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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th. Sep.(일)
아침부터 심한 소나기 속에 눈을 뜨다. 오늘도 망치는가? 어디를 가던 어서 마치고 떴으면 좋겠다. 일요일이긴 하나 모래 추석날 하루 쉬기로 하고 계속 작업을 하기로 하다. 동방73호가 찾는다. Wari에서 꼭 두달만에 완료. 북상중, 연료부족으로 Apapa Reefer로부터 50톤 보급 받도록 되었다고 찾는 중이란다. 오후1시 상륙. 김선장과 우리 보트로 외항으로 나가다. 오랜만에 만나다. 양선이 접선 보급했다. Sweel이 심했으나 다행이 동방호에 대형 Air Fender가 있어 가능했다. Kano Reefer가 본선에서 급유 받으려 했을 때 외항에서 거절한 이유를 알겠다. 모처럼 세 선장이 모인자리. 역시 내가 최우대 손님이다. 모두 내 신세를 졌다. 닭을 튀기고 한 잔 하자는데 VHF에서 Chief Pilot가 우리 배를 부른다. 30분후에 너의 배에 Pilot가 간단다. 그게 무슨 소린가? 다시 확인하다. Habour Master에서 ‘귀선 금일 오후4시까지 출항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본선에 연락을 해보니 그놈의 10,000N 경고장이 또 날아들었단다. 급히 귀선하다. 역시 그렇다. 명일 10까지, 붙어진 바지 떼네고 ... 어쩌고 했다. 아마 대리점에서 본선의 ETD을 오늘까지 신고해 놓고 양하가 지연되도 정정 신고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개새끼들 아닌가!
이제 겁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잠시라도 안심하고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도대체 항만국도 그렇지. 이런 걸 본선에다 대고 직접 Order하면 어쩌나? 신고한 저네들 대리점에 해야지. 아직도 떠나자면 태산같이 할 일이 남았다. 그러나 참 이상하다. 모처럼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에 꼭 이런 일이 생긴다. 하루 종일 배에 죽치고 앉아 있을 때는 아무 일 없더니-. 천상 배에만 있으라는 연분인가? 일단 대리점에 들리긴 해야지. Mr. Tangir가 있어야 할텐데-. 뻔한 대답일거다. 몇푼주고 4-5일 연기하고 Pilot 취소한다고 VHF로 몇번 왔다갔다 하고 -. Never Mind! 그걸로 끝이리라.
동방호 허선장이 새로운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 배의 통신장과 1기사가 선기장을 탈세로 몬다고 했단다. 철없는 짓이다. 참 서글펀 인생들이고 -.
‘아무소리 말고 그냥 가시오, 하고 보내버리소. 아무일 없을 테니까’
그러나 저러나 통닭에 위스키 한잔이 아깝다. 방파제 끝에 있는 West Mole의 초소놈들의 속칭 ‘개밥’도 재미있는 일이다. 통과 전에 미리 담배 던지는 투수 폼 잡으면 켓쳐 폼 잡고 받으면 그냥 ‘Go'다. 오늘 또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내일은 다시 내일 일이다. 닥쳐보아야 안다. 무엇이 물었는가 왼쪽 정갱이 밑에 콩알만하게 부리켰다. 시부럴 -.
26th. Sep.(월)
오늘도 보낸 하루가 아니고 빼앗긴 하루다. 08:00 나는 대리점으로, C/E는 수리공장으로 바로 보냈다. Agent에는 아무도 없다, 아니 있기는 개떼같이 있어도 정작 일을 볼 놈이 하나도 없다. 마침 본선 하역감독으로 왔었던 Mr. Ajose.가 반겨준다. 경고장 보이며 ‘이걸 누가..?’ 했더니 사장이라는 Mr.Hiru한테 안내한다. ‘ 나 히로시마 선장이요. 이거 좀 보시오, 알고 있소?’ ‘미안하오 Mr. Ajose에게 Chief Pilot에 가서 Shifting계획을 취소하도록 할테니 같이 가보시오’ 한다. 같이 따라 가본다. 부슬부슬 비는 또 왜 그렇게 청승스럽게 오는가. 온통 진창이다. 아침부터 꾸리텁텁한 더위에다 -. 기분도 눅눅하고 텁텁하다. 수속은 간단했다. 확인 Sign만 하면 된다. 역시 ‘No Problem’이랬다. Israel인 Coordinator도 있다. 지금부터 인부들 보낼테니 작업 시작하잔다. 그러자. Mr. Ajose를 먼저 보내고 나는 Lansal을 거쳐 Trans-Con에 가다. 호코마루와의 補油건, 추석명절용 돼지 한 마리를 의논하러 -. 그러나 또 없다. 늙은 흑인부장 Mr. Adetunji에게 커피 한잔 얻어 마시고 자기 마누라 시계 하나 사다달라는 부탁만 받았다.
돌아올 땐 Trans-Con 직원의 차를 탔다. 고속도로상의 3중 충돌 교통사건 현장을 목격하니 현기증을 일으키게 한다. 차 타기도 겁난다. 밀린 차 때문에 고속도로를 내려 사잇길로 오다. 마치 우리나라 6.25사변직후 돗데기시장 비슷한 곳이 비온 뒤의 진흙탕물 속에서 요란하다. 망치 하나로 자동차를 생산(?)해낸다. 이런 유의 공장(?)들이 수두룩하고 조잡한 현지 생산의 각종 가구, 옷감, 그릇 등등의 생활용품이 노점시장에 곁들인 고함소리는 바로 ‘악’이다. 군인들이 주둔하는 병영사이로 뚫린 길로 민간인 통행이 가능한가보다. 운전하는 녀석이 보초선 갈매기 3개짜리 한테 ‘싸전’ 하고는 뭐라고 하니 지나가도 좋다고 한다. 군인막사 같지 않으면서도 막상 본부 같은 곳은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다. 계속되는 거리의 저 흙탕물이 없어지는 날 이놈의 나이제리아도 제법 질서가 잽혀 갈 것이다.
