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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된장요리 원문보기 글쓴이: Cook & Life
20. 도광터 일기
봄빛이 좋던 날, 토요일 오후가 되니 궁디가 근질거려 살 수가 없으니 이는 도광터가 또 나를 부르기 때문이라. 날래 하던 일 정리하고 동서울 터미널로 단숨에 달려갔다. 강원도 산 골짜구니에 움막이 있으니 그곳이 보고싶어 어제 저녁부터 마음이 뒤숭숭 했다. 혹자는 매주 가는 주제에 뭐 그리 애들마냥 가슴까지 콩닥거리냐구 반문할지 모르지만 내 마음이 그런데 어찌 할것인가. 서울 춘천간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홍천가는 버스가 꼭 양평을 들렀다 가는 바람에 한시간 하고도 오십여분씩이나 걸리던 것이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한시간으로 단축되었다. 더구나 차비까지 사천여원이나 내렸으니 얼마나 신바람 나는 일인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은것이 두 시간 걸려 갈때는 느긋하게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특히 두물머리 지날 때마다 얻는 느낌이야말로 최고였거늘 이제 그것을 느낄 수 없다. 더구나 허구헌날 도로나 낸다구 국토의 살집을 저렇게 헤집어 놓으니 그걸 어떻게 매양 편리하다는 구실로 좋아만 한단 말인가. 이왕 낸 길이니 상처난 도로 가들이 빨리 아물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표 끊고 양양 홍천가는 버스가 대기하는 곳으로 가니 사람들 길게 나래비를 섰다. 슬쩍슬쩍 눈치를 보면서 중간에 새치기까지불사하면서 시간보다 먼저 가는 버스에 오르니 눈 감고 잠 한숨 잘 새도 없이 바로 홍천이다.
홍천 도착하여 먹을거리좀 사려고 시장으로 가니, 오호라! 오늘이 홍천 장 아닌가! 그래! 그렇다면 도광터까지 직접 가는 버스는 포기하고 조가터에서 도광터까지는 걸어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장날 난전을 구경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을 그 짓을 어찌 포기할 것인가. 난전 입구로 들어서니 벌써 사람들 북적거리고 여기저기 난전 상인들이 호객하는 소리가 자욱하다. 봄나물은 지천이고 묘목과 강아지를 가지고 나와서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해 강냉이장사, 야채장사, 어물전, 막걸리를 파는 간이 주막부터 북적북적 하다. 옛날 장 하면 고무신 때우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물감 파는 사람, 빠께스나 양은냄비 때우는 사람, 라이터에 휘발류를 부어주거나 라디오 약을 갈아주는 사람, 변두리에서 개장국이나 국수를 파는 사람, 닭이나 강아지 같은 가금류를 가지고 나온 사람에 이르기까지 없는거 빼고 다 있는게 장날이었다. 나이 든 늙은이들은 먼 마을에 사는 사돈이나 친구를 만나 빠진 이를 드러내며 웃고 떠들고, 여인들은 치마를 오무려 앉아서 색깔이 고운 코빼기 고무신을 고르거나 광목을 물들일 물감을 골랐다. 간혹 선거철의 장판은 더욱 가관이었는데 공화당 모 의원이 연설하러 오신다 하여 장날 두루매기 입은 늙은들부터 시작해서 핫바지 입은 중년 남자들까지 난전판 구석에 떼로 몰려들었다. 그러면 공화당 모 의원 나와서 국정연설을 하고 사람들은 뭔 얘긴지도 모르고 모가지를 쭉 빼고 확성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랴 국회의원 얼굴보랴 눈, 팔, 다리 모두 고생하였다. 그리고 연설이 끝나면 공화당 국회의원은 모인 사람들에게 막걸리 한사발, 흰 고무신 한켤레, 아니면 손수건 한장씩을 돌렸다. 요것이 옛날 우리의 장날이었는데 지금은 그런걸 보려 해도 구경할 수 없으니 그래도 옛날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으려는 내가 얼마나 가당찮던가.
