빠진 아이
엄마 손 놓고 갈 길 놓쳤다
빛깔을 감춘 바람
초록을 뿌렸다가
갈색을 뿌렸다가
사람을 여울에 가두고
빙글빙글 돌린다
혼을 뺀다
- 시 「순천만 갈대밭 5월」 전문
자연친화적인 삶이 최고의 덕목임에도 문명의 고속 발전이 자연과 인간 삶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다. 친화적이란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를 배려하며 사이좋게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위 시는 생명의 순환과 공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시다.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보여주는 생태학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 수작이다. 생태계와 함께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상호 생존을 존중하는 미적 특질을 보여주는 시로 자연의 사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생태계의 이상을 묘사하는 시며, 자연 예찬의 시며, 자연을 통해 생명의 리듬을 살리는 시이다. 사락사락 간질간질, 간들간들, 보들보들, 삐우 삐우 등 청각적 감각과 시각적 감각, 촉각적 감각 등 세 개의 감각이 교차하면서 공감각적인 표현들이 싱그러움을 드러내며,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극대화하여 전이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공동체적 다채로움을 보여주어 역동적 친화감을 느끼게 한다. 촉각과 청각을 시각화하는 공감각적 표현이 시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나는 자연인’이라니
사람이 자연이다
사람에게도
봄여름 가을 겨울 있고
새싹 돋고 꽃 피고 열매 달았다가 거미처럼 기고
눈 날리는 날 있다
나무나 사람이나
사랑할 때 씩씩하고 두려울 때 떨고
숲 바닥에 누우면 하늘아래 동무
흙냄새 몸 냄새가 하나다
갯바위도 얼굴 씻고
거울 앞에 단장하고
머리 다듬어 님 마중하는 붉은 볼
사랑에 웃고 우는 사람의 얼굴이다
허물어져 가는 제 터전에서
허우적거리는 북극곰
비닐을 해파리라 착각한
바다거북의 죽음
사람이 외면할 수 없는 이유
사람이 자연이다
- 시 「사람이 자연이다」 전문
TV 방송에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이 방송에서 자연인은 법률적인 의미의 자연인이 아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공기 좋고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다니는, 즉 산이나 바다를 찾아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반인들이 사는 사회나 문화의 규정과 규범에 속박되기 싫어한다. 자연인은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과 동화되어 자급자족 하며 욕심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화자는 2행에서 “사람이 자연이다”는 사람 자체가 바로 자연이라고 못을 박는다. 그래서 사람에게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에게 자연의 사계절을 넣은 것은 범한 진리로 보이지만 훌륭한 시적인 발견이다. 화자는 나무나 사람이나 사랑할 때는 씩씩하고, 갯바위도 사랑에 웃고 우는 사람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환경오염으로 북극곰이나 바다거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에서 생태환경적 문명비판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바로 자연이므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지 외면해선 안 된다고 직언한다. TV 방송에 나오는 도시문명을 외면하고 자연 속에 살아가는 ‘나 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사는 자연인임을 각성시키는 시이다.
5.
현대의 비극은 인간과 자연의 분리에서 온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인간존재에 대한 성찰이다. 이창식 시인의 시는 자연과 인간을 분리해서 보지 않고 공동체로 인식하고 있으며 예술의식 또한 예술작품이 지니는 도덕적 품위를 인지하고 있다.
3년여 전 워싱턴 포스트지에 소개된 두뇌 심리학자 수잔 막사먼(존스홉킨스대학 예술심리연구소장)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예술을 즐기는 사람은 두뇌가 젊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美, 즉 아름다운 것을 즐기거나 추구하는 것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서 예술 감상은 알츠하이머나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창작행위는 더 효과적이다. 고로 산을 보고 물을 보고 눈을 씻고 마음을 씻는 것은 정신 건강을 지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사유가 이창식 시인의 시에 함유되어 있다.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대립하면서 진화한다. 우뚝한 높은 건물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넓은 조망권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꿈을 키워나가는 로고스의 상징은 조형적이며, 작가의 창작정신은 디오니소스적이지만 작품을 형상화하는 것은 아폴론적이다. 아폴론적이란 인식할 수 있는 이성의 언어로 표현되는 로고스이다.
이창식 시인의 시는 우리말을 곱게 다듬어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으며, 시 창작과정에서 한글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표현으로 시를 단련시키고 있다. 그의 시는 질풍노도와 같이 격렬하지 않으며 결코 독자를 흥분시키거나 자극하지 않는다. 잔잔하고 담백한 로고스의 에토스Ethos적 시를 짓는다. 제2시집에서 시인의 역량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사락사락, 간질간질, 간들간들, 보들보들, 삐우삐우, 촐랑촐랑 등의 의태어 의성어 활용이 우리말에 리듬을 실어 재미를 더해준다. 사물의 모습이나 소리를 흉내내는 시각적 요소인 의태어와 청각적인 요소들의 활용이 시를 유쾌하고 발랄하게 한다.
이창식 시인의 제2시집 『갈대꽃 삭고 파문 눈뜨고』 는 기호로 나타내는 시어들이 간결하고 명료하다. 시적 상상력의 이미지가 시각 청착 후각 등 감각을 동원한 공감각적 심상의 표현들이 시적 텐션을 올려주어 시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더욱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지향하는 물활론적 세계관이 긍정마인드를 보여주어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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