다시 Agent에서 Mr.Tangir만나다. 역시 소리를 들었는가 미안하단다. ‘4-5일이면 끝날 것 같은데 잘 좀 봐주시오. 그리고 Sailing Instruction도 나왔으면 주시오’ 또 그놈의 ‘Never Mind’만 연발이다. Mr.에울루미 영감은 나를 보더니 펄쩍뛰며 야단이다. 10:00시까지 Shifting 않으면 벌금인데 여기서 뭘 하느냐 다. 뭣이 손발이 안 맞나?. ‘Cancle했잖냐’ ‘누가 그러더냐’ 고 사뭇 위협조다. ‘너 Mr. Hiru란 사람아냐? 그 사람이 했었지’ 아무말이 없다. ‘물은 언제 가져오냐?’
‘내일쯤 -’ 선장은 내 친구고 어쩌구다. 또 무얼 하난 달라는 전주곡 이구먼.
정오를 넘자 강열한 햇볕이 작열한다. 따갑다기 보다 마구 찌고 삶는다. 지글지글 장작불로 끓이는 듯이 -. 12시경 귀선. 겨우 한숨을 돌리는데 느닷없이 Pilot 'Echo'가 왔다. 어? 14:00시에 외항으로 Shifting Order가 있어 30분 먼저 왔단다. 도데체가 모르겠다. Mr. Ajose 불러 따졌다. Pilot와 얘기해 보니 자기도 모르겠단다. 분명히 14:00시로 Order를 받았단다. Lansal을 불러 보니 이건 또 어찌된 것인가. 외항에서 기다리면 2-3일내에 다시 불러들이겠단다. 미치겠다. 한마디로 -. 갑판위에는 아직도 Sling이 걸린 고기가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에라 모르겠다. Hatch 덮어라. Derrick도 내리고 나가자.
화주측 Tallymen이 Tally가 안 맞다고 하기에 그냥 태우고 나왔다. 16:00다. 차라리 속이 시원하다. East Mole Signal에 신고해 두고 푹 쉬자. 내일이 추석아닌가. 오히려 잘됐다. 하다 만 장비들이 아직도 실려 있으니까 저들이 답답하겠지. 기관실 모타수리 잘 됐단다. 청수도 90여톤, 그만하면 됐다. 저녁때 보트로 돌아가는 화주측 집계원은 그래도 저네들 거라고 걱정한다. 안 가져 가면 모두 바다에 버릴거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Oh No'의 연발이다. 빨리 가서 어서 정리하도록 해라. 곧 하겠단다.
오늘은 온통 두통꺼리뿐이다. HokoMaru.가 부른다. Las의 Mr.Tikam이다. Hoko 대신 Tokomaru에 50톤 급유하란다. 기타 필요한 조치는 Hoko, Toko와 삼각연락을 해서 그것도 오늘 중으로 -. 지독스레 재수 옴 붙은 날이다.
침침한 눈이 더 희미한 것 같다. 저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배들이 나름대로 제각기 고민이 있고 걱정이 있으면서도 한가지의 같은 바램이 있을 것이다. 어서 마치고 갔으면 하는 -.
27th. Sep(화)
추석이다. 오늘 아침식사는 09:00시에 하잔다. 간밤에 廚司部가 수고들 했다. 두툼한 생선찜에 돼지머리도 삶았다. 뭣보다 콩나물, 무나물 등 나물거리가 없어 못내 입안이 밋밋한 느낌이다 잠시 각기 고향을 향해 묵념을 하고 각자의 추석을 상기하며 없는 제사의 음복으로 맥주한잔씩을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찾는 데가 있단다. Lansal이다. 지금 위치가 어디냐고. ‘나도 잘 모르겠다. East Mole에 물어봐라’ . 결국 Hoko와 Toko가 Contact되었으니 직접 연락하란다. 오늘 명절만은 조용한 마음으로 어릴쩍 고향집 그리고 그 옛 추억으로 돌아가 볼 참이었는데 -. 기대가 박살이다. 역시 뱃놈에게는 맨날 뱃일뿐인가 보다. 화려했건, 즐거웠건, 슬펐건 괴로웠던 그건 어디까지나 하나의 즐거운 환상에서 시작하고 끝일뿐이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현실로서 이루어지기는 근원적으로 되어 있지 않다. Hoko丸 입항 허가가 없으니 3E선 부근에서 만나잔다. 거기까진 적어도 3시간의 거리다. Lagos항의 VHF가청거리를 벗어나도 곤란하고 -. Boiler도 중지하고 있다.
‘당신네들 편지가 Lansal에 와있던데 우리 보트 보내서 그걸 거져올테니 그 동안 당신네들이 이리로 오소’ 했더니 잠시 후 그러잔다. 역시 뱃놈한테는 편지가 제일이다. 얄팍하게 이용한 게 안됐지만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위안을 없으리라-. 인종이나 민족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니까-.
오후 5시경 접선. 급유준비를 하다. C/O가 귀선 중 흑인아가씨 3명을 주어 싣고 오다가 접선중임을 보고 Apapa에 대기중이란다. ‘그래 조금 있다가 연락하면 안 보이는 쪽으로 붙여서 데리고 오소’. Hoko의 Mr.Tikam이 내일 좀 만나잔다. Teoflos.K의 Cargo Damage때문에 왔는데 골치 아프다고. 내일아침 10시까지 3선장 모두 데리고 오란다. 그러자고 했다.