[ 파 다듬어 놓고, 고구마 두어개에 얼갈이까지/옆에분은 숨겨놨던 고추까지... ]
봇뚜랑길 새벽에 건너고
송장 메뚜기 널러다니던 솔치를 넘었지.
수건이 짜도
그것이 땟국물 맛이라!
육신의 즙인것을 더러울 리 있나!
솔에 바람 문지를 때
귀신도 신발을 버리고 줄행랑을 쳤다.
[ 꺼피 한잔 때리면서... ]
어머니 옷고름 바늘로 찌르고
헛간에 굇짐은 번개처럼 없어졌다.
부목재가 높아도
넘는이 무지하게 많았다.
서석 사는이들도 몰려왔는데
주고 받는 말 모두
무지한 아들놈이 떼쓰는 얘기뿐이라
처녀는 뒤에 살금 살금 오고
어머니가 먼저 장에 도착하였다.
[ 사실거면 사시구 안사실 거먼 귀경 하시드래요 ]
말재 중간에 주막이 있었는데
사연 있는 여자가 머물다 고개턱 소나무에 목을 매었다.
상두패가 거두어 양지에 묻었지.
장꾼들은 술 한잔에 안주로 삼고
여인들은 물가에서 빨래 방맹이 끝에 사설을 붙였다.
삶이 눈물이거늘
팔자가 좋아도 고통 뿐이다.
이놈의 세상.
[ 이거만 받어유! ]
양양 바닷가에 어물이 구룡령 넘을 적
미역 한줄기가 따라왔다.
금이 다섯배로 뛰었거늘
젯상에 어물 없으면 귀신도 음향을 안하는 법.
두태 한말에
조기꼬리 하나를 잡았지.
할배는 두 눈이 침침해지고
아낙은 고무신을 질질 끌었다.
[ 살기라요? ]
지청이 넘어져
어머니의 살이 낫에 버혀졌다.
조상이 살아계시거늘
죽었어도 네년을 보고 있다.
양은 냄비에는 물이 끓지만
삶을 보리 한톨도 곡간에는 없다.
싸리순이 흐드러지면
한번에 훑어 강냉이 죽을 쑤리라.
부자들 잘 살아도
어찌 너희들이 이 맛을 알랴!
이 만난 죽맛을!
눈물이 피로 변하여 죽에 떨어지고
밤 되어 등잔에 세구지름 다하도록 버선을 꼬매니
다음 날 나물 뜯으려 산을 헤매어 도로 구멍이 났다.
[ 요게 산더덕이드래요 ]
저짜구 장터 입구로 가니 아, 이양반 어김없이 나와 앉아 계시다. 톱 스는 양반. 가까이 가서 인사를 건네니 대뜨바리 소주부터 한 잔을 권하는게 아닌가? 이 술 안받으면 내 얘기도 안할테니 먼저 술부터 받으란다. 일단 한 잔 받아 마시니 이번에는 한 잔 따르란다. 호상간 한잔씩을 더 주고 받은 후 간 얼굴이 이제 다 나은것 같다 하니 씩 웃으면서 이놈의 술이 왼수란다. 단련된 쇠같이 뭉툭한 손마디와 때가 잔뜩 묻은 톱을 괴는 바침대와 톱과 삶손이 닿는 부분이 반빡거리는 기차 레일 토막.
"내가 장판을 다닌게 한 삼십년도 넘지. 서석으로 신남으로 인제로 양구로 노천으로 광원리로 양평으로. 옛날이는 벌이가 좋았지. 강원도가 나무가 좀 많어? 톱으로 나무를 베야 하니 톱 스는 사람들이 장판마다 아침부터 나래비를 섰지. 부러진 톱, 이빠진 톱, 후여진 톱, 찌그러진 톱, 이빨이 오무려진 톱, 모두 내손으로 다 고치고 만졌드래요. 그런디 그게 엔진톱하구 일회용 톱이 나오면서부터, 그리구 누가 낭구를 해 때나? 이제 톱 슬러 오는 사람들은 읍더래요. 그래도 배운게 이거니 장날마다 댕겨야지."
