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서 두 번째 맞는 개학 / 송덕희
우수가 한참 지나고 경칩이 내일인데 겨울바람이 매섭게 분다. 비까지 추적거리는 이른 새벽에 눈이 저절로 떠진다. 강원도 산간 지방에는 물기를 머금은 눈이 30센티미터나 쌓였다. 날씨를 종잡을 수 없는 3월 초, 봄은 어디쯤 왔을까. 느긋하게 기다리면 우리 곁에 오겠지만 올해는 조금 늦다.
여유롭게 지내던 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날이다. 서둘러 출근한다. 라디오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가 흐른다. 간간이 들리는 청취자의 사연은 내 기분과 닮았다. 유치원 선생님은 아이들 맞을 기대에 부풀어 한숨도 못 잤단다.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첫날, 어머니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이를 응원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들리는 듯하다. 도로에 꽉 찬 차들도 설레는 풍경이다.
교문을 들어서자, 낯선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이 눈인사를 한다. 처음 본 직원 몇이 종종걸음으로 현관을 향한다. 올해는 작년보다 적지만, 27명이 우리 학교에 새로 온다. 서너 달이 지나도록 알아보지 못해 애를 먹는다. ‘얼른 이름과 얼굴을 외워야겠구나.’ 서둘러 사무실로 간다. 일곱 시 50분인데 교감 선생님이 벌써 와 있다. 교무실에서는 선생님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아직 학생들 소리는 안 들린다.
여덟 시 30분부터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한다. 아이들은 30분에서 50분 사이에 우르르 몰려온다. 700여 명이 북적인다. 오늘은 새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설레는 마음이 먼저 도착한다. 밝게 웃음 짓고 뛰어오는 아이, “어디로 가면 돼요?” 교실을 찾는 물음, “안녕하세요, 선생님.” 목청껏 인사하는 소리... 일일이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다. 처음이라 어떻게 할 줄 몰라 쩔쩔매는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 일까지 챙기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난다.
아홉 시 10분에 학교 방송으로 개학식을 한다. 겨울방학 동안 훌쩍 자란 학생들과 화면으로 만나 인사 나누고 진급을 축하한다. ‘존중과 배움으로 모두가 행복한 학교’에서 일 년간 잘 지내자고 말하며 그림책 한 권를 읽어준다. 이번에는 중국 작가 쑨칭펑의 『여우가 오리를 낳았어요』를 골랐다. 여우가 오리를 낳고 아빠가 되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선명한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고, 여우가 쩔쩔매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도 글쓴이처럼 기상천외한 생각을 많이 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부를 노래 한 곡을 들려준다. ‘밝은 아침에 눈을 뜨면 환한 햇살 하루 기대해 / 새 친구 우리 선생님 모두 다 기대해 / 설레는 마음 안고서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멜로디가 경쾌한 <기대해>라는 동요다. 학생들 마음과 딱 어울린다.
열 시부터는 입학식을 한다. 유치원 다섯 명, 1학년 91명이 새 식구가 되었다. 아이 한 명에 보호자들이 서너 명씩 와서 강당이 꽉 찬다. 오늘 날짜로 ○○초등학교 학생이 된다는 입학 허가서를 낭독하자, 손뼉을 크게 치며 축하한다. 날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자는 인사말에 이어 그림책 『파랑이와 노랑이』를 읽어 준다. 미국 작가 레오 리오니가 쓰고 그린 책이다. 파랑이와 노랑이가 친해지면서 초록이가 된다. 변해 버린 자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부모도 결국 아이들을 얼싸안으면서 초록이, 주황이로 어우러진다.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가면 좋겠다는 내 마음이 전해졌을까? 오늘의 입학식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다.
식이 끝나고 학생들은 새 교실로 들어간다. 강당에서는 학부모 연수가 계속 이어진다. 아이가 1학년이면 부모도 비슷해서 모르는 게 많다. 나중에 전화로 문의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면 응대하기가 더 어렵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꼼꼼하게 안내한다.
여전히 밖에는 바람이 차고 비가 내린다. 열한 시 30분에 수업이 끝난 아이들을 부모님들이 데리고 가야 한다. 실내화를 벗어서 신발장에 넣고 가방을 메고 우산을 쓰는 일... 모두 서툴다. 일일이 어른들이 옆에서 도와야 한다. 직원들이 같이 손을 넣는다. 그 와중에 학부모 차량들이 빠져나가는 길을 막고 있다. 교문에서 차단하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우산도 안 쓴 채 이리저리 길을 튼다. 손이 얼고 두꺼운 옷 속으로 찬기가 들어온다. 모두 안전하게 돌아가는 걸 보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몸이 떨리고 배도 고프다.
여느 해보다 바쁜 하루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서 더 그렇다.
학교에서는 오늘이 새해나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새 학년을 출발하며 기대하고 다짐한다. 내 마음도 똑같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37년간 오늘처럼 개학을 맞았다. 늘 분주하고 설렜다. 정년을 하고 나면 이 모든 것이 그리울 거다. 내년에 있을 마지막 개학 날에는 따듯한 봄 햇살이 비치면 좋겠다.
첫댓글 새학기 아이들 맞느라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는 교장 선생님 그려집니다.
같이 공부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항상 학교는 바쁘지만, 개학날은 더 그렇지요? 제 글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학교는 늘 정이 넘칠 것 같아요. 교장 선생님이 맞이하고 안아주고 예뼈해주니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할 까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교통정리까지 다 하시니 대단하십니다.
곽선생님, 이번 학기에도 얼굴 뵐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아이들이 바람처럼 즐거운 학교가 되길 바라며 한 주를 보냈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교훈이 담긴 그림책과 노래를 들려주는 교장선생님!
나도 그 자리에 다시 돌아 간다면 따라 하고싶네요.
허선생님과 계속 같이 공부하게 되어 기쁩니다. 책 읽어주기, 노래부르기 등은 제가 좋아하는 건데, 아이들에게도 의미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최선을 다해주셨을거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참 부지런하고 인자하신 교장선생님이시네요. 그림책을 읽어주고 동요를 들려주며 인성교육이 되리라 봅니다. 나도 그런 학교에 입학하고 싶다는 욕심이 부러집니다.
과찬이십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거든요. 아이들에게 스며드는 교육이 되길 바라면서요. 선생님과 이번에도 같이 공부하게 되어 기쁩니다.
저보다 훨씬 체계적이라서 글을 읽는 동안 반성하게 됩니다.
내년이 마지막이라니 그 의미가 특별하네요.
양교장님도 똑소리나게 잘 하시면서 왜 그러실까요? 하하하.
정년이 얼마남지 않아 아쉽기도 합니다.
이번 학기도 공부 같이해서 참 좋아요.
그날 진짜 추웠습니다. 넘 잘 그려져 다시 추워집니다. 하하.
미옥님, 반가워요.
글에 공감도 잘 하는 이쁜 미옥님께 사랑표 보냅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