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댄스일기] 나의 왈츠 이야기 - 몸 만들기
(2006. 12. 30. 토)
단체반에서 버벅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발조차 떼지를 못하고 두 달(8주 강습)이 지나갔다.
그 동안에도 난 왈츠가 뭔지 감을 잡지 못했다.
세 박자 춤이라는데...
왼발이 나가야하는지...
오른발이 나갈 차례인지...
그거 생각하고 헤매느라 수업 시간에는 매번 고통이었다.
그래서 혼자서 할 때는 대열에 끼어있다가도 선생님이 "홀딩해보세요."하면 난 무슨 벌레가 내 몸에 붙은 것처럼 기겁을 하고 대열을 이탈해서 거울이 붙은 강습장의 벽으로 가서 회원님들이 하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어쩌다 적극적인 여성 회원님이 반강제적으로 나를 잡아준다며 달려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는 걸 알고 여성분이 포기하곤 하면서 남자가 해보려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난, 성의를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어쩔 줄 몰라서 그런 건데...
혼자서도 어느 발이 나가야하는지 모르는데...
여성과 붙잡기만 하면 얼어버려서 장승이 되어버리곤 했다.
아예 발 자체가 바닥에서 떨어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고참 회원님이 강습 담당 선생님한테 개인레슨을 받아보라고 권유해서...
나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어서 레슨을 신청하게 되었다.
개인레슨이라고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선생님이 베이직 박스 훈련을 시키는데...
처음에는 그것도 발 나가는 걸 못 따라 해서 헤매었다.
왼발 내밀라는데... 오른발이 움직이고...
그때 난 선생님으로부터 “몸치군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난 몸치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이건 또 무슨치인지, ‘센스치’라고 해야하나.
선생님은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발 움직이는 동작 같은 건 아예 안하고...
구부정한 자세부터 잡아준다 했다.
그때 선생님은 나한테 왈츠나 춤을 가르치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까...
이왕 개인레슨 등록은 했으니까...
춤을 못 가르쳐주더라도 자세나 교정해주자는 의도였다고 나중에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개인레슨 시간에 나는 무슨 물리 치료 받는 것처럼
내 상체를 펴는데 선생님과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키가 큰 데다 유난히 말라서 난 상체가 구부정하게 휘어져 있었다.
선생님은 “상체를 쫙 펴세요.”라고 말해도...
난 편다고 펴도 굽은 소나무 같은 내 가슴과 상체는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없이 선생님은 나를 벽에 붙은 대형 거울에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정면으로 거울에 붙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내 양쪽 어깨를 거울에 달라붙도록 뒤에서 밀어붙였다.
난 어깨가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으으~~"하며 신음소리를 토해낼 정도였다.
그래도 선생님은 "참으세요..." 하며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누르고 밀어붙였다.
그렇게 30분 정도씩 며칠을 하니까... 상체가 조금씩 펴지는 것 같았고 나중에는 나 혼자서 벽에 붙어서 그렇게 훈련을 했다.
다음에는 스퀘어박스베이직만 시켜서 그것만 계속 했다.
그걸 하지 않을 때나 레슨 시간이 끝나면...
숙제가 있었다.
나 혼자서 강습장 구석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어깨를 펴고...
홀딩 자세를 취한 채 서있는 훈련을 했다.
완전히 벌서는 자세였다.
단순한 이 동작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실감하지 못할 게다.
10분이 지나고... 30분 정도가 되면...
팔과 상체가 마비가 오는 것 같고 감각이 무디어진다.
그렇게 한 시간 있을 때도 있었다. 나중에는 내 팔이 아닌 것 같았다.
끝나고 팔을 내리면 이미 내 몸에서 팔이 떨어져 나간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난 학원 구석에서 그러고 있을 동안 다른 단체반 수업이나 개인레슨이 진행되곤 했다.
팔이 아파서 좀 내리거나 밑으로 떨어지면 선생님은 언제 보았는지 바로 "똑바로 서세요...!" 하고 날카롭게 소리를 질러서 움찔 놀라며 자세를 바로 잡곤 했다.
팔만 아픈 게 아니라 그렇게 서 있으면 다리도 몹시 아팠다.
두 팔은 큰 고목나무를 껴안은 것처럼 활짝 벌리고서 상체를 똑바로 세우고...
서 있는 모습이 마치 학이 서 있는 모습 같았다.
그 자세를 익히려고 몇 달간 난 그 고생, 마치 벌 받는 자세를 하고 있어야 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자세가 나중에는 학원의 다른 회원들 눈에도 그냥 자연스런 모습으로 비치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자세를 교정한 후에 본격적으로 왈츠를 배우기 위한 훈련에 들어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박스연습], 스퀘어박스베이직 연습과 훈련에 들어갔는데...
이 연습을 하면서 난, 과히 연습에 대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이 연습과정이 왈츠를 배우는 댄스 동호회에 알려지면서 나의 왈츠에 대한 얘깃거리가 장안 댄스계에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나를 그렇게 강도 높게 훈련시켜준 나의 사부님은 국내 챔피언을 몇 회 하신 댄스계 여왕님이었다.
나중에는 본 궤도에 올라갈 즈음에는 남자 사부님과 그 여 사부님한테 동시에 배웠다.
나의 첫 발을 떼 주고, 내 자세를 만들어준 사부님은 여사부님이었다.
그런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켜주신 사부님들이 있었기에 지금도 어딜 가도 모던댄스에 대한 자세만은 기죽지 않는다.
첫 사부님이 그만큼 중요한 것 같다.
========
댓글
에릭1 06.12.30 11:19 첫댓글
옆에서 연습하시는 것을 지켜보면서 마치 학이 춤을 추는 것같이 단아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늘 반복에 반복을 하시는 습관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력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요. 기회가 되면 한수 알려 주세요.
겨울나그네06.12.30 11:32
처음 정자세 취하고 양팔이 아파도 참아 내던 생각이 나네요... 화장실 갈 때만 팔을 내렸던 적이 있었어요.....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ㅎㅎ
눈동자2 06.12.30 12:13
설레이는 글 올려주셨네요. 이런 인고의 세월이 지금의 청노루님을 만드셨네요. 연습하시는 모습 볼 때 마다 왈츠의 아름다음을 느낍니다. 몸만들기 다음 편을 기다리며 왈츠 정자세 취해 봅니다. 거울속의 내 모습 왜 이렇게 어정쩡한지?...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셔요. 정해년 새해엔 행복하고 감사할 일만 있으세요.
아이런티06.12.30 14:18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춤이 어렵다는 게,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마음에 닿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라틴도 열공 하셔서 목표 이루세요...
조아 06.12.30 23:13
강도 높은 훈련과 좋은 사부님이 밑거름이 되셨나 봅니다.
마에스트로 06.12.31 07:55
모던 배우시는 분들의 열정에 감탄합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즐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