장날마다 얼굴 트고 얘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나도 기분이 좋다. 비록 세상일에서 일센찌 벗어나 앉아있는 사람들이지만 온갖 구린내 펄펄 나는 정치판, 더러운 구더기 같은 정치인들과 부자들의 난장판에서 조금씩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 아니던가. 이 세상의 한 구석에서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 안주는 어디다 둔겨, 빨리 찾어 ]
쇠를 쪼개어
날 세우고 갈아 톱을 만들지.
그걸루
낭구 넹겨뜨리고
가지 끊어낸다.
쇠가 나무보다 세지만
그래도 나무에 부대끼면 날이 무뎌지지.
아무리 쇠라지만.
권세자들이여!
부자들이여!
그대들이 쇠처럼 단단함을 믿고
나무 같은 민초들을 짓밟아도
마침내 그 날은 무뎌지고 말리라.
[ 요거 쉬워 보여?]
벼짚에 서리
들국화 꽃잎 얼어 떨어질 때
신갈나무 울음소리
뒷간의 대들보 부러져
상늙은이 숨을 거두었다.
상여집이 멀었지만
젊은이들이 단번에 달려갔지.
물 얼어도
곡소리는 얼지 않았다.
[ 이렇게 날을 잡지. 양말은 SOX표요? ]
슬픔이 죽으면
영혼은 문을 나선다.
삼세의 두려움
윤회의 고통
흐르는 냇물과 질주하는 바람
날을 세운 낫으로
곡식을 넹겨뜨려도
굶는 민초들은 산천에 널려있다.
[ 허허 그게 그러니께...... ]
검은 머리에 명아주 기름
수채에 떠 오른 썩은 밥찌꺼기들
쥐들이 채가고
오두막은 누워있다.
아이들이 달려나오고
누이는 뒤따라 나오지.
재가 멀건만
해는 아직 꼭대기에서 멈추고
대소쿠리에 삶은 보리
밥도 하기 전 없어진 지 오래이다.
[ 만원만 주시드래요 ]
조가터에서 막 도광터 가는 길로 접어들려니 먼데 밭에서 아낙들이 밭을 매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지금 콩밭을 매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씨를 뿌리는데 저렇게 다소곳하게 앉아서 할리는 없는거고.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을 하나 하구 가까이 가보니 바로 더덕밭을 매고 있었다. 내 대뜨바리 주인에게 요즈음은 더덕 농사도 비니루 쎄워서 하능거 아니우 하니 그 아제 대답하기를, 그래두 이렇게 노지에 심어야 알이 실하지 비니루 쎄운건 못쓰드래요. 멀리 낙엽송은 연초록 잎을 내고 바람은 얄팍하여 거시기를 맨지작 하니 일 하면서두 심난 하것유 하니 그러니 봄 아니드래요? 한다.
[ 어야! 밭이나 매자 ]
구름 몇조각
운명처럼 댕겨간 흔적들
써도 채워지지 않는 하늘
거꾸러 인생을 써내려가도
숙명의 필체는 바꾸기 힘들다.
달 위에 그림자 놓아도
숨 붙어있는 이승의 삶
빛에 꿀렁거리는 물결
여기를 그곳으로 착각하고
그곳은 여기로 여기니 그것이 고통이다.
[ 이 더덕밭 언제나 다 매나... ]
걸음이 빨라도
오늘에 당도하지 못한다.
걸음이 느려도
당도하지 못할 곳 없다.
부추켜 득이 되어도 공허한 것이며
버려 잃어도 길은 끊어지지 않는다.
삶이 이러하거늘
고통위에 앉아도 마음은 이승의 하인
그리고
나로 인한 다른 주인일 뿐이다.