급유는 A. B 각각 50톤 계 100톤을 주기로 했다. 3시간이면 충분하다던 C/E의 장담과는 달리 8시간 예정이란다. 결국 새벽까지 걸리겠군. 저녁에 간단히 한잔하고 쌓인 울분, 그리고 미칠듯한 이곳의 무질서함을 풀어보려 했는데 -. 데리고 온 검은 아가씨 셋 모두 멀미에 파김치가 되었다. 목욕 세제시켜 올려 보냈다. 긔중 나은 것이라며 -. 싸롱 하군은 귀한 과일 두 개에다 그놈의 장화까지 갖다 준다. 마치 병신 아들 장가보내는 것처럼 -. 그 마음씀이야 고맙다만 -. 해상이 거칠다. 작업 중인 양선, Air Fender를 5개나 사용했으니 그런데로 견디지만 심한 Sweel에 흔들림이 심하다. 72년이던가? 동방51호시절 북태평양상에서 73호에 철야 이적작업중 몹시도 불안했던 그 마음이 결국 3/O 박종훈군의 추락사고를 보게했던 그때가 자꾸만 생각난다. 더구나 얄붓이 한잔 걸친 C/O의 알량한 꼴이 더욱 마음을 놓을 수 없게 한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몇 푼 쥐어주고는 국장을 불러 데리고 가랬다. ‘와 냄시나요?’ ‘델꼬자소’ 하면서도 너부죽이 웃는 모습이 흡족한 표정이다.
내일 아침 06시에 이선키로 일본인 선장과 약속. 근 60에 가까운 사람이다. 보내는 편지도 좀 부탁하잔다. 한데 모아주소. 일본 된장 30Kg을 $20에 구입할 수 있어 다행이다. 누워도 쉬이 잠이 오지 않는 잠. 오늘이 추석인데-. 아마 지금쯤 경산다녀왔으면 고단해서 일찍 쉴지도 모른다. 아니면 적당히 얼러대고 안 갔을지도 모르겠고 -. 영감님 성화에 또 그 말과는 달리 고생스러워도 다녀와야 한다는 사명감(?)에 큰집 차에 곱살이 붙어 갔다 왔을거다. 영감님 또 ‘완수 그놈 어쩌고 저쩌고 -’ 했을거고 -. 어머님 산소를 못 뵌지도 3년이 넘었다. 이제는 어쩌면 ‘쳐 내어놓은 자식’이라 하실는지 모르겠다. 예까지 오고 가긴 아무리 마음이지만 너무 거리가 멀다. ‘뱃놈들 명절날이 부잣집 개보다 못한 날’이란 말이 새삼 절실하게 느껴진다. 구름 속에 가려진 희부연 달이 아마 그쪽에선 벌서 자취를 감추었을 시간이다. 이놈의 생활 언제 끝이 나려나?
28th. Sep(수)
애써 겨우 든 깊지 못한 잠. 03시에 3/E가 깨운다. 급유가 끝났다고 Sign 해달랜다. 날새서 해도 되는데 원 참. 사관생활을 처음 하는 그다. 06시에 또 깨운다. 離船한단다. 해상이 점점 악화. 더 이상 접선상태로 두기가 위험한 탓이다. 부옇게 날이 샌다. 편지 한 뭉치 받고, 잘가소, 고맙소 인사 나누고 헤어졌다. 아침이면 대개 조용한데 왠놈의 파도가 이리 큰고-. 내가 하는 일에는 늘 꽝철이가 붙었나? 우선 한 가지는 끝냈다. 설친 잠으로 눈꺼풀이 따끔거리고 입에서 신물이 가득하다. 아침 10시까지 Lansal에 가자면(도중에 Apapa와 Teoflos.K를 거쳐서) 08시엔 출발해야 한다. 험한 날씨다. 보트가 나뭇잎처럼 나풀거린다. 갑판장과 조기장 둘이만 수행시켰다. Teoflos.K는 아예 선장이 없다. 일등항해사의 말인즉, Lansal이 대리점으로서 협조가 없어 Protect Agent를 선정하고 거기 갔단다. 10시반 Lansal에 도착. Mr.Tikam이 오랜만에 반겨 맞는다. Mr. Ashok. Uttan 도 있다. 함께 다시 Teoflos. K로 가다. Hatch를 열고 들어가려니 썩은 냄새가 난다. 일부 상자의 고기 눈알이 쑥 들어간 걸 보니 한번 상했던 게 분명하다. 선측과 Mr. Tikam의 얘기가 다르다. 아마 유명한 Greece놈들이 시치미를 떼는가 보다. 내일은 다시 Lome에서 고기를 실어 보낸 Spain사람 Mr. Jose Lamon도 온다고 한다. Mr. Tikam은 이 고기를 실을 때 냉동기 사정으로 200상자 정도 나쁜 것이 있어 버리려다 실어 보냈다고 했고 실제 냉동기가 고장나 선측에서 수리하지 못해 소련선박 기사가 가서 고쳤고, 그 Charge 마져 줬다고 하는데 선측에서는 그런 사실도 없고 전임 C/E도 귀국해버리고 Log Book도 없단다. 엉터리가 보인다.
