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감정수업]
1부. 땅의 속삭임
#1 비루함 :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노예의식 (“무무” - 이반 투르게네프)
■발췌 (P. 30)
노예는 사랑을 할 자격이 없다.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감정인 사랑은 오직 자유인에게만 허락되니까 말이다.
■단상
프랑켄슈타인이 쓰인지 200년이 지났다. 생명공학이 많이 발달했지만, 아직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생명공학과는 조금 다른 결이지만, 요사이 전세계 뜨거운 감자로 CHAT 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 이하 챗GPT)가 있다.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며 챗GPT가 생각났다. 프랑켄슈타인과 다른 점은 챗GPT는 사람의 신체를 이용해 만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으로 학습기능이 있다. 매일 점점 더 발달하고 있는 챗GPT는 계속 새로운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결과물들을 보며 놀라기도 하고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인공지능은 자의식이 있는가?”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월턴에게 자신이 만든 것은 “지각 있고 합리적인 동물을 창조”(문학동네 ver. P. 286)했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이 이름 없는 괴물은 자의식이 있었고 외로웠다. 그리고 무명의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 자기와 같은 여괴물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성경에도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자신(사람)은 혼자라서 외롭다고 느낀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어주셨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무명 괴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갔고 괴로웠지만, 대의(세계)를 위해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무명 괴물이 느낀 그 감정이 비루함이 아닐까 한다.
클레르발을 죽인 후, 나는 슬픔에 무너지고 철저히 피폐해진 심장을 안고 스위스로 돌아갔다. 프랑켄슈타인이 불쌍했다. 공포심에 가까운 연민을 느꼈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러나 내 존재와 그에 수반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초래한 장본인이 감히 행복을 꿈꾸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게는 비참과 절망을 쌓고 또 쌓아 안겨준 주제에 영영 금지된 감정과 열정을 누리려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무력한 질투와 쓰디쓴 분노가 나를 끔찍하게 허기진 복수심으로 가득 채우고 말았다. 내가 했던 협박을 기억해낸 나는 그대로 행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 자신에게 치명적인 고문 행위를 자초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으나, 나 자신은 충동적 본능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와 같아 혐오스러워하면서도 순순히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P. 299)
이같이 무명 괴물에게는 사랑과 행복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데 알게 된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의 결혼 소식은 무명 괴물을 가장 비루하게 만든 순간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