[ 수로를 흐르는 물 ]
조가터에서 도광터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옛날에는 우마차나 겨우 다니던 길로 등하교의 학생들이나 장에 다니던 사람들이 들락거리던 길이다. 논두랑, 봇두랑 길로 연결되었던 길이 이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바뀌었으니 어떤때는 한시간을 계속 걸어도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다닌다 해도 근동에 사는 농부들이 모는 차이다. 그러다 보니 길 옆으로는 사라져 가는 우리 옛것들을 더러더러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옛날 화전민들의 가옥은 물론이고 비알밭과 뙤밭, 그리고 당과 상여집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여기 오래 살았던 사람의 말로는 저녁때만 되면 골짜구니마다 전부 저녁 하느라 불을 때기 때문에 연기가 마치 안개 낀것 처럼 뿌옇게 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골짜구니마다 너다섯집씩 살았을 망정 초상이나 잔치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슬퍼하고 기뻐하였으니 그게 다 우리네 민초들이 살아온 방법이다.
[ 일하다 잠시 휴식... ]
이랑에 쇠스랑발 박히고
피붙이 우는 소리에 뚝버들은 늙어가누나.
우물은 깊어 물 마르지 않아도
동이에 그림자 가난을 저주하고
당으로 가는 길에 우뚝 선 소나무는 말이 없네.
마른가리 갈개에 물은 찔끔거리는데
도랑에 가재들은 뒷걸음질 치고
아이들 홋드기소리 들리다 말다
아낙들 산에 오르는 모습 가무가물.
[ 귀가하는 노인 ]
눈 녹은 계곡은 잠잠하고
새들 떼지어 날아가니 하늘은 아득하다.
풀 한 광목은 봄빛에 잘도 마르는데
처자의 상상은 끝이 없나니
어머니 시집올 적 가지고 온 괴 속에 은비녀
달빛에 빛나던 색경
버선이 아직 헤지지 않았건만
따뜻한 바람은 가슴을 두드리고
청량한 물소리
귀만 심란하게 만드누나.
[ 잘 투디린 논 ]
올 해 된장은 빛깔부터가 달랐다. 워난 메주가 잘 뜬데다가 작년보다 간장을 들 뺐더니 향도 이만저만 좋은게 아니다. 먹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니 그 과정이 청결해야 함은 물론이고 주변 환경도 도와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깨끗하고 투명한 빛과 공기와 물, 이것이 장맛을 저절로 들게 하니 이것을 나누어 먹는 즐거움 또한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더도 말고 올해도 콩 세가마만 또 장을 담글 계획을 세웠다. 그것이 내 보시의 한계이다.
[ 잘 익은 된장 ]
뚝버들 꽃가루 날리고
산은 그자리
빛깔 드러내도 거처 움직이지 않네.
화두가 있어도
비켜서 움직이지 않으니
어지러운 세상에 비꽃이 되어 내리리라.
스승께서 말하여
민초들을 너무 믿지 말라!
위정자의 거짓에도
그들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불이 붙기 때문이지.
그 한가운데에서
방탕한 자의 노래를 들어보기를.
이렇게 말하였다.
[ 익어가는 된장 ]
부드러운 살 땅에 잇다.
견고한 뼈 능선에 있지.
혜안의 호수 하늘에 있으니
그것으로 향하는 것은 사람들의 본성
그러나 지금의 위정자들을 보라!
백성을 우롱하고
가난한 민초들을 학대하며
그들의 곡간이 차는것만을 기뻐하고
권세가 영원하기를 신께 기도한다.
[ 정직한 길 ]
정의로운 자의 죽음
바위가 되었다.
타락한 이들이 정을 대어 쪼으려 했지.
쪼아라!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고
마침내 먼지가 되어도
이 강토
이 하늘 아래 민심의 중심이 되어
마침내 그 횃불을 올리리라.
= 의로운 지도자를 애도하면서 =
[ 아름다운 색 ]
첫댓글 사진 스토리텔링이 잘되어 있는 것 같아 퍼옵니다.
사진 넘 좋네요.