어느 쪽이 정말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고기는 썩었고 냄새는 완전히 전 Hatch에 배였다. Mr.Tikam이 점심 사겠단다. 어쩌면 우리는 Las에서 유류보급을 받은 후 영국행 예정이고 Apapa는 Lome에서 전재한 후 Dakar. 그리고 중동의 시리아행이 될 것 같단다. 어디든지 가마. 配船만 잘해라. 그러나 Lome 한 번 더 갈 수 없소? 생긋이 웃는다. 짐작이 가는 모양이다. 주머니를 톡톡친다. ‘그렇소 쇠가 있어야 영국가도 아가씨하고 Date라도 한번하지.’ 웃으면서 그렇단다. 실상 영국은 좋은 곳이라도 두 손으로 어여쁜 곡선을 그려보인 것은 Mr. Ashok다. 잠시 외항까지 다녀오는 동안 멀미 때문에 얼굴이 노래져가지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면서도 여자 얘기엔 솔깃해서 잠기 깨는 모양이다. 근래는 시기가 아니나 Lome엔 集魚가 잘 안 된단다. 그래서 Flo도 남미로 보냈다고. Las에서 한국인 2명을 Lagos에 파견예정이란다. 냉동바지 기사와 대부분 한국선원인 운반선들의 운항관계 때문이라고 -. 우리 배도 곧 살 생각이라고 한다. 그래 사서 일본가서 고쳐라, 최선을 다해주마. 고려중이란다. 다음 일본갈 땐 한국도 가본단다. 매부리코에 걸린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두 눈. 그리고 벗겨진 앞머리. 아무리 보아도 자기내의 실리추구에 철저한 사람 같다. 전재비 인상건의가 아무래도 명분이 안 선다. 무조건 안 한다, 어렵다 하면서도 더하고 싶어 하는 이상, 인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오늘 느꼈다. 우선 그나마 용돈이 궁한 선원들이 문제고 그것을 control해주는 선장들이 문제다. ‘왠만하면 인부들을 대서 하도록 하시오.’하고 전부가 한 목소리가 되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실책이다. 적당히 내년 3월경 봐서 매선이 되건 안되 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기미가 없으면 그만 두는 게 낫다. Nigeria의 외환관리 사정상 Trans-Con의 인도인들이 외환반출금지로 손을 떼려 한다는 얘기가 있으나 우선 짖고 있는 그들의 공장규모, 또 Mr. Tikam의 계획을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하나의 위장전술인지도 모른다. Teoflos.K의 Damage건이 해결되면 곧 Las로 귀환. 거기서 만나잔다. 그때 이번의 모든 작업비를 정리하겠단다. 서로 협조합시다. 여우같이 곱살거리며 붙으면 우선은 살 것 같으나 아무래도 듬직한 믿음성이 결여돼 보이고, 너무나 밝은 실리에 흠뻑 성의를 바칠 의욕이 나지 않는 印象들이다. 그러나 그와 관계가 있는 한 도우고 친해보자. 해상이 더욱 궂다. Rolling이 좌우 10여도씩 해댄다. 마치 항해를 하는 기분이다. 오늘도 편지가 없다. 뭔가 여의치 못했는가? 분명히 Lagos로 한다고 했는데. 그리고 올 때도 넘었는데 -. 오늘 하루 동안에 얼굴이 다시 발갛게 굽혔다. 강한 햇볕 때문에 찡그린 탓인가 눈가의 주름진 곳은 노르스름하게 깊은 골이 파여 있다. 검둥이 6촌에서 4촌으로 되어간다는 누구의 말이 맞는가 보다.
29th. Sep(목)
먼 바다 한가운데서 큰 태풍이라도 있었던가 길고 걸죽한 Swell이 계속 밀려오고 모여 있는 선박들을 일렁이게 한다. 강한 입구의 조류와 함께 배가 긴 파곡에 들어갈 땐 앉아있기가 어려울 만큼 심한 로링을 한다. 적막, 무료함을 달래기 위함일까? 오늘도 혹시나 하는 기대 속에 하루를 넘긴다. 어쩌면 또 하루를 잃어버린듯한 느낌이다.
‘주머니속의 엣세이’를 틈나는 데로 뒤적인다. 아무거나 잡히는 읽는다. 박완서씨의 ‘지붕밑의 남녀평등’. 역시 여자나 남자는 신체적 구조, 역할이 다르기도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미묘하고 섬세하며 치밀한 마음의 바탕이 다름을 본다. ‘부부간의 대화 속에 남녀의 평등의 문제를 끌어드리는 여자처럼 매력 없는 여자가 또 있을까?’ 그건 그렇다. 여자 자신이 그렇게 느낀다면 남자들에겐 여지가 없다. 매력 없는 정도가 아니다. 실제로 아내가 그런소릴 했을땐 밉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가끔 한번씩 평등하지고 할 땐 기가 찰 만큼 멍청해지기도 했었지 않던가. 아내에게 一讀을 권하고 싶은 글이다.
Peace Rose호에서 중국인들이 타고 있는 Recent호에서 팔고자 하는 젖갈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작년에 한국선장이 타다가 중국인(대만인)에게 인계할 때 남았던 주부식중에서 다른 것은 다 먹었으나 그놈의 젖갈과 김치는 아직 그대로 남아 혹시 찾는 한국인이 있으면 팔겠다고 했다. 조개젖, 창난젖, 호래기젖, 새우젖 그리고 오징어절인 것 등이 몇 통씩 있단다. 막상 상하지만 않고 먹을 수 있는 정도의 것이면 여기서는 귀한 것이다. 몽땅 사서 한 번 더 장사할까? ‘보트는 내가 가져갈테니 운임계산은 합시다’ ‘육상 KOTRA의 이규학씨한테 팔면-?’ ‘그긴 내 거래처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남의 거래처에 손댈거 까지 없잖소?’ ‘허허 -, 하하’ 모처럼 유쾌한 대화 끝에 일단 내일 우리 보트로 각선 주자 싣고 가보고 적당하면 나누어 사기로 했다. Peace Rose 선장 아직 대면한 적은 없지만 우선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극히 예의가 바르고 자존심이 강한 듯 하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친절이 지나치기도 한 듯도 하다. 아무리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사는데-. 어지간하면 서로 협조하고 싶다 그 자신보다도 전 선원들을 위해서다. 이 더위, 무질서 속의 수천리 밖까지 나와서 제대로 먹지고 못하고 감옥 같은 생활이 곧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일이다. 한번 만나보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처지면 돕고 도움을 얻자. 거지같은 이곳 검둥이한테도 그저 주기도 하는데 -.
