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자의 인생길
2024. 5. 5(어린이주일) 시편 107;1, 43
말성꾸러기 토마토가 있었다. 청개구리도 아니고 어머니의 말을 너무 듣지 않는 토마토를 볼 때마다 어머니 토마토는 걱정이 가득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 토마토는 말성꾸러기 토마토에게 너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될래?하고 고함을 쳤다. 그때 개구쟁이 토마토는 저요 토마토 케찹 될꺼예요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말성꾸러기 토마토는 열심히 살아도 토마토 케찹 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토마토는 바르고, 착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몰랐던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바르고 착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는가?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부해서 1등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 없고, 또 의사나 판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은 무엇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가? 이 질문에 가장 대답을 잘한 성경이 사무엘하 6장이다. 사무엘하 6장은 오벧에돔의 집에 있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는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게 된다. 먼저 사무엘하 6장 13-14절을 읽기 바란다.
(삼하 6:13-14)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까지는 8Km 정도 된다고 한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제가 빠른 길찾기를 해 보았는데, 저희교회에서 용강역 신호소까지가 8.1Km이다. 이 길을 도보로 걸으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성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인이 여섯걸음을 걸으면 그 앞에서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다.
그러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겠는가?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다윗이 여섯걸음을 걸은 후에 제사를 드리고, 다윗성으로 들어왔다고 해석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자주 제사를 드렸다고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문자적으로 해석하여서 다윗은 여섯걸음을 걸은 후에 제사를 드렸다고 해석한다.
언약궤가 옮겨질 때 에봇을 입은 다윗은 그 앞에서 춤을 추었다. 그리고 언약궤를 멘 레위인이 6걸음을 걸으면 다윗은 멈추어 서서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언약궤를 고작 8Km 옮기는데, 제사를 1천 500번을 드리고, 오랜 시간을 사용하여 언약궤를 옮긴 것이다.
다윗이 왜 6걸음을 걸을 때마다 제사를 드렸겠는가? 유대인들은 6이라는 숫자를 사람의 수고와 열심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다윗이 여섯걸음을 걸을 때마다 제사를 드린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언약궤를 옮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최선의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언약궤를 옮길 수 있는 힘과 하나님의 계획을 구한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최선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힘을 더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한 것이다.
다윗의 이러한 모습이 너무 멋있지 않는가? 옛날 한국교회의 신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학교에서 기도와 전도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교수님은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몇번을 말했지만 그 학생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헬라어 시험을 치루었는데, 그 학생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고 답을 적었다. 이제 교수님이 채점을 하기 위하여 그 학생의 답안지를 보고 난감해졌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는 말이 틀린 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점을 주어야 하는지 고민이 생긴 교수님은 답안지를 놓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답안지에 교수님은 이렇게 썼다고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니 100점, 학생은 아무 것도 모르니 0점
지금 이 신학생의 문제가 무엇인가? 자기 열심없이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실 것이다는 믿음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회 안에도 이와 똑같은 신앙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수고와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것만 기대하는 것을 믿음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정반대로 우리 중에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실 은혜와 도우심에는 전혀 기대함 없이 자신의 수고와 노력만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것도 바른 신앙은 아닌 것이다. 바른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사모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이러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인 시편 107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로 시작한다. 여기서 선하시며는 토브(טוב)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또 인자하심은 헤세드(חֶסֶד)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감탄하는 것처럼 우리를 보시고 너무 좋아서 감탄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이고, 또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는 분이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시인은 선포하고 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선하시며 인자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가 넘치고 있는가? 시편 107편은 우리 인생에 나타나는 특별한 상황 4가지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 어떤 은혜를 더하여 주었는가?
첫 번째 상황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바른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상황이다(4-7절).
이스라엘은 광야가 많이 있다. 그런데 먹고 살기 위하여 상인들은 그 광야를 지나 무역하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 광야 길에서 자주 길을 잃어 두려움에 떨 때가 있었다. 그때 상인들은 주변에는 애굽과 메소포타미아 라고 하는 강한 나라들이 있어서 바른길로 가지 않으면 큰일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근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고통에서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상황은 하나님이 죄악의 고통에서 구원해 주시는 상황이다(10-14절).
죄인된 사람은 많은 노역과 고통으로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 노역과 고통이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주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상황은 하나님이 질병에서 고침을 주시는 상황이다(17-20).
(시 107:18)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우리는 나도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몸이 아파서 무엇을 주어도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망의 문에 이른 것이다. 먹어야 사는데, 먹을 수 없었던 이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그래서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질병을 고쳐주었다는 것이다.
네 번째 상황은 하나님이 광풍을 만난 항해자를 구조하신 상황이다(23-30).
배를 타고 먼 바다를 나갔는데, 큰 풍랑이 부는 것이다. 그래서 배가 하늘로 올라갔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니(26절) 그들의 영혼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광풍으로 고통할 때 이들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었다. 그때 하나님이 광풍을 고요케 하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전하게 항구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은 시인이 말하는 특별한 상황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없는가? 참 인생길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광야길을 걷다 길을 잃는 것처럼 삶의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아니 죄악으로 인하여 어깨에는 늘 무거운 짐이 짊어져 있고, 또 육체적 질병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고통의 바람으로 두려워 떨 때가 많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었고, 또 우리의 자녀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러한 인생길을 지혜자는 어떻게 걸어갔겠는가? 가수 GOD가 2001년 11월 15일에 발매한 4집 타이틀 곡인 길이라는 노래가 있다. 박진영이 작곡 작사한 길의 가사는 이렇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GOD는 길이라는 노래를 통하여 지금 내가 어디로 가는지, 또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내가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아니면 남들이 정해 놓은 길을 걸어가야 할지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아니 이 길 끝에는 내 꿈이 이뤄질 수 있을런지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생길에서 지혜자는 시편 107편 43절 로 사는 것이다. 시편 107편 43절을 읽기 바란다.
(시 107:43)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시인은 우리 인생에 다양한 고통과 난감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지혜자는 이러한 다양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 이러한 삶을 살고 있는 나를 알고 있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닫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견뎌야 해! 하고 꾹꾹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자하신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 시편 107편의 4가지 특이한 상황을 다시 보시기 바란다. 그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래서 문제만 해결된 것이 아니라, 8절, 15절, 21절, 31절에 똑같은 고백을 하고 있다. 그 고백도 읽어보기 바란다.
(시 107: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지혜자의 삶은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 행하신 기적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함으로 주를 찬송하며 사는 것이 지혜자의 인생길인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지금 이러한 지혜자의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기적으로 깨달아 하나님을 찬송하며 사는 삶이 지혜자의 삶인 것이다. 이 지혜자의 삶을 저와 여러분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복된 삶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