차항 영국행이 확정 됐는데 Chart도 챙겨봐야 하고 무엇보다 기상관계가 궁금하다. 통신사가 둘이나 있어도 모두 처음과 같으니 믿을 수가 없다. 적어도 북위 52도가 되는데 10월이면 동남에도 계절풍이 시작되는 때다. 올라가기까지 Ballast항해가 되면 여간한 일이 아니다. Mr. Tikam 한번 더 만나고 갔으면 싶기도 하다. 있을라나? Sailing Instruction이라도 있어야 할텐데. 낯선 길 그나마 없으면 우선 마음의 부담부터 커진다. 어디를 가던, 어떤 상황을 겪던 한번쯤 시원스레 움직여 보고 싶기도 한 지금이기도 하다. 긴장이 풀어질 우려도 있다. 실상 편하기야 이만한 곳이 있을까만 몸과 마음이 할 일없이 보낸다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자극 그리고 변화가 때로는 있어야 한다. 생활, 삶 그 자체가 싸움이고 전쟁이 아닌가. 책과 눈과 머리의 싸움에서부터 크게는 서로를 죽이고 뺏고 빼앗기는 생명을 건 전쟁에 이르기 까지-. 외형적 규모가 크다고 그 양상이 심각한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경우도 있다. 형식이 없는.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자신과의 싸움. 그것이 더욱 처절하고 격심하며 아픈 진통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하나로 연결된 어제와 오늘과 또 내일은 곧 시간과의 전쟁이다. 내 것이면서도 내 마음 같지 않은 몸뚱이의 조직이고 마음이라지만 그걸 전부 내편으로 만들지는 못해도 내게로부터 이탈하고 달아나는 것만이라도 막아야 한다. 침침한 눈. 자꾸만 고갤쳐드는 그 놈 외눈박이의 욕망. 제멋대로 나래를 펴고 하늘을 나르는 허황한 공상, 틈만 생기면 찾아드는 불면의 증세. 눈과 입이 욕을 할 만큼 들여다보고 중얼거려도 기억해주지 못하는, 마치 돌덩이 같은 머리속 등등. 어쨌든 내가 극복하고 정복해야할 치사하고 어려운 적들임에 틀림없다.
30th. Sep(금)
아침 일찍 Peace Rose에서 찾는다. 주부식 때문에 도저히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부근 가까운 항구로 간단다. Abidjan으로 가는 모양이다. Lagos항에는 일단 통고 없이 비밀에 붙이기로 한단다. 어제 저녁에 Apapa와 통화, 오늘 오전중에 Regent Port호에 젖갈사러 가기로 바로 그 선장의 입으로 약속했었는데 -. 오죽한 사정이 있었겠나만 너무나 함께 염려를 나누고 협조를 하려한 같은 한국 선박들의 호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듯해서 다소 서운한 감이 없진 않지만 아무턴 어려운 사정임은 짐작이 간다. 아무튼 안전항해와 목적달성을 빌어주다. 11시반 Mr. Jose가 호코마루에서 찾는다.
Mr. Tikam이 곧 보트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전갈이다. 아마도 Teoflos.K 때문이리라. 1/E, 2/O를 대동하고 나갔다. No.5 Quay에서 기다린다. 속칭 ‘돈쟁이’들의 옷차림이 볼만하다. 몇백만불씩 갖고 있다는 사람들인데 홋바지 아니면 청바지 하나에 런닝샤스를 걸치고 양말도 안 신은 운동화 차림이다. 부숭부숭 털이 난 가슴과 배. 그리고 가끔은 엉덩이의 반쯤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검소하고 실리적인 그들의 생활에서 느끼는 게 많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차림새가 주위의 사회에서 인정되고 용납이 되어지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성도 싶다. 더워도 넥타이를 매야하고 윗도리 한 개라도 제대로 걸쳐야 사람취급을 받는 우리의 사회와 분명히 차이가 있다. London에서 Survey로 왔다는 Mr.James Walsh의 차림도 그렇다. 그에 비해 대리점 직원으로 따라나온 검둥이 녀석은 그 더위에 정장을 하고 넥타이를 매고 팟죽 같은 땀을 흘리면서도 그냥 있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결국 Teoflos.K에서는 6개국 사람이 모인 셈이다. 선장 및 Owner는 그리스. 인도인인 Mr. Tilam. Mr. Jose는 스페인인. Suveyer는 영국. 흑인인 Nigeria. 그리고 곱살이 붙은 나는 Korean이다.
간단히 맥주한잔씩과 빵과 통조림으로 간이 식사를 때우고 No.3 Hatch부터 열고 조사를 시작했다. Mr. Tikam이 자꾸 나보고 봐달란다. 아마도 본선측의 잘못을 넌즛이 인정해 달라는 눈치다. 분명히 Hatch Cover 밑의 Hatch Coaming에 실은 것 중 1-2층의 것도 상했다. 적재시 본선측에서 감독 소홀의 책임이 있다. 냉동방식이 Fan식인데도 냉기 순환을 막을 만큼 빈틈없이 꽉 채운 적재방식은 잘못이다. 냄새는 한 상자만 썩어도 전 Hatch가 다 난다고 했더니 시인한다. 위의 상한 200여상자는 그대로 바다에 Let go해버린다. 그렇게 하고 나머지는 안전하게 양하, 손상된 부분만 보험에서 보상받을 작정이란다. 실상 그렇게 하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유명한 그리스인’이란 말만 들었으나 막상 부딪쳐 보니 억지다. 그놈의 뚱뚱한 船長 녀석 ‘난 아무것도 모른다. 다음 항에서 교대하여 고향가기로 되어있어 보따리 다 꾸려 놓았다.’ 고한다. 어께를 으쓱하며 쉬이 밖에 나오려고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머리가 길어 마누라가 쉬이 못 알아 볼 것 같다’고 걱정이라며 느스레를 떤다. 지독한 자들이다. 같은 영어지만 발음이 많이 다르다. 술렁술렁하게 시원스레 튀어나오지 못함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만큼이나마 해낼 수 있다는 것이 그간의 애쓴 보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빈약하지만 자위를 한다. 방파제 입구라 강한 조류와 함께 심한 격랑 때문에 앉아 있기가 힘들만큼 로링이 심하다. 어두워서 귀선하다. Mr. Tikam이 $20를 준다. Boatmen에게 주란다. 내일저녁 다시 부를테니 한잔 하잔다. 영국의 다음기항지는 Bristol Bay의 북쪽입구인 Milford Haven이란다. 우선 Chart부터 챙겨보고 없으면 청구하기로 하다. 오늘 내일은 이곳 Nigeria의 독립기념일이라 연휴란다. 대리점은 물론 관공서도 모두 쉰단다. 어쩐지 항내가 조용하고 부두의 인적이 뜸하다 했더니 -.
9월이 간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번 9월은 잃어버린 것만 같다. 9월5일 Pool-1에 입항하면서부터 갈팡질팡하던 하역. 잦은 轉錨 등이 결국 채 마치지도 못하고 이 모양이 된 채 쫒겨나고 말았다. 그간 선원들이 작업한 결과 일인당 200여불씩을 벌어둔 셈이다. 아직은 벌었단 느낌은 없다. 시내 외출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만 9월이다. 늘 그랬듯이 지나가 버린 날의 어려움, 고충 그리고 우악스러웠던 그놈의 싸움질 등은 쉬이 잊어버리고 새로운 달에는 무엇인가 분명치 않는 기대를 걸면서 다시 한 달을 보낸다. 다음 달은 또 어떻게 전개되고 견디고 이겨 나갈 것인가?
1st. Oct(토)
국군의 날이다. 금년부터 휴일로 정해진 것으로 안다. 그러면 개천절인 3일까지 그야말로 황금의 3일 연휴가 되겠구나. 무엇보다 마누라가 좋아하고 함께 보낼 얘들이 행복해질 것 같다. 앉은뱅이 용쓰는 격이기는 하지만 반가움이 든다. 예까지 와서 달력을 쳐다보고 ‘연휴다! 마누라도 얘들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너무도 어처구니 없다는 느낌도 있다. 그 만한 여건을 만들어 주지도 못하는 주제에 -.
2/O데리고 차항을 위한 해도를 점검하다. 다행이 다소 낡은 것이지만 Milford Haven의 항박도를 제외하고는 있다. London까지가 얼마나 되느냐가 화제가 된다. 몇잎 벌어둔 것을 이번에 ‘홀랑’할 공산이 크다. 벌써 지도를 펼치고 화려한 런던행의 길을 더듬어면서 공상의 나래를 편다. Newtown까지만 가면 거기서 London까지는 고속도로가 놓여있는 듯 하다. 평생가야 못 가보는 사람이 많은 데 기회 있을 때 가봐야지. Mr. 菅原(스가하라), C/O등이 호기심이 동하는 가보다. ‘Blue Yokohama'에서 ’Minostar'로 개명한 한국선원이 승선한 배의 선장에게서 우선 영국항로의 참고점을 VHF로 듣다. R/O는 기상관계를 알아보게 하고 -. 근 1년 가까이 영국-Lagos간을 Liner로 뛰었다니까 좋은 참고자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갈려면 11월 이전에 다녀와야 한다. 북대서양의 북서계절풍이 11월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그 부근의 Sailing Instruction도 Pilot도 거의 없다. Lagos 출항 후 Laspalmas 경유해서부터 고생이 시작됨직하다. Minostar 선장의 말대로 각오가 있어야겠지만 할 수 없는 일이고 -.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았다. 9월분 수당을 지급하다. Main Deck의 남은 부분을 마져 Chipping하게 했다. 한결 마음이 후련하다. Mr.Tikam에게 자랑을 했었는데 그가 보기 전에 마칠 수 있어 다행이다. 오후 5시경 Mr. Samtani가 부른다. Apapa Reefer선장과 함께 나오란다. 호텔도 예약했으니 염려 말고-. Mr. Kishinani집으로 언제든지 오면 된단다. 그래 가지. 억지로 찾아간 Mr. Kishinani집. 아무도 없다. 분명히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도 유럽가고 없단다. 검둥이 하인을 앞세워 Mr. Samtani집으로 갔다. 그기에 있다. 막 가려든 참이란다. Evening Dress 차림의 퉁퉁한 그 부인이 순하고 복스럽게 생겼는데 보기완 달리 악수도 안 청한다. 두 아들녀석들의 재롱이 부럽다. 어제 만났던 그들 전부가 한잔 나누었다. Lagos쪽 어느 2층 Bar에서다. Nigeria인이 빠졌으니 5개국 사람이 모인 셈이다. 흑인아가씨들이 不知其數다. Mr. Jose가 슬쩍 옆구리를 찌르면서 ‘봐라 너 마누라가 어디서나 기다린다.’고 한다. 들어설 자리가 없을 만큼 꽉찬 무대, 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부딛침이다. 밀도 짙게 부등켜 않고 문질러댄다. ‘검은 선율’ 흰색과 검은색이 함께 있을 땐 아무래도 흰색이 더러워지기 쉽고 검은색에 동화되기 쉬운 색일 것만 같다. 남의 살이 덤으로 붙은 듯한 엉덩이의 살 한덩이가 흔들고 비트는 춤을 출 때 유난히도 어울리는 제구실을 하는가보다. 역시 노는 데는 스페인인 Mr. Jose가 단연 제일이다. 점잖은 체 하는 영국인, 그리스인이 진짜 신사일까? 꽉찬 사람,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알 수 없는 짙은 사람냄새. Apapa 김선장은 두통을 참는다. 왜 아가씨 하나씩을 옆에 앉히지 않느냐고 재촉이다. ‘내 마누라는 조금 있으면 온다.’ 고 했더니 누구냐고 호기심을 나타낸다. ‘나는 어디가나 가장 못생기고 인기 없는 아가씨를 가장 좋아한다. 그런 여자가 밤의 서비스가 가장 좋기 때문이다.’ 는 내 지론에 모두 박수를 쳐준다. 가장 끝까지 반기고 웃는 놈은 영국놈이다. 이왕 거쳐 볼려면 철저하게 Africa에 가까운 생김새의 아가씨를 구해보자. 입술이 두툼하고 턱 부근이 넓적하며 눈알이 퉁망울처럼 크고 툭 불그져 나오고, 엉덩이도 툭 튀어 올라온 데다 검어도 아주 검고 머리털도 착 달라붙은 그런 여인으로 -. Miss Sawalala라던가? 가장 그럴듯해서 불러다 앉혔다. ‘어떻소?’ 좋단다. ‘오늘밤 내 마누라요. 퉁퉁하여 Cushion 또한 좋지 않겠오?’ Mr. Jose란 놈. Capt. Suh가 Best란다. ‘나야 괜찮지만 다음에 내가 Lome가면 당신 Wife한테 일러줄 것인데 어째 한 잔 살거요?’ ‘물론이지 뭘 원하오?’ 검둥이를 인간취급하지도 않은 그들이지만 저들도 급하고 아쉬우면 더러 깔아 뭉게기도 하는 모양이다. 알면서도 그러는 그 흰놈들의 더 교활하지 않은가? 02시경 Hotel로 오다. Hotel Bristol. 그리 좋은 곳은 아니다. 무슨 놈의 투숙절차가 그리도 복잡한지. Sign을 서너군데나 한다. 방세로 며칠 분을 미리 내야 한단다. 모처럼의 좋은 기분이 여기서 박살이 난다. 사람은 두 팀에 네 사람인데 방은 하나뿐이란다. 새끼들! 한 잔 사주고 잠재워 줄려면 방 2개를 잡지 않고 -. 남는 방이 없단다. Mr. Jose가 더 원통해 했어나 이미 물주놈들은 가버렸다. 10$짜리 한 장씩을 쥐어주고 돌려세운 두 아가씨가 못내 서운한가 오히려 슬픈 표정이다. 잰장 빌어먹을 새끼들! 좋다가 말았잖아!
415호실에 김선장과 함께 들다. 금년들어 처음 외박인 셈이다. 모처럼 더운물에 몸을 담그다. 한결 후련하다. 아무리 더워도 가끔은 한 번씩 더운물에 몸을 담궈야 할 것 같다. 언제나 그랬듯이 외박시에 오지 않는 잠. 거기다 그렇게 푹신한 침대가 너무나 불편하다. Mr. Samtani집에서 얘기했던 것들이 새삼 떠오른다. Chart의 청구, 이번 Lagos의 작업수당의 지급문제, 또 한 척의 급유건. 그리고 본선의 매선과 일본행 계획. 아무턴 있는 동안에는 그리 번거롭지 않았으면 싶다. 매선이 되도 내년 6월이 넘어서 되고 -. 한국선원들이 우수하다고 하면서도 Kano Reefer의 실수를 예로 꼬집는다. 한국 선장들이 젊고 우수하기는 하지만 너무 기대를 하면 그만큼 실망이 어긋나기도 한다. 가진 자의 그 당당한 자세가 부러울 뿐이다.
2nd. Oct(일)
Lansal을 거치다. 편지 몇장 뿐 아무도 없다. 역시 휴일. 귀선길에 Emerald호에 들리다. 선장, 기관장은 이태리인, 1등항해사는 남미의 우루과이인, 통신장은 필립핀인, 1기사 및 2항해사 이하는 전부 한국인이다. 1500여톤의 양하를 위해서 거의 80여일을 기다리고 있단다. 한국선원들이 반겨준다. 사람이 그리운 거다. 서러운 뱃놈들의 애환이다. 44세의 Italy Venice출신의 선장, Hiroshima와 Apapa의 선장이라니 고맙다고 반긴다. 전형적인 해적의 後裔타입의 사나이다. 고생들이 겹이다. 나와서 고생 거기다 외국인 상사 밑에서 일하는 그 고충, 그것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특히 1/E와 2/O의 입장이 어렵단다. 그러나 우리 동족끼리의 단결은 무엇보다도 강화되어 있다. 그래야지. 마치 자기네들의 선장인 것처럼 대해준다. 함께 입항하면 한 번 더 만나고 필요한 음식도 주고받자고 약속. 그간의 지나온 일들로 한동안을 보냈다. 각자의 책상 혹은 침실머리에 꽂고 붙여둔 가족사진이랑 얘들의 사진들, 그 중에는 전가족이 찍은 것이 있는가 하면 돌날을 담은 것 등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저 조그만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무엇보다도 큰 어떤 힘의 동기를 찾고 있을 것이다. 몽탕 털어놓고 말할 수 없는 어려움, 그리고 서글픔, 서러움 등을 용케도 견디고 이기고 버티어 가게 하는 정신력의 근원이리라. 꿈과 희망이 저속에 담겨 있겠지.
집에서 편지가 없다. 답신이 올 시간적 여유는 많이 지났다. 오늘 온 것 중에는 9월 17일자 부산발이 두 장이나 있었는데 -. 무엇이 잘못 된 것인가, 아니면 Las로 띄웠는가? 분명히 Lagos로 하라고 매번 일렀는데-. 통신장도 걱정한다.
‘고무신 거꾸로 신은 모양이오’
‘마누라야…!, 그래도 얘들은 쓸만한 놈들인데 -’
‘아이고 너 아부지 또 나가면 3-4년은 안 올테니 그간 별 볼일 없을 테고 엄마 따라가자 해서 같이 간 것 아닌지’
‘그래도 시집갈 때 다 된 딸년은 ... ’
‘아 그야 뭐 아비보다 더 좋은 신랑감이 있는데 -’
‘허허, 그 말도 맞소’.
어디가나 꼭 같은 심정이다. 대리점 나갔다 올 때마다 전 선원이 내 뒷 주머니와 손만 쳐다본다. 정작 내가 가는 것은 우선 내가 더 견디기 힘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 별일은 없어야 할텐데-. Las로 했으면 거기서 받을 수 있겠지. 대아에서도 연락이 없다. 이래저래 죽는 놈은 조조 군사로군. 어제부터 청수절약 대책을 실시하기로 하다.
3rd Oct(월)
아침 일찍 통신장과 조리장을 시켜 Apapa거쳐서 ‘Recent Botan’호에서 젓갈을 사오다. 제법 먹을 만한 게 많다. 창란, 멸치, 오징어젓, 고추지에다 껫잎까지 있다.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한번씩은 입맛을 돋구고 개운하게 하는 것들이다. 대만인들이라 대신 생선과 소고기, 돼지고기를 50Kg씩 주고 대금은 Apapa와 반반씩 물기로 하다. 돼지고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돼지고기가 없어 오죽했을까? 풍성한 생선과 고기를 보고 입이 헤헤 벌어지고 ‘세세(謝謝’)의 연발이다. Apapa에는 미원과 고춧가루도 20kg씩 주었다. 이 부근에서 한 항차 더 한다면 부족할런지도 모른다면 쌀도 500Kg 달란다. Las에서 구입한 금액에 주기로 하다. 우린 다시 새것으로 사고 -. 이곳에 정박중인 선박들은 대부분 먹는 것 때문에 고생이 많다. 나라 꼬락서니가 그 모양인데다 의외로 긴 체재가 어려움을 가져다 준다.
오후에 Mr. Tikam이 부른다. 우리 부근에 정박중인 ‘Circe No.1'의 푸레온가스 빈통을 좀 싣고 나오란다. 이 자슥이 이젠 막 부려먹을 참인가 보다.
Circe No.1. 국적은 Panama. 약3,000톤 Class. 선원을 France와 Spain인의 혼성팀이다. C/O가 있다. 전날 補油문제로 Mr. Tikam과 얘기 나눈 적이 있는 배다. 역시 보유문제를 꺼집어 낸다. MDO가 가급적 많았으면 좋겠단다. 그러나 Air Fender가 없어 접선이 곤란하다. 일단 Mr. Tikam을 만나보고 다시 얘기해보자. 그놈도 걱정이다 항내라면 ‘No Problem’인데. ‘Togomaru걸 좀 빌리면 어떨까?’ ‘그건 무리다. 그 큰 것을 운반하기도 그렇고, 그 배에서 빌려줄 성질의 것도 아니고-’ 자기가 주선해 보겠단다. ‘고려해보지, 그러나 보상은 충분히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 독특한 웃음, 희죽이 웃는데 멸시하는 듯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진정한 웃음 같기도 한, 묘한 웃음을 흘린다. 출항 시 청수보급이 여의치 않으면 Lome에서라도 해야 할텐데? Mr. Jose 시원스레 대답한다. 염려말라고 - . ‘여기서 너가 가장 많이 도와주는데 우리가 널 그냥 보낼 수는 없다.’ 고한다. Teoflos. K 입항, Hokomaru출항, Minostar 입항, 우리만 쳐진다. 아직도 정확한 일정이 없다. 그것이 가장 불안한 요인이 되고 있다. 하루 2500달러에 가까운 용선료를 물고 있는 저네들이 더 잘 알아서 하겠지만 그놈들의 속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고, 400톤정도 남았으니 잘하면 2-3일안에 충분히 양하할 수도 있을텐데. Trans-Con내에 문제가 있다는 Mr. Tikam의 언뜻 비치는 얘길 보면 무엇인가 사정은 있나보다. 연일 차분히 갖지 못하는 하루하루다. 그저 닥치는 데로 -. 순간순간 들리는 VHF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도 하고 -. 이런 상태라면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한 달 혹은 두 달이 될지 모르게 기다려야 하는 그 당혹감뿐이 아니다. 지날수록 줄어져 가는 청수, 야채 등도 큰 문제다.
趙世衡씨의 ‘워싱턴 특파원’을 읽다. 가장 질서 없어 보이는 미국사회, 그러면서도 어느 나라보다 철저히 이행되고 지켜지는 사회가 정치의 장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매시간 마다 느끼는 언어의 장벽을 강하게 인식하면서도 하루 단 1-20분간을 집중하지 못하는 그 원인은 곧 내자신의 마음속에 있지 않을까?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이놈의 대가리